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자 향기 잃고, 교단 사회적으로 무력해져"
1일 오후1시 남원 실상사 대웅전 앞에서는 소담한 입제식이 봉행됐다.
도법 스님을 비롯한 일과, 호선, 원묵, 효광, 효진, 혜진 등 7명의 대중이 결제랍시고 모였다. 안거처는 선방이 아닌 지리산을 택했단다. 이웃주민과 주지 재연 스님, 화엄학림 강사 해강 스님 등 20여명이 모인 조촐한, 실상사다운 법회였다.
주지 재연 스님은 "경전에도 나와 있잔에. 그 저 뭐시냐 '비구여 길을 떠나라'라고. 근디, 혼자 가야허는디 7명이 뭉쳐댕기믄 못 쓰는디. 암튼 난 따신 방구석서 뒹글며 놀라요. 겁나 고생허것소"라며 법문이랍시고 했다. 포근하면서 애틋함이 베어 있었다.
효진 스님이 보광전 부처님 전에 대표로 낭독한 고불문에는 따듯한 선방을 뒤로 하고 춥고 배고픈 한 겨울 지리산으로 떠나는 까닭이 오룻하게 담겼다.
지리산이 위태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형제인 시민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적대시하며 불확실하고 위험한 한반도 한국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며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불교의 수행자들도 위태롭단다. 깨달음의 길은 더더욱 멀어지고, 수선납자의 삶은 향기를 잃었으며, 교단은 사회적으로 무력해지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7비구는 이러한 현실에서 지리산 현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고불문에서 밝혔다. 우리 민족의 오늘과 내일의 아픔과 희망을 모두 품어안고 갈 성스러운 곳이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지리산 성지화 운동은 파사현정의 정법불교, 구세대비의 정법불교의 활로를 열어가는 대작불사임을 확신하고 불교인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큰 걸음을 내디뎌야 마땅할 일이기에 주저없이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지리산을 택한 또 다른 이유는 정주하는 수행방법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의 조용하고 안정된 수행 도량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탐진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중생들의 삶의 현장을 수행 도량으로 삼을 것입니다."
"기존의 법당, 선방 중심의 은둔적이고 정적인 기도, 참선 수행이라는 틀을 벗어던지고 목전에서 시시각각 생노병사의 피눈물이 소용돌이치는 생사의 현장길을 걸으며 불법의 진면목, 자신의 진면목을 실답게 참구하고 만날 것입니다. 주관적인 자아도취, 자기 안주의 벽을 허물고 도반들과 더불어 허심탄회하고 치열하게 법과 수행과 삶에 대한 대화와 토론의 탁마를 통해 아상산(我相山)과 인상산(人相山)을 파헤치는 수행을 할 것입니다. 대승보살의 원력이 뜨겁게 꿈틀거리고 대무심, 대자비가 활발발(活潑潑)하게 실천되는 참수행, 참보살행의 삶이 일상의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해 전 존재를 불태우는 움직이는 선원의 동안거를 시작합니다."
얇은 승복을 몇 겹 껴입은 도법 스님은 "모처럼 완전무장을 하셨네요"라는 취재진의 물음에 "오늘은 얇은 거야"라며 혹독한 겨울 지리산을 염려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종단에 젊은 총무원장 스님이 들어와서 기대가 많지요? 종도들은 주로 어떤 기대를 품고 있던가요?" 도법 스님은 종단에 대한 염려와 기대를 내려놓지는 않은성 싶다.
당장 2일부터 숙소도 정해지지 않았다. 출발전 도법 스님은 "잠자리? 하루하루 찾아봐야죠. 이왕이면 90일 내내 절에서 잤으면 좋겠습니다"라고만 했다. 스님은 90일 동안 90곳의 지리산권역 절을 돌며 '지리산 성지화 불교연대(준)'의 틀을 엮어낼 요량이다.
이윽고 첫 걸음을 내디딘 7비구는 이웃주민들과 남은 스님들의 환송을 뒤로한 채 천왕문을 나섰다. 들판을 걸어 지리산 둘레길까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접어 들었다. 이날 밤은 황매암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한국불교의 첫 실험인 '움직이는 선원'은 안거 내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합장하고, 묵언 수행을 한다. 삶의 현장을 둘아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안을 참구한다. 기본 수행법은 간화선이다.
12월 18일 화엄사, 1월 8일 쌍계사, 22일 실상사, 2월 5일 벽송사(천은사), 19일 대원사에서 참가대중들과 부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야단법석을 진행한다. 도법 스님이 지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를 기본 교재로 해서 <내가 본 부처>,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혁명가 붓다> 등이 참고 교재이다.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읽고, 토론하면서 90일간 진행할 새 선원이 한국불교의 성공적인 전범이 될 지, 추위와 배고픔으로만 기억될 실험으로 끝날지... 지리산 속 7비구는 묵언 수행중이다.
/ 남원 = 이혜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