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 죄업·대재앙 업보로 기록될 것"
"환경파괴 죄업·대재앙 업보로 기록될 것"
  • 法應 스님
  • 승인 2010.03.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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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교적 관점에서 본 4대강 사업


이 글은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대강 개발, 다른 대안은 없는가' 심포지언 제1분과 <불교적 관점에서 본 4대강 사업>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불교닷컴>이 전제한다. (편집자 주)

1. 모든 것은 평등하다

불교에서 일체의 존재는 연기의 법칙과 상호의존성에 의해 성립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란 바로 이 연기(緣起)의 법(dharma)을 말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원리가 이 위에 세워지고 이것을 근거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가 설해진다.

연기법(緣起法)에 의하면 타자를 전제로 하지 않는 단독자로서의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가 관계의 그물을 형성한다. 이 관계의 그물에서 우위의 존재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 매에 쫓기던 비둘기 한 마리의 무게는 결국 보살(왕)의 목숨 전체를 요구했던 전생담 이야기는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탁월한 비유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불교의 가르침에는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있는 권리나 선민의식 따윈 애초에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자연파괴와 환경문제를 원인자로서, 또한 의식적 존재로서 생명들을 돌보고 지켜야하며 파괴된 자연과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고 정화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연기와 자비가 만나는 지점, 여기에 생태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불교의 요체가 있다. 무상이 무아로 이어지고, 다시 그로부터 자비행의 실천적 덕목이 설해지는 가르침이 불교다. 그 구체적 처방전이 팔정도(八正道)이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이며, 사무량심(四無量心)이고, 보현행원(普賢行願)이다. 이런 맥락에서 4대강 사업을 바라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2.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다

생태학을 의미하는 에콜로지(Ecology)는 독일의 에른스트 헥켈이 생물학 연구의 필요에 의해 만든 ‘에콜로기(Ecologie)'에서 파생된 말이다. ‘에코(Eco)'의 어원은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이다. 일반적으로 ‘거주지(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전체로서의)’를 의미하며, 넓은 의미로 ‘생식지’ 혹은 ‘생식권’을 뜻한다. 당연히 서구의 에콜로지는 생물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생태학은 생물과 환경의 상호관계 및 인간사회를 아우르는 통합과학이다.

동양, 특히 한자문화권에서 ‘생태(生態)’는 첫째, 살아있는 것들이 드러내는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운 모습이며, 둘째, 살아있는 것들의 생동하는 마음 상태, 셋째, 생물의 생리특성과 생활습성 등을 의미한다. 서양의 에콜로지는 ‘생태학’으로 번역되었다. 이 과정에서 숨어버린 동양의 사유언어는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에 대해 실마리의 한 끝을 제공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러움에 있을 것이다.

생태환경 파괴의 현장으로부터 고발되거나 보고되는 내용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가장 먼저 아름다움의 상실에 관해 분노하고 탄식하는 문장들과 만난다. 생태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순간 알아차린다. 그것은 지식 이전에 감성으로 우리 자신의 몸과 하나로 통섭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 계(system) 안에서 하나로 호흡하던 것들이 절단되거나 사라짐을 목격하는 것은, 이를테면 모태와 연결된 탯줄이 때 아니게 잘려나가는 충격이고, 부지불식간에 거세당하거나 불임을 선고받는 황당함과 같은 것이다.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 이 한 마디가 갖는 무게는 측량할 수 없다. 우리는 국가권력에 의해 ‘고향’을 ‘뭇’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존재는 인간에게 유용함과 관계없이 존재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며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3. 제법(諸法), 존재와 질서를 파괴하는 4대강사업

불교에서 법(dharma)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그것은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제법(諸法)’이라고 하면 ‘모든 존재’라는 뜻으로 읽힌다. 둘째, 존재의 양상 곧 존재의 법칙을 나타낸다. 셋째, 붓다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 경우 흔히 ‘교법(敎法)’이라는 단어로 기술된다.

‘4대강’이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나라의 4대강은 국토의 대동맥이고 대정맥이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물리·화학적 환경변화 및 (인간사회를 포함하는)생태계에 미치는 위험성은, 단지 개별 생명체가 사라진다거나 특정 종류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국토 전반에 걸친 거대 생태계(Ecosystem) 즉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인연들과 그 고리들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낱낱의 생물종이나 특정한 생명체 하나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연기론이라는 관계망으로 해석되는 세계에서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 ‘생명’이라는 것은, 식물과 동물을 비롯한 모든 생물적 구성요소와 무생물적 구성요소(토양, 물, 바람, 날씨, 기후, 에너지 등)가 하나로 묶여 상호간 밀접하게 얼개를 이루고 있는 체계적으로 조직된 단위로서의 계(界, system), 그 자체로서의 생명일 것이다.

생태계는 열린계이다. 겉모양이나 기능들은 장기간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생태계 안으로는 무언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또 나가고 있다. 살아있으며 열린계인 것이다. 4대강에 본격적으로 장비가 투입된 이후 여기저기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 육안으로 보이는 문제들의 수면 아래에서는 ‘세계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유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광포한 폭력과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목숨을 건 생존투쟁이다. 공사가 지속되고 확대될수록 전쟁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며, 내가 쏜 화살이 내 자신에게로 돌아오듯 그 광포한 폭력과 위협은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자연은 종종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해 왔다.

4대강사업은 국가권력에 의해 그 지역에 누대에 걸쳐서 그 환경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해온 주민들의 삶의 변화를 초래한다. 화려하고 번듯하게 보일 것이나 인공적으로 박제화 된 공사후의 모습은 국민의 사유세계를 친 자연에서 인공화로 변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4대강사업은 한반도의 인문, 지리적 환경질서를 파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4대강 개발사업’

현 정부가 4대강사업을 통해 욕망하는 것은 제2, 혹은 제3의 건설 성공신화일 것이다. 청계천 복원의 상업적 성공은 - 자연하천으로서 뿐 아니라 역사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하천을 거대한 콘크리트 어항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비판을 받을망정 - 이 욕망에 불을 붙였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욕망 그 자체는 사실 선도 악도 아니다. 욕망 그 자체는 무기(無記)라고 보는 것이 부처님의 시각이었다. 무기란 선악을 구별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이를테면, 누구나 식욕이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음식을 먹는다. 이때의 식욕은 선도 악도 아니다.

하지만 적당히 먹음으로써 몸을 보전하고 유지하는 것을 넘어 지나치게 먹어 도리어 몸을 상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어느 모로나 좋지 않다고 밖에 할 수 없으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충족하지 못하는 욕망으로 하여 남이 가진 것을 빼앗아 먹는 상황이 되면 그것은 나쁜 행위, 곧 악이 되고 만다. 욕망 자체는 무기이나 그것이 어떻게 통제되고 작용하느냐에 따라 악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 나쁜 욕망을 한역경전에서는 ‘탐욕’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놓았다. 불교의 ‘탐욕’이라는 용어는 ‘붉음(赤)' 또는 ‘연소(燃燒)’를 뜻하는 ‘rᾱga'를 번역한 말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서 좋지 않은 의미로 ‘욕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실 때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불꽃처럼 타오르는 맹렬한’ 탐욕을 가리키는 것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짐작하다시피 불교는 이 시점에서 중도(中道)를 이야기 한다. 중도를 오늘날의 환경문제에 적용하여 풀어낼 수 있다면 이른바 ‘지속가능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데서, 더구나 위법성마저 의심되는 마당에 70%에 가까운 국민들의 반대와 전문가들의 우려를 무릅쓰고 비민주적 방식으로 강행되는 현실에서 정권과 기득권을 공유하려는 자들의 탐욕을 볼 수 있다.

탐욕은 속성상 지치는 법이 없다. 성공신화에 대한 향수는 이 탐욕의 불길을 지속시켜 가는 진정한 동력원으로 우려와 비판의 소리, 눈에 보이는 상처나 생명들의 절규, 파괴되는 지역공동체의 호소는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 것들로 치부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통령의 의지와 거대예산으로 ‘4대강 사업’은 정권 유지의 핵이 되고 있음을 부정키 어렵다.

5. 악업을 추구하는 사회적 병리현상

하나의 거짓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그것을 막기 위해 새로운 속임수가 연달아 나타나기 마련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정부가 내놓는 명분과 해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질향상, 물 부족 해소, 홍수조절, 생태하천,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녹색환경 등 갖가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허구에 가까운 것들이다.

본질을 은폐하고 임기응변으로 사업의 타당성을 강변하다 보니 실상과 먼 컴퓨터그래픽 이미지 광고가 주를 이루고, 통계와 자료는 왜곡되기 일쑤다. 인간 중심의 탐심이 치심을 불러오고, 치심에 의해 진심이 일어나며, 진심에 의해 다시 더욱 큰 거짓과 탐욕으로 발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4대강 사업’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4대강 사업은 재고되는 것이 마땅하다.

6. 국토와 환경, 생명을 치유에 불교가 앞장서자

인간은 자연의 산물이다. 자연에서 인간이 나왔기에 만 생명과 우리는 둘이 아니다(不二). 그럼에도 인간의 과도한 탐욕이 자연을 병들게 하고, 죽어가게 한다. 인간의 몸이 병들면 치료를 받아야하며, 마음이 황폐화되면 수행으로 치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파괴된 자연도 치료 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산하대지는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 있는 존재다. 그것이 의정불이(依正不二)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국토가 우리와 같이 생명성을 가진 존재라면 강과 산을 보호하고 살리는 것은 생명을 존중해야하는 불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4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산하대지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생명성이 파괴되고 있다. 불자는 국토와 생명들이 외치는 고통의 절규를, 자연의 질서가 붕괴되는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이 외침을 외면하면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고 할 수 없다.

불교의 생명은 자비와 불살생에 있다. ‘4대강 사업’을 위해 진행되는 대규모 토목공사는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무수한 생명의 터전을 파괴함으로 대량살생을 전제로 한다. 바로 이 시대야 말로 불자가 나서서 동체대비를 실천할 때이다. 생명살림과 방생은 물고기 몇 마리를 방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환경파괴와 대량살생을 막는 것이 진정한 대승적 실천이며 보살행이다. 우리가 정부를 향해 4대강 사업을 재고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콘크리트 호안블록 틈 사이를 비집고 싹을 틔운 여린 들풀을 보라. 자연의 생명력은 여리디 여린 풀잎으로도 육중한 콘크리트 벽을 뚫어내는 힘을 지녔다. 콜로라도 강에 건설된 거대한 후버댐의 발전시스템을 먹통으로 만드는 것은 작은 조개들이다. 인간은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연을 통째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물길을 막고, 지형을 바꾸는 대규모 토목공사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와 생태계의 위대한 관계성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 법구경에는 “꽃의 아름다움과 색깔, 그리고 향기를 전혀 해치지 않고 그 꽃가루만을 따가는 저 벌처럼 그렇게 잠깬 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如蜂集華 不嬉色香 但取味去 仁入聚然 ).”는 구절이 있다.

환경파괴에 의한 죄업과 대재앙은 우리가 스스로 행한 업보로 기록될 것이다. 이를 예방하는 것이 이 시대 불교(자)가 할 일 중 하나다.

/ 法應(불교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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