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후유증으로 천형같은 질병의고통
8.5~6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며칠전 만난 D스님은 원폭피해자 2세 3세를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본인은 알지도 못하며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천형같은 질병의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은 이 고통이 원자폭탄 피폭 후유증으로 유전자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오직 천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이는 살아가다가 갑자기 증상이 발현되어 고통받아오고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피폭후유증이 어떤지를 알지 못한다. 이제는 전쟁당사자도 아니면서, 식민지배의 피해자인 우리나라가 왜 원자폭탄의 피해를 받고 있는지 온 국민이 알아야 한다.
왜 우리나라 합천지역에 피폭자들이 많을까? 일제시기 강제징용당한 사람들은 출신지별로 특정지역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합천지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끌려간 곳이 군수공장이 밀집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였다. 1945년 8월 6일,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다. 11일에는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1972년 4월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원폭피해자 추정치로 총 피폭자 7만 명 중 사망자 4만 명, 생존자 3만 명(귀국자 2만 3,000명, 일본 잔류자 7,000명)이었다. 그리고 귀국자 가운데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은 2,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피폭자 7만여 명 가운데 1만여 명(1세 2,300여 명, 2세 7,500여 명, 1세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자 기준이며 2세는 추정치)이 현재 한국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피폭자의 피해는 다양한 신체 질환뿐 아니라 재산 손실, 장애로 인한 노동력 상실, 가정 해체, 방사선에 의한 질병 및 후유증 등 2차적인 증상까지 다양하다. 이들에게는 유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폭자 자손과의 결혼을 꺼리는 문제와 병자 대하듯 하는 사회적 편견 등의 정신적 피해도 적지 않았다. 1세 피해자 뿐 아니라 자녀들 역시 일반인보다 무려 100배에 이르는 유병률을 보이면서 2ㆍ3세 피해자들도 뇌성마비, 시력장애 등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폭피해자’ 항목 중
한국의 히로시마라 부르는 합천에서는 원폭피해자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2세 3세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노력해왔다. 핵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해온 ‘합천평화의집’은 매년 비핵평화대회를 열어왔다. 2024년 ‘24합천비핵평화대회’는 8.5~6일 이틀에 걸쳐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