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다. 이른 아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쌀쌀함에 자연스레 어깨가 움츠려 드니 말이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역시나 꽁꽁 얼어버린 거리만큼이나 굳어 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마음속으로 진언을 외워본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인들이 붙여준 제목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진언은 우리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어린 시절 그 의미도 모르는 채 무언가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장난처럼 외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교의 경전은 팔만 사천 법문이라고 할 만큼 그 양에 있어서 방대하다. 다라니와 진언은 이처럼 많은 경전을 기억하기 쉽도록 경전을 압축한 것이며, 부처님의 진실한 본원이 담긴 말로써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진언은 그 의미를 해석하기 보다는 진언을 받아 지녀, 잊지 않고 마음속으로 항상 기억하고 암송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진언을 설해주면 무한한 공덕과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경전에서는 말한다.
경전에서 진언이 설해지는 동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고, 다라니나 진언을 암송함으로써 얻어지는 공덕은 재해와 재난의 소멸을 비롯하여 멸죄, 소원성취,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다. 이처럼 진언은 세속적인 성취가 중심이 되어 설해지기도 하고, 출세간적인 성취에 중점을 두어 설해지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세속적인 성취를 위한 진언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는 세속적인 성취와 출세간적인 성취는 등가의 가치가 있으며, 경전에서도 두 가지의 한맛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대자비로써 진언을 설하고, 불·보살들로 하여금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 진언을 설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불모대공작명왕경(佛母大孔雀明王經)』에는 독사에 물린 사저비구를 본 아난이 부처님께 급히 달려가서 아뢴다. “세존이시여, 사저비구가 독이 퍼져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여래께서는 대자비로 어떻게 구호하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마하마유리불모명왕대다라니’가 있는데 큰 위력이 있어 독기와 두려움과 재앙의 고통을 없애고, 모든 유정들을 섭수하여 안락을 얻게 한다.”
이 진언은 사저비구의 독을 제거하기 위한 세속적인 성취의 진언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경전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으로 해치는 좋지 않은 일들과 모든 나쁜 병을 일으키는 귀신들로 하여금 포악한 마음을 버리고,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진언의 암송으로써 세계의 안락과 열반의 출세간적인 성취를 설한다.
이처럼 진언의 암송은 개인의 고통을 제거한다는 작은 시작이었으나 어느새 모든 존재의 고통의 소멸을 통한 뭇 중생의 안락과 이익으로 회향된다. 바로 이 점이 ‘수리수리 마하수리’ 연재의 기본 방향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라니와 진언을 설하는 여러 경전을 소개한다. 그것은 현세의 재물을 얻거나 지혜와 기억력을 증강시키는 것과 같은 세속적 성취를 얻는 다라니일 수도 있고, 업장을 소멸하여 깨달음을 얻는 다라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쪽이든 진언의 암송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독이 제거된 밝고 바른 생각에 의해 나의 고통이 제거되며, 다른 이들을 위해 그 마음을 낼 때야 비로소 복과 지혜로서 마음의 편안함과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