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기후정의행진' 행사가 성황리에 끝났다. 서울 강남에서 3만 가까운 시민이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런 광경을 보던 중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다.
필자는 나아가서 ‘핵발전이야말로 기후위기의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첫째, 핵발전이 직접적인 지구온난화의 주범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원자로가 정상가동되려면 뜨거운 원자로를 24시간 식혀야 하는 막대한 물이 필요하다. 지구촌 413개의 가동원자로에서 1초당 70톤의 물이 7℃ 데워져서 바다나 강으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열량은 태양에너지와 전혀 관계없이 지구에 충격을 주는 열기다. 열오염의 원흉인 것이다. 다른 화력발전소에 비해 단위에너지당 2배나 되는 열기다.
내뿜어진 뜨거운 물은 부피가 팽창하여 가볍게 바다 위로 뜬다. 겨울철 목욕탕의 뜨거운 수면처럼. 밀도가 다르므로 쉽게 섞이지 않고 바다 멀리 뻗어간다. 울진원전에서 멀리 떨어진 주문진 앞바다에서 관찰된 표층수가 31℃를 기록하기도 했다(2013년 MBC 보도). 이렇게 되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저장될 능력을 감소시킨다. 바닷물에 산소가 공급되기가 어려워져 바다 생태계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 생태계가 부실해지면 바닷물 자체의 이산화탄소 저장능력도 저하된다. 해양산성화가 심화되고 그럴수록 미세한 플랑크톤 군집이 더 번성해 해양의 이산화탄소 흡수를 방해한다. 이중 삼중의 탄소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기후위기 극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태양광에 핵발전소가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태양광과 핵발전은 양립하지 못한다. 전영환 교수(홍익대 전기공학과)는 말한다. “연료비가 0인 재생에너지가 가장 먼저 투입이 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기저 전원의 위치를 가지게 됐다.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는 만큼 (높은 원가의) 가스발전기, 석탄발전기 순서로 발전기를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경우 부하추종(전력 수요의 변동에 맞춰 원자로의 출력을 조절하는 것)을 담당해야 하는 발전기는 원자력발전기가 돼야 한다. 원자력발전기의 위치가 기저발전기가 아니라 자동부하추종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기가 자동부하추종 능력이 없으면 부하추종능력이 좋은 가스발전기를 가동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 원전은 자동부하추종능력이 없다. 원전 설계‧안전 전문가인 박종운 교수(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는 잘라 말한다. "‘국내 원전도 부하추종 운전이 가능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1980년대 이후 미국이 공급한 원전기술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애초 설계에 부하추종을 반영하지 않았을뿐더러 시험‧검증 없이 그런 기능을 넣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태양광이 늘어나면 원전을 정지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실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2기의 원전을 각각 2024년과 2025년에 운전 정지시키게 되는 이유도 태양광 등이 33%나 되어 가동이 힘들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비율 30%를 달성한 영국도 2020년에 일부 원전을 정지시키고 출력도 50% 제한 운전했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와 같은 고립적인 전력계통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 '트레이드 오프' 관계는 더 극명하다. 원전이 정치적 이유로 득세하고 있는 지금,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생산 중단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어느 한쪽이 스톱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에너지전환에 시간이 걸리므로 원전이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독일의 사례는 그와 반대다. 독일에서는 원자력이 교량 역할을 하는 가운데 재생가능 에너지가 46.5%로 늘어난 것이 아니라 원전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태양광이나 풍력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독일 에너지전환의 성공은 탈원전이 뒷받침 한 것이다. 원전폐기결정을 번복한 스웨덴의 경우는 핵발전이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년에 걸쳐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은 20% 정도 증가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만일 스웨덴에서 핵발전 폐기를 번복하지 않았다면 자연에너지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V2G와 태양광 분산에너지가 주력이 되는 때가 왔다
태양광은 기후위기시대의 총아가 될 수밖에 없다. 깨끗한 데다 원료가 공짜여서 ‘태양광 학습곡선’이라는 급격한 가격하락의 법칙이 있다. 현실경제에서도 RE100이라는 수출장벽을 넘어설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CF100이라는 코미디 같은 원전옹호장치로는 그 장벽을 넘을 수 없다.
태양광의 유일한 약점은 ‘간헐성’이다. 낮시간에 집중생산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획기적인 에너지저장기술인 V2G(Vehicle–to- Grid)가 유럽과 국내에서 괄목할 만한 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다. 낮동안 생산된 태양광전기를 전기차에 저장하여 이동식 공급원이 되도록 하자는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에너지전환의 혁명적인 수단이 된다. 남아도는 전력을 저장하여 전력공급이 부족할 때 전기차의 ESS에서 전력을 가져다 쓰고, 잉여 전력이 발생했을 때는 전기차에 충전해 낭비도 방지하기 때문이다. 도시정책과도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그리하여 2022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된 후 독일도시들에서 공동의 V2G를 추진하던 현대자동차의 역할은 주목되어 왔다. 그러던 차 작년 2023년에는 우리 국회에서도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제정되어 최근 6월부터 본격 시행되게 되었고, 민간기업인 현대건설도 5월에 본격적인 V2G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양한 분산에너지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해 전력중개거래사업을 선도해가겠다는 의욕을 보인 것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이런 V2G기술과 시스템이 제대로 활성화되려면 분산에너지원인 태양광이 제대로 확장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권력투쟁이다. 이를 직시해야 한다. 독일연방의원 헤르만셰어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만약 원전이 분산에너지원이고, 태양광이 중앙공급형 에너지원이었다면 마피아들은 기꺼이 태양광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분산에너지는 에너지자립과 기후운동의 핵심이자 경제민주화의 기초다. 탈원전이야말로 기후운동의 엔진이다.
원래 과학기술과 산업의 영역은 별개의 것이다. 과학기술로서의 원자력의 영역은 우주진출이나 방사선과학 등에서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에너지산업의 영역으로 뛰어드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핵발전은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할 정도로 위험한 데다, 후손들에게 핵폐기물이라는 무거운 짐을 강제로 지게 하는 존재다. 윤리적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 더 이상 산업의 존재로는 인정되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망발과 같은 원전진흥정책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제 원자력공학과는 '원전해체학과'로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는 일에 힘을 쏟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그것만 해도 백년 이상 먹거리가 된다. 그들이 더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기후운동도 대중에게 현상타파의 책임을 묻는 방식만이 아니라, 원인자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는 인과론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탈원전’을 엔진으로 삼아야 한다.
* 이 글은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
참 한심한 작태로다
도로에 드러누우면 해결책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