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화' 맥 잇는 원학 스님 개인전
'남종화' 맥 잇는 원학 스님 개인전
  • 이혜조 기자
  • 승인 2009.06.18 17:2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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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월 6일 불교중앙박물관 나무갤러리서 56점 선봬
불교중앙박물관 나무갤러리는 남종화의 전통을 계승한 삼이실(三耳室) 원학 스님(조계종 총무부장) 초대전을 연다.

원학 스님의 그림은 담백한 수묵과 욕기(俗氣) 없는 맑은 정신을 담고 있다. 선화일체를 간직한 스님의 이번 작품들은 56점이다. 그림을 배운 후 6번째 개인전이다.

오는 29일 오후4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에서 개막식을 갖고 나무갤러리에서 7월 6일까지 전시회를 갖는다.

남종화를 배우기까지 '구도 여행' 과 흡사

스님이 그림을 배우는 과정은 선재동자가 구법여행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

'경상도' 출신 스님이 '전라도'에서 전승된 남종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소치 허련(小癡 許鍊;1808~1893)의 제자인 남농 허건(南農 許楗:1908∼1987),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의 맥을 이은 우계 오우선(于溪 吳禹善) 선생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싸움질을 잘하던 스님의 성격을 바꾸기 위해 어른들이 내놓은 비책은 서예를 배우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예를 배우면서도 선생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자, 선생은 그에게 며칠동안 먹만 갈게한 적이 있었다.

스님은 먹을 갈면서 남들보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출가해서는 줄곧 사경을 통해 혼자 글씨를 익혔다. 18세 때 쓴 '佛'자는 지율 노스님이 방에 걸어두고 오가는 객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선방 3철을 나고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峯:1908~1991)선생 문하로 들어갔다. 범어사 강사를 하면서 동대신동 청남 선생의 집까지 버스를 3번 갈아타고 오가면서 글을 배웠다. 때로는 밤이 늦어 팔송에서 범어사까지 십리길을 걷기 일쑤였다. 부산역에서 영주동을 거쳐 대신동까지도 자주 걸어다녔다.

팔송에서 범어사까지 밤길을 혼자 걷는데 지나가던 한 사판승이 승용차를 몰고가다 타라고 권해도 거절했다. 사판승이 모는 차를 타면 사판물이 들까봐 그랬다. 원학 스님은 "그러던 내가 지금은 사판(승)이니 어지간히 나도 때가 묻었다"면서 '허허' 웃었다.

당시 청남은 효당 최범술(曉堂 崔凡述:1904∼1979), 의재 허백련 등과 의형제였다. 전라도 출신의 허백련이 자주 부산에 들렀다. 그런 인연에다 쌍계사 교무까지 맡으면서 광주에서 남종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광주에서 그림을 배울 때 보살들이 "무식한 보리문둥이가 어찌 그림을 안다요?"라는 핀잔도 했다. 10여년이 지나서야 그 말뜻이 "경상도 사람들은 글을 몰라 무식하다는 게 아니라 풍류와 멋을 모른다는 뜻이라는 걸 알게됐다"고 스님은 말했다.

남종화의 맥을 잇는 전라도지방에서는 처음부터 산수화를 가르치진 않았다. 글씨, 십군자, 화조를 그려내야 산수화를 가르쳤다. 의재 선생의 타계로 직접 사사하지 못한 점을 원학 스님은 안타깝게 여긴다.

우계 선생을 만나면서 남종화 완성

스님은 이후 대구에 사는 목산 라지강(牧山 羅智綱) 선생에게서 십군자를 배웠다. 목산은 의재에게서 십군자를 사사받은 제자다. 목산은 다시 우계 선생을 스님에게 소개해줬다. 원학 스님은 서울 낙원동에 기거하던 우계 선생을 만나 산수화까지 모두 배웠다. 조계사 부주지 시설 인사동에 화방을 차려놓고 우계 선생을 3년가량 모시고 있기도 했다.

청남에서 우계 선생으로 이어지는 글과 그림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남종화를 습득한 스님은 남종화가 선종과 닮았다고 했다.

스님은 "북화는 정형화되고 사실적이며 논리적인 기법을 동원하는 데 비해, 남화는 붓 가는대로 그리는 것이다. 직관력이 중요하다"며 "남화는 오랜 수련과 연마가 필요하고 자기수양에도 좋다. 빠르고 화려함만을 추구하다보니 남화가 갈수록 줄어든다"고 했다.

작가정신보다 자연을 벗삼는 수행자 관점

스님의 자신의 호인 '삼이실(三耳室)'에 대해 "총무원 소임은 머슴살이다. 주인의 말을 잘들어야 하기 때문에 귀가 밝아야 한다"며 "그럴려면 귀가 두 개로는 부족해 귀가 세 개인 삼이실이다"고 풀이했다.

스님은 종단 개혁의 후유증으로 겪어야 했던 제주도 유배(?)시절 얘기도 털어왔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당시에는 내가 찬하자(餐河子)라는 호를 썼다"고 말한 스님은 "한라산과 바다 사이에 잔뜩 끼여있는 안개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고 소개했다.

스님은 이번 작품전을 위해 한동안 새벽2시에 잠들어 새벽4시30분에 일어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금강경 사경 병풍도 원래는 2개월이 걸리는 데 스님은 20여일 만에 두 작품을 완성할 정도로 집중력을 보였다.

스님은 "작가정신이나 조형정신 보다는 성직자로서 신앙적인 집념과 수행이 작품에 응용됐다는 관점에서 감상해주길 바란다"며 "남종화는 동양문화인 산, 물, 강, 바위 등이 그림 속에 산재있는데, 이 역시 수행자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잃지 않는 경책이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창작에 메여 작가정신을 발휘하는 집념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행자의 취미였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고 스님의 작품 세계를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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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용의 극치 2009-07-03 15:42:13
그 그림이 그 그림...
너무 똑같은 그림들에 숫자만 채우셨더군요.
아무래도 그림은 영 아니올시다더군요.
다른 화가들은 뭐라고 할까요?
예술에 청조성이 없다면 그게 뭔 예술이겠습니까?
불교신문에 전면광고도 하셨더군요.
그거 만용 아닙니까?
초대전을 주관한 박물관측 수준이 의심스럽네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좀 더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워낙 2009-06-27 02:24:57
재주가 많으면 중노릇 제대로 못하는 법이라는 어른시님들 말쌈 하나도 틀린게 없음
남종화 ㅋㅋㅋ 소치가 울고가긋다
남종화라카지말고 남중화 남주웅화라캐라

중중중아 2009-06-26 19:39:29
중이면 중답게 살아라 중이 그림그린다고 뽐내지 마라.
이도저도 아닌 중중중 중꼴이 우습구나.

선랑 2009-06-25 09:25:28
정말 놀랬습니다. 스님께서 그림을 그리시는지는...... 전시에 꼭 가보겠습니다.
다시한번 두손모아 축하드립니다.

망고 2009-06-24 15:19:12
중화가 원학스님 대단합니다. 만세만세만만세. 중중화가만만세. 원학스님 만세를 누리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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