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萬海)의 '님'은 조국이며 화엄의 화장세계"
"만해(萬海)의 '님'은 조국이며 화엄의 화장세계"
  • 임상재 기자
  • 승인 2024.06.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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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고, 인류정신사의 혜맥의 정수리에 오른 냉철한 철인이었고, 조선민족의 독립투사였으며 선의 밑바닥에 도달한 심오한 종교인이었고, 역사와 소통한 문학인이었다. 문·사·철의 경지가 한 몸에 통합된 자로서 도덕의 지조를 구현한 인물은 오직 만해 한 사람뿐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만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선생 80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스님과 일반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술제를 봉행했다.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올해는 만해 스님 입적 80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 참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시고 시민 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시대를 넘나드는 두 현인의 대화를 통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1944년 6월 29일 만해 스님 입적 이후에 지금까지 매년, 예술제와 학술대회, 다래재 등 추모행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며 "도올 선생 강연회를 통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향기에 깊이 취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시대 참 지식인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날 강연회를 통해 승려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만해의 업적을 짚어보며 도올의 시각에서 바라본 '만해의 참모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이 태어난 1879년부터 출가한 19살까지 소년 만해가 도달한 한학(漢學-유교경전에 통달함)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충남 홍성 성곡리 신동으로 9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을 해독했으며, <서경(書痙)>을 통달했고 <대학>의 정자(程子) 주(註)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두 만해의 소년시절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19살에 출가한 만해 스님은 1910년 12월 8일 백담사에서 출가 5년 만에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도올 선생은 "그가 생각하는 대중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는 보통사람의 불교이고 보통사람이 삶 속에서 깨닫는 불교였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은 <유신론> 집필 이후 승려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간추려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만해는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통독하고 1914년 <불교대전(佛敎大全)>을 완성한다.

도올 선생은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유신작업을 <불교대전>이라는 초인적인 다이제스트작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10대 시설 유교적 경전과의 해후, 20대 불교경전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세계는 윤리적 엄격성과 초윤리적 자유의 대면을 거쳐 한글문학에 이른다.

도울 선생은 우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만해 스님의 <님의 沈默(침묵)>을 한국문학사에서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용운전집을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결국,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며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이 부르는 '님'은 주권을 상실한 조국이며, 다시 오실 조국이다. 조국은 이상화된 보편이며,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과 조국이 분열돼 있는 한 해탈은 없으며 조국이 돌아오지 않는 한 해탈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주권 회복을 믿었고, 독립운동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과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정리하며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만해 스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만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고, 인류정신사의 혜맥의 정수리에 오른 냉철한 철인이었고, 조선민족의 독립투사였으며 선의 밑바닥에 도달한 심오한 종교인이었고, 역사와 소통한 문학인이었다. 문·사·철의 경지가 한 몸에 통합된 자로서 도덕의 지조를 구현한 인물은 오직 만해 한 사람뿐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만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선생 80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스님과 일반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술제를 봉행했다.





"만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고, 인류정신사의 혜맥의 정수리에 오른 냉철한 철인이었고, 조선민족의 독립투사였으며 선의 밑바닥에 도달한 심오한 종교인이었고, 역사와 소통한 문학인이었다. 문·사·철의 경지가 한 몸에 통합된 자로서 도덕의 지조를 구현한 인물은 오직 만해 한 사람뿐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만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선생 80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스님과 일반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술제를 봉행했다.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올해는 만해 스님 입적 80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 참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시고 시민 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시대를 넘나드는 두 현인의 대화를 통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1944년 6월 29일 만해 스님 입적 이후에 지금까지 매년, 예술제와 학술대회, 다래재 등 추모행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며 "도올 선생 강연회를 통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향기에 깊이 취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시대 참 지식인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날 강연회를 통해 승려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만해의 업적을 짚어보며 도올의 시각에서 바라본 '만해의 참모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이 태어난 1879년부터 출가한 19살까지 소년 만해가 도달한 한학(漢學-유교경전에 통달함)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충남 홍성 성곡리 신동으로 9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을 해독했으며, <서경(書痙)>을 통달했고 <대학>의 정자(程子) 주(註)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두 만해의 소년시절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19살에 출가한 만해 스님은 1910년 12월 8일 백담사에서 출가 5년 만에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도올 선생은 "그가 생각하는 대중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는 보통사람의 불교이고 보통사람이 삶 속에서 깨닫는 불교였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은 <유신론> 집필 이후 승려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간추려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만해는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통독하고 1914년 <불교대전(佛敎大全)>을 완성한다.

도올 선생은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유신작업을 <불교대전>이라는 초인적인 다이제스트작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10대 시설 유교적 경전과의 해후, 20대 불교경전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세계는 윤리적 엄격성과 초윤리적 자유의 대면을 거쳐 한글문학에 이른다.

도울 선생은 우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만해 스님의 <님의 沈默(침묵)>을 한국문학사에서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용운전집을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결국,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며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이 부르는 '님'은 주권을 상실한 조국이며, 다시 오실 조국이다. 조국은 이상화된 보편이며,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과 조국이 분열돼 있는 한 해탈은 없으며 조국이 돌아오지 않는 한 해탈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주권 회복을 믿었고, 독립운동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과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정리하며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만해 스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올해는 만해 스님 입적 80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 참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시고 시민 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시대를 넘나드는 두 현인의 대화를 통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1944년 6월 29일 만해 스님 입적 이후에 지금까지 매년, 예술제와 학술대회, 다래재 등 추모행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며 "도올 선생 강연회를 통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향기에 깊이 취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만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고, 인류정신사의 혜맥의 정수리에 오른 냉철한 철인이었고, 조선민족의 독립투사였으며 선의 밑바닥에 도달한 심오한 종교인이었고, 역사와 소통한 문학인이었다. 문·사·철의 경지가 한 몸에 통합된 자로서 도덕의 지조를 구현한 인물은 오직 만해 한 사람뿐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만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선생 80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스님과 일반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술제를 봉행했다.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올해는 만해 스님 입적 80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 참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시고 시민 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시대를 넘나드는 두 현인의 대화를 통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1944년 6월 29일 만해 스님 입적 이후에 지금까지 매년, 예술제와 학술대회, 다래재 등 추모행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며 "도올 선생 강연회를 통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향기에 깊이 취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시대 참 지식인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날 강연회를 통해 승려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만해의 업적을 짚어보며 도올의 시각에서 바라본 '만해의 참모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이 태어난 1879년부터 출가한 19살까지 소년 만해가 도달한 한학(漢學-유교경전에 통달함)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충남 홍성 성곡리 신동으로 9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을 해독했으며, <서경(書痙)>을 통달했고 <대학>의 정자(程子) 주(註)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두 만해의 소년시절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19살에 출가한 만해 스님은 1910년 12월 8일 백담사에서 출가 5년 만에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도올 선생은 "그가 생각하는 대중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는 보통사람의 불교이고 보통사람이 삶 속에서 깨닫는 불교였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은 <유신론> 집필 이후 승려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간추려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만해는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통독하고 1914년 <불교대전(佛敎大全)>을 완성한다.

도올 선생은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유신작업을 <불교대전>이라는 초인적인 다이제스트작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10대 시설 유교적 경전과의 해후, 20대 불교경전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세계는 윤리적 엄격성과 초윤리적 자유의 대면을 거쳐 한글문학에 이른다.

도울 선생은 우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만해 스님의 <님의 沈默(침묵)>을 한국문학사에서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용운전집을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결국,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며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이 부르는 '님'은 주권을 상실한 조국이며, 다시 오실 조국이다. 조국은 이상화된 보편이며,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과 조국이 분열돼 있는 한 해탈은 없으며 조국이 돌아오지 않는 한 해탈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주권 회복을 믿었고, 독립운동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과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정리하며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만해 스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우리 시대 참 지식인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날 강연회를 통해 승려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만해의 업적을 짚어보며 도올의 시각에서 바라본 '만해의 참모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이 태어난 1879년부터 출가한 19살까지 소년 만해가 도달한 한학(漢學-유교경전에 통달함)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충남 홍성 성곡리 신동으로 9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을 해독했으며, <서경(書痙)>을 통달했고 <대학>의 정자(程子) 주(註)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두 만해의 소년시절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19살에 출가한 만해 스님은 1910년 12월 8일 백담사에서 출가 5년 만에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도올 선생은 "그가 생각하는 대중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는 보통사람의 불교이고 보통사람이 삶 속에서 깨닫는 불교였다."고 말했다.





"만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고, 인류정신사의 혜맥의 정수리에 오른 냉철한 철인이었고, 조선민족의 독립투사였으며 선의 밑바닥에 도달한 심오한 종교인이었고, 역사와 소통한 문학인이었다. 문·사·철의 경지가 한 몸에 통합된 자로서 도덕의 지조를 구현한 인물은 오직 만해 한 사람뿐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만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선생 80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스님과 일반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술제를 봉행했다.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올해는 만해 스님 입적 80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 참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시고 시민 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시대를 넘나드는 두 현인의 대화를 통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1944년 6월 29일 만해 스님 입적 이후에 지금까지 매년, 예술제와 학술대회, 다래재 등 추모행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며 "도올 선생 강연회를 통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향기에 깊이 취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시대 참 지식인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날 강연회를 통해 승려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만해의 업적을 짚어보며 도올의 시각에서 바라본 '만해의 참모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이 태어난 1879년부터 출가한 19살까지 소년 만해가 도달한 한학(漢學-유교경전에 통달함)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충남 홍성 성곡리 신동으로 9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을 해독했으며, <서경(書痙)>을 통달했고 <대학>의 정자(程子) 주(註)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두 만해의 소년시절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19살에 출가한 만해 스님은 1910년 12월 8일 백담사에서 출가 5년 만에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도올 선생은 "그가 생각하는 대중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는 보통사람의 불교이고 보통사람이 삶 속에서 깨닫는 불교였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은 <유신론> 집필 이후 승려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간추려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만해는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통독하고 1914년 <불교대전(佛敎大全)>을 완성한다.

도올 선생은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유신작업을 <불교대전>이라는 초인적인 다이제스트작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10대 시설 유교적 경전과의 해후, 20대 불교경전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세계는 윤리적 엄격성과 초윤리적 자유의 대면을 거쳐 한글문학에 이른다.

도울 선생은 우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만해 스님의 <님의 沈默(침묵)>을 한국문학사에서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용운전집을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결국,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며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이 부르는 '님'은 주권을 상실한 조국이며, 다시 오실 조국이다. 조국은 이상화된 보편이며,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과 조국이 분열돼 있는 한 해탈은 없으며 조국이 돌아오지 않는 한 해탈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주권 회복을 믿었고, 독립운동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과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정리하며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만해 스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만해 스님은 <유신론> 집필 이후 승려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간추려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만해는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통독하고 1914년 <불교대전(佛敎大全)>을 완성한다.

도올 선생은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유신작업을 <불교대전>이라는 초인적인 다이제스트작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10대 시설 유교적 경전과의 해후, 20대 불교경전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세계는 윤리적 엄격성과 초윤리적 자유의 대면을 거쳐 한글문학에 이른다.

도울 선생은 우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만해 스님의 <님의 沈默(침묵)>을 한국문학사에서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용운전집을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결국,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며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고, 인류정신사의 혜맥의 정수리에 오른 냉철한 철인이었고, 조선민족의 독립투사였으며 선의 밑바닥에 도달한 심오한 종교인이었고, 역사와 소통한 문학인이었다. 문·사·철의 경지가 한 몸에 통합된 자로서 도덕의 지조를 구현한 인물은 오직 만해 한 사람뿐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만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선생 80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스님과 일반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술제를 봉행했다.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올해는 만해 스님 입적 80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 참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시고 시민 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시대를 넘나드는 두 현인의 대화를 통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1944년 6월 29일 만해 스님 입적 이후에 지금까지 매년, 예술제와 학술대회, 다래재 등 추모행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며 "도올 선생 강연회를 통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향기에 깊이 취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시대 참 지식인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날 강연회를 통해 승려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만해의 업적을 짚어보며 도올의 시각에서 바라본 '만해의 참모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이 태어난 1879년부터 출가한 19살까지 소년 만해가 도달한 한학(漢學-유교경전에 통달함)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충남 홍성 성곡리 신동으로 9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을 해독했으며, <서경(書痙)>을 통달했고 <대학>의 정자(程子) 주(註)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두 만해의 소년시절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19살에 출가한 만해 스님은 1910년 12월 8일 백담사에서 출가 5년 만에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도올 선생은 "그가 생각하는 대중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는 보통사람의 불교이고 보통사람이 삶 속에서 깨닫는 불교였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은 <유신론> 집필 이후 승려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간추려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만해는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통독하고 1914년 <불교대전(佛敎大全)>을 완성한다.

도올 선생은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유신작업을 <불교대전>이라는 초인적인 다이제스트작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10대 시설 유교적 경전과의 해후, 20대 불교경전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세계는 윤리적 엄격성과 초윤리적 자유의 대면을 거쳐 한글문학에 이른다.

도울 선생은 우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만해 스님의 <님의 沈默(침묵)>을 한국문학사에서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용운전집을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결국,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며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이 부르는 '님'은 주권을 상실한 조국이며, 다시 오실 조국이다. 조국은 이상화된 보편이며,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과 조국이 분열돼 있는 한 해탈은 없으며 조국이 돌아오지 않는 한 해탈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주권 회복을 믿었고, 독립운동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과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정리하며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만해 스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만해 스님이 부르는 '님'은 주권을 상실한 조국이며, 다시 오실 조국이다. 조국은 이상화된 보편이며,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과 조국이 분열돼 있는 한 해탈은 없으며 조국이 돌아오지 않는 한 해탈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주권 회복을 믿었고, 독립운동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과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정리하며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만해 스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만해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고, 인류정신사의 혜맥의 정수리에 오른 냉철한 철인이었고, 조선민족의 독립투사였으며 선의 밑바닥에 도달한 심오한 종교인이었고, 역사와 소통한 문학인이었다. 문·사·철의 경지가 한 몸에 통합된 자로서 도덕의 지조를 구현한 인물은 오직 만해 한 사람뿐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만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선생 80주기를 맞아 지난 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스님과 일반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술제를 봉행했다.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올해는 만해 스님 입적 80주기를 맞아 우리 시대 참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시고 시민 대강연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시대를 넘나드는 두 현인의 대화를 통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1944년 6월 29일 만해 스님 입적 이후에 지금까지 매년, 예술제와 학술대회, 다래재 등 추모행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며 "도올 선생 강연회를 통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향기에 깊이 취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시대 참 지식인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날 강연회를 통해 승려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만해의 업적을 짚어보며 도올의 시각에서 바라본 '만해의 참모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이 태어난 1879년부터 출가한 19살까지 소년 만해가 도달한 한학(漢學-유교경전에 통달함)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충남 홍성 성곡리 신동으로 9살에,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을 해독했으며, <서경(書痙)>을 통달했고 <대학>의 정자(程子) 주(註)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두 만해의 소년시절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19살에 출가한 만해 스님은 1910년 12월 8일 백담사에서 출가 5년 만에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탈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도올 선생은 "그가 생각하는 대중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는 보통사람의 불교이고 보통사람이 삶 속에서 깨닫는 불교였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은 <유신론> 집필 이후 승려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정수를 간추려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만해는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통독하고 1914년 <불교대전(佛敎大全)>을 완성한다.

도올 선생은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유신작업을 <불교대전>이라는 초인적인 다이제스트작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말하는 유신이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10대 시설 유교적 경전과의 해후, 20대 불교경전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세계는 윤리적 엄격성과 초윤리적 자유의 대면을 거쳐 한글문학에 이른다.

도울 선생은 우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만해 스님의 <님의 沈默(침묵)>을 한국문학사에서 기적과 같이 등장한 단행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한용운전집을 통독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결국, <님의 침묵> 한 권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며 "만해의 사유세계는 화엄의 화장세계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해 스님이 부르는 '님'은 주권을 상실한 조국이며, 다시 오실 조국이다. 조국은 이상화된 보편이며,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과 조국이 분열돼 있는 한 해탈은 없으며 조국이 돌아오지 않는 한 해탈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주권 회복을 믿었고, 독립운동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도올 선생은 만해 스님과 시공을 뛰어넘은 대화를 정리하며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만해 스님에 대한 책을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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