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 정신세계에 한글 도입, ‘님의침묵’으로 대통합”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만해 한용운 스님은 “20세기 성인이자 20세기 조선의 유마힐”이라고 규정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시간여 동안 만해 한용운 스님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강연했다. 그는 이 강연에 앞서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던 재단법인 선학원 과 심우장 등을 둘러보고 만해 스님의 저서와 관련 서적을 두 달여 간 탐독했다. 향후 만해 관련 단행본을 집필할 계획이다. 도올(檮杌) 김용옥(金容沃, 1948년 6월 14일~) 선생은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이자, 현재 한신대 석좌교수이다.
도올 선생은 재단법인 선학원이 만해 한용운 선사 서거 80주기 기념대강연 원고를 청탁한 사실에 “만해 강연의 청탁을 당위적으로 수용하였다.”면서 “한용운의 방대한 정신세계를 대면하면서 나는 20세기 우리 민족의 정신사적 대맥을 발견한 느낌에 온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도올은 만해 스님을 “일제강점기라는 불운한 거국적 사태 속에서 가장 극명하게 민족아이덴티티를 지킨 지식인이요, 시인이며, 종교인이며, 학자이며, 독립투쟁가이며, 사회운동가이며, 저널리스트적 활동가”라며 “이 다면적 사회기능을 한 몸으로 구현하면서도 일제와 일말의 타협도 없었다는 기적 같은, 아니 신비롭기까지 한 이 유니크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평론자들이 만해 스님의 삶의 역정에서 간과하는 사실은 “그의 한학 수준과 깊이에 관한 오석 내지는 무지”라면서 “만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현대문학계 주류를 이뤄 만해의 한학 수준을 파악하기 힘들고, 불교철학 내부 사정에 어둡기 마련이어서 만해의 한시 번역에서 오류가 많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도올은 “만해 스님의 한학실력을 가늠하지 못해 그의 출생환경에 ‘헛소리’가 많다.”면서 “한학 실력으로 볼 때 격조 높은 사족(士族)집안 출신임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도올은 만해 스님이 “막강한 유학경전의 실력을 바탕으로 수준높은 불경공부에 전념해 기본요의를 착실하게 터득했고, 10대에 유교경전을 암송하고 20대에 불교경전을 터득했으며, 조선지성사의 양대 산맥의 정수리에 오른 그는 ‘한글’을 새롭게 발견했다.”며 “만해의 한글 사랑은 그의 실존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평했다. 만해 스님은 한글로 번역된 목판본 불경원판 수집에도 관심을 보였고, 한글이 제일 먼저 응용된 분야가 불교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도올은 <님의 침묵> 중 ‘알 수 없어요’ 시를 분석하면서 “한문투의 냄새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한글은 그의 내면의 감성의 여여로운 표현이요 폭발이었다.”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만해에게 한글은 해방이요 유신이요 자유요 신문명이었다.”면서 “십장경과 팔만대장경이 융합된 자리에서 터져나온 포효가 <조선불교유신론>”이라고 평했다. 그는 만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한 것을 “정식 스님이 된 지 불과 5년 만에 불교계 전체에 물의를 일으키는 방대한 서물을 저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적이며 아니키스트적 파괴력을 지닌다.”고 했다.
도올은 만해 스님이 “내부적으로 곪아있었던 조선불교의 현상을 형량하여 개선책을 강구하기에는 너무도 열혈아였다.”면서 “만해의 주장은 틀리지 않다. 래디칼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조선불교는 변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생각을 그대로 구김 없이 썼다는 것이 만해라는 실존체의 위대함”이라고 평가했다.
‘유신론’에서 가장 논란인 승니 가취 여부와 관련 도올은 “만해의 결혼 허용 주장은 그의 불교철학 체계 내에서의 필연적·이론정합적 주장이었다. 그것은 왜색불교의 ‘대처승’ 문제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테마였고, 그 주장은 일본불교가 한국을 지배하기 이전의 한국불교 자체의 성찰에서 나온 自內的 테마였다.”면서 “만해는 너무 젊었고, 너무 혈기가 왕성했고, 정의감이 투철했고, 실천력이 직절直截했다.”고 덧붙붙였다.
그러면서 도올은 “만해의 정신세계에 있어서 승려결혼의 도입은 근원적인 해탈의 길이었고 기성불교를 혁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것은 그의 한학적 정신세계에 한글이 도입되는 것과도 같은 신선함이었다.”고 평가했다.
도올은 맨해 스님이 낸 <불교대전>을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불교대전>으로 입증한 것”으로 분석했다.
도올은 만해 스님의 오도송을 중시했다. 그는 만해 스님의 오도송에 “만해의 삶의 모든 굴절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3.1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만해 스님이 쓴 것이 분명하다”고 보면서 “3·1운동의 독립선언은 天命의 大勢의 선포(케리그마)였다. 그러나 선포자들이 대부분 그 선포에 끝까지 매달리지 못했다. 선포의 내용을 끝까지 타협 없이 믿은 사람이 오직 만해 한용운이었다.”고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3.1독립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고초를 겪는다. 도올은 이 기간을 “가장 혹독한 선의 수련”이라고 분석하고, “존재의 그룬트Grund를 파헤치는 ‘님의 발견’이었다.”고 평했다.
도올은 만해 스님이 주해한 “<십현담주해>가 시집 <님의 침묵>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면서 “<님의 침묵>이 완성되기 두 달 전에 <십현담주해>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그 관계의 긴밀성을 유추할 수 있고, 첫 율시 ‘심인’의 내용만 잘 살펴보아도 <님의 침묵>의 근원적인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얼굴이 없다든다, 색깔이 없다든가, 인간의 언어로 부를 수 없다든가, 이글거리는 화로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라든가, 무심無心도 심의 관문에 싸여있다든가…… 이 모든 메타포가 만해의 ‘님’의 근본 情調와 상통한다.”고 했다.
도올은 “혹자는 <십현담>의 열 개의 律詩의 언어와 <님의 침묵>의 90편(88+군말+讀者에게)의 시를 병렬시켜 그 상응관계를 논하기도 하나 만해의 시를 그렇게 쉐마틱하게,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만해를 모독적으로 훑어내리는 것이며, 헛소리라 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올은 “만해의 천재성, 가슴에서 수시로 폭발하는 시정,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쌓인 울분과 좌절과 희망과 달관의 지혜, 불화로 같은 식을 줄 모르는 가슴, 그리고 팔만대장경 전체를 가슴에 담은 지적 통찰력, 이성과 감성을 융합하는 漢詩의 정취…… 이 모든 것을 생각한다면 만해는 <님의 침묵>을 하룻밤에도 써낼 수 있는 시성詩聖”이라며 “만해가 상찰常察에게 한 수 가르쳐줄 수 있을지언정, 상찰의 詩格에 맞춰 자기의 시정을 토로할 위인은 아니다.”고 했다.
도올은 아시아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인도의 타고르에 비해 만해를 높이 평가했다. 도올은 “만해의 시 중에 ‘타골의 詩(GARDENISTO)를 읽고’라는 시에서 타고르에 대한 만해의 평가는 높지 않다.”면서 “타골의 초월적 진리는 백골의 향기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다. 타골은 선禪을 몰랐다. 정확한 평론”이라고 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소월의 ‘진달래꽃’을 <님의 침묵>과 비교한 도올은 “이 삼자를 동차원에서 동일문학사의 지평 위에서 논의할수 있을 것인가”라며 <님의 침묵>은 한국문학사에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으로 일체 문단의 여론의 여과나 동인지의 간섭이나 패거리의식의 소속감이 없이, 그냥 무無의 언어바다에서 솟은 독보적인 시어詩語”라고 평가했다.
도올은 만해를 20세기 조선의 유마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유마경>은 한마디로 ‘대승불교운동의 선언서’이다. <유마경>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개인의 구원은 오로지 사회의 구원을 통하여 달성된다는 것”이라며 “개인의 완성은 개인의 성불成佛을 가능케 하는 사회의 구원에 그 근원성을 둔다.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라는 것이다. 만해가 ,유마힐소설경강의維摩詰所說經講義>를 심우장을 마련하였을 즈음(1933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주권의 상실 문제를 지적하면서 “우리 민족의 식민지 36년 체험은 36년에 머물지 않는 식민지멘탈리티를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면서 “주권을 상실한 나라에서 주체를 지킨다는 난감한 과제를 민족정신 혜맥의 저장소로 승화시킨 만해의 삶의 역정이야말로, 21세기 조선민족의 미래적 이데아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했다.
도올은 “<한용운전집> 전체를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면서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 일즉일체一卽一切요, 일체즉일一切卽一이다. <님의 침묵>의 일자一字는 화장세계 전체의 화현化現이다.”고 평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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