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로 올해 종합부동산세 납부인원과 세액이 지난해에 비해 정확히 반 토막이랍니다. 종부세법이 개정되었고, 과세 기준금액이 올라갔고, 부동산 공시지가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대 정치에 있어 ‘증세는 악’이요 ‘감세는 선’입니다. 좀 더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세금 자체가 곧 ‘악’인 시대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나라에서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세금은 곧 혈세입니다. 세금은 피인 것입니다. 세금이 국민의 헌법상 의무가 아니라 나라에 빼앗기는 피와 살이 되고 맙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세금 없는 나라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세금에 대한 부담은 느끼고 살지요. 그렇다면 세금 없는 세상, 세금 줄여주는 세상이 과연 가능 할까요?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속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신자유주의의 특색이 감세, 무규제, 작은정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감세, (재산권 측면에 한정되는) 무규제, 큰정부입니다.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케인즈 주의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뒤죽박죽입니다. 세금은 줄였는데 정부 지출은 역대 최고입니다. 그러면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결국 나라 빚이지요. 국가 채무만 급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채무는 누구의 책임이지요? 전적으로 후손들의 책임입니다. 후손들의 세금을 지금 끌어다 쓰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후손들의 세금을 미리 거두어들이는 셈 이지요. 후손들의 세금을 우리 세대들이 뽑아 쓰고 있는 셈입니다.
‘혈세’라는 단어의 근원이 늘 궁금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이해할 만합니다. 귀중하다, 피를 짜 내는 듯하다, 이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일본 번역서를 보다 우연히 혈세의 뿌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혈세는 일본에서 비롯된 말이더군요. 메이지 5년인 1872년입니다. 이때 태정관 포고 형식으로 징병명령이 발령됩니다. 이때의 징병의무 즉, 병역의무를 혈세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때 혈세는 전쟁 지역에서 피를 흘린다는 의미였습니다. 다른 한 편 국민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혈세’의 의미가 잘못 알려져 소동이 일었습니다. 병역의무를 일종의 강제 헌혈로 오해 한 모양입니다. 징병이 곧 혈세였는데 이때의 혈세를 징병으로 이해하지 못 하고 피를 뽑아 짜는 것으로 오해 한 것입니다. 그래서 ‘혈세’에 대한 반대 봉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병역의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의 에피소드입니다.
현대 일본에서는 징병제도가 없어졌습니다. 자위대라는 변형된 군대만이 남아 있지요. 그래서 메이지 시대에 있었던, 본래적 의미의 혈세는 벌써 없어졌지요. 그럼에도 혈세라는 단어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전용되어 우리처럼 귀중한 세금, 부담이 무거운 세금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혹은 국민의 노동력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모양입니다. 물론 우리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유래를 갖는 혈세라는 단어가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혈세는 곧 세금이 되었습니다. 세금이 곧 혈세인, 국민을 쥐어짜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가로 국민에게 세금이라는 부담을 지웁니다. 동시에 사회적 국가 실현의 방법적 기초로 납세의 의무를 헌법상 의무로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조세평등의 원칙과 조세 법률주의에 따라 세금을 부담해야만 합니다. 시민의 의무입니다.
간혹 놀랄 때가 있습니다. 세금에 대한 저항이 지나치게 강력하다고 느낄 때입니다. 아직도 우리 담세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데도 말입니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혈세에 대한 저항, 조세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계층에서 더 강력한 것은 아닌지 염려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 자료가 아닌 심정적 평가에 불과합니다. 다만 한번 조사 해 볼 필요는 느낍니다.
세금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명예로운 지위를 부여해야 합니다. 좀 더 가진 사람이 좀 더 당연하고,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부담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조세의 불평등은 늘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아테네 시대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플라톤까지 나서 “소득세를 낼 때 같은 액수의 소득에 대해서 올바른 사람은 세금을 더 내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덜 내기 마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의 아버지는 시애틀의 유명한 상속 전문 변호사였습니다. 거기에다 세계최고의 부자 아들까지 두었습니다. 그런 그가 부시 행정부 시절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에 앞장섭니다. 불과 몇 달 전 독일에서는 부유한 고소득 계층에서 증세를 희망하는 캠페인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나누고 함께 부담하며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였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요? 200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세금은 여전히 혈세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곧 내 피를 뽑는 일이요, 정부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증세하는 일은 세금폭탄을 터트리는 일이라고 매도당합니다. 그럴 바에야 정부는 빚을 내는 형식으로 피해나갑니다. 물론 부담은 후손들의 몫이지요. 얼핏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피와 폭탄, 마치 19세기 후반 군국주의 시절의 독일을 연상케 하는 단어들 아닌가요? 혈세라는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조직해 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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