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에 남아있는 장생탄광 환기구인 피야. 일제강점기 시대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져 공기 순환통로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폐쇄돼 있다. ⓒ 조정훈
▲ 알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 입구로 추정되는 곳.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갱도 입구로 추측만 할 뿐이다. ⓒ 조정훈
"갱구를 열자!(坑口を開こう!)"
"유골을 유가족 측에게!(遺骨を遺族の方に!)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에 있는 조세이 탄광(長生炭鑛, 장생탄광). 일제강점기인 1942년 2월 3일 오전 9시 30분쯤 바다 밑으로 파들어 간 해저 갱도가 무너지며 조선인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사망했다.
이후 갱구(갱도 입구)는 누군가에 의해 막혔고, 183명의 유해는 지금까지 바다에 방치돼 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아직도 한을 품고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곳이 탄광이었다는 흔적은 바다에 남아 있는 피야(환기구) 2개뿐.
한일 양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이들을 추모하고 유골을 발굴해 유족에게 반환하기 위해 갱구를 열자며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함께 모였다.
"얼마나 무섭고 괴로웠을까"
▲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 추모비. 이 비는 지난 2013년 2월 일본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됐다. ⓒ 조정훈
▲ 지난 1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 희생자 추모비를 찾은 한국의 추모단이 조화를 들고 추모비를 돌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조정훈
지난 15일 오후 장생탄광참사희생자추모비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에는 한국에서 온 30여 명의 추모단과 일본 '장생탄광의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새기는회) 회원, 재일동포 학생과 교사, 일본인 학생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일본 사민당의 오오츠바키 유우코 참의원(사민당 부당수)과 양현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회장, 이동준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도 참석해 한일 양국 시민들의 뜻에 힘을 합쳤다.
추모행사는 초를 밝히고 차를 올린 뒤 참석자들이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조화를 들고 추모비를 한 바퀴 돈 뒤 헌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추모사, 참회문, 위령의식, 진혼무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송의익 추모단 단장은 "장생탄광이 붕괴된 후 8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분들은 그 자리에 묻혀 있다"며 "이런 반문명적인 일이 한일 양국의 외면 속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게 부끄럽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 손을 잡고 나서자"고 이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윤덕홍 전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바닷물이 갱도로 흘러들어갔을 때 얼마나 무섭고 괴로웠을까.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을까"라며 "82년이 지난 지금도 유골은 수습되지 않았다. 우리는 갱도에 갇힌 183분의 유골을 수습해 원통한 죽음을 위로하고 그 존엄을 부활시킬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 호소한다. 이제 정부가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유골 수습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참여정부에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최봉태 변호사는 "2005년 일본과 협상을 할 때 세운 원칙이 인도주의, 현실주의, 미래지향적이라는 세 가지였다"며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은 가능한 부분은 노력을 하자는 것인데 일본은 눈에 보이는 것만 수습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거리의 무용가 박정희씨가 잔잔한 아리랑 음악에 맞춰 추모비를 닦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진혼무를 추자 한일 양국 시민들의 눈가에 순간 눈물이 비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소리 없는 울음바다가 됐다.
"한일시민의 힘으로 닫혀진 갱구를 열자"
▲ 거리의 춤꾼 박정희씨가 지난 1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 추모비 앞에서 진혼무를 추고 있다. ⓒ 조정훈
▲ 지난 1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 추모비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일본 사회당 오오츠바키 유우코 부당수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조정훈
추모행사가 끝난 후 새기는회는 '갱구를 열자, 스타트 집회'를 진행했다. 스타트집회는 일본 정부의 외면으로 아직까지 열리지 않는 갱구를 열기 위해 800만 엔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집하는 첫 번째 행사다.
새기는회는 크라우드펀딩을 하는 이유로 "일본 정부는 유골이 해저에 있기 때문에 발굴은 어렵다고 한다"면서 "유족에게 시간은 없다. 그렇다면 시민의 힘으로 갱구를 열자"고 밝혔다. 800만 엔이 모이면 오는 10월 25일부터 갱구 부근을 파고 안전 울타리를 설치한 후 갱도 내에 진입해 183인의 유골을 찾는 사업을 진행한다.
이노우에 요코 새기는회 공동대표는 "일본 정부는 '해저 속이고 유골이 위치, 깊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발굴은 어렵다'며 발뺌하고 있다"며 "현지 시찰도 하지 않고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고 발굴은 어렵다라고 하는 일본 정부의 답변을 우리는 더 이상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유족들에게 남은 시간은 더 이상 없다. 우선 시민의 힘으로 닫혀진 갱구를 열자고 82주년 추모식에서 우리는 선언했다"며 "한일 시민의 연대의 힘으로 갱구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현 일본장생탄광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회장은 "31년 전 추모제를 지내려고 왔을 때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갱구와 바다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피야(환기구)를 바라보면서 한을 품고 희생당하신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면서 목놓아 울던 유족들이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해 인권을 유린당한 채 소모품처럼 노역하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에게 아직도 진정한 사과 한 마디 없이 방치하고 있다"면서 "우리 유가족들은 그분들의 발자취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갈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오오츠바키 유우코 사회당 부당수는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이 유해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적극 제기하고 반드시 유해를 발굴해 유족에게 보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집회를 마친 한일 양국 시민들은 '갱구를 열자', '유골을 유가족 분에게'라고 쓴 피켓을 들고 한일 양국 정부를 향해 공동사업으로 진행할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지난 1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장생탄광을 찾은 추모단은 마을 공동묘지에 있는 희생자 탑 앞에서 당시 희생자드을 위한 불교식 추모행사를 가졌다. ⓒ 조정훈
▲ 지난 1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장생탄광 추모비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 후 참가자들이 '갱구를 열자' 등이 쓰인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조정훈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