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을 문화놀이터로' 서울교회 배안용 부목사
'예배당을 문화놀이터로' 서울교회 배안용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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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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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더럽힌다 욕도 들었지만 선교보다 세상에 봉사해야죠"

 서울 인왕산 중턱의 서울교회.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하는 좁은 골목으로 언덕을 한참 오르면 나오는 이 교회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세웠다. 48년 된 이 교회는 요즘 매일 저녁 뮤지컬 ‘환상의 철부지들’(연출 엄익제)을 공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60년 초연 이래 42년간 장기공연된 브로드웨이 히트작으로, 선교와는 무관한 직업 배우들의 일반 연극이다. 예배당을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게 개조해서 첫 공연으로 이 작품을 올린 지 석 달 째, 요즘은 매일 30~40명이 보러 온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0명이 온 적도 있다. 낮에는 예배보고 밤에는 공연한다.

문화공간 ‘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이 특별한 공간의 책임자는 배안용(43) 부목사. 예배 시간을 빼곤 닫혀 있는 교회 본당을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하자는 생각으로, 지난해 9월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본당을 공연장으로 꾸몄다. 100평 공간 중 설교단 자리를 넓게 터서 49평 무대를 만들고, 조명ㆍ음향 장비에 작지만 무대조정실도 갖췄다. 객석은 250석.

돈이 많아서, 선교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서울교회는 신도 70명의 작은 교회다. 리모델링 공사는 대출을 받아서 했다. 건물이 하도 낡아서 천장에서 비가 줄줄 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귀신 나올 것 같던 교회가 덕분에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말끔하게 새단장을 했다. 대형교회가 본당과 별도로 최고 시설의 대형 공연장을 지은 예는 더러 있다. 하지만 선교 목적의 성극이나 가스펠 공연을 가끔 할 뿐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다. 그에 비해 서울교회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본당을 내주고, 장기 공연을 올린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배 목사는 “선교를 위해 문화를 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교회가 100년이 넘었으니 이제 사회에 베풀 때가 되었어요. 교회에서 문화행사를 하면서 종교적 제약을 두고 자기 간판을 내세우면, 그건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대해 주장을 하는 거에요. 차용증서 쓰고 돈을 주면 그건 그냥 주는 게 아니잖아요? ”

공연을 한 시간 앞 둔 오후 6시 30분, 배 목사의 무전기로 무전이 들어온다. 문화공간 샘의 기획실장을 맡은 동생 배인용씨가 손님 실어올 봉고차를 끌고 나간다고 알리는 내용이다. 요즘 형제는 매일 저녁 번갈아 12인승 봉고차를 운전해 관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교회가 버스가 다니는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샤브샤브 집을 하다가 형에게 불려와 극장 일을 보고 있는 동생 배씨. 운전석에 앉은 그에게 ‘형님이 도깨비 같지 않냐’고 물으니 “예전부터 워낙 그랬는데요, 뭘” 하며 웃어 넘긴다.

배 목사는 신학대학 시절부터 튀었다. 록밴드를 하면서 대학가요제에 나갈 준비도 했단다. “다른 학생들은 정장에 007 가방에 두꺼운 성경 끼고 다니는데, 긴 머리에 청바지에 가출한 애들 들고 다니는 스포츠가방 갖고 다녔으니까요. 한마디로 날라리였죠, 뭐.”

진작부터 끼 많은 목사라지만, 안 해본 극장 일을 하려니 좌충우돌에 고민도 많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한 번 끝까지 가볼 작정이다. 대중음악 콘서트, 영화 시사회도 해볼 생각이다.

“극장 문을 열면서 연극인들을 초대했더니 다들 부정적이데요. 이런 데서 흥행이 되겠냐, 이런 시설로 공연은 무슨, 쇼 하냐, 한 두 번 하다가 말겠지, 그런 것들이었죠. 외부의 교인들은 더 했어요. 하나님의 성전에서 비신도가 공연하는 게 우습다는 지적부터 거룩한 성전을 더럽힌다며 교회 팔아먹는 놈이라고 욕하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교인이 쓰지 않을 때 교회는 그냥 건물일 뿐이에요. 하나님을 건물에 가둬둔다는 생각 자체가 건방진 거 아닙니까?”

그의 바람은 이 작은 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시장통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교회로 공연 보러 오는 것을 꿈꾼다. “비록 초라한 무대이지만, 여기 서는 젊은이들 가운데 미래의 비틀스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축구가 발전하려면 동네마다 FC.가 많아야 하듯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이런 문화공간이 많아야 해요.”



 /기사제공 한국일보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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