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으라 법률가여
저주받으라 법률가여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9.11.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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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부족국가시대에는 마술사가,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오늘엔 법률가가 있다. 장사의 요령을 익혀 그 지식을 소중히 이용하는 영악한 무리들이다. 전문능력을 곡예적 기술과 융합시켜 민중의 머리 위로 군림하는 인간들이다(프레드 로델, '저주 받으라 법률가여').”

성경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신학자들만이 향유하던 시대가 있었다. 종교개혁은 필연이었다. 헌법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헌법재판관들을 비롯한 법률가들이 독점하는 나라가 있다. 이런 나라라면 사법개혁은 필연적이다. 2009년 대한민국이다. 우리 사회야말로 사법에 대한 헌법적 통제, 민주적 통제가 강력히 요구된다. 좋은 헌법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헌법에 대한 해석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일부 법률가들의, 헌법적 양심이 아니라, 객관적 양심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개인적’ 양심에 의지해야 한다면, 그리하여 지극히 반헌법적으로 해석되고 그 해석이 우리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헌법의 위기요, 민주정의 위기요, 공화정의 위기일 수밖에 없다. 헌법 해석은 헌법의 창조행위다. 헌법의 실질적 개정에 해당할 수 있다. 헌법 제정권력의 의지를 훌쩍 뛰어넘을 수도 있다. 60년의 헌정 역사상 단 한 번도 인정된 적이 없는 ‘관습’헌법을 찾아냈던 헌법재판소다. 어느 시민도 몰랐다.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조차도 관습헌법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알고 있었다. 자기들만 알고 있었다. 이 관습헌법이 대한민국의 헌법 해석에 미쳤던 영향을 생각해 보라.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어떻게 단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법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하여 단지 법률가라는 이유만으로 헌법에 대한 사실상의 ‘독점적 해석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대입수능 점수가 청소년의 인생을 결정해서는 아니 되듯, 토익점수가 젊은이의 장래를 예측하는 지표로 운용되어서는 아니 되듯, 학점이 대학생의 품성을 좌우해서는 아니 되듯, 자동차 배기량이 시민의 인격에 대한 판단요소로 작동해서는 아니 되듯, 아파트 평수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수치로 운용되어서는 아니 되듯, 고작 사법시험 점수와 사법연수원 성적의 합계가 법률에 대한 해석 권한을 독점하고, 사법권을 독점하고, 헌법에 대한 해석 권한을 독점하는 신분으로 이용돼서는 결코 민주공화정일 수 없는 것이다.

강남 3구에서 태어나 국제중을 거쳐 외고를 거치고 법대 혹은 로스쿨을 거쳐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고, 이들 자격을 가진 이가 헌법재판관이 되고, 과연 이런 식의 헌법재판관에 대한 충원방식이 민주공화정에 합치될 수 있을까. 우리 헌법이 예정하는 가치에 부합할 수 있을까. 헌법적 비전에 충실할 수 있을까.

"판사들이 어떤 식으로 선발되고 사회화되는지, 따라서 그들이 어떤 가치들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사법부의 공정성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태리 볼로냐 대학 정치학교수인 카를로 과르니에리(Carlo Guarnieri)의 말이다.

법 자체가 갖는 보수성에 법 해석 권한을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이들의 선험적 보수성이 더해진다면, 어떻게 헌법 해석의 변천과 민주성을 담보해 낼 수 있을까. 두려운 일이다.

더구나 사법부는 헌법적 정당성이라는 관점에서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요, 위임된 권력이다. 이에 반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시험이라는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제도,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의 합계라는 희한한(?) 임용제도를 통해, 헌법적 정통성을 확보한다. 그래서 독립성을 강조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철저히 주권자의 의사에 종속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독립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헌법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헌법의 중요한 논리로 채용한다.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흔들리기 쉽고 그만큼 깨지기 쉬운 유리병과 같은 권력이다. 그만큼 위험한 권력이 바로 사법부다.

이렇듯 사법부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기에 수직적 책임성이 취약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예 판사를 선출하는 주도 ‘대단히’ 많다. 물론 정치적 위험성은 있지만 도리어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고 국민주권의 정신에도 충실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측가능한 법적용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이 사법부의 독립을 규정했기에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수평적 책임성 또한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독립성을 이유로 견제와 균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독립성이 독점성으로 작용하는 경우다. 독립을 오해하고 독점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그리하여 헌법적 통제가 배제되고 헌법적 책임마저도 무력화되는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바로 2009년 헌법재판소가 이런 상황의 위기에 직면했다. 민주공화정의 위기다.

‘수상록’으로 널리 알려진 몽테뉴는 1557년부터 1570년까지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평정관(conseiller)으로 일했다. 그럼에도 그는 판사들을 ‘소송을 관리하는 무리들’이라고 경멸했다.

"판사들 -소송을 관리하는 무리들(gens maniant des proces)- 은 법전의 교의와 지식에 대한 시험을 치른 것이지, 상식이나 정직에 대한 시험을 치르지는 않았다. 도처에서 정의는 탐욕과 어리석음, 사회적 특권, 공허한 법 형식들에 희생되었고, 그 결과 범죄보다 더 범죄적인 유죄 판결을 양산했다.(비앙카마리아 폰타나, 몽테뉴 <수상록>에 나타난 법의 지배와 사법개혁의 문제)“

빗대자면, 헌법에 맹목인 이들이 헌법 해석을 독점하는 위험성에 대해 끌어다 비판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왜 법률가들이 헌법 해석을 독점해야 하는가. 헌법 해석의 최종기관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왜 변호사 자격을 가진 이들만이 임명될 수 있어야 하는 걸까. 국민주권의 한 양식인 헌법재판관이 되기 위해서는 왜 사법시험 성적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하나. 시민 대부분의 공론은 미디어법이 잘못됐다라는 것이었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험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왜 헌법에 합치된다고 해석되어야 하나. 그렇다면 국민주권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하나.

결국 권력에 대한 견제의 문제요, 국민주권의 실천 문제이다. 사법부의 권력도, 헌법재판소의 권력도 당연히 헌법의 범위 내에서, 국민주권의 범위 내에서 견제되어야 하고 헌법적 책임의 원칙은 정밀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독립성을 독점성으로 오해하는 이들, 독립성을 책임회피의 도구로 활용하는 이들, 이들 또한 헌법적 책임과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서 결코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그래서 헌법적 책임, 사회적 책임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최장집 교수의 말이다.
“사법부가 사회적 책임에 종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시민들이 그들의 대표로서 직접 선출하고, 그들에 대해 직접 책임지는 집행부와 입법부와는 달리, 시민에 대해 간접적으로만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출이 간접적인만큼 그들이 시민에 대해 갖는 책임도 약하다.”

정확히 하자면 맨 첫머리의 법률가를 변호사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2009년 현재 한국 사회의 사법현실에 견주어보면 별 상관없을 것 같다. ‘제 얼굴에 침 뱉기’ 이지만 나도 법률가다. 한 때 입법가이기도 했다. 현재도 로스쿨 겸임교수이기도 하고, 법대 시간강사이기도 하며 저주받는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기꺼이 로델의 경멸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리하여 나부터도 저주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 사법부의 민주적 통제와 헌법적 책임을 위해서라면.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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