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에서 살펴본 修行指針 點檢과 反省
금강경에서 살펴본 修行指針 點檢과 反省
  • 지리산야단법석
  • 승인 2009.08.1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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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지리산 야단법석 - 무비 스님 강의

조계종 표준 금강경에서 살펴본 修行指針 點檢과 反省

如天 無比 抄錄

1. 불교는 변화의 종교다

불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종교 중에서 가장 우수한 종교로 인정받는 이유가 무엇일가? 그것은 아마 부단한 혁신과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안으로는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 革凡成聖을 목표로 하여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고, 밖으로는 이 세상의 穢土를 淨土化, 佛國土化한다는 願力實現을 지상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서양의 물질문명이 들어와서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놀라운 변화와 革新을 가져왔지만 아무리 훑어보아도 중생이 부처가 되는 革凡成聖이나 穢土의 佛國土化와 같은 표현이나 그와 유사한 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꾀하고자하는 그 혁신과 변화가 얼마나 엄청난 사실인가를 족히 짐작하리라.

이와 같은 성향을 가진 불교이기에 초기불교에서 세존의 열반만을 기다리던 한 무리가 있어 세존이 열반에 들자마자 교단의 혁신을 꾀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교리나 사상이 아닌 승가생활의 규범인 서릿발 같은 계율의 문제에 제동을 걸고 혁신을 모색한 것이다. 아무튼 그것이 출발점이 되어 부단한 변화를 모색해 온 교단은 드디어 진보적 성향인 대중부와 보수적 성향인 상좌부로 나뉘더니 급기야는 20여개 부파로 쪼개졌으나 그와 같은 와중에서 실로 불교 그 자체에는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대중부나 상좌부나 당시 출가자들은 승가집단만을 위한 고착된 사고 때문에 정토화니 불국토화니 하는 사회적인 책무에는 뒷전이었다. 즉 바깥세상의 어려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불교가 살아있는 전통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도 변화와 성장과 발전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로 기원전 1세기경 대중부 속에서 대승불교라는 급진적 교파가 생겨나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승불교란 불교내부에서 일어난 개혁 운동이었으며 출가자와 재가불자 모두 수용하려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이며 반란이며 쿠테타였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해탈로 인도하는 실로 큰 수레였으며, 부처님의 진정한 정신이었다.

비록 2천 6백여 년의 시간은 흘렀지만 이와 같은 전통을 계승해 온 오늘의 우리들이다. 실로 자랑스럽기도 하려니와 그 책임과 의무도 또한 무겁기 그지없다. 돌이켜 先師들의 자취를 살펴보면 자신이 차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으며 지금 이 시대의 불교 상황도 참으로 암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저의 管見으로 더듬어 본 불교 그 자체는 너무나도 위대하고 한편 분에 넘치기에 차마 오늘날의 불교 현실이 눈에 밟혀 병든 노구지만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 분의 志士들이 자신과 그리고 불교계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도모해 보고자 노심초사하기에 미력이나마 運力에 동참한 것이다.

그들은 몸부림치며 전 국토를 걷기도 하고 삼보일배를 하면서 실로 무엇인가를 어떻게 해 보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 걸음은 어제에 그랬듯이 오늘도 또 내일도 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수행이든, 불교의 정화든, 아니면 단순한 방선시간의 포행이든, 그렇게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비록 한낱 꿈에 불과할지라도 이상적인 불교, 세계불교의 모델이 될 만한 불교를 위한 불사가 되고, 오늘의 불교와 미래사회를 선도할 미래불교를 위한 길이 되었으면 한다. 나아감은 곧 변화요, 혁신이요, 그것이 곧 불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 금강경이 所依經典으로 정해진 배경

金剛經은 한국불교의 所依經典이다. 금강경이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이라는 뜻은 무엇인가? 모든 佛敎徒는 금강경의 정신에 의하여 修行과 傳法과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의 눈으로 오늘의 한국불교를 점검하여 수행과 전법과 삶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 一致와 不一致를 가려내어 그 대안을 모색해 보려고 시도해본다. 그것이 곧 正法佛敎(新 大乘佛敎)를 摸索하는 운동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정법불교(신 대승불교)를 모색하는 운동이라면 사실 금강경으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금강경이 조계종의 소의경전으로, 또는 제일 각광받는 중요한 경전으로 정해지게 된 배경은 禪佛敎의 역대 선사들이 특별히 애독한 관계로 우리나라에서 <금강경오가해>가 편찬되어 전통 교육기관의 교과서로서 오랫동안 읽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사들이 그처럼 특별히 좋아한 이유는 조계종의 연원이라고 할 수 있는 曹溪 6祖 慧能 선사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불교로 변천해 왔다. 사실 선불교는 대승불교가 쇠퇴하면서 생긴 불교다. 엄격하게 따지면 선불교가 아니라 그냥 禪선이라고 해야 맞지만 선불교는 불교가 중국에 건너와서 기존의 민중종교인 儒敎 道敎와 만나면서 탄생한 매우 특수한 정신세계다. 한편 노자와 장자와 중용, 대학을 섭렵한 중국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발전한 대승불교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그다지 특별한 매력은 주지 못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유불선을 아우르며 그 모든 것들의 상위에 자리하게 된 선불교의 禪師들은 하늘을 찌르는 高峻한 意識과 거의 道敎의 道士들과 유사한 簡素, 脫俗, 自然, 幽玄, 枯孤, 靜寂, 變化, 不動(八風不動), 無所有등의 삶의 모습으로 기존의 불교도들에게 태풍과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선불교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래되면서 선사들이 이미 즐겨 읽던 금강경이 언제부터인가 소의경전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금강경은 대승불교가 완전하게 발달하기 이전 초기대승불교에 해당하는 경전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불교, 이상적인 불교를 표현하는 데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금강경을 이상적인 불교, 완전한 불교의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도 다시 점검해 봐야할 일이다. 금강경을 포함한 위에서 보인 선불교와 선사들의 삶에서는 대승적 보살정신으로 예토의 정토화에 대한 노력을 찾아보기란 지극히 미미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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