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무정설법(無情說法)
신무문관: 무정설법(無情說法)
  • 박영재 명예교수
  • 승인 2024.06.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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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70.
동파 거사를 기리기 위해 중국 서호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석상
동파 거사를 기리기 위해 중국 서호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석상

성찰배경: 바로 앞글에서 임제종 양기파의 시조(始祖)인 양기방회(楊岐方會, 996-1049) 선사의 법을 이은 백운수단(白雲守端, 1025-1072) 선사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황룡파의 시조인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들 가운데, 동림상총(東林常總, 1025 –1091) 선사와 제자인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1101) 거사, 회당조심(晦堂祖心, 1025 –1100) 선사와 제자인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 1045-1105) 거사 및 보봉극문(寶峰克文, 1025 –1102) 선사와 제자인 반산(半山) 왕안석(王安石, 1021-1086) 거사에 관한 선화(禪話)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그런데 <무문관(無門關)>과 <벽암록(碧巖錄)>에는 재가선풍(在家禪風) 진작에 크게 기여했던 이들 선사와 직접 관련된 선화(禪話)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과 <임간록(林間錄)>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합니다. 

◇ 상총 선사의 무정설법(無情說法)

중국 송나라 제6대 신종(神宗) 황제는 즉위 직후 개혁파의 중심인 왕안석을 등용해 신법(新法), 특히 이 가운데 왕안석이 지방 관리로서 기름진 지역을 다스릴 때 크게 성공을 거두었던 농민을 위한 저금리 정책인 청묘법(靑苗法)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 실시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마광(1019-1086)을 정점으로 하는 보수파에 속한 소식은 각 지역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중국 전역으로 확대 실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극구 반대하였다가 중앙에서 밀려나 한직(閒職)인 항주(杭州)의 통판(通判)으로 좌천(左遷)됩니다. 

그후 1079년 호주(湖州) 태수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개혁파에 속한 젊은 무리들이 사사건건 반대하는 소식을 사형시키기 위해 작심하고 그가 지은 시들 가운데 비판적인 내용들을 모아, 이를 근거로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무고(誣告)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를 사형시키려 했으나 왕안석이 비록 이념은 달랐지만,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서 적극적으로 구명한 덕택으로 그는 1081년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생계를 위해 황주성 동쪽에 있는 작은 산비탈에 수십 무(畝)의 황무지를 개간해 그 땅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그는 산비탈 오른쪽 언덕 위에 동파설당(東坡雪堂)을 짓고 스스로 ‘동파(東坡)’ 거사라 칭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난했던 이 시기에 그를 대표하는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으며, 또한 참선 수행을 통해 깊은 통찰 체험도 하게 됩니다.

한편 선종(禪宗) 가운데 이 무렵 사대부들의 오도(悟道) 체험에 크게 기여한 임제종은 오늘날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로 퍼진 양기방회 선사를 개조(開祖)로 하는 양기파와 황룡혜남 선사를 개조로 하는 황룡파로 새롭게 분파하며 번창했습니다. 동파 거사는 이 가운데 황룡파 계열인 동림상총 선사로부터 “유정설법(有情說法), 즉 인간의 언어뿐만 아니라 무정설법(無情說法), 즉 자연의 언어까지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는 한마디[一轉語]를 듣고 콱 막혀버렸습니다. 그 후 ‘무정설법’을 화두로 삼아 참구하다가 어느 날 폭포 아래를 지나다가 이를 타파하고 지은 오도송(悟道頌)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냇물 소리가 곧 오묘한 법문이니/ 산속 풍광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밤새 설한 이 팔만사천 게송들을 다른 날 어떻게 다른 이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줄 수 있으리.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군더더기: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동파 거사의 오도 체험이 바로 일생 동안 귀양(歸鄕)을 가건 복직(復職)을 하건 가는 곳마다 있는 그 자리에서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생업[官職]과 수행(修行)이 둘이 아닌 ‘생수불이(生修不二)’의 삶을 치열하게 이어간 원동력이라 사료됩니다. 

◇ 조심 선사의 배촉교치(背觸交馳)
 
<오가정종찬>의 회당조심[寶覺祖心] 선사 편에 보면 그의 ‘주먹’ 공안에 관한 일화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심 선사는 혜남 선사 문하에서 4년을 지냈으나 들어갈 길을 몰랐다가 하루는 뜨거운 물을 부어 손을 씻다가 희열을 느낀 바가 있었지만 아직 철저히 트이지 않았다. 그 후 석상산에 머물면서 <전등록(傳燈錄)>을 읽다가 크게 깨쳤다. 
훗날 혜남 선사께서 입적하자 그 뒤를 이어 주지가 되었는데, 조심 선사는 제자들이 입실하면 주로 주먹을 들어올려 보이면서 ‘이것을 주먹이라 이르면 저촉(抵觸, 대상에 부딪히는 대로 마음을 내는 모순된 경계)되고, 주먹이 아니라고 부정하면 사실에 위배(違背, 어긋난 경계)되느니라.[喚作拳頭則觸 不喚作拳頭則背.]’라고 제자들을 다그쳤다. 그런데 대중 가운데 아주 소수만이 조심 선사의 의도에 계합하였다.” 

군더더기: 사실 앞에서 다룬 <무문관> 제43칙 수산죽비(首山竹篦) 공안에서 수산 선사께서 죽비를 대중에게 제시하며 이미 ‘배촉(背觸)’의 수완을 발휘했었는데, 조심 선사께서도 역시 대상을 ‘죽비’에서 ‘주먹’으로 바꾸어 제자들을 다그친 것으로 미루어, 본인 스스로 진퇴양난(進退兩難)으로 몰아가는 ‘배촉’이란 이원적 분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크게 희열(喜悅)을 느꼈다고 사료됩니다. 

한편 역시 <오가정종찬>의 조심 선사 편(또는 <居士傳>)에 보면 산곡 황정견 거사에 관한 일화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어느날 산곡 거사가 조심 선사를 찾아뵙자, ‘내가 숨긴 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숨긴 게 없다.’라는 (<논어(論語)>에 들어있는) 공자[夫子]의 말씀을 인용하며, 선사께서 ‘이게 무슨 말이오?’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산곡 거사가 여러 가지 경계를 제시했지만 모두 인정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우연히 함께 뜨락을 거니는데 꽃향기가 그윽하였다. 그러자 조심 선사께서 이번에는  ‘그대는 계수나무의 꽃향기를 맡았는가?[還聞桂花香乎.]’하고 물으셨다. 이에 산곡 거사가 ‘예. 향기를 맡았습니다.[聞.]’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조심 선사께서 ‘나는 (이와같이) 그대에게 아무것도 숨긴 게 없네.[吾無隱乎爾.]’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끝에) 산곡 거사가 마침내 깨쳤다.[谷遂有省.]” 

덧붙여 산곡 거사의 선지(禪旨)를 잘 엿볼 수 있는 《우답빈노병유견민(又答斌老病癒遣悶)》에 수록된 시 한 대목을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 가지 병이 모두 내 안에서 발병하더니/ 깨닫고 꿰뚫어 보니 본래 누가 아팠던고./ 서쪽에서 부는 바람에 잠시 가랑비 내리더니/ 서늘한 기운이 거사가 걷는 길에까지 스며드네.[百痾從中來 悟罷本誰病. 西風將小雨 涼入居士徑.]’

군더더기: 참고로 전법의 징표인 의발(衣鉢)에 집착해 이를 빼앗으려고 추격해 온, 명(明)상좌에게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가 행한 첫 입실점검 일화가 담긴 <무문관> 제23칙 불사선악(不思善惡) 공안 가운데 조심 선사의 ‘나는 숨긴 게 없네.[吾無隱]’라는 구절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다음 대목도 함께 살피면 좋을 것 같네요.
“혜능 선사께서, ‘지금 내가 그대[명상좌]에게 설한 것에는 비밀(秘密)이 전혀 없네.[祖曰 我今爲汝說者 卽非密也.] 만약 그대가 자기면목[本來面目]을 돌이켜 보면, 비밀은 도리어 그대에게 있느니라.[汝若返照自己面目 密却在汝邊]’라고 말씀하셨다.”

◇ 극문 선사의 일전어(一轉語)
 
진정극문[寶峰克文] 스님이 위산에 살 때, 어느 날 밤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의 어록을 읽다가 “한 스님이 ‘불법은 마치 물속에 비친 달과 같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니 운문 선사께서 ‘맑은 물결은 뚫고 갈 수 없느니라.’고 대답하였다.”는 구절을 읽고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기세가 등등해졌고 여러 총림에서는 극문 스님의 기봉(機鋒)과 맞닥뜨리는 사람이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무렵 적취[황룡혜남] 선사의 명성이 세상에 자자하다는 말을 듣고 극문 스님이 곧장 그곳을 찾아갔지만 황룡 선사께서 입실과 법문을 모두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에 극문 스님은 “내게도 깨달은 경계가 있는데 그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군요.”하며 화를 내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후 극문 스님은 취암사 순 스님을 만나 미숙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그의 주선으로 마침내 다시 적취산으로 돌아가서 황룡 선사와 대면하게 되는데, 그 일화가 역시 <오가정종찬>의 극문 선사 편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황룡 선사께서 ‘어디서 왔는가?’하고 물으시자, 극문 스님은 ‘취암사에서 왔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황룡 선사께서 ‘하필이면 내가 떠나려 할 때 찾아왔구나.’라고 답하셨고, 극문 스님은 ‘어디로 가시렵니까?’하고 다시 여쭈었다. 이에 황룡 선사께서 ‘천태산에서 운력하고 남악에 유람하려 한다.’라고 답하셨고, 극문 스님은 ‘저도 그처럼 자유자재할 수 있습니다.[某甲得恁麼自在]’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황룡 선사께서 ‘네가 신고 있는 신은 어디에서 얻었는가?[脚下鞋甚處得來]’라고 물으셨고, 극문 스님은 ‘여산에서 7백 50푼을 부르기에 샀습니다.[廬山七百五十文唱得]’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황룡 선사께서 ‘언제 그대가 그런 자재를 얻었느냐?[何曾得自在.]’라고 물으셨고, 극문 스님은 ‘제가 언제 자재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까?[何曾不自在.]’라고 당당하게 아뢰었다. 그러자 황룡 선사께서 (깨침[悟道]의 증거인 이 한마디[一轉語]에) 깜짝 놀랐다.[翠駭之.] 

한편 오늘날까지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개혁파의 우두머리였던 반산(半山) 왕안석 거사는 극문 선사의 제자였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왕안석이 재상이 된 이후 극문 선사의 제자였던 혜홍각범(慧洪覺範, 1071-1128) 스님이 엮은 <임간록(林間錄)>에 기록된 귀천(貴賤)에 관한 왕안석의 견해를 통해 그의 선지(禪旨)를 잘 엿볼 수 있기에 소개를 드립니다.

“(왕안석은) 정월 15일에 상국사(相國寺)에서 연회가 열렸을 때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광대놀이를 구경하다가 좌객이 몹시 즐거워하자 게송(偈頌)을 지었다.
‘광대놀이판 속에서는/ 한 번은 귀하였다 한 번은 천해지나/ 마음으로는 본래 같음을 알기에/ 
기뻐하거나 원망할 것 없노라.[諸優戱場中 一貴復一賤 心知本自同 所以無欣怨.]’

또한 그의 선기(禪機)에 대한 각범 스님의 평가가 담긴 다음과 같은 대목이 이어져 있어 함께 살피면 좋을 것 같네요. 
“(나[각범]는) 예전에 왕안석 거사에 대해 도반[同學]에게 ‘이 어르신은 온몸 그대로가 눈이라서, 그를 티끌[一點]만큼도 속일 수 없네.[此老人通身是眼 瞞渠一點也不得.]’라고 말한 적도 있다.” 

군더더기: 반산 거사는 실패한 개혁가로만 기억되고 있어서인지, 그의 통찰 체험을 시사하는 ‘온몸이 눈이네[通身是眼]’는 인용되고 있으나, 나눔 실천과 맞닿아 있는 ‘온몸이 손이네[通身是手≈入鄽垂手]’란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끝으로 요즈음 의료분란(醫療紛亂)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합니다만 동파 거사의 경우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그 어느 선사들보다도 1000년 동안 끊임없이 칭송해 오고 있는 이유는 그의 문장 때문만이 아니라, 서민들을 위한 무료 사설 의료기관인 ‘안락방(安樂房)’ 설치 등을 포함해 늘 가는 곳마다 심지어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귀양살이에서조차 어려운 백성들의 고통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 이를 개선하고자 온몸을 던졌기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관련 선행 자료: 통보선의 달인, 소동파/ 박영재 교수 (<불교닷컴>, 2015.08.19.)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행원 선사로부터 두 차례 독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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