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이 종단 현안을 통찰한 "이제 조계종은 새롭게 변화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 자료집은 15일 전국 주요 사찰과 종단 중진 스님 등에게 우편으로 발송됐다. 자료집은 △ 교구 자치 실행 △총무원장 선거제도 개혁 △승가 교육 혁신 △ 중앙 기구의 개편 △수행과 신앙의 현대화 △불교사상의 다양화 △새로운 불교운동과 포교정책 △총무원장에게 바란다 등 8개 분야에 대해 조목조목 자신의 입장을 담고 있다.
정념 스님은 서언에서 시대가 불교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진정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며 그 대안으로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를 위해 변화해야 할 과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적었다.
스님은 교구 자치 실행과 관련 교구 자치는 시대의 흐름이며 재정권이 교구 본사로 이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구 종회가 더욱 활성화돼야 하고 승려의 노후복지 문제 개선을 주문했다.
총무원장 선거제와 관련, "중앙의 종단은 종단대로, 교구는 교구대로 융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대중의 공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점을 갖고 있다"며 "이는 종단의 주요 구성원을 비롯해 전체가 '정치 과잉의 구조'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고 스님은 진단했다.
스님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선거제도의 불합리에 그 원인이 있다며 "특히 총무원장 선거가 소수의 선거인단에 의해서 진행되는 '간접선거'의 형태를 지니다 보니,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선거의 대안으로 "종도 의견의 반영이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선거인단 2천 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며 "현재의 교구 종회에 20여명의 선출의원을 보강한 교구 종회를 구성하여 원장 선거에 참여하게 되면 선원의 스님과 여태의 불교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스님, 그리고 비구니 스님의 선거권과 대중 여론 수렴 등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고 밝혔다.
스님은 승가 교육 혁신과 관련 현재의 교육제도는 과거의 틀에 얽매여 있다며 시대에 부합하는 불교, 시대에 맞는 승가교육을 통해 전문화된 승려들이 배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자리잡힌 현재의 총무원, 포교원, 교육원의 3원체제 개편을 제안한다"고 밝힌 스님은 "당시에는 종단개혁을 통해 총무원, 표교원, 교육원의 기능을 분화해 각 원이 책임을 지고 이끌어 나가도록 제도를 개혁했으나 현재 포교원과 교육원은 인사도 재정 운용도 독립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3원 체제가 예산 낭비적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스님은 "따라서 효율적인 종단 운용을 위해 현재 3원 체제를 '책임총무원장'과 '3부원장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중앙기구의 기능 축소, 예산 절감, 종무기능의 지방화 이전, 과잉 정치구조의 해소 등이 총무원이 추진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개혁의 과제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수행과 신앙의 현대화도 주장했다. 이를 위해 세상과 소통하는 수행, 佛 중심의 신앙에서 法 중심의 신행, 대승불교가 중국 문화와 사상과의 융합 속에서 선불교가 탄생했듯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불교사상의 다양화 방안에 대해 스님은 "한국불교는 선 중심의 통불교이다"며 "선과 화엄사상은 현대문명의 대안사상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새시대를 열어갈 사상적 기반으로써 다양성에 기반을 둔 불교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며 중국불교 일색의 공부에서 벗어나 원효 의상 보조 진각 등 한국불교의 독자성을 연구하고 이들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다보면 한국불교가 지닌 다양한 잠재력이 표출될 뿐만 아니라, 현실과 깊이 융화된 불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님은 현대 정보문명 사회에 맞는 포교의 전환, IT 시데에 적합한 불교 문화자산 개발 등을 통해 불교가 현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자, 현대 문화의 선구자, 삶의 가치부여와 희망의 메신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주문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신임 총무원장과 관련 "이번 선거를 놓고 일부에서는 종단의 안정을 위해 추대 형식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지금 종단은 과거와 달리 충분히 안정되어 있다. 오히려 종도들의 열망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무원은 인사 재정문제에 치중하는 행정적 조직의 역할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 내는 종교 사상 운동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 스님은 "새 총무원장은 종정과 종도들을 모시는 시봉으로서, 한국불교의 리더로서 교단을 안정 발전시키고, 불교 지성인들을 모아 새로운 불교를 만들기 위한 결집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정념 스님은 15일 오전9시30분 인천발 장춘행 비행기를 이용, 중앙승가대 출신 등 스님 50여명과 함께 출국했다. 이들은 3박4일 동안 백두산 등정을 한 뒤 18일 오후3시 30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스님은 오는 22일께 총무원장 출마여부를 포함한 자신의 입장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자료집에는 종단의 현안을 잘 짚었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등 총무원장 선거공약을 방불케하는 A4용지 크기의 30쪽 분량이어서 이자료집이 원장 출마를 대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팽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