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석왕사의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특별했다. 한마음 축제를 열어 다문화 가정의 설움을 달래고, 유독 많은 아픔을 간직한 청소년들이 춤과 노래로 발산하도록 했다.
11개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선보인 '제5회 다문화 가정과 함께하는 한마음축제'가 초파일을 하루 앞둔 27일 하루종일 경내에서 펼쳐졌다.
부천, 김포를 비롯해 주로 경기도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국의 향수를 느끼려는 듯 아침부터 부스마다 음식을 준비해 오전 11시께 근사한 장터가 들어섰다. 간간히 심술을 부리는 비바람사이로 맨땅이었던 석왕사 대웅전 앞마당을 공예품 생필품 전통음식으로 채웠다.
참가한 근로자들은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몽골, 태국, 스리랑카, 미국 그리고 한국의 불자들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베트남의 분까(국수)등 자기들만의 전통음식으로 솜씨를 뽐냈다.
점심시간을 지나자 자기나라 전통장이 열렸다는 소식에 한국에 시집 온 새댁들도 부스별로 하나둘 동참해 음식장만에 손을 거들었다. 전통 공예품과 동료 근로자를 위한 바자도 곳곳에서 진행됐다.
나라별 부스를 돌며 음식을 나누고 물건을 사주는 것은 이국 만리서 겪는 동병상련인 그리움과 설움의 다른 표현일 터. 의사 소통 도구는 서툰 한국어와 눈웃음이 섞인 몸짓이 전부였지만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천원이라도 깍으려는 노력은 한푼이 아쉬운 근로자들만의 몸에 밴 습성처럼 보였다.
오랫만에 만난 자국민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다 금새 못다한 고국 얘기로 함박웃음이다. 석왕사 풍물패의 길놀이에 어깨를 들썩이며 어줍잖지만 흥이 배인 춤사위로 동참하면서는 흥까지 돋았다.
장터가 열리는 사이 중앙무대에서 이국인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감초는 석왕사 룸비니유치원생들의 재롱잔치. 30명 많게는 78명이 한 무대에 올라 어렵사리 준비한 율동을 자랑했다. 고국에 두고왔을 아기들 생각에 눈시울 적실 틈도 없이 유아들의 실수에 폭소가 쉴새 없이 터졌다.
재롱잔치의 주연은 늘 그렇듯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다. 엄마들은 무대에서 실수를 하건 말건 내 새끼를 카메라에 담으려 무대 위라도 올라갈 기세다. 자기 엄마를 확인하려는 유치원생들이 율동을 잊어먹는 건 당연지사.
이어진 외국인 장기자랑은 유아들 재롱잔치 못지 않은 재미와 향수를 선사했다. 제기차기 대회에서 한국인을 제치고 일등을 차지한 이는 26살의 베트남 새댁. 언제 배웠는지 20개를 넘겨 한국인이 다 된듯 했다. 한국은 3등으로 체면만 유지했다. 장기자랑에서는 중국출신의 두 여성이 전통춤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독차지했다. 훌라후 경연, 태국의 전통무예 시범이 이어졌다.
대웅전엔 나라별로 모인 불자들이 자국어로 정성껏 경전을 염송했다. 법당에는 스리랑카 국왕이 보내준 불상, 캄보디아 근로자들이 기증하고 간 불상 등 동남아 각 나라별 불상이 봉안돼 있다. 이곳 불전함에서 나온 시주금은 모두 그 나라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해 되돌려 준다. 주지 영담 스님은 불전함마다 1년에 천만원 이상씩 나온다고 귀띔했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연등의 황홀한 자태를 배경삼아 촬영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조선족 출신 이자옥(39.여)씨는 문자로 옌벤에 있는 아들(12)에게 사진을 보냈다고 했다.
오후5시부터 외국인근로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2012 부천청소년문화축제'다. 석왕사, 원종종합사회복지관 등이 공동주최한 이 행사는 사찰 공간을 청소년들에게 빌려줘 마음껏 청춘의 고민을 춤 노래 연주로 발산하라는 의도다.
심원고 손주희 양등 7명으로 구성된 댄스 동아리 '이슈'를 비롯해 12팀의 열띤 경연과 부천시공무원 밴드인 '피치타운'과 대학생밴드인 '중독'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Fantastic Youth'라고 이름을 붙인 이 행사는 한차례 더 예선을 거친 뒤 오는 10월 석왕사 개산대제에서 최종결선을 한다. 뽑힌 한 팀은 석왕사 부천시 등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했다.
저녁 8시. 전통장마당과 바자, 재롱잔치와 청소년문화축제가 끝나고 1만개의 등에 불이켜지는 것과 때를 맞춰 주한 스리랑카 대사 티샤 위제라트네(Tissa Wijeratne) 일행이 절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처음 봉행되는 스리랑카 전통 장엄등 점등 법회를 위해서다. 대사는 대웅전에 참배하며 자국 근로자를 위해 별도의 부처님을 모셔 놓은 영담 스님에게 여러차례 고마움을 표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긴히 입국한 스리랑카의 왕사 왈폴라 피야난가(Walpola Piyananga) 스님이 증명법사로 모셔졌다.
스리랑카 전통등 기술자인 아지트(34)씨가 입국해 지난 한달동안 석왕사에서 숙식하며 만든 높이 12m에 32개의 크고 작은 등을 단 회전식 장엄등이다.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 설계를 변경하기도 하고, 저속회전 모터를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단다.
피야난가 스님의 축원에 200여명의 스리랑카 근로자들이 함께 염송했다. 스님은 스리랑카 근로자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스리랑카의 문화를 알리고 양국이 불교로 하나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영담 스님이야말로 민간외교의 최일선이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영담 스님은 "스리랑카 노동자의 기술과 노력으로 점등함으로써 지혜의 등이 더욱 빛난다"며 "한국에 와 있는 2만4천명의 스리랑카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라고 축원했다.
캄보디아 태국 등 불교국가 근로자들은 스리랑카 장엄등 점등식을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장엄등에 합장하며 동료들과 어깨를 걸고 한참을 등 옆에서 떠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