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師를 기다리며
禪師를 기다리며
  • 이기표 원장
  • 승인 2009.12.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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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표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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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기, 비단 장사를 하는 청년이 한 짐을 짊어지고 오대산을 넘다 길옆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노스님을 발견하곤 이상해서 다가가 물었습니다.

“스님, 이렇게 오랫동안 꼼짝 않고 서 계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중생들에게 공양을 드리고 있는 중일세.”

“스님 옆에는 아무도 없는데 어떤 중생에게 무슨 공양을 드린다는 말씀입니까?”

“옷 속에 기어 다니는 이와 벼룩에게 피를 먹이고 있다네.”

“그런데 어찌하여 꼼짝을 않고 계십니까?”

“내가 움직이면 그놈들이 피를 빨아먹는데 불편할 것이 아닌가?”

말을 끝낸 노스님은 발걸음을 옮겼고, 스님의 말씀에 크게 감동한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스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윽고 동대암에 도착한 스님이 청년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따라왔는가?”

“저도 수행하여 스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내 제자가 되려면 내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예.”

“그렇다면 우선 부엌에 있는 가마솥부터 걸어라.”

청년이 부엌으로 가 보니 크기가 염전만한 가마가 있는지라 부지런히 흙을 이겨 부뚜막을 쌓고 솥을 걸었습니다. 하루 종일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마무리를 했건만 기척도 없이 불쑥 나타난 스님은 호통부터 치는 것입니다.

“이놈아, 이걸 솥이라고 걸었느냐? 한쪽으로 틀어졌으니 다시 걸도록 해라!”

스님은 다짜고짜 짚고 있던 석장으로 솥을 밀어 주저앉혀버렸습니다. 청년이 판단하기에는 조금도 틀어진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분부대로 불평 한마디 없이 더욱 정성을 다해 솥을 새로 걸었습니다.

그렇게 걸고 허물기를 아홉 번 만에 드디어 스님은 청년의 지극한 구도심을 인정하고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솥을 아홉 번 씩이나 고쳐 걸었다는 뜻에서 청년에게 구정(九鼎)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비로소
자신이 당대의 대선사 무염(無染)임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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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어느 날, 구정이 무염선사에게 간절히 물었습니다.

“스님, 대체 무엇을 부처라 하는지요?”

“즉심(卽心)이 부처니라.”

하지만 글을 배우지 못한 구정이었는지라 ‘즉심이 부처’라는 말씀을 ‘짚신이 부처’라는 말로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우리 스님은 부처 같은 분인데 허튼 말씀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부처를 물었는데 어째서 짚신이라 하시는가? 짚신이 어째서 부처라는 말인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으므로 더 이상 물어보지를 못하고 ‘짚신이 부처’라는 말씀을 믿기로 했습니다.

구정스님은 그날부터 신고 다니던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는 ‘짚신이 어째서 부처인고? 짚신이 어째서 부처인고?’ 라는 물음에 매달려 있다가 그만 깊은 삼매(三昧)에 들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 자신이 누워있는지 서있는지도 모르고 짚신만 끌어안고 “짚신아, 네가 어째서 부처냐?”고 소리를 지르다가 짚신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크게 깨달아 스승의 뒤를 잇는 대선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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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교용어에 무위진인(無位眞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도(道)를 닦는 마음이 지극하여 감히 지위를 논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옆에 이런 스승이 한 분만 계셔도 불교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철 대종사께서 우리 옆에 계실 때만 해도 그분 한 분으로 불교계가 얼마나 든든했었습니까?

그분 한 분으로 사회와 나라까지 밝고 맑지 않았습니까?

나라도 어렵고, 사회도 어렵고, 우리 불교종단까지 어려운 요즘, 무염이나 구정, 또는 성철 스님 같은 무위진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 간절합니다.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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