가장 불평등한 나라 대통령
룰라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수많은 도전을 했고 많이 이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성취는 브라질 국민 애국심과 북돋워진 희망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던 룰라 대통령이 이룬 놀라운 경제성취보다 더 중요한 고갱이는 보통 사람이 희망을 갖게 만든 일이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고 소외받고 차별받던 가난한 선반공 출신 노동자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글로벌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처럼 국가부도를 맞게 될 것”라고 막말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룰라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600억 달러나 되는 뭉칫돈이 브라질을 빠져 나갔고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대통령이 된 룰라는 누구를 가리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과 무릎을 맞대고 소통하려고 애썼으며, 자기가 겪은 아픔을 잊지 않고 배고픈 사람 손을 붙들고 울었다. 브라질을 위해서라면 어디서건 어깨를 펴고 브라질 말로 할 말을 다 한 대통령이었다. 좌파라는 비난이나 중산층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우를 넘나들며 성장과 분배를 아우르며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룰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빈부 골이 깊었다. 공공부채는 나라 총생산 60퍼센트에 이르렀고, 앞선 정권이 남긴 2천억 달러가 넘는 버거운 외채, 국민 열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실업자였다. 상위 10퍼센트 사람들 소득 비중이 50퍼센트가 넘어, 지니 계수 0.58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꼽혔다. 룰라 정부 최우선 과제는 빈곤퇴치였다.
빈곤층 소망 실현이 우리 등대
가장 먼저 펼친 정책은 ‘배고픔은 없다’는 뜻인 포미 제로FOME ZERO 프로젝트였다. 절대 빈곤 가정에 다달이 50헤알Real(우리 돈 2만원)짜리 카드를 지급, 정해진 식당에서 쓸 수 있도록 했으나 준비 부족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룰라 대통령은 이듬해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라는 새로운 빈곤층 생계비 지원정책을 내놨다. 월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가정에 모자라는 만큼 식량이나 돈을 주는 정책. 지원금을 받으려면 자녀 학교 출석률이 85퍼센트를 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예방주사를 맞혔다는 증명서를 내야 했다. 문맹률과 어린이 사망률을 낮추려는 뜻에서 나온 구상. 보수언론과 야당들은 민중을 선동하는 수단으로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였지만 룰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모자라는 재원을 확보하려고 공무원 퇴직 연령을 60살로 늦추고 수령액을 낮추는 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7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연금제도 개혁을 지지했지만, 정작 룰라 대통령 핵심 지지기반인 공무원 노조를 비롯한 공공부문 지식인, 중간계층들은 룰라를 배신자라고 규탄하며 극렬한 파업투쟁을 벌였다. 룰라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걸고 드세게 밀어붙인 개혁안은 2003년 8월 73퍼센트란 높은 지지로 하원을 통과했다.
룰라 집권 2년째인 2004년 브라질 경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계 원자재 수요가 가파르게 느는 행운을 거머쥔 룰라 대통령은 내수 시장을 견인했다. 취임 초부터 추진한 최저임금인상정책과 빈민구제정책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져 소비촉진으로 이어졌다. 2006년 재선에 도전한 룰라는 브라질 경기 호전에 힘입어 61퍼센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한다. 룰라는 재선 취임 연설에서 “저는 오늘 모든 브라질 국민 눈을 바라보며 얘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보듬는 일이 제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러나 손길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을 먼저 보호하겠습니다. 빈곤층 소망을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앞길을 비춰주는 등대입니다.”라고 했다.
국가 부도 위기 앞에서 취임한 룰라 대통령이 퇴임하기 이태 앞선 2008년, 브라질은 500년 역사상처음으로 외환보유액이 외채를 넘어섰다. 2010년 퇴임할 때까지 경제성장률 7.5퍼센트,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밀어올린 룰라는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저는 브라질이 이젠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고 굳게 믿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적은 나라, 더 많이 일하는 나라, 민주주의가 굳건한 나라, 산업기반이 단단히 다져진 나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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