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4. 이사는 힘들어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4. 이사는 힘들어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4.05.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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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자리에 머무는 나무는
때로 사람들이 이사를 시켜 준다
나무 의사하고는 상관없이
도시 가로수도 되고
고층 아파트 옥상에 관상수가 되고
부잣집 정원에 정원수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홍골산 너머엔 사람이 안 사는줄 알았다
홍골에서 밤에 호랑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줄 알았다
모판에서 모가 파릇파릇하게 자라면
논에 물을 대고 가래질하고 나면
호수같이 달빛을 담은 논이 논두렁 사이에서
세상을 담고 있었다.

군을 제대하고 시골 촌놈 서울 살이
독서실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책상 아래서 시작
독서실을 전전하다 방한 칸 세를 살면서
연탄가스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달이 그리 서러워 보일 줄이야
죽어 가는 그 순간에도 땅은 따뜻했다/

이민 와서 삼십 년
이젠 자리 잡고 여유로울 때도 되었건 만
쫓기듯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며
눈물이 삼베 보자기에 흐르는 약물처럼 삐질삐질 빠져나온다
도심에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야 하는 삶의 터전
삼십 년을 산 도시에서 떠나
또다시 적응은 하려나
옮겨 심은 나무처럼 몸살이 나서 잎이 누렇게 뜨지는 않을까

여자한테만 렌트 준다고
전문직을 가진사람한테만 렌트준다고
소득을 증명하라고
4인 가구라 안된다고
젊은 부부한테 렌트준다고
계단을 내려가기도 버거운데
어두운 지하로 내려 가는 지하방들
전기세 가스비 많이 나온다고

식구가 많아서 안된다는 말은 안하고
밀리언도 넘는 집주인하고 반반 내야 하는 가스비, 전기세
렌트 들어 가기도 전에 기가 죽어
도저히 못 들어 가겠다
멀어도 작아도 아파트에 살자.
 







#작가의 변
지난 주 15일에 딸 회사에서 올해 예산이 많이 줄어서 이미 다른 주로 이직을 해 준다고 했던 약속을 깨고 보내 줄 수 없다고 해서 그동안 준비했던 타 주의 아파트와 밴쿠버에 다시 렌트해야 하는 상황이 얽히면서 마치 어두운 터널처럼 힘겨운 시간이었다.

딸은 “미리 약속해 놓고 안 보낸다면 다냐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타주로 간다”고 하는 걸 “직장 구하기도 힘든데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처음엔 의기양양하게 하우스 지하와 아파트를 알아봤지만, 하우스 지하는 정말 햇빛을 보지 못하는 지하가 많았고 4인 가구라고 소개서를 보내니 답장이 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4인 가구를 받아만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라 하면서 드라이브로 한 시간 걸리는 먼 거리도 가서 보고 입주 신청서를 썼는데 렌트를 대리하는 부동산에서 딸의 직장 수퍼바이저한테 전화해서 딸의 인성이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수퍼바이저가 딸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사이에 다행히 3 베드룸 지하긴 해도 거실에서 정원을 내다볼 수 있고 아내도 맘에 들어 입주하기로 약속했는데 나중에 집주인이 4인 가족이 집에 주로 있을 거고 우리는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전기세와 가스비 누진제인 거 아시지요 하면서 우리가 유틸리티를 많이 쓸 걸 돌려서 말했다며 아내가 언짢아했다. 안 그래도 북향이라 추워 보이고 우리가 보러 갔을 때 젊은 세입자가 어린애들과 있는데 상당이 춥게 생활하는 것이 신경 쓰였었다.

렌트를 얻으러 다니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하고 중국인도 중국인이나 한국인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상처 입는 것도 같은 동족인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아파트에서 나가야 할 날은 다가오고 렌트는 아직 못 구하고 어제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 3층과 랭리에 아파트 2층이 우리가 렌트할 수 있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고 집에 와 다시 찾아보니 써리에 타운하우스가 나온 것이 있었다. 아침에 가서 보니 방이 너무 작았다. 결론은 아직도 서류를 많이 작성하고 은행거래증명서까지 내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 코퀴틀람을 포기하고 랭리에 가서 계약했다. 계약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로 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리치몬드에서만 생활해서 큰 소리로 싸워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이나 아들이 이곳에서 자라나, 때론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후레자식이라 욕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끔씩 있다. 그런데 코퀴틀람은 한국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동네라 금방 소문이 날 것이 두려웠던 이유도 있다. 다들 자식 자랑을 하지만 가까이서 살면 아무래도 안 봐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들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그 리고 같은 한국 교포끼리 싸우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요즘 모종으로 심었던 들깨며, 고추, 상추, 딸기 등을 정식으로 심는 철이다. 이미 잘 자라서 상추와 깻잎 등을 따서 샐러드를 해 먹거나 딸기가 탐스럽게 열린 가정도 많다. 나도 아주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캘거리 아파트는 1층에 조그만 공간에 꽃밭을 가꾸고 채소를 가꾸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도 타운하우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침에 달려 갔었지만, 방이 너무 작아 우리 4식구가 살 수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과 촉촉한 비가 내려 푸르름이 무성할 여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몸이 불편해 도와주지 못하는 이사 준비를 혼자 애쓰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데 말은 늘 퉁명스럽다 나온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왜 그런지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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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자리에 머무는 나무는
때로 사람들이 이사를 시켜 준다
나무 의사하고는 상관없이
도시 가로수도 되고
고층 아파트 옥상에 관상수가 되고
부잣집 정원에 정원수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홍골산 너머엔 사람이 안 사는줄 알았다
홍골에서 밤에 호랑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줄 알았다
모판에서 모가 파릇파릇하게 자라면
논에 물을 대고 가래질하고 나면
호수같이 달빛을 담은 논이 논두렁 사이에서
세상을 담고 있었다.

군을 제대하고 시골 촌놈 서울 살이
독서실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책상 아래서 시작
독서실을 전전하다 방한 칸 세를 살면서
연탄가스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달이 그리 서러워 보일 줄이야
죽어 가는 그 순간에도 땅은 따뜻했다/

이민 와서 삼십 년
이젠 자리 잡고 여유로울 때도 되었건 만
쫓기듯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며
눈물이 삼베 보자기에 흐르는 약물처럼 삐질삐질 빠져나온다
도심에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야 하는 삶의 터전
삼십 년을 산 도시에서 떠나
또다시 적응은 하려나
옮겨 심은 나무처럼 몸살이 나서 잎이 누렇게 뜨지는 않을까

여자한테만 렌트 준다고
전문직을 가진사람한테만 렌트준다고
소득을 증명하라고
4인 가구라 안된다고
젊은 부부한테 렌트준다고
계단을 내려가기도 버거운데
어두운 지하로 내려 가는 지하방들
전기세 가스비 많이 나온다고

식구가 많아서 안된다는 말은 안하고
밀리언도 넘는 집주인하고 반반 내야 하는 가스비, 전기세
렌트 들어 가기도 전에 기가 죽어
도저히 못 들어 가겠다
멀어도 작아도 아파트에 살자.
 





평생 한 자리에 머무는 나무는
때로 사람들이 이사를 시켜 준다
나무 의사하고는 상관없이
도시 가로수도 되고
고층 아파트 옥상에 관상수가 되고
부잣집 정원에 정원수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홍골산 너머엔 사람이 안 사는줄 알았다
홍골에서 밤에 호랑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줄 알았다
모판에서 모가 파릇파릇하게 자라면
논에 물을 대고 가래질하고 나면
호수같이 달빛을 담은 논이 논두렁 사이에서
세상을 담고 있었다.

군을 제대하고 시골 촌놈 서울 살이
독서실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책상 아래서 시작
독서실을 전전하다 방한 칸 세를 살면서
연탄가스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달이 그리 서러워 보일 줄이야
죽어 가는 그 순간에도 땅은 따뜻했다/

이민 와서 삼십 년
이젠 자리 잡고 여유로울 때도 되었건 만
쫓기듯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며
눈물이 삼베 보자기에 흐르는 약물처럼 삐질삐질 빠져나온다
도심에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야 하는 삶의 터전
삼십 년을 산 도시에서 떠나
또다시 적응은 하려나
옮겨 심은 나무처럼 몸살이 나서 잎이 누렇게 뜨지는 않을까

여자한테만 렌트 준다고
전문직을 가진사람한테만 렌트준다고
소득을 증명하라고
4인 가구라 안된다고
젊은 부부한테 렌트준다고
계단을 내려가기도 버거운데
어두운 지하로 내려 가는 지하방들
전기세 가스비 많이 나온다고

식구가 많아서 안된다는 말은 안하고
밀리언도 넘는 집주인하고 반반 내야 하는 가스비, 전기세
렌트 들어 가기도 전에 기가 죽어
도저히 못 들어 가겠다
멀어도 작아도 아파트에 살자.
 







#작가의 변
지난 주 15일에 딸 회사에서 올해 예산이 많이 줄어서 이미 다른 주로 이직을 해 준다고 했던 약속을 깨고 보내 줄 수 없다고 해서 그동안 준비했던 타 주의 아파트와 밴쿠버에 다시 렌트해야 하는 상황이 얽히면서 마치 어두운 터널처럼 힘겨운 시간이었다.

딸은 “미리 약속해 놓고 안 보낸다면 다냐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타주로 간다”고 하는 걸 “직장 구하기도 힘든데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처음엔 의기양양하게 하우스 지하와 아파트를 알아봤지만, 하우스 지하는 정말 햇빛을 보지 못하는 지하가 많았고 4인 가구라고 소개서를 보내니 답장이 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4인 가구를 받아만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라 하면서 드라이브로 한 시간 걸리는 먼 거리도 가서 보고 입주 신청서를 썼는데 렌트를 대리하는 부동산에서 딸의 직장 수퍼바이저한테 전화해서 딸의 인성이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수퍼바이저가 딸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사이에 다행히 3 베드룸 지하긴 해도 거실에서 정원을 내다볼 수 있고 아내도 맘에 들어 입주하기로 약속했는데 나중에 집주인이 4인 가족이 집에 주로 있을 거고 우리는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전기세와 가스비 누진제인 거 아시지요 하면서 우리가 유틸리티를 많이 쓸 걸 돌려서 말했다며 아내가 언짢아했다. 안 그래도 북향이라 추워 보이고 우리가 보러 갔을 때 젊은 세입자가 어린애들과 있는데 상당이 춥게 생활하는 것이 신경 쓰였었다.

렌트를 얻으러 다니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하고 중국인도 중국인이나 한국인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상처 입는 것도 같은 동족인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아파트에서 나가야 할 날은 다가오고 렌트는 아직 못 구하고 어제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 3층과 랭리에 아파트 2층이 우리가 렌트할 수 있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고 집에 와 다시 찾아보니 써리에 타운하우스가 나온 것이 있었다. 아침에 가서 보니 방이 너무 작았다. 결론은 아직도 서류를 많이 작성하고 은행거래증명서까지 내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 코퀴틀람을 포기하고 랭리에 가서 계약했다. 계약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로 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리치몬드에서만 생활해서 큰 소리로 싸워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이나 아들이 이곳에서 자라나, 때론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후레자식이라 욕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끔씩 있다. 그런데 코퀴틀람은 한국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동네라 금방 소문이 날 것이 두려웠던 이유도 있다. 다들 자식 자랑을 하지만 가까이서 살면 아무래도 안 봐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들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그 리고 같은 한국 교포끼리 싸우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요즘 모종으로 심었던 들깨며, 고추, 상추, 딸기 등을 정식으로 심는 철이다. 이미 잘 자라서 상추와 깻잎 등을 따서 샐러드를 해 먹거나 딸기가 탐스럽게 열린 가정도 많다. 나도 아주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캘거리 아파트는 1층에 조그만 공간에 꽃밭을 가꾸고 채소를 가꾸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도 타운하우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침에 달려 갔었지만, 방이 너무 작아 우리 4식구가 살 수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과 촉촉한 비가 내려 푸르름이 무성할 여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몸이 불편해 도와주지 못하는 이사 준비를 혼자 애쓰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데 말은 늘 퉁명스럽다 나온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왜 그런지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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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지난 주 15일에 딸 회사에서 올해 예산이 많이 줄어서 이미 다른 주로 이직을 해 준다고 했던 약속을 깨고 보내 줄 수 없다고 해서 그동안 준비했던 타 주의 아파트와 밴쿠버에 다시 렌트해야 하는 상황이 얽히면서 마치 어두운 터널처럼 힘겨운 시간이었다.

딸은 “미리 약속해 놓고 안 보낸다면 다냐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타주로 간다”고 하는 걸 “직장 구하기도 힘든데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처음엔 의기양양하게 하우스 지하와 아파트를 알아봤지만, 하우스 지하는 정말 햇빛을 보지 못하는 지하가 많았고 4인 가구라고 소개서를 보내니 답장이 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4인 가구를 받아만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라 하면서 드라이브로 한 시간 걸리는 먼 거리도 가서 보고 입주 신청서를 썼는데 렌트를 대리하는 부동산에서 딸의 직장 수퍼바이저한테 전화해서 딸의 인성이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수퍼바이저가 딸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사이에 다행히 3 베드룸 지하긴 해도 거실에서 정원을 내다볼 수 있고 아내도 맘에 들어 입주하기로 약속했는데 나중에 집주인이 4인 가족이 집에 주로 있을 거고 우리는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전기세와 가스비 누진제인 거 아시지요 하면서 우리가 유틸리티를 많이 쓸 걸 돌려서 말했다며 아내가 언짢아했다. 안 그래도 북향이라 추워 보이고 우리가 보러 갔을 때 젊은 세입자가 어린애들과 있는데 상당이 춥게 생활하는 것이 신경 쓰였었다.

렌트를 얻으러 다니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하고 중국인도 중국인이나 한국인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상처 입는 것도 같은 동족인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평생 한 자리에 머무는 나무는
때로 사람들이 이사를 시켜 준다
나무 의사하고는 상관없이
도시 가로수도 되고
고층 아파트 옥상에 관상수가 되고
부잣집 정원에 정원수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홍골산 너머엔 사람이 안 사는줄 알았다
홍골에서 밤에 호랑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줄 알았다
모판에서 모가 파릇파릇하게 자라면
논에 물을 대고 가래질하고 나면
호수같이 달빛을 담은 논이 논두렁 사이에서
세상을 담고 있었다.

군을 제대하고 시골 촌놈 서울 살이
독서실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책상 아래서 시작
독서실을 전전하다 방한 칸 세를 살면서
연탄가스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달이 그리 서러워 보일 줄이야
죽어 가는 그 순간에도 땅은 따뜻했다/

이민 와서 삼십 년
이젠 자리 잡고 여유로울 때도 되었건 만
쫓기듯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며
눈물이 삼베 보자기에 흐르는 약물처럼 삐질삐질 빠져나온다
도심에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야 하는 삶의 터전
삼십 년을 산 도시에서 떠나
또다시 적응은 하려나
옮겨 심은 나무처럼 몸살이 나서 잎이 누렇게 뜨지는 않을까

여자한테만 렌트 준다고
전문직을 가진사람한테만 렌트준다고
소득을 증명하라고
4인 가구라 안된다고
젊은 부부한테 렌트준다고
계단을 내려가기도 버거운데
어두운 지하로 내려 가는 지하방들
전기세 가스비 많이 나온다고

식구가 많아서 안된다는 말은 안하고
밀리언도 넘는 집주인하고 반반 내야 하는 가스비, 전기세
렌트 들어 가기도 전에 기가 죽어
도저히 못 들어 가겠다
멀어도 작아도 아파트에 살자.
 







#작가의 변
지난 주 15일에 딸 회사에서 올해 예산이 많이 줄어서 이미 다른 주로 이직을 해 준다고 했던 약속을 깨고 보내 줄 수 없다고 해서 그동안 준비했던 타 주의 아파트와 밴쿠버에 다시 렌트해야 하는 상황이 얽히면서 마치 어두운 터널처럼 힘겨운 시간이었다.

딸은 “미리 약속해 놓고 안 보낸다면 다냐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타주로 간다”고 하는 걸 “직장 구하기도 힘든데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처음엔 의기양양하게 하우스 지하와 아파트를 알아봤지만, 하우스 지하는 정말 햇빛을 보지 못하는 지하가 많았고 4인 가구라고 소개서를 보내니 답장이 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4인 가구를 받아만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라 하면서 드라이브로 한 시간 걸리는 먼 거리도 가서 보고 입주 신청서를 썼는데 렌트를 대리하는 부동산에서 딸의 직장 수퍼바이저한테 전화해서 딸의 인성이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수퍼바이저가 딸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사이에 다행히 3 베드룸 지하긴 해도 거실에서 정원을 내다볼 수 있고 아내도 맘에 들어 입주하기로 약속했는데 나중에 집주인이 4인 가족이 집에 주로 있을 거고 우리는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전기세와 가스비 누진제인 거 아시지요 하면서 우리가 유틸리티를 많이 쓸 걸 돌려서 말했다며 아내가 언짢아했다. 안 그래도 북향이라 추워 보이고 우리가 보러 갔을 때 젊은 세입자가 어린애들과 있는데 상당이 춥게 생활하는 것이 신경 쓰였었다.

렌트를 얻으러 다니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하고 중국인도 중국인이나 한국인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상처 입는 것도 같은 동족인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아파트에서 나가야 할 날은 다가오고 렌트는 아직 못 구하고 어제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 3층과 랭리에 아파트 2층이 우리가 렌트할 수 있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고 집에 와 다시 찾아보니 써리에 타운하우스가 나온 것이 있었다. 아침에 가서 보니 방이 너무 작았다. 결론은 아직도 서류를 많이 작성하고 은행거래증명서까지 내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 코퀴틀람을 포기하고 랭리에 가서 계약했다. 계약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로 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리치몬드에서만 생활해서 큰 소리로 싸워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이나 아들이 이곳에서 자라나, 때론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후레자식이라 욕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끔씩 있다. 그런데 코퀴틀람은 한국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동네라 금방 소문이 날 것이 두려웠던 이유도 있다. 다들 자식 자랑을 하지만 가까이서 살면 아무래도 안 봐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들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그 리고 같은 한국 교포끼리 싸우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요즘 모종으로 심었던 들깨며, 고추, 상추, 딸기 등을 정식으로 심는 철이다. 이미 잘 자라서 상추와 깻잎 등을 따서 샐러드를 해 먹거나 딸기가 탐스럽게 열린 가정도 많다. 나도 아주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캘거리 아파트는 1층에 조그만 공간에 꽃밭을 가꾸고 채소를 가꾸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도 타운하우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침에 달려 갔었지만, 방이 너무 작아 우리 4식구가 살 수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과 촉촉한 비가 내려 푸르름이 무성할 여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몸이 불편해 도와주지 못하는 이사 준비를 혼자 애쓰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데 말은 늘 퉁명스럽다 나온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왜 그런지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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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나가야 할 날은 다가오고 렌트는 아직 못 구하고 어제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 3층과 랭리에 아파트 2층이 우리가 렌트할 수 있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고 집에 와 다시 찾아보니 써리에 타운하우스가 나온 것이 있었다. 아침에 가서 보니 방이 너무 작았다. 결론은 아직도 서류를 많이 작성하고 은행거래증명서까지 내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 코퀴틀람을 포기하고 랭리에 가서 계약했다. 계약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로 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리치몬드에서만 생활해서 큰 소리로 싸워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이나 아들이 이곳에서 자라나, 때론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후레자식이라 욕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끔씩 있다. 그런데 코퀴틀람은 한국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동네라 금방 소문이 날 것이 두려웠던 이유도 있다. 다들 자식 자랑을 하지만 가까이서 살면 아무래도 안 봐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들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그 리고 같은 한국 교포끼리 싸우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요즘 모종으로 심었던 들깨며, 고추, 상추, 딸기 등을 정식으로 심는 철이다. 이미 잘 자라서 상추와 깻잎 등을 따서 샐러드를 해 먹거나 딸기가 탐스럽게 열린 가정도 많다. 나도 아주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캘거리 아파트는 1층에 조그만 공간에 꽃밭을 가꾸고 채소를 가꾸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도 타운하우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침에 달려 갔었지만, 방이 너무 작아 우리 4식구가 살 수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과 촉촉한 비가 내려 푸르름이 무성할 여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몸이 불편해 도와주지 못하는 이사 준비를 혼자 애쓰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데 말은 늘 퉁명스럽다 나온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왜 그런지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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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자리에 머무는 나무는
때로 사람들이 이사를 시켜 준다
나무 의사하고는 상관없이
도시 가로수도 되고
고층 아파트 옥상에 관상수가 되고
부잣집 정원에 정원수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홍골산 너머엔 사람이 안 사는줄 알았다
홍골에서 밤에 호랑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줄 알았다
모판에서 모가 파릇파릇하게 자라면
논에 물을 대고 가래질하고 나면
호수같이 달빛을 담은 논이 논두렁 사이에서
세상을 담고 있었다.

군을 제대하고 시골 촌놈 서울 살이
독서실에서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책상 아래서 시작
독서실을 전전하다 방한 칸 세를 살면서
연탄가스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달이 그리 서러워 보일 줄이야
죽어 가는 그 순간에도 땅은 따뜻했다/

이민 와서 삼십 년
이젠 자리 잡고 여유로울 때도 되었건 만
쫓기듯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며
눈물이 삼베 보자기에 흐르는 약물처럼 삐질삐질 빠져나온다
도심에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야 하는 삶의 터전
삼십 년을 산 도시에서 떠나
또다시 적응은 하려나
옮겨 심은 나무처럼 몸살이 나서 잎이 누렇게 뜨지는 않을까

여자한테만 렌트 준다고
전문직을 가진사람한테만 렌트준다고
소득을 증명하라고
4인 가구라 안된다고
젊은 부부한테 렌트준다고
계단을 내려가기도 버거운데
어두운 지하로 내려 가는 지하방들
전기세 가스비 많이 나온다고

식구가 많아서 안된다는 말은 안하고
밀리언도 넘는 집주인하고 반반 내야 하는 가스비, 전기세
렌트 들어 가기도 전에 기가 죽어
도저히 못 들어 가겠다
멀어도 작아도 아파트에 살자.
 







#작가의 변
지난 주 15일에 딸 회사에서 올해 예산이 많이 줄어서 이미 다른 주로 이직을 해 준다고 했던 약속을 깨고 보내 줄 수 없다고 해서 그동안 준비했던 타 주의 아파트와 밴쿠버에 다시 렌트해야 하는 상황이 얽히면서 마치 어두운 터널처럼 힘겨운 시간이었다.

딸은 “미리 약속해 놓고 안 보낸다면 다냐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타주로 간다”고 하는 걸 “직장 구하기도 힘든데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처음엔 의기양양하게 하우스 지하와 아파트를 알아봤지만, 하우스 지하는 정말 햇빛을 보지 못하는 지하가 많았고 4인 가구라고 소개서를 보내니 답장이 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4인 가구를 받아만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라 하면서 드라이브로 한 시간 걸리는 먼 거리도 가서 보고 입주 신청서를 썼는데 렌트를 대리하는 부동산에서 딸의 직장 수퍼바이저한테 전화해서 딸의 인성이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수퍼바이저가 딸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사이에 다행히 3 베드룸 지하긴 해도 거실에서 정원을 내다볼 수 있고 아내도 맘에 들어 입주하기로 약속했는데 나중에 집주인이 4인 가족이 집에 주로 있을 거고 우리는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전기세와 가스비 누진제인 거 아시지요 하면서 우리가 유틸리티를 많이 쓸 걸 돌려서 말했다며 아내가 언짢아했다. 안 그래도 북향이라 추워 보이고 우리가 보러 갔을 때 젊은 세입자가 어린애들과 있는데 상당이 춥게 생활하는 것이 신경 쓰였었다.

렌트를 얻으러 다니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하고 중국인도 중국인이나 한국인에게 렌트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상처 입는 것도 같은 동족인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아파트에서 나가야 할 날은 다가오고 렌트는 아직 못 구하고 어제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 3층과 랭리에 아파트 2층이 우리가 렌트할 수 있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고 집에 와 다시 찾아보니 써리에 타운하우스가 나온 것이 있었다. 아침에 가서 보니 방이 너무 작았다. 결론은 아직도 서류를 많이 작성하고 은행거래증명서까지 내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 코퀴틀람을 포기하고 랭리에 가서 계약했다. 계약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

한인타운인 코퀴틀람 아파트로 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리치몬드에서만 생활해서 큰 소리로 싸워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딸이나 아들이 이곳에서 자라나, 때론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후레자식이라 욕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끔씩 있다. 그런데 코퀴틀람은 한국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동네라 금방 소문이 날 것이 두려웠던 이유도 있다. 다들 자식 자랑을 하지만 가까이서 살면 아무래도 안 봐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들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그 리고 같은 한국 교포끼리 싸우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요즘 모종으로 심었던 들깨며, 고추, 상추, 딸기 등을 정식으로 심는 철이다. 이미 잘 자라서 상추와 깻잎 등을 따서 샐러드를 해 먹거나 딸기가 탐스럽게 열린 가정도 많다. 나도 아주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캘거리 아파트는 1층에 조그만 공간에 꽃밭을 가꾸고 채소를 가꾸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도 타운하우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침에 달려 갔었지만, 방이 너무 작아 우리 4식구가 살 수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과 촉촉한 비가 내려 푸르름이 무성할 여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몸이 불편해 도와주지 못하는 이사 준비를 혼자 애쓰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데 말은 늘 퉁명스럽다 나온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왜 그런지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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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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