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의 酒色·北行을 보는 두가지 시선
경허선사의 酒色·北行을 보는 두가지 시선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2.11.21 14:27
  •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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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학술세미나 개최…“경허 주색은 낭설” 주장도
 “경허 스님의 주색(酒色)과 북행(北行, 삼수갑산행)은 낭설을 확대 재해석한 것이다”.(박재현 교수) “경허의 주색을 비판하는 것은 선불교 관점에서 봤을 때 말장난에 불과하다.”(김영욱 연구원)

경허 스님의 주색과 삼수갑산행 해석이 학자들마저 분분하다.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행을 깨달음과 저잣거리에서 깨달음을 전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과 한국불교를 병들게 한 막행막식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국 근대 선불교의 새벽별로 추앙받아 온 경허 스님은 현대 한국불교를 이끌고 있는 대부분 문중의 뿌리여서 그의 무애행을 비판하는 것은 전체 출가자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불교평론> 가을호에 경허의 주색을 냉철히 평가해야 한다면서 “근대 선종 중흥조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스님의 막행막식 무애행은 한국불교를 깊은 병에 들게 했다”고 평가하자, 곧바로 <불교평론>이 폐간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윤대표는 경허의 삼수갑산행을 “경허스님 조차도 자신의 행동이 불교에 폐해가 되고 있음을 깨닫고 후회했으며, 그 결과 삼수갑산행을 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일 열린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학술세미나’에서는 경허 스님의 주색과 삼수갑산행에 윤창화 대표와는 전혀 반대의 해석이 발표됐다.

“입전수수 억지 해석은 본모습 누 끼치는 것”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는 경허의 주색 여부는 인정하면서도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기 수행에 철저하면서도 솔직한 선사로 평가했다.

그는 경허의 “술도 혹 방광하고 여색도 그러하니, 탐진치 번뇌 속에서 나귀의 해를 보내노라”는 싯구와 “부처와 중생을 나는 알지 못하노니, 평생토록 술 취한 중이나 되어야겠다”고 노래한 것을 ‘자기 심경을 진솔하게 노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경허가 속인들과 어울릴 때 차운 또는 화답의 목적으로 지은 시를 입전수수나 이류중생의 경계로 억지 해석을 하는 것은 경허의 본모습에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대안으로 <정본 경허집> 발간을 주문했다.

간화선 연구자인 김영욱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경허 스님의 주색을 유마 거사의 행위에 대비해 세속의 해석을 경계했다. 선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주색 비판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허 주색 세속 잣대로 보는 것은 말장난”

김영욱 연구원은 유마거사는 금속여래의 지위에 머물지 않고 술집과 기방을 드나들면서 대해탈의 불사를 이루었다는 <선문염송설화> 883칙을 예를 들면서 “술집 등등은 중생들이 빠져 있는 혼미의 극치를 보여주기 위한 극적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경허 시의 특징을 불성과 같은 교학의 일반론으로 해석하면 경직한 굴레가 될 뿐이며, 화두에 논리적 논쟁이 끼어들면 말놀이가 될 뿐”이라고 해석했다. 경허의 주색이 기록된 시들을 ‘화두’로 읽어야 하고, 한국불교사에서 경허의 의미는 ‘한국 선의 명맥을 이었고, 심지 굵은 강인한 삶에 탈속한 궤적을 남겼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허의 주색을 세속의 잣대로 보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재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경허의 주색과 북행(삼수갑산행)은 ‘낭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경허의 일탈과 기행 정보는 일화나 낭설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정직한 평가라고 했다. 그는 “(일탈과 기행) 소문에 휘말려 선입견을 가지고 경허의 선사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경허 스님의 삼수갑산행(북행)은 ‘은둔’, ‘환속’, ‘소멸’로 여겨졌다. 반면 이류중행(異類中行, 일반인과 함께 생활하며 수행과 교화에 힘쓰는 일) 또는 입전수수(入廛垂手, 저자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로도 본다. 윤창화 교수는 그의 북행을 막행막식을 후회한 참회형 은둔으로 보았다.

“경허 주색·북행 낭설 수준…확재 재해석된 것”

하지만 박재현 교수는 윤대표가 경허 스님의 주색을 한국불교의 폐해 원인으로 본 것과 북행을 주색에 반성한 참회의 은둔으로 해석한 것을 정면 반박했다. 또 부정적인 경허의 인물평은 식민지통치 이념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박 교수는 일제강점기 황국신민을 만드는 심전개발운동에 앞장서며 사상개조에 목을 멘 친일파 권상로와 김태흡에게는 경허의 주색이 더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고 이들이 부정적으로 확대 재해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경허를 한국불교의 사표로 삼기 어렵다는 일부의 주장 역시 독재와 식민지 허구성이 작동했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경허 스님은 바른 생활인을 요구하는 체제가 설정한 허구의 사표가 아닌 선의 사표라는 것이다.

경허 스님이 자신의 주색에 반성의 태도를 취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주색과 관련한 경허의 소회는 반성이라기보다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수용(self-acceptance)’의 태도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자아수용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정서적으로 성숙되고 안정된 사람의 의식에서 나타난 것으로 경허 스님 역시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명확히 인식해 취한 태도가 ‘북행’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허의 북행을 ‘의도적 자리비워주기’라고 이름지었다.

박 교수는 경허의 시 ‘自梵魚寺向海印寺途中口號(자범어사향해인사도중구호)’에 나타난 고민을 근거로 ‘의도적 자리비워주기’ 근거를 설명했다.

“경허 북행은 ‘의도적 자리비워주기’…은둔 아니다”

그는 경허의 ‘의도적 자리비워주기’인 북행은 자신의 위상과 세상의 위태로움 사이에서 발생한 처지를 솔직하게 인식해 빚어진 것으로 보았다. 일제강점기 시대적 상황에서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는 것에 세간과 출세간의 이치가 달라 섣부르게 나서기 어려운 처지에서 북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의 해석은 은둔 방식이 매끄럽지 못하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거나 의도하지 않은 막후의 실력자 행세를 하게 되는 상황을 염려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식견과 안목 있는 수행자가 불교계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 자리를 비워줬다는 것이다. 경허 스님이 은둔의 형식을 완전 소멸을 택한 이유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그는 “경허의 자리비워주기는 부질없는 권력지향에 비판의식과 권력의 내면화 경계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 교수는 “경허의 글에서 빈번하게 발생되는 대목이 수행자의 자긍심”이라며 “경허는 첫 마음의 회복이 세간의 입질로부터 수행자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으로 본 것 같다”고 밝혔다.

따라서 “경허의 일탈과 파격적인 일화들은 대부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것일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학술세미나는 조계종 교육원과 덕숭총림 수덕사가 주최했다. 이날 발표된 경허 스님의 주색과 북행과 관련한 발표는 대부분 ‘입전수수’에 해석이 치중됐다. 윤창화 대표가 <불교평론> 가을호에 발표한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의 해석을 반박하는 데 논거를 맞췄다는 오해를 살 법하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상하 교수(한국고전번역원)가 ‘경허 선의 특징과 게송ㆍ한시 해석의 제문제’를, 박재현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가 ‘현대 한국사회의 당면 문제와 경허의 사상’을, 효탄 스님(전국비구니회 전 기획실장)이 ‘경허성우의 법맥과 계승자’를, 김방룡 교수(충남대)가 ‘경허의 간화선과 수행관’을, 신규탁 교수(연세대)가 ‘<경허집> 법어에 나타난 경허의 선사상 소고’를 각각 발표했다.

토론은 김영욱 연구원(가산불교문화연구원), 변희욱 강사(서울대 철학과), 한상길 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 김경집 교수(위덕대), 이성운 강사(동국대 불교학과) 등이 참여했다.

세미나에는 원로회의 부의장 명선 스님과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 교육원장 현응 스님, 포교원장 지원 스님, 중앙종회의장 향적 스님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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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2012-12-02 16:00:10
경허를 능가할만한 수행이력도 없고...
그러니 항상 경허와 경허를 존경하는 자들을 싸잡아 비난만 하는 게지.
새대가리인가. 비난하는 것만으로 경허를 뛰어 넘었다고 착각하나 보지? ㅋ

푸후 2012-12-02 00:49:57
아래 경허 광신자것들. 니들 나가 놀거라. 훠이, 훠이. 끝.

비틀즈 2012-11-28 14:03:50
자신을 고결하다, 생각한다고 해서 타인이 추악해지지는 않는다.
타인을 추악하다, 말한다 해서 자신이 고결해 지지도 않는다.
중생심에 뿌리를 둔 생각으로 아무리 고결과 성스러움을 떠든다해도 중생심일 뿐이다.
성속을 초월한 자들의 행위를 속의 차원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슨 불법을 공부해?
원효,진묵,경허만큼의 법을 내놓지 못할진대 어찌 그들보다 자신위 위에 있다는 착각을 하는지 ㅉㅉㅉ

허허 2012-11-28 13:44:49
고만 하자 더러운 똥받에 뒹군듯하다^^ 죄송합니다~!!!

비틀즈 2012-11-28 10:30:16
당신은 불법을 모르는 것이다. 수행자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분별심,행위 이전의 마음을 무시하고 그저 행위자체만 놓고 옳다그르다하는 편협함, 개인차원의 도덕률을 불법의 가장 높은 뜻인양 주장하는 가치전복,깨달은 자라면 획일적으로 모두 석가모니와 같은 수준이어야만 한다는 몰상식, 원효,진묵,경허를 높이는 자들은 도덕적 책임의식이 없어서 칭송하나? 어처구니 없네. 한국불교 기현상이 이 3인방 때문? 점점 미쳐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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