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페로 가는 길
북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못지않게 산이 많다. 원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구성국 중 하나였으며 1991년 독립하였다. 종교적으로 정교회 신자가 많고 무슬림 비율도 30%에 육박한다고 한다.국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위키백과를 참조할 만 하다.
기후위기시대에는 보행이 중요하다. 걸어서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면 자동차가 필요없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구릉지가 많은 나라는 보행길이 중요하다. 기후위기시대의 또하나의 문법이다. 원래 인간의 몸은 걸을 때 편하다. 직립보행 아닌가. 안전한 보행길은 인권문제이기도 하다. 아이나 노인 그리고 모든 이에게. 보행에게 권력을 주어야 한다. 자동차가 아니라. '걷고 싶은 길'을 도시에도 많이 만들자.
아름다운 숲길은 장장 십키로쯤 이어졌다. 인적이 드물고 강물이 소리없이 흐르는 이 길을 혼자서 걷노라니 생각도 차분해진다.
걸으면서 이 무렵 전남대 심리학과 한규석교수와 카톡전화로 나눈 이야기를 생각한다. 원전맹신론자들의 심리상태에 대해서다. 그들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심리다. 전문용어로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일테면 '원전의 안전을 믿씁니다'는 식으로 표현한, 어느 추락한 정치인처럼. 그들의 눈에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참사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지위에 있어 온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던가. 한국의 조선일보 같은 언론이나 일본의 아베도 그런 자가 아닌가. 트럼프도 의심스럽고. 지구촌에는 이런 권력층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마치 미국 총기난사처럼 철부지에게 흉기를 맡겨놓은듯한 느낌이다. 지구촌의 위기의 본질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인류의 실력의 문제가 아닌가. 근 백년동안, 위험에 빠뜨릴 도구와 시스템은 점점 맹위를 떨쳐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숙소에 도착했더니 친절한 주인장이 오늘은 바로 Piphany Celebration Day라는게 아닌가? 얼른 검색해보니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날이다.
https://ko.m.wikipedia.org/wiki/%EC%A3%BC%ED%98%84%EC%A0%88
정교회에서는 주현절 이 날이 대축일이다. 날짜는 나라별로 다른데 북마케도니아는 오늘 1월19일이다. 자신의 남편까지 마을남자들이 겨울의 찬 강물에 물속에 들어가서 예수님처럼 세례를 받는 퍼포먼스를 행한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 차디찬 물에 들어가는 체험을 매년 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날에 동방에서 걸어온 나그네가 이 마을에 등장했던 셈이다. 그들이 특별히 반겨하던 분위기가 이해된다. 마치 '동방박사'인 것처럼~
수도인 스코페로 가려면 고개길을 여러번 넘어야 한다. 구릉지의 들판이 황량한 느낌이 든다. 초목도 없고 토양도 부실해보인다. 그러다가 지하수를 사용하는 관개농업이 발달하고 그러다가 오랜 염분의 누적으로 토양의 능력이 파괴되고 사막화가 진행되는 흐름이 있다. 농경의 방식이 지구의 사막화를 촉진하는 것 아닌가?
목축때문일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초목으로 덮히지 않은 이런 땅이 많다.
4대강반대나 탈원전은 선악과 대안이 분명한 편이지만, 기후위기는 만만치 않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기준으로 실천해야할지 원리와 기준이 정립된 편이 아니다. 그 틈을 비집고 원전추진파들도 설치고 있다. 원전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음에도.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관계자는 에너지부문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전의 인류의 삶의 방식과 지구와의 관계다. 최근의 지구촌 산불/들불과 사막화에 대해 산림학자나 농업전문가 그리고 생물/지리학자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모여서 얘기나누는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
지난번 한국의 농사전문가로부터 들은 소식은, 우리가 사막에서의 벼농사재배의 실험에 나섰다는 것이다. 벼농사는 물순환적이고 지표층의 담수효과가 있어서 국지적 기후에 장점이 있다.
https://news.v.daum.net/v/20200101175157044?f=m
물을 적게 사용하는 우리의 방식이 지구촌에 기여할 수 있을까, 기대되는 소식이다.
이 나라는 면적이 작은 편이지만 인구도 작아서 인구밀도가 그리스보다 낮다. 우리의 1/6쯤 된다. 산악지형을 감안하더라도 아주 낮은 편이다. 인구밀도가 낮으면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어렵다. 사업성이 없어서 공공보조를 받는 나라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 나라는 버스 구경하기도 힘들다. 한국의 가주지(可住地)인구밀도는 아마도 세계적으로 높을 것이다. 그래서 대중교통이 장사가 잘된다.
우리가 수도권에 너무 몰려산다고 아우성들이지만, 한강수계의 가용수자원이 다른 강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있거니와, 기후위기시대에는 그러한 집약적 토지이용이 오히려 바람직한 면이 있다. 지역격차는 다른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 이제는 다른 문법으로 세상을 볼 때가 되었다. 필자가 이름 붙이는 것이긴 하지만 '기후위기시대의 문법'이다.
(글쓴이 이원영은, 국토미래연구소장이자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 대표로서, 주로 도보행진을 통하여 탈원전운동 및 핵폐수투기저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leewysu@gmail.com
* 이 글은 한겨레온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