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타종단·품수 전 스님 막라, 좌차도 어겨"
한 권의 책 때문에 원로의원 스님, 상좌, 문중 심지어 종단 집행부까지 벌집을 쑤신듯 요란하다.
일부 원로의원 스님은 책을 회수해 전량 폐기할 것을 지시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당초 200권을 사주기로 했다가 책 내용을 보고받고는 대노하고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한국불교기자협회(회장 안직수. 불교신문)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한국의 대종사들>이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27명의 불기협 소속 기자들이 대종사 30명을 인터뷰한 기사를 사진과 함께 엮은 것이다.
책 제목부터 '대종사'가 아니라 '대종사들'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들'은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나열할 때, 그 열거한 사물 모두를 가리키거나,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얼핏 보면 순우리말로써 나빠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계에서 최고의 법계인 대종사 뒤에 갖다 붙이면 '대종사 무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표지 디자인에는 30명의 이름과 얼굴사진이 나온다. 그런데 얼굴 사진이 너무 작은 데다 잘리고 얼굴 크기도 제각각인 점도 원로의원 스님의 화를 부추겼다.
30명의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원로회의 사무처 관계자는 "대종사는 최고의 법계로서 순서를 가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점도 있다"면서도 "현행 법계법에 승랍 40년이상 종사법계 수지자라고 명시하고는 있는 하나의 법계이므로 반드시 품계 수지 순서를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아랫사람들이 좌차를 존중해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대종사 스님은 모두 33명인데, 일부 스님에게는 불기협에서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괘씸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불기협은 책 서문에 "여러 사정으로 대종사 스님 전체를 담지 못한 점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라고 썼지만 대종사 스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또 30인에 포함된 설정 스님의 경우 모든 행정 절차는 끝났지만 종정 스님으로부터 법계를 수지하지 않은 상태인 것도 논란거리다. 그럴려면 종하 스님도 포함돼야 하는데 종하 스님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형평성과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종사가 아닌 명사(비구스님의 대종사에 해당하는 비구니스님의 품계) 스님을 포함한 것도 원로회의에서 못마땅해 하고 있다. 비구니 스님을 포함하려면 책 제목을 '대종사·명사'로 해야 하는데 '대종사'라고 해놓고선 명사 법계를 수지한 비구니 스님을 끼워 넣은 것이다.
또 태고종 종정 혜초스님을 30인 가운데 포함한 것도 일부 대종사 스님은 불만이다. 원로회의 관계자는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태고종 스님이 포함된 것에 강하게 반발하며, 그럴거면 나는 싣지말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기협에서 싣는 바람에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로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덕문 스님은 "지은이는 불기협으로 돼 있지만 펴낸이 포교원장 혜총 스님, 전무 포교부장 계성 스님 등으로 돼 있어 마치 포교원에서 발간한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며 "원로의원 스님을 다룰라치면 반드시 원로회의 관계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옳다. 잘못된 책들은 전량 회수해 폐기할 것을 불기협에 전달하고 질책했다"고 말했다.
덕문 스님은 "대종사 이력 자체가 대종사 법계 심사 당시 종단이 인정한 내용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있는 점도 원로회의에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총무원 집행부 관계자는 "다른 단체도 아니고 불교기자협회에서 이런 식으로 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이에 대해 안직수 회장은 "좋은 의미로 시작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무척 안타깝다"며 "명사와 타종단 스님을 포함하는 문제는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이 기꺼이 찬성한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여론에 따라 불기협 전체회의를 열어 책을 회수하고 수정판을 내는 문제를 상의할 것이다"며 "27명의 기자들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부 잘못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불기협은 12월 7일 불기협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맞춰 이 책에 대한 봉정식을 계획 중이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불기협 간부들의 예방을 받고 당초 200권을 사주기로 했으나 계획을 유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