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교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여러 뉴스들을 접하면서도 침묵하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지난 번 ‘아쇼카 선언’과 관련된 문제 제기 이후, 가능한 한 종단 정치와 관련된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했다. 대안을 제시하고 비판한다고 해서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이익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최근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승려도박 사건과 관련하여 조계종의 쇄신안을 보면서도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나 답답했다. 어떤 사람이 애정을 갖고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면, 그 사람의 주장이 무엇인지 귀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인신공격성 댓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광기어린 댓글들을 보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했다. 불교를 신행하는 불자들의 댓글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글들이 너무나 많이 올라왔다. 어쩌다가 우리 불교계가 이와 같이 이성을 잃어버렸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잘못된 행위를 비호한다고 해서 그 허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우리 모두 반성하고 앞으로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비판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라면 한국불교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苦]고 하면, 반드시 그 문제에는 원인이 있다[集]. 그 원인을 제거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으로 돌아간다[滅]. 그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이 곧 해결책이다[道]. 이것이 붓다가 가르쳐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이다. 이 사성제의 진리를 떠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승려도박 사건과 관련하여 조계종에서 내놓은 쇄신안은 그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쇄신안의 핵심은 제도 개혁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잘못된 제도는 개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제도 개혁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모든 개혁과 쇄신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개혁은 이루기 어렵다. 문제는 필자를 포함하여 현재 승단에 몸담고 있는 출가자들의 의식이 먼저 개혁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승려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 가지만 지적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가장 기본적인 오계조차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성이다. 정치인에게 도덕성을 강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종교인에게는 더욱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출가한 사람은 세속 사람들보다는 무언가 다른 목적과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의 승려들의 비도덕적 행위가 드러날 때, 재가신자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실망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둘째는 상식과 지식이 세속인보다 낮기 때문이다. 많은 승려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있지만, 일부의 승려들은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지식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많겠지만 깨달음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병폐라고 진단할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불교학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외도의 가르침을 불교라고 잘못 알고 있는 스님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신심 돈독한 재가불자들이 오히려 더 열심히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승려들이 재가자로부터 불교를 배우게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셋째는 역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의식은 아직도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시대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의식의 결여는 종교 혹은 불교의 시대적 사명을 알지 못한다. 불교계의 의식수준이 산업화 시대 이전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과 더불어 시대를 앞서가는 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넓은 독서가 요구된다.
제도의 개혁과 쇄신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저절로 해결된다. 모든 허물은 제도 때문이 아니라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제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빗어진다. 다시 말해서 승려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를 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승려들이 저지른 비행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종헌종법에 없기 때문에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비리를 저지른 자를 감싸고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근절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모든 일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고 옥상옥의 무슨 쇄신위원회를 만든다거나 혹은 대중공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다는 등 소모적인 논쟁만 계속하고 있다. 모든 문제는 제도와 조직의 탓이 아니다.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승단 쇄신은 의식개혁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세인들이 웃는다 오랜관성을 끊어버리지못하면 이땅에 불교는 희망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