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에서 우러러 고하나이다"
"실상사에서 우러러 고하나이다"
  • 움직이는 선원
  • 승인 2009.12.0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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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움직이는 선언 동안거 입제 고불문(告佛文)
고불문(告佛文)

불기 2553년 음력 10월 15일(양 12.1) 지리산 성지화를 위한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 동참 대중은 천왕봉을 마주하여 앉은 이 곳 지리산 실상사 도량에서 삼보전에 계수 예배하고 우러러 고하나이다.

지리산이 위태롭습니다. 존재의 실상을 살피면 천지가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이 나와 한 몸(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무지한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나와 남, 나와 자연, 나와 지리산을 별개의 존재라고 분별하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이 위기의 본질입니다.

넓게 보면 한반도 나아가 전 세계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로 인하여 뭇 생명들의 염원인 생명의 안전성, 건강성, 지속성, 공동체의 안전성, 건강성, 지속성, 개인 삶의 안전성, 건강성, 지속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 형제인 시민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적대시하며 나아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한반도 한국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며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마음 편하게 기댈 곳이 어디인지, 고향을 잃고 부모를 잃고 이웃을 잃고 친구를 잃어버린 외로운 떠돌이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의 수행자들이 위태롭습니다. 명안종사의 점검과 지도가 사라진 수행처에서는 누가 더 많이 좌선하는가를 수행의 척도로 삼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삶의 현장을 수행처로 삼는 보살 만행이 사라지고, 빨리 깨달아야겠다는 속효심, 치구심을 앞세워 경쟁하듯 좌선을 하다보니 깨달음의 길은 더더욱 멀어지고, 수선납자의 삶은 향기를 잃었으며, 교단은 사회적으로 무력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지리산 현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지리산의 가치, 지리산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자 합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남으로 남으로 흘러 우뚝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산, 역사 이래 범민족 범시민의 입장에서 성스러운 산으로 신앙해온 곳이 지리산입니다. 민족의 고매한 사상과 정신, 뜻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꾸어온 고마운 곳입니다. 민족의 아픔을 따뜻하게 품어 치유하고, 민족의 높은 이상과 가치를, 풍부하게 길러온 거룩한 곳입니다. 자연생태의 축과 내용이 제일 크고 풍부하여 생명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려갈 대표적인 곳입니다. 우리 문명의 원형이요, 뿌리요, 고향이요, 대안이 될 지역농촌공동체 마을이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는 귀중한 곳입니다. 지역의 산이면서 국민적으로 마음이 모이는 상징성이 큰 곳입니다. 우리민족의
오늘과 내일의 아픔과 희망을 모두 품어안고 갈 성스러운 곳이 지리산입니다.

그러므로 지리산은 생명의 성산, 민족의 성산, 공동체의 성산, 본래부처의 성산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세세생생토록 지리산은 성스러운 곳으로 성스럽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 몸 한 생명의 존재인 우리 형제들이 언제나 찿아가고 돌아가고 깃들고, 머물고, 의지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립고 따뜻하고 넉넉하고 편안한 우리들의 어머니 품으로, 영원한 고향으로 있어야 합니다.

불교는 천 수백 년 동안 지리산과 함께 했습니다. 지리산은 자연스럽게 세존대, 문수대, 칠불, 천왕봉, 제석봉으로 불리어지는 부처님의 몸이 되었습니다. 불교사상과 정신이 오래 전에 이미 반야봉, 연화천, 향적대, 금강대로 불리도록 지리산으로 육화되었습니다. 골골마다 화엄사, 쌍계사, 대원사, 벽송사, 실상사등 무수한 절들이 깃들어 장엄한 하나의 큰 도량을 이루었습니다. 부처님 몸, 부처님 도량이 된 지리산을 성지로 지키고, 가꾸고 빛나게 하는 일은 정법 불교를 우리시대에 구현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대비원력의 보살행입니다. 지리산 성지화 운동은 파사현정의 정법불교, 구세대비의 정법불교의 활로를 열어가는 대작불사임을 확신하고 불교인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큰 걸음을 내디뎌야 마땅할 일이기에 주저없이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기존의 조용하고 안정된 수행 도량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탐진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중생들의 삶의 현장을 수행 도량으로 삼을 것입니다. 기존의 법당, 선방 중심의 은둔적이고 정적인 기도, 참선 수행이라는 틀을 벗어던지고 목전에서 시시각각 생노병사의 피눈물이 소용돌이치는 생사의 현장길을 걸으며 불법의 진면목, 자신의 진면목을 실답게 참구하고 만날 것입니다. 주관적인 자아도취, 자기 안주의 벽을 허물고 도반들과 더불어 허심탄회하고 치열하게 법과 수행과 삶에 대한 대화와 토론의 탁마를 통해 아상산(我相山)과 인상산(人相山)을 파헤치는 수행을 할 것입니다. 대승보살의 원력이 뜨겁게 꿈틀거리고 대무심, 대자비가 활발발(活潑潑)하게 실천되는 참수행, 참보살행의 삶이 일상의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해 전 존재를 불태우는 움직이는 선원의 동안거를 시작합니다.

이 서원의 걸음이 큰 물결을 이루어 온 세상이 진리로 자유를 얻고, 자비의 실천으로 평화를 이루기를 발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더불어 함께 나아가며, 그 길에서 물러섬 없기를 간절히 서원하오니 제불조사님은 가피하시고, 호법성중은 옹호하소서.

불기 2553년 12월 1일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 동참대중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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