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데라(氏寺)의 건립과 씨족불교(氏族佛敎)의 전개
우지데라(氏寺)의 건립과 씨족불교(氏族佛敎)의 전개
  • 김춘호
  • 승인 2013.03.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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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춘호의 일본 불교문화 강좌-5. 제4강

지난 강좌들을 통해 우리는 일본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상황과, 불교수용을 둘러싼 숭불파와 배불파의 대립, 그리고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원 아스카데라(飛鳥寺)의 창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확인하였다.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여정이었다고 하겠는데, 오늘 강좌에서는 ‘씨족불교’라는 표현으로 규정될 수 있는 이 시기 일본불교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자.

우지데라(氏寺)의 건립

<일본서기>에는 594년 2월, 스이코(推古)천황이 쇼토쿠(聖德)태자와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에게 삼보(三寶)를 흥륭(興隆)시킬 것을 명하고, 이에 군신들은 앞 다투어 불사(佛舍)를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전쟁패배로 인해 배불파가 사라진 당시 일본 조정의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기사다.

불교전래 이후부터 40여년 간 지속되어오던 배불파와 숭불파의 팽팽한 대립은 불교수용의 가부라는 이념적 대립임과 동시에 조정의 실권을 둘러싼 이권의 대립이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배불파의 중추였던 모노노베(物部)가문이 몰락함에 따라 배불파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소가노 우마코와 소토쿠 태자를 중심으로 숭불의 새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다른 호족들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숭불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고, 아스카데라(飛鳥寺)를 창건한 소가노 우마코를 따라 자신들도 앞 다투어 사찰을 건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록으로부터 30년 후인 624년, 당시 일본의 사찰과 승려의 일제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사원이 46개소, 비구스님이 816명, 비구니스님이 569명이었다고 한다. 실재로 현재 유물·유적, 문헌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아스카시대 건립사찰은 모두 62개소에 이른다. 이들 사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 <아스카시대 사원 일람>(출처 : 田村圓澄, <飛鳥·白鳳佛敎史)

이들 사원의 분포를 보면,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야마토(大和, 현재의 奈良縣)에 27개소가 집중되어 있고, 다음으로 오사카(大阪) 일원에 20개소, 교토(京都)에 6개소, 시가(滋賀)와 오카야마(岡山)에 각 3개소, 효고(兵庫), 히로시마(廣島), 사이타마(埼玉)에 각각 1개소가 분포되어 있다. 당시 야마토 지역은 소가(蘇我)가문과 쇼토쿠(聖德)태자의 본거지이기도 하였고, 오사카와 교토일원은 주로 도래인(渡來人)들의 본거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초기사원 건립의 대부분이 숭불파의 주도적 역할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탑을 두루 갖춘 가람의 건립에는 상당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충분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은 물론, 당시로서는 신기술이었던 사찰건립을 위한 기술력까지를 모두 확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2개소 이상의 우지데라를 건립하고 있는 소가씨와 쇼토쿠태자, 그리고 한반도출신의 도래계 씨족인 하타씨(秦氏) 등은 숭불파 중에서도 특히 그 세력이 강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지데라(氏寺)의 성격

그렇다면, 당시 건립된 우지데라들에서 행해진 불교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이는 초기 일본불교의 성격을 묻는 질문이기도한데, 아스카데라(飛鳥寺)의 예를 통해 그 해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전 강좌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아스카데라는 587년 7월, 배불파와의 전쟁을 앞둔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가 전쟁 승리를 기원하며 사원 건립을 서약한 것이 사찰건립의 계기가 되었다. 이는 아스카데라가 소가씨 개인의 사사(私寺) 즉 소가가문의 우지데라(氏寺)로서 건립된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일본서기>에 596년 11월 소가노 우마코의 아들 소가노 젠코쿠(蘇我善德)를 아스카데라의 사무(寺務)를 총괄하는 사사(寺司)로 임명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또한 아스카데라가 소가씨 일족의 우지데라(氏寺)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후에 국가불교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아스카데라가 일본불교계의 가장 중심 사찰로서 유지하지만, 소가가문의 우지데라라는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한편, 1957년 아스카데라의 제3차 발굴조사시에 이 절에서 행해진 불교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탑심초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인데, 그 내용은 대량의 옥류(玉類), 무구(武具), 마구(馬具), 금동제금구(金具), 금은연판 등이었다.

<일본서기>에 593년 정월에 탑심초에 사리를 봉안하고 심주(心柱)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유물이 바로 당시에 사리장엄으로서 봉안된 것들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이들 유물들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각종 옥류와 마구, 갑옷(挂甲), 금환(金環), 도자(刀子) 등인데, 이들 유물은 일본의 후기고분의 매장품과 같은 유물이었던 것이다. 이는 불교전래 이전부터 일본에 있었던 조령숭배(祖靈崇拜)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초기의 사리영험신앙이 고분의 조령숭배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아스카데라 사리장엄 일부>(그림출처:http://www.nabunken.go.jp/contents/fujiwara/asuka/2-3.html)

그리고 <일본서기>나 <원흥사연기>등에서 불상을 칭하여 ‘번신(藩神)’, ‘불신(佛神)’, ‘타국신(他國神)’이라고 하고 있는 것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아스카데라는 소가씨의 조상을 모시고, 그 영험을 통해 소가씨 일족의 현세적 번영을 기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찰, 즉 말 그대로 소가가문의 우지데라(氏寺)였음을 알 수 있다.

소토쿠(聖德)태자의 발원으로 건립된 호류지(法隆寺) 역시, 아스카데라의 경우와 같이 소토쿠태자 일족의 우지데라(氏寺)였으며, 사카다데라(坂田寺), 히노구마데라(檜隈寺), 도묘지(道明寺), 사이린지(西琳寺) 등도 모두 도래인 씨족들의 우지데라였다.

이와 같이 당시 숭불파의 주도로 조성된 우지데라들은 아스카데라가 그러하듯이, 각각의 씨족들이 가족이나 구성원들의 현세와 내세적 이익을 불·보살에게 기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사찰이었던 것이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을 넘어선 보편적 종교로서의 불교가 전래 초기 일본에서는 개개 씨족과 그들의 영유지내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한정적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내면에서는 불교전래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던 고분시대의 조상숭배의 전통이 불교와 혼용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일족의 조상숭배와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우지데라의 전통은 아스카시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중세이후 부터는 보다이지(菩提寺)의 개념과도 합치되어 일본불교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고 있음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동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 강사로 불교문화를 가르친다. 전남 여수 출생. 원광대학교 동양종교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교토의 불교대학에서 불교문화를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쳤다. 일본불교사연구소, 사적과 미술(史迹と美術) 등 한·일 학계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고대 한국과 일본의 불교 문화재나 유적, 불교신앙 등을 주된 연구테마로 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일본의 역사」(2010, 역서), 「고대 한국과 일본과 일본의 불탑수용과 그 전개」(박사학위논문), 「아스카·나라시대 불탑의 전개에 대하여」, 「고대일본의 경전신앙」, 「고대 일본의 민간포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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