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소식을 몰고 온 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것이지요. 생활이 여유로운 이들은 즐거운 겨울나기를 계획하겠지만, 없는 이들의 마음은 참으로 을씨년스러울 것입니다. 특히 올 겨울은 국제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한파로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이러한 ‘겹 추위’ 속에서 더러는 가정을 잃고, 더러는 일자리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빠르게 회복되는 중이라고 합니다만, 이럴 때일수록 온정을 나누고 희망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경제회복에 탄력을 불어 넣는 힘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돈이 있어야 온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처럼 마음을 나눔으로써 더 큰 희망을 주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어느 해 겨울, 푸슈킨이 모스크바광장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걸인들이 몰려다니며 구걸을 했습니다. 푸슈킨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지켜보다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걸인에게 다가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이었습니다. 푸슈킨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노인은 텅 빈 깡통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제발 한 푼만 줍쇼! 앞을 볼 수 없어 이렇게 구석에 앉아있다 보니 돈 한 푼 얻기가 어렵습니다요.” 가련하기 짝이 없었지만 푸슈킨의 주머니에는 단돈 한 푼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가난한 형편이라 그대에게 줄 돈은 없소. 대신 글씨 몇 자를 써줄 터이니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요.”
푸슈킨은 종이에 글씨를 써서 노인에게 주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모스크바광장을 걸어가고 있는데 손 하나가 나타나 그의 다리를 움켜지는 것입니다. 내려다보니 며칠 전에 만났던 그 걸인이었습니다.
“나리, 며칠 전 제게 글씨를 써준 분이 맞지요? 앞이 안 보여 얼굴은 모르지만 목소리만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리의 말씀대로 그 종이를 이렇게 붙이고 있었더니 그날부터 깡통에 많은 돈이 쌓입니다요. 나리께서 제게 써준 내용이 대체 무엇인지요?”
푸슈킨이 대답했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거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았겠지요?’라고 썼을 뿐입니다.”
푸슈킨은 걸인 한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나눠준 것뿐이지만, 그것이 모스크바의 모든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눔’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불심의 바탕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으신 부다가야라는 마을에서 250Km나 떨어진 사슴동산(녹야원)을 찾아가 처음으로 설법을 하신 까닭도 뭇 중생들에게 ‘나눔’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슴은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풀을 뜯을 때도 혼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리와 나누는 착한 짐승이지요. 부처님께서도 당신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기쁨을 다른 사문들과 나눌 목적으로 열흘을 넘게 걸어서 사슴동산까지 찾아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불교에서 사슴이 갖는 상징성이 중요한 이유도 그것이 ‘나눔’을 실천하는 동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사슴을 닮은 이들이 많이 나타나 소외된 이웃과 희망을 나눈다면 꽃피는 봄날이 성큼 다가오겠지요.
/ 이기표 부산보현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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