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분명히 앉아 계신데(今日分明坐此臺)
주장자 끝에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杖頭有眼明如漆)
언제나 온 누리를 밝게 비추네(照破山河大地來)
성철 큰스님을 기억하는 일체 불자들의 마음이 꼭 이러할 것입니다. 큰스님과 인연이 있거나 한 마디 가르침을 경청했던 국민들의 마음 또한 이러할 것입니다. 올해는 큰스님께서 이 땅에 나투신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큰스님께서는 한국불교가 미처 틀을 마련하지 못했을 때, 우리 민족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격변의 시기에 있을 때 출가수행의 인연을 통해 서릿발 같은 정진과 청빈의 삶으로 출가 수행자는 물론이요, 세간에도 팔정도(八正道)를 실행으로 보이셨습니다. 중생의 몸으로서 부처에 이르는 길(道)을 일생의 일상적인 수행으로서 솔선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마음의 눈을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진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럼에도 탐심, 진심, 어리석음에 물든 중생들은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하였고 물을 물이라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늘을 하늘로 보지 못하고 땅을 땅으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게 분별과 망상 때문일 것입니다. 큰스님의 그러한 진언은 수행자와 불자는 물론이요 국민의 진언으로 우리들의 신구의(身口意)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추상같은 엄격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추셨던 대선사이셨습니다. 一大事本分을 해결하려 묵묵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한없이 온화하셨지만 자기 머리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게으름을 피우는 이들에게는 호랑이처럼 매섭고 칼날처럼 단호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지극한 자비심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억겁의 무명을 일시에 걷어버리고 깨달음이라는 無盡燈을 켜는 순간 영원한 대자유의 길이 열리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철 스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특별전시회와 큰스님의 행적이 깃들어 있는 24곳의 수행도량순례 등 많은 추모행사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큰스님께서 총림대중에게 매일매일 설법하셨던 백일법문의 취지를 복원하여 부처님의 정법을 대중에게 알리는 법석을 펼친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참으로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소 큰스님께서는 눈 감은 사람이 바로 걸을 수 없으며, 먼지 앉은 거울이 사물을 바로 비출 수는 없다고 설하셨습니다. 부디 인연있는 사부대중 모두가 성철 큰스님을 지혜와 복덕을 본받아 지혜의 눈을 뜨고 진리의 거울에 맑게 비친 각자의 본래 면목을 볼 수 있기를 갈앙(渴仰)합니다.
불기2556년 3월 11일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혜광 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