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564돌, 세상과 어울리는 ‘한글불교’ 꿈꾸자(上)
한글날 564돌, 세상과 어울리는 ‘한글불교’ 꿈꾸자(上)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0.10.09 0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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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易經), 역경(逆境)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글의 창제목적과 불교 대중화

10월9일은 한글이 반포된 지 564돌을 맞는 날이다. 한글날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혀 있는 ‘세종 28년 9월 상한’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한글학회에서 상순의 끝 날인 음력 9월10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잡고, 이를 다시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다.

불교에서 한글은 매우 중요하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 중에는 쉬운 문자로 불교를 적극 포교하려는 목적이 포함돼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동국대 이만 교수는 “조선은 공식입장에서 유교이념을 표방했지만 백성의 심성에는 여전히 불교를 신앙하는 이원구조를 갖고 있었다”면서 “정음으로 편찬된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 등의 서적은 불교대중화를 너머 불교중흥의 대역사였다”고 해석한다.

성균관대 강신항 교수·서울대 안병희 교수·동국대 이만 교수·강릉대 김광해 교수 등 많은 학자들은 훈민정음의 표면적 창제목적에는 백성의 불편을 덜기 위한 음소문자의 창제, 조선한자음 정리 등이 있었지만 내면에는 진지한 불교신앙이 숨어있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나아가 안주호 순천향대 교수는 “불교범어라고 일컬어지는 ‘실담문자’가 한글의 음운체계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한다.

또 한국세종한림원 강상원 박사는 “훈민정음을 만든 사람은 집현전 학자도 세종대왕도 아닌 신미 스님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강 박사는 “영산 김 씨의 족보와, <복천보장>에 등장하는 기록에 의하면 신미 스님은 한학에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범어에도 능통한 학승으로 집현전에 초빙돼 한글 창제에 임했다는 기록이 명백하게 나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한발 더 나아가 주장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이후 <능엄경>, <원각경>등 수십 종의 불교경전이 제일 먼저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등 각종 연구 결과물로 보면 학계의 합의가 완전하지 않다 해도 한글과 불교의 관계는 매우 깊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불교의 한글화는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한 진행형이다.

한글화 작업이 일단락된 <한글대장경>은 일반대중이 읽기에는 여전히 그 뜻이 상통하지 못한다. 한문을 한글로 바꾸긴 했지만 한문투의 말로 웬만한 불교 지식이 없고는 알기 힘들다. 의식도 여전히 한문으로 된 의례로 이루어진다. 서울 불광사 등 몇몇 사찰이 ‘한글 반야심경’ 을 활용하지만 사찰마다 제각각 인데다 의식용으로는 다소 어색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한글날 564돌을 맞아 경전의 한글화 문제를 다시 짚어본다.

불교 3대 과제 도제양성·역경·포교

불교에서 경전한글화 작업은 중차대한 과제였다. 현대불교에서 ‘한글’은 교육·포교·세계화 등 모든 영역의 문제와 결부된다. 조계종단이 역경·도제양성·포교를 종단 ‘3대 과제’로 제시하고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이 역경분야였다. 동국역경원 설립이 구체적 방안이었다. 역경원의 설립은 경전의 한글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도제양성은 물론 포교 역시 실현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국불교에서 역경 사업의 중심은 역시 ‘동국역경원’이었다. 1962년 통합종단을 출범시킨 조계종은 이듬해 1963년 중앙종회가 ‘역경위원회법’을 만들고 이듬해 7월 21일 동국대학교에 동국역경원을 개원했다.

동국역경원은 “1234년부터 1251년에 걸쳐서 조판된 불교문화의 정수이며, 민족 최대의 국보로 유네스코에서 세계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 지정된 1511부 6,802권(81,285과)의 <고려대장경>과 국내 고승들의 저술을 우리 글로 번역 출간하여, 국내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우리 조상의 얼과 정신적 힘의 뿌리가 된 ‘대장경’이 한문이라는 언어의 벽에 막혀 대중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은 무엇보다 긴급한 사안이었고, 동국역경원은 해인사에 보본되어 있는 팔만대장경 전부를 번역 발행하고자 했다고 동국역경원은 말한다.

동국역경원은 설립 다음해인 1965년 <장아함경>을 시작으로 ‘한글대장경’이란 이름으로 2001년까지 모두 318권의 경전을 한글화했다. 장장 37년의 대역사를 일단락했다.

동국역경원의 역사가 역경의 역사

동국역경원은 한국불교 역경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역경원 설립이전 경전 한글화를 위한 첫걸음이 있었다. 1963년 6월 <우리말 팔만대장경>이 출간된다. 이는 대한불교청년회가 ‘성전발간준비위원회’를 결성해 1962년 4월부터 추진한 것으로 한글대장경 발간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말 팔만대장경>은 완역본은 아니고 간추린 불교성전의 형태였지만, 이 책을 편찬하는 데 참여한 인물들이 김달진, 권상로, 김잉석, 김동화, 이운허, 이대은, 법정 스님 등 대부분이 조계종 역경위원들이었다.

또 역경원 설립 이전부터 출판사 ‘법보원’을 만들어 한글경전을 독자적으로 펴냈던 석주 스님 등의 노력은 ‘경전 한글화’의 디딤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구·대처 분규를 끝내고 출범한 조계종이 역경 사업을 3대과제의 하나로 설정한 것이 역경 사업이다. 3대 과제의 나머지 두 과제인 도제양성과 포교 사업은 역경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효과를 이룰 수 있는 부수적인 것이라 할 만큼 역경은 최우선 과제였다. 동국역경원이 발족할 당시 역경사업에 대한 종단 안팎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였다.

박종린(동국역경원 역경위원)은 당시 역경사업에 대한 관심을 “초대 역경원장을 지낸 대강백 운허 스님이 계셨고 청담 스님, 석주 스님, 자운 스님, 관응 스님, 탄허 스님, 경산 스님 등 고승대덕 스님들과 김법린, 조명기 박사 등 당대의 쟁쟁한 재가불자들의 참여와 힘입은 바 컸다”고 회고했다.

역경원 37년, 한글대장경 318책 완간

동국역경원이 출범한 지 1년여 만에 한글대장경 첫 성과물인 <장아함경>을 출간한 것은 국고보조를 받기 위해 고심하던 운허 스님의 판단이었다. 종단 기구인 역경원을 동국대학교 내에 둔 것 역시 국고보조를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또 정부가 인정하는 실적이 있으면 국고보조에 유리했기 때문에 <장아함경>의 출간을 서두른 것으로 전해진다. <장아함경> 출간은 1964년 조계종 총무원이 간행비로 1백만 원을 보조하기로 했지만, 그 이듬해인 1965년 56만원이 지급되어 국판 800면 양장본으로 초판 2,000부가 발간됐다. 이후 한글대장경은 1994년 26책의 한글대장경이 간행된 것을 비롯해, 1995년 28책, 96년에 36책, 97년에 30책 등 4년간 총 116책이 간행되었다. 또 1998년에 33책,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35책을 발간했다. 이 동안 국고지원은 약 19억여 원, 동국대학교 및 후원회 지원, 자체 자금 등 31억여 원이 투자돼 184책의 한글대장경이 발간됐다. 1965년 <장아함경> 발간 이후 37년여 만인 2001년 318책으로 한글대장경이 완간됐다. 우리말로 된 대장경을 갖는 기쁨은 한국불교의 자랑이라 할 만하다.

한글대장경의 완간은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대장경 가운데 또 하나의 역본을 갖게 됐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한글대장경의 완간은 우선 불교학 연구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대지도론> 등 논부의 번역과 <사분율> 등 율부의 번역,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등 사휘부의 번역은 불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밑거름이 되고 있다. 외형적 성과가 아니다. 이를 밑거름으로 파생될 셀 수 없는 효과는 무량공덕이라 할만하다.
특히 한문이라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대중들이 부처님 말씀을 우리글로 읽을 수 있는 대장경의 대중화의 길목이 트였다는 점은 한국불교의 대중화의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된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불교를 스님의 설법을 통해 접했다. 아니면 기도 중에 접하는 경전류들이나 기초 개론서를 통해 접했다. 한글대장경은 불교를 접하는 대중들에게 ‘경전’의 올바른 불교를 제대로 접하게 되는 기초 텍스트가 된다.

한글대장경 시대 맞는 언어로 개역해야

하지만 318책의 ‘한글대장경’이 역경 사업의 종착점은 아니다. 한글대장경을 완간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진영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은 “한글대장경은 정확한 분류체계에 따라 간행되지 못했다”며 “한글대장경의 새 과제로 세계 불교학계가 인정하는 대장경분류법에 따른 체계적인 분류와 함께 일련번호를 누여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이진영 위원은 더불어 “한글대장경은 한정된 예산과 촉박한 시간으로 급하게 번역돼 오역과 누락이 많은 채 간행되었다”면서 “언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천한다”며 한글대장경의 전면 개역을 요구했다. 이 위원은 이 같은 과제해결을 위해 “역경 전문가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도 밝혔었다. 역경원 발족 당시의 역경위원들은 타계한 분이 많거나 고령이어서 현재 경전 번역에 참가하는 역경전문가는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한글대장경의 전산화도 큰 과제이다. 동국역경원은 한글대장경 완간 이후 정부 지원과 자체 예산으로 동국대 전자불전연구소와 함께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진행중이지만, 지속적인 예산 확보에 고민중이다.

한글대장경이 새롭게 개역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시대에 맞는, 현대 세상과 어울리는 언어로 부처님의 말씀을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 한글대장경이 완간돼 대대적인 역경 사업이 필요하냐는 지적도 있지만 역경 사업은 시효가 없는 한국불교의 중점과제이다. 또 일부에서는 불교학자들이 개별적으로 경전에 대해 번역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금강경> <법화경> 등 ‘인기 경전’에 치중돼 한글대장경 전체를 새롭게 개역하는 작업은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기사 계속)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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