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복지·교육' 활용계획 무색…대체 기금조성안 세워야
"사후 승려 개인명의 재산이 속가로 상속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되는 사재출연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전국선원수좌회가 '승려 개인명의 재산의 사후 종단출연에 관한령(사재출연령)'에 대해 "적극 지지하지만, 승가복지 먼저 추진한 뒤 자발적 헌납 형태로 시행할 것"을 요구해 사실상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선원수좌회는 중앙종회와 총무원에 제출한 청원서를 통해 △분한신고와 연계한 졸속 시행 반대 △입법취지 찬성하나 보완 시행 △공청회 열어 모든 승려의견 수렴 △종회 입법활동 공개, 투명결정 △노후복지·종합복지 먼저 실시, 전 종도권익 평등보장 후 자발적 헌납풍토 조성 등 5가지를 요구했다.
사재출연령 내용과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시행을 반대하는 듯한 요구사항이다. 청빈하고도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수좌스님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선원수좌회는 청원서를 통해 "유언장, 사인증여계약서, 증여계약서의 내용은 종단의 모든 스님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행위이며, 획일적인 양식과 일방적인 계약조건으로 시행하는 것은 옳지 못한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또 "종단의 어른 스님과 많은 대덕스님들에 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며 승보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한 종단 전체 승려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며 "복지제도가 실시된 연후에 모든 승려가 개인의 자산을 자발적으로 종단에 헌납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시행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선원수좌회는 청원서에서 "적극 지지한다" "입법취지는 찬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복지 실시 후 전 종도권익 평등보장 후 자발적인 헌납풍토 조성' 요구에서 보듯 시행은 사실상 반대했다. 인격모독과 인권침해를 이유로 들었다.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 자리에서는 종단법 보다 민법이 우선이라는 수좌스님의 발언까지 있었다.
19일 열린 2차 토론회에서 "종도들이 노후에 기거할 토굴마저 종단에서 뺏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사재출연령에 의한 유언장은 환속을 제외하면 생전에 집행할 수 없는데도, 여전히 사재출연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격모독과 인권침해라는 선원수좌회의 주장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는게 종단내 반응이다.
선원수좌회는 사방승가와 현전승가의 차이를 들며 현전승가의 이념으로 보면 승려 개인의 자산을 인정한다면서 "승려 개인 자산을 인위적으로 취하려고 하는 것은 적합하지 못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사재출연령에 대해 "억지 논리" "부끄러운 일"이란 표현도 있었다. 강제적으로 종단이 재산을 뺏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한 내용이다.
천주교의 경우, 가톨릭 성직자는 교회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유언장을 써놓는다. 유언장의 집행권은 교구장으로 정해져있어, 속가이 가족은 일체 관여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신부와 수녀는 각종 사회인식 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인으로 꼽힌다.
"노후 기거할 토굴을 뺏는다고? 천만의 말씀"
사재출연령은 갑작스럽게 입적한 스님의 재산이 사찰 또는 상좌에게 이어지지 않고 속가의 법정상속인에게 상속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서 출발했다. 상속 문제로 사찰과 속가간 법적 분쟁이 매해 수십건씩 발생하자, 유출되는 삼보정재를 모아 종단과 사찰의 목적사업을 위해 쓰자는 의도로 입안됐다.
당초 중앙종회는 사재출연령의 근거가 된 <승려법>을 개정할 당시 권력층에 있는 스님들의 반발을 우려했을 뿐, 선원수좌회의 반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종법 개정후 2년이 지나서야 시행령을 입안한 총무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사재출연령의 내용이 청빈한 수좌스님들의 모임인 선원수좌회가 반대해야 할 만큼 악법인가.
사재출연령의 요지를 살펴보면, 조계종 승려는 분한신고, 수계, 고시응시, 법계품수, 주지품신 때 총무원에 유언장과 사인증여계약서, 증여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유언장에 기입할 수 있는 수증처(상속인)는 조계종유지재단, 재적본사, 종단등록 재직·거주사찰, 종단 관장 법인 등이다.
승려가 입적, 환속할 경우 총무원장(당연직 유지재단 이사장)은 개인명의의 재산을 확인해 수증처에 출연시키고, 수증처는 기금운영위원회를 통해 유지존속 또는 목적사업에 사용해야 한다.
유언장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수계, 고시, 법계, 주지임명, 선거권 등에 대해 제한을 받는다.
승려가 개인명의의 재산을 속가 또는 은처권속에 물려줄 의도가 없다면 사재출연령을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게 법조계의 조언이다. 유언장과 사인증여계약서 등이 총무원에 있다하더라도 살아있을때 재산을 뺏을 수도 없고 재산파악도 불가능하다. 의도적으로 명의를 타인으로 변경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유언장이 없어 속가에 상속될 재산을 사재출연령에 근거해 종단재산으로 존속시키고 이를 기금화해, 상당한 자금이 투입돼야할 승려복지와 교육에 사용토록 하겠다는 것이 총무원의 당초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는 많이 후퇴했다.
사재출연령에 대한 오해로 종도들의 반발이 일자 총무원은 오해받지 않겠다면서 수증처를 재적본사, 거주·재직사찰, 종단관장 법인 등으로 확대시켜 버렸다.
이렇다보니 유지재단으로 상속되는 일은 많지 않을 개연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이는 승려노후복지와 승려교육을 위한 기금조성이 더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유출될 삼보정재를 종단의 꼭 필요한 사업에 사용하겠다던 총무원의 계획이 무색해졌다.
이제 총무원은 승려노후복지와 백년대계 승려교육을 위한 별도의 기금조성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계속 선방이 성성적적하게 생명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