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와 토지문제의 제도적 대안제시를 위한 토론회'
2009년 12월 16일
1.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물을 받아주거나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삶이다
아름다운 생이다
나는 지난겨울 한 무리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언 뿌리를 내리려다가
불에 타 죽는 걸 보았다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내주지 않는다
틈
(이상국, ‘틈’, <문학사상> 2009. 5.)
2.
千年田地八百主
田是主人人是客
천년 된 땅에 주인이 8백,
토지가 주인이요, 사람이 객이로다.
남송 시절 ‘오등회원’이란 선문답서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고염무의 「천하군국이병서」와 청나라 두문란의 「고요언」 등에도 전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문賢文」을 통해 널리 알려진 문장입니다.
3. 김윤상 교수님의 ‘지공주의(地公主義)’, 김수현 교수의 ‘시장만능’과 ‘공공성 중심’의 절충주의
1) 우리 헌법 제35조 3항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조항은 환경권이라는 조문 아래 위치합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조문이 환경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혼동한 것이라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주택문제는 사회보장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규정한 헌법 제34조 사회권 보장 조항에 위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요.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우리 헌법의 근본 규범이자, 독일식 표현을 빌자면, ‘국가목적 규정’에 해당합니다. 국가의 존재이유입니다. 헌법의 존재이유입니다. 국가의 작동이유입니다. 나라와 헌법과 법은 오로지 인간의 존엄을 증진시키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목적 아래서만 헌법적 정합성을 간직하게 됩니다. 공동체의 생활자로서의 지위, 시민으로서의 지위, 공화국 주권자로서의 지위는 인간다운 생활의 형편이 보장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일입니다.
2) 헌법재판소 1998년 12월 24일, 97헌바78 등 결정에 의하면,
“토지는 원칙적으로 생산이나 대체가 불가능하여 공급이 제한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가용 토지면적은 인구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에, 모든 국민이 생산 및 생활의 기반으로서 토지의 합리적인 이용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그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나 국민경제의 측면에서 다른 재산권과 같게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공동체의 이익이 보다 강하게 관철되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은 제122조(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본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개발과 보존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에서 토지재산권에 대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시한 바 있습니다.
3) 또한 헌법재판소는 2005년 9월 29일, 2003헌마678 등 사건에서, 재산권의 이용과 처분이 소유자의 개인적 영역에 머물지 아니하고, 국민일반의 자유 행사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국민 일반이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하여 문제되는 재산권에 의존하는 경우에는 입법자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의 재산권을 규율하는 권한은 더욱 넓어진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4) 두 가지 흐름이 상반됩니다. 공공성 개념의 확대화 경향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쇠퇴라는 세계적인 흐름, 국가와 정치의 강화라는 흐름, 좁은 땅, 많은 인구, 밀집된 서울이라는 한국 사회의 특성 등과 결합되면서 재산권 행사를 공공필요와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자 합니다. 원래 환경권과 아동보호 등에 적용됐던 사전예방의 원리를 공공성의 분야에까지 확장시키자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정반대의 흐름이 있습니다. 18세기 자본주의 초기 당시, 소유권 절대화의 흐름으로 되돌리려는 경향입니다. 세계사적 흐름과는 정반대로 소유권 근본주의에 기초한 소유권 절대주의, 특히 토지소유권 절대주의의 경향입니다. 대한민국의 특성과 결합되면서 최고의 재산가치로서, 투자가치로서의 토지소유권을 강조합니다. 헌법상 공공복리 적합의무 조항 자체를 삭제하자는 입장으로 연결됩니다. 토지공개념의 도입에 전면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헌법 제23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 제37조 2항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참고로 독일기본법 제14조 2항은 “재산권에는 의무가 수반된다. 그 행사에는 동시에 공공복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5) 사익과 공익의 조화는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 중 하나입니다. 이런 이념이 민법으로 가게 되면 역시 사적자치를 허용하되, 공공복리 또는 거래안전, 또는 제3자 보호와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고민하고 법은 최대한 절충시키는 쪽으로 규정하거나 해석합니다.
공개념, 공공성은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공화주의적 가치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1인1표의 자기결정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공동의 의사결정을 통해 실현하자고,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항은 지난 1948년 제헌헌법 이래 단 한 차례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권으로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인간다운 생활권의 기초로서의 주거권, 주거권의 기초로서의 토지, 그렇다면 결국 토지와 주택에 대한 공공성과 공적 개념이 우리 헌법의 기초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화국의 기초로서의 토지와 주택을 확인한다면 재개발·재건축 정책은 당연히 달라져야 하며, 토지에 대한 헌법적 사유구조도 당연히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수도권 택지 공개념만이라도 분명하게 인정하고, 이런 기초 하에서 주택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바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시장만능주의에서 시장합리주의로 돌아가는 일이요, 기업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이요, 오로지 성장에서 동반 성장으로 돌아가는 일이요, 요소 투입형 토목경제에서 사람 중심의 지식경제를 이루는 일이요, 사적 소유권과 공공성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요, 개인과 사회과 통합되는 일이요, 개인의 소유권과 거래안전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이를 통해서만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확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제비야
너는 전세계약서도 없이
이 세상에 세 들어 사는구나
계약이란
발목을 여러 개 묶는 것,
그게 상처 되는 것,
놀부네 하늘 아래서도
다치지 않았구나
(안도현, ‘제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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