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사랑, 무한 행복 그에게서 붓다의 길을 찾다
무한 사랑, 무한 행복 그에게서 붓다의 길을 찾다
  • 사기순
  • 승인 2013.03.26 09:35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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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기순의 <그의 삶 나의 거울> 6.- 명상음악가 김무한
사람을 만나면 그의 지난 삶이 보인다. 물론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진실한 사람은 알 것 같다. 얼굴 표정은 물론이고 목소리, 가벼운 손짓 하나에도 그의 삶이, 내면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과 만나면 순전히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금세 의기투합(?)하게 된다. 마치 예전부터 만난 것 같은 친숙함과 아울러 내면의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크나큰 감동을 받는다. 그의 삶은 그대로 내 삶의 거울이 된다. 그의 삶 덕분에 내 삶을 반조하게 되니 이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 명상음악가 김무한 선생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의 노래 속에는 법문, 깨달음이 깃들어 있다
“치자꽃 향기 같은 ‘김무한 선생님’ 노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마음으로 가는 길, 심우도. 모두 마음이 주제군요. 그 ~마음을 찾기 위해서 불자들은 기도하고 공부합니다. 책 펴놓고 공부를 해도 모릅니다. 잠만 쏟아지지요. 번뜩..!! 명상가수 김무한 님 노래에 심취해서 듣고 또~듣고..그 노래 속에 법문이 깃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찾겠다..찾겠다.. .생각과 마음의 차이..무한 선생님의; 노래 속에서 찾았습니다..손으로 잡히지 않습니다..노래 속에 내 눈이 고정되고..마음이 머뭅니다..많은 방청객 속에 저도 있었습니다..황홀했구요..듣고 있던 도반들이 소곤소곤..너무 좋아..맞어.”
-소월

그를 만나기 전 다음카페 ‘김무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들어가 보았다. 72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카페는 활기가 넘쳤다. 김무한의 음악실, 공연 소식, 음반주문코너, 사진 동영상 자료실 등을 담아놓은 ‘무한공간’을 보면서 카페 이름처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그의 노래를 마음 깊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앞에 인용한 소월님의 댓글에서 나는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나는 문서포교사라고 자임하면서 마음을 찾는 책을 만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독자들은 책 펴놓고 공부를 하면 잠만 쏟아진단다. 그런데 명상가수인 그의 노래를 들으면 심취하게 되고 손에 잡히지 않던 마음을 찾아가게 되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리고 그 까닭은, 소월님의 표현에 의하면, 그의 노래 속에는 법문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손에 잡히지 않았던 마음공부가 저절로 되어 진다는 것이다. 방청객들 모두 황홀하고 서로 좋아하며 공감하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그의 음악세계가 궁금해졌다. 대체 노랫말이 어떻기에 법문이라 표현하고, 황홀한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했는가?

“덧없이 흐르는 게 세월이라/ 구름처럼 흘러흘러/ 나는 지금 어디메뇨/ 마음의 님을 찾아/ 얽히고 설키었던 인연 타래/ 한 올 한 올 풀다 겨워/ 돌아보니 머문 자리/ 무상초 홀로 피어/ 세상사 색즉시공/ 구경열반 공즉시색/ 무상심심 미묘한 뜻/ 잎새 끝에 달렸구나/ 형상없는 무딘 마음/ 홀연히 벗어 놓고/ 불암 불암 개골가락/ 절로 흥겨우니/ 물같이 바람같이/ 그리 살다 나는 가리/ 물처럼 바람처럼/ 그리 살다 나는 가리.”
-무상초 중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면 전율이 흐른다. 왜 그를 명상음악가라 하는지 알 수 있다. 법문이 담긴 노랫말도 좋지만, 그 노랫소리가 깊다. 마음을 울린다. 그 목소리에 삶의 깨달음이 녹아 있기 때문일까?

번뇌가 크면 깨달음도 크다
그의 어머니는 5살 때 병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어린아이는 말을 잃었다.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외로움을 달래던 어느 날 울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여인을 보았다. 어린 마음에도 ‘밤에 왜 바다로 들어가지’ 하는 의문이 생겼었는데, 다음날 그 자리에 가보니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어린 나이에 목격한 죽음은 큰 충격이었고 상처로 남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울면서 바다로 들어가던 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도 죽을 텐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학창시절 내내 화두가 되어 그를 괴롭혔다. 말을 하지 않는 증세로 인해 오해도 많이 받았다. 또래 친구들이 웃고 뛰어놀 때도 그는 친구들처럼 웃고 떠들면서 놀 수 없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인생의 실존을 모르고 까닭 없이 웃을 수 없었다. 뭐가 기쁘고 뭐가 맛있는지도 몰랐다. 답을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다. 괴로웠다. 방황했다.

“음악과 노래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래곤 했지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방황할 때 부산에서 제일 유명했던 무아음악감상실에서 DJ를 했습니다. 그때 노래자랑 연말대상을 탄 인연으로 다운타운가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절에도 가보고 교회에도 가보았지만 안심 입명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음악감상실에서 난 화재사건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옷에 불이 붙어 살이 타들어가 전신화상을 입은 한 남성을 병원에 데려갔다가 6개월 동안 간호하게 되었다. 스무 살 청년이 아무 조건 없이 보호자가 됐다는 것만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사람이다. 이를 일러 관음보살의 화현이라 하지 않는가 싶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헛소리를 하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화상 환자들, 낮에는 화상병동에서 그를 간호하고 저녁에는 응급실로 내려갔다. 약물중독으로 실려온 사람, 자살한 사람, 교통사고로 다친 사람 등 병원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챙겨왔던 화두가 되살아났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다행히 화상을 입었던 분이 6개월 만에 퇴원해서 보내드리고, 그때부터 저는 만행을 떠났습니다.”

중생이 아프니 보살이 아프다고 하던가? 그는 길가에서 만난 여인을 업고 병원으로 갔다가 그녀가 폐렴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금세 인간이 아닌 병균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서 또 한번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궁구하게 된다. 길에서 만난 노숙자와 친구가 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음식을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그에게 힘들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라는 얘기도 해 주었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밤이 되면 사람들을 피해서 숲에서 잤다. 겨울에는 볏단 속에 들어가 자기도 하고 논 근처에 농기구를 모아놓은 창고에 들어가서 자기도 했다. 겨울에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한 고통도 느꼈다. 그대로 죽을 것 같은 두려움도 느꼈다. 몸을 너무 움츠려서 몸이 펴지지 않는 것도 경험했다. 밤새도록 부는 바람소리에 잠 못 들며 그동안 겪었던 일들, 죽어가던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생사의 까닭을 알고 싶어서 길을 나섰는데 도대체 알 길이 없었다.

죽을 것 같은 추위 속에 벌벌 떨다가 동이 트면 언덕 위에 올라가 햇살이 와닿는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비닐하우스 속의 채소가 부럽기도 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도 ‘죽음’에 대한 의문만 오롯이 남았다. 다른 것은 전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서운 사람들도 많았지만 고마운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어느 날 너무 배가 고파서 연못 속의 우렁을 잡아먹으려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구해주셨다. 댁으로 데려가 새 옷도 주고 밥도 먹여주신 할아버지,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아무런 조건 없이 100원을 주시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대부분 돈을 주고받을 때는 조건이 따르잖아요. 심지어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줄 때도 공부 잘해라, 말 잘 들어라 하는 조건을 붙이는데, 그 아주머니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시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 산속에서 헤맬 때 정말 아사 직전이었습니다. 군인이 준 밥 한 그릇이 제겐 생명이었습니다. 이분들 덕분에 지금 제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그는 교도소와 군법당에서 20여 년 넘도록 봉사하고 있다.)”

만행하는 스님도 만났다. 스님을 따라 흉내도 내보았다. 3년 동안 길에서 길을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다시 도시로 돌아와 책방을 뒤졌다. 늘 대장경을 읽고 계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대장경을 세밀히 살폈다. <조당집>에서 28대 조사들의 오도송을 읽으면서 답을 구하게 되었다. 눈물이 흘렀다. 경전을 들고 절에 찾아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세상에 비유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당신이 아니 계셨다면 이 의문을 풀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 속에서 찾았으니 당신께 삼배를 올립니다. 부처님, 당신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노래로 부처님의 은혜, 사람들의 은혜를 갚으리라
여섯 살 때부터 가져왔던 의문을 풀었다.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은 환희, 부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부처님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실 것인가? 법을 전하리라.

“부처님과 사람들의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갚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보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노래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마음으로 가는 길’ CD에 오롯이 담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또한 그의 ‘다시 부르는 찬불가’ CD 또한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그의 태교 명상음반 ‘아기와 함께 온 선물’은 그를 태교명상음악가로 거듭나게 했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올 1월 31일까지 산모를 대상으로 태교명상음악을 80회나 공연한 태교명상음악가로도 이름이 높다. 그의 태교명상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자연분만하게 되고, 아기를 낳은 후에도 회복이 빠르다는 산모들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덕분이다. 우리 아들을 낳을 때 태교명상음악을 듣지 못한 안타까움이 큰 만큼 주위사람들에게 적극 전해주고 싶다. 좋은 것을 나누는 것 또한 보살행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가 태교명상음악을 하게 된 계기 또한 감동적이다.

그는 남부교도소(구 영등포교도소)에서 20여 년 전부터 무주상보시로 재소자합창단을 지도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 함께하면서 태교명상음악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분들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서로 평등한데 다만 한 생각, 습관이 다를 뿐입니다. 한 생각이 원래 없던 습관을 만들어 욱 하는 마음에 죄를 지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사회에서 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명상과 음악을 즐겨보라고 했습니다. 명상을 가르쳐주고 호흡을 가르쳐주고 노래를 가르쳐주니 눈물을 흘리더군요. 어느 날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노래한 ‘부모은중’을 했는데, 함께 온 재소자들의 어머니들도 펑펑 우셨습니다.”

재소자들이 마음을 열었다. 눈빛이 순해졌다. 다른 재소자들에게 들려달라고 청원을 해 전국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재범율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어느 날 재소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결혼하면 어떤 아기를 낳고 싶냐고 물었다. 착하고 어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재소자의 말, 태교를 통해서 자신도 돌아보고 심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교라기보다는 부모가 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부처님의 가르침, 마음가짐에 대해 들려주고 싶었다.

“실제로는 불교음악인데, 태교명상음악, 명상음악이라 한 까닭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종교에 대한 벽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명상을 통해 서로의 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노래를 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소통이 됩니다. 통영의 연대도라는 섬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의 심성을 어질게 만들고 즐겁게 하고 명상에 들게 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노래로 들려주면 종교를 초월해서 좋아합니다.”

종교라는 안경을 쓰고 벽을 세우는 이들이 많다. 종교를 통해 마음이 평안해져야 하는데, 서로를 편 가르고 배타하며 오히려 마음이 황폐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명상을 통해, 그의 명상음악을 통해 서로의 마음 문을 열게 되면 서로를 찬탄하게 된다. 불교에 그런 좋은 말씀이 있느냐며 마음 문을 여는 이웃종교인들과 소통할 때 한없이 기쁘다는 그, 사람들이 감동의 메시지를 전해 줄 때 에너지가 샘솟고, 이생이 다할 때까지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겠다는 그에게서 대승불교의 진정한 보살행을 본다.

부처님이 좋아하는 행을 하는 이가 부처다. 만행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을 묻고 부처님 법에서 그 답을 찾고 대자유인이 되어 깨달음을 향한 명상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의 노래를 듣고 상처 받은 영혼들이 새로운 삶을 찾고 운명을 변화시키니 그 사람을 어찌 부처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처행을 하는 우리 시대의 부처가 우리 곁에 수도 없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면서 그의 노래를 듣는다.

“물처럼 바람처럼/ 그리 살다 나는 가리.” 

   
민족사 주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법륜>, <현대불교>, <불광> 편집부장, 불교시대사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엮은 책으로 『행복해지는 습관-정무 스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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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기 2013-04-01 15:12:41
기사의 댓글을 보면서 그분을 그대로 읽는 것 같은 느낌...
참삶을 그대로 살아내고 옆에서 그대로 그것을 읽어낼수 있어
뵙는걸로 노래를 듣는걸로 그대로 마음공부가 됩니다.
많은 분들이 그의 음악을 듣고 같은 마음을 느끼길 바랄뿐입니다 ^^

구절초 2013-03-28 07:59:01
몇년전 아주 실같은 연으로 김무한이라는 사람을 알았습니다.
첫인상은 수도자의 모습으로 보였는데, 몇마디 말을 주고 받으면서 맑고 깨끗한 동자승의 면모를 발견하고는 그 매력에 빠져 아직까지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힘들고 거친 세상에 뭇중생들을 위해 나투신 관세음보살님이 진정 이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척박한 세상을 살면서 이런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삶의 한줄기 빛입니다.
무한사랑 파이팅!!!

소월 2013-03-27 18:05:48
사기순님께서 제가쓴글 발췌해 주셨네요
대한민국 불자님들 김무한선생님 찬불가를 들어야 합니디
다 마음으로 가는길 가삿말 수지독성할 정도로 좋이한답니다
무한사랑 부쳐님사랑..^^

대각행 2013-03-27 10:30:41
먼저 사기순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한선생님 카페에서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렇게 선생님에 대해 감동이 가는 글을 써주셔서 더욱 더 선생님에 대해 존경심을 다시한번 갖고 되고, 늘 사회에 부처님의 마음으로 행하시는 마음에 감사함과 함께, 많은분들이 이 법음을 듣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부소산 2013-03-27 08:42:03
김무한을 사랑하는 모임,..이란 淸淨 카페를 찾아가면,..♤...
어느 메뉴에서나..그의 맑고 고운 美聲을 들을수 있다...他 카페에선,..상상도 못할 한달에 한번씩, 전국의 名山大刹을 찾아...차원높은 茶會도 화려하게 장식한다..♧..
명색이 나도 회원이지만, 한달걸러 모이는 오프라인 모임엔 한번도 못가는데..
이 카페에 가입된 회원님들의 誠意는 놀랄만, 하다..★..
김무한 선생의 앞길에..☆.. 健勝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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