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펴 제대로 봅시다! 말합시다! 합시다!
잘 살펴 제대로 봅시다! 말합시다! 합시다!
  •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
  • 승인 2012.01.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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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600주년 성도절 법문

[태고종 열린선원 선원장 법현 스님이 구랍 31일 성도절 의미 있는 법문을 했다. 법문 전문을 게재한다]

축하합니다! 싯다르타가 부처님 되심을 축하하고, 여러분은 이제 수행하여 부처님 되실 것이니 축하합니다! 내일은 싯다르타가 6년간의 수행을 마치고 스스로 붓다임을 확인하여 고요한 기쁨을 누린 날입니다.

그것도 2600주년 깨달음 얻으신 날입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날입니까? 남방에서는 태어난 날도 깨달은 날도 5월 보름이라고 하는데, 뒤에 전달받은 북방에서는 날짜 계산법의 차이로 태어난 날은 4월 초파일, 깨달은 날은 12월 초파일이라고 합니다.

내일이 바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 날이어서 붓다의 뒤를 이을 우리들은 붓다처럼 용맹정진하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붓다가 거의 6년 동안 다른 스승들의 가르침대로 선정수행과 고행을 열심히 하고 스승들의 인가를 받았으나 온전히 고요한 기쁨을 누리는 상태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행으로 약해진 몸을 씻고 유미죽을 먹어 기운을 차린 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용맹정진한 기간이 일주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성도일을 앞두고 일주일동안 정진하는 전통이 생겼는데 중국에서도 참선으로 정진하는 것을 선칠(禪七),염불로 정진하는 것은 불칠(佛七)이라하여 지금도 따르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불교에 입문한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당시 평택의 자그마한 비구니도량에서 50분 참선,10분 휴식으로 밤을 샜습니다. 눈을 감고하는지 뜨고 하는지도 모르고 처음으로 하는 참선이었지만 스님의 새벽법문을 들으면서‘나는 원숭이놀음 한 것 아닌가? 싯다르타를 본 샛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멋모르고 했지만 그 때의 밤샘참선이 기반이 되어 오늘 여러분과 함께 붓다처럼 수행하는 수행자로서 평생을 살게 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참여하신 여러분도 또한 여러 생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그래서 우리 열린선원에서는 오늘의 정진을 그저 철야정진(徹夜精進)이라 하지 않고 우리말로 ‘밤샘참선’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날은 절도 하고,염불도 하며, 참선도 하면서 정진하더라도 오늘만큼은 참선으로 밤을 새자는 뜻이지요.

부처님이 깨달으신 날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을 깨달았을까요? 경전을 통해서 알아봅시다. “마치 큰 나무들이 빽빽한 숲 속을 헤매다가 고대인들이 다녔던 길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살았던 거대한 도시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도시를 복구하여 다시 발전시키는 것과 같다. 나도 그와 같이 옛 길을 발견 한 것이다. 내가 발견한 옛 길이란 옛날에 올바른 깨달음이 얻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이었다. 그 길이 바로 팔정도이다.” 재미있지요? 처음 깨달은 분이 석가모니부처님이어서 우리가 따르고 있는데 부처님은 옛날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이고 그 길은 여덟 가지 바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면 옛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깨달음을 얻은 순간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내 마음은 형성되지 않은 것을 이루었네. 온갖 갈애(渴愛.tanha) 다 끝내어 버렸네.” 형성된 것은 다 부서집니다. 그러기에 부서지지 않는 고요한 기쁨인 열반(涅槃.nibbana)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목표인 열반을 이루면 온갖 갈애가 없어지고, 갈애를 모두 없애면 형성되지 않은 것을 이룹니다. ‘열반이란 깨달은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열반이라는 것을 보아야 깨달음’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수 없는 삶의 괴로움을 가지게 하는 윤회의 원인인 집짓기가 없어져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읊었습니다. “너는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 너의 모든 서까래 부서지고 마룻대 또한 부러 졌도다.” 집을 짓지 못하도록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집짓는 이를 찾아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오 집 짓는 이여, 드디어 너를 찾아냈도다.”라고 그 첫 기쁨을 노래하셨지요. 집 짓는 이라고 비유되는 마음(心)과 마음부수(心所)의 작용 그리고 그것들이 지어내는 여러 가지 현상과 규칙들(法.dhamma)을 잘 살펴서 알게 되면 집짓는 이가 집을 지을 수 없게 됩니다. 마치 햇살이 들어오기 전에는 곰팡이 등 균들이 살아서 여러 가지 질병을 만들어내지만 밝고 따뜻한 햇볕이 쬐면 균들이 없어지고 질병은 생기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들이라도 생겨난 것은 변하게 마련이고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인생에 비유하면 아무리 지식과 돈과 아름다움이 흘러넘쳐도 끝내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흐름에 밀려서 스스로의 의지와도 관계없이 수없는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구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태어남은 언제나 실로 괴로운 것”이라고 말이지요. 세상에 태어난 누가 괴롭지 않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역사적으로, 공간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난 이가 그런 적이 있습니까? 오늘의 여러 곳에서 소위 성공했다는 이들도 모두 괴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부처님의 말씀을 빌면 바로 “그러나 찾지 못한 채 수많은 태어남의 윤회 속을 줄곧 서둘러 왔었네.” 때문입니다. 바로 집짓는 이를 찾지 못해서라는 것이지요. 원인을 찾지 못하면 결과를 얻을 수 없지요. 병의 원인이 마음의 문제인지, 음식의 문제인지, 휴식의 문제인지, 과로나 부딪침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괴로운 이유, 괴로운 삶의 모습을 이어가는 이유 즉 윤회를 계속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에 들끓고 슬픔에 가라앉기를 계속하는 윤회에서 벗어나 고요한 기쁨, 움직이지 않는 평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을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에게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참석하신 대중 여러분들도 누구나“이 법문을 듣고 올바른 믿음을 가지면 청정한 수행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청정한 수행을 계속하면 부처님처럼 윤회에서 벗어나 고요한 기쁨, 움직이지 않는 평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쬐끔’해도 될까요? 덮어놓고 오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익혀서 수행하되 “이 몸이 가죽과 힘줄, 뼈만 남고 피와 살은 다 말라서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등각(正等覺)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 라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셨는가? 6년간의 다른 이들의 가르침을 따라 함께했던 선정(禪定.samatha)을 기본으로 하고, 모든 것이 주의를 온전히 기울여 낱 마음이 되지 않고 온 마음(專念.sati)이 되게 하여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자세하게 살폈습니다. 세밀하고 자세하게 잘 살피는 것을 위빳사나(觀.vipassana)라고 합니다. 몸(身.kaya)과 감각(受.vedana)과 마음(心.citta)과 지각대상(法.dhamma)을 살피는 것이 바로 붓다에 이르는 뛰어난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하여 전생(前生)도 보고, 업(業)의 작용도 알고, 연기(緣起)를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는 길을 알고 고요한 기쁨, 움직이지 않는 평화를 얻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제가 무엇으로 했고 여러분은 무엇으로 알았습니까? 말씀으로 하고 말씀을 들어서 이해하시지요? 그냥 다 이해가 바로 되시던가요? 그렇지 않지요? 우리 나라사람들에게 우리말로 하는데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요? 말하는 사람의 여러 조건과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이해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그 말씀에 들어있는 ‘참뜻(眞意),본뜻(本意),숨은 뜻(密意),행간의 뜻(間意),’을 알아내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쉽지 않지요? 그래서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면 스스로도 행복하고, 관계있는 이와도 평화로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송시대의 수행자들이 말씀(話頭)을 주제로 명상하게 한 것이 간화선(看話禪)의 전통입니다. 화두의 두(頭)는 뜻이 없는 허사라 ‘말머리’가 아니라 ‘말, 말씀’의 뜻이랍니다. 우리나라는 대승불교를 중심으로 불교전파가 이루어져 간화선 수행전통이 활발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위빳사나를 수행하든, 간화선을 수행하든 각자의 기호와 해오던 방법을 따라서 하십시오. 위빳사나를 바로 하기는 힘들 것이니 사마타를 하시는 분은 들숨과 날숨을 자세히 관찰하십시오. 들숨과 날숨이 코를 통해 드나들면서 부딪치는 접촉점을 찾아보십시오. 화두를 어느 스승으로부터 받으신 분은 그것으로 정진하시고 오늘 처음이신 분은 ‘오늘 이 자리에 육체가 온 것인가? 정신이 온 것인가?’를 문제 삼아 해답을 구해보십시오. 주의할 것은 문제는 이미 알았으니 답을 찾는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을 수행하든 몸과 마음의 현상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는 말씀을 잘 살펴서 제대로 봅시다! 제대로 말합시다! 제대로 생활합시다! 감사합니다.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열린선원 원장.태고종 전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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