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2. 햇살 가득한 날에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2. 햇살 가득한 날에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4.05.1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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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가득한 나뭇잎이
투명한 실핏줄 같은 세포들을 보여 줄 때
수 억만리 떠나온 햇살과 마주한다.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너의 눈 속에 담긴 세상을 본다.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보지 못할 세상.

그래도 내일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날아 달아나던 너의 끝에 연 끈처럼 달려 있다.
 







#작가의 변
햇살이 가득한 날에 사람들은 공원 의자에서 아니면 누워서 햇살을 가득 받아 태양열 에너지처럼 세상에 지친 육체를 충전 중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든 아니든, 해와 달 그리고 별과 어둠은 우리를 낮과 밤, 밝음과 어둠으로 구분 지어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해가 뜨고 지니 하루가 가고 달이 뜨고 지니 어둠이 지나 새벽이 온다.

무신론자들이었던, 지구 인류에겐 태양, 바람, 파도, 바위, 커다란 나무 등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한다면 과학이 아닌 당장 닥쳐온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종족을 살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 신, 바다신, 파도신, 바위신 등 보이는 모든 나보다 세거나 큰 것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1982년 영국 BBC 방송국 기자들이 10여 년의 추적 취재 끝에 성혈과 성배라는 다큐와 책을 통해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고, 죽지 않아서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로마 병사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해서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함께 프랑스의 골 지방에 정착해서 84세까지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영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이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가 자신도 3대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면서 예수의 프랑스 삶에 대해 인정하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고 한국의 중앙일보에도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잠깐 보도 되었을 뿐 후에 후속 보도나 취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유언비어처럼 묻혀버리게 되었다는 걸 딸에게 얘기했더니 “어, 그래”하고 놀라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사자들의 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도 “어, 그래”로 끝난다. 아니 “아빠가 본 건 아니잖아”하는 데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성경>은 본대로 적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불경’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CCTV가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기록으로 남겨 놓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기록에 미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물 중 하나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왕조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관이 날마다 채집하고 기록한 기록물이다. 물론 ‘팔만대장경’처럼 부처님의 경을 대서사시로 기록한 기록물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실린 글들을 모두 읽고 뜻을 새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는 한글세대라 한문으로 된 고대 서적들은 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방대한 경전을 읽고 수행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전의 간소화와 단축은 현대 종교포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경전은 그 분량이 방대해서 <금강경>, <화엄경>, <반야심경>, <아함경> 등 경전은 그 양도 방대하지만, 경전을 읽으려고 보면 앞에 질문과 답이나 뒤에 질문과 답이 단어 몇 개 바뀐 것 같은 곳도 수없이 많고 그 뜻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난해한 경우도 많다. 물론 <성경>도 해석에 따라서 뜻을 달리하여 종파가 갈라지고, 이단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하지만 불경만큼 방대하고 공부하기 쉽지 않은 경전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의 구절을 들고 공격하면 사실 불경에 어떤 구절을 들에 반박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불교는 모든 살아 숨 쉬는 생물에 자성이 있고 불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불교에도 살생하지 말라, 등등 금기 사항이 많다. 아니 너무 많다.

대웅전에서 부처님 상호를 셀폰으로 찍고 있는데 스님이 들어와서 화를 낸 적이 있다. 스님은 어디 부처님 상호에 카메라를 들이대냐고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 등이 취재왔을 때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나도 기자다. 그럼에도 스님은 내가 신도란 이유로 오히려 나를 혼냈다. 많이 서운하고, 어쩔 줄 몰랐지만, 보이는 부처님 상호가 뭐라고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나의 마음에 살아 있는 부처님을 잘 모시면 되지하고.

대웅전 법당은 문턱이 높다. 땅에서 계단으로 대리석까지 올라가고 그곳에서 다시 문턱이 높은 대웅전 문을 지나야 법당에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캐나다의 관공서나 교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자도 들 갈 수 있게 턱이 없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웅전엔 그런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중에 있는 데다 사찰 관계자가 아니면 아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야 하는 구조이다. 세상이 변하고 세계적으로 포교를 하려면 불교도 변해야 한다.

최근 뉴진 스님(개그맨 윤성호)의 인기가 MZ세대에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불교적 행사에서 흥을 돋구는 디제잉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하며,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엄숙한 불교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그의 공연을 반대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중심은 뼈대가 되는 사찰의 의례가 바뀌면 안 되겠지만 시대가 변하면 사찰도 변해야 한다. 대웅전에 장애자가 들어갈 수 없다든지, 대웅전의 공간이 협소하고 바닥에서 절을 해야 하는 데 장애자들은 절을 못하니 왠지 어쩔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가 예배 도중에 음악 공연과 찬송으로 흥을 돋우는 것은 예배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있다. 불교는 찬불가 시간에만 찬불가를 부르지만, 교회에선 신도들이 졸만하면 찬송을 부르게 하기도 한다. 바닥에서 절하고 법회를 끝까지 보는 일도 사실 신세대나 의자 생활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겐 많이 불편한 것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유튜브 등을 통해 포교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포교의 한 방편 중 하나이다. 밴쿠버의 서광사같은 경우 대웅전에 불을 지르려는 외부인 때문에, 입구에 대문을 달고 초인종을 누르고 확인 후에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주말 법회에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외부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신도들도 그만큼 불편하게 되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도둑이 더 많아지고 인심은 더욱 나빠지는 것 같다. 30여 년전 농장의 2층 농가를 수리해서 사찰로 사용하던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도 자주 들리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새로이 대웅전을 짓고 사찰은 번듯한 규모를 갖추었지만, 오히려 따뜻한 정은 사라진 여름에도 춥다고 느껴지는 대웅전은 분명 높이가 높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찰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멀어서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등등 여러 가지 아유로 가기가 망설여진다. 내 마음에 계신 부처님을 모시면 되지 굳이 법당에 가야 하냐면서 스스로 말한다. 물론 스님을 보고 사찰을 보고 대웅전을 보고 절에 가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좀 더 정감 있는 스님을 원하고 편리한 대웅전을 원하고 멋진 사찰을 원하게 된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듯이 햇살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에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에 감사하고 헐벗고 굶주리지 않음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모든 불성이 함께 불성을 깨달아 진정한 서방정토를 만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듯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교리보다 중요한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없는 알갱이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햇살처럼 모든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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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가득한 나뭇잎이
투명한 실핏줄 같은 세포들을 보여 줄 때
수 억만리 떠나온 햇살과 마주한다.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너의 눈 속에 담긴 세상을 본다.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보지 못할 세상.

그래도 내일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날아 달아나던 너의 끝에 연 끈처럼 달려 있다.
 





햇살 가득한 나뭇잎이
투명한 실핏줄 같은 세포들을 보여 줄 때
수 억만리 떠나온 햇살과 마주한다.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너의 눈 속에 담긴 세상을 본다.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보지 못할 세상.

그래도 내일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날아 달아나던 너의 끝에 연 끈처럼 달려 있다.
 







#작가의 변
햇살이 가득한 날에 사람들은 공원 의자에서 아니면 누워서 햇살을 가득 받아 태양열 에너지처럼 세상에 지친 육체를 충전 중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든 아니든, 해와 달 그리고 별과 어둠은 우리를 낮과 밤, 밝음과 어둠으로 구분 지어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해가 뜨고 지니 하루가 가고 달이 뜨고 지니 어둠이 지나 새벽이 온다.

무신론자들이었던, 지구 인류에겐 태양, 바람, 파도, 바위, 커다란 나무 등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한다면 과학이 아닌 당장 닥쳐온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종족을 살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 신, 바다신, 파도신, 바위신 등 보이는 모든 나보다 세거나 큰 것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1982년 영국 BBC 방송국 기자들이 10여 년의 추적 취재 끝에 성혈과 성배라는 다큐와 책을 통해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고, 죽지 않아서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로마 병사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해서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함께 프랑스의 골 지방에 정착해서 84세까지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영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이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가 자신도 3대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면서 예수의 프랑스 삶에 대해 인정하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고 한국의 중앙일보에도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잠깐 보도 되었을 뿐 후에 후속 보도나 취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유언비어처럼 묻혀버리게 되었다는 걸 딸에게 얘기했더니 “어, 그래”하고 놀라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사자들의 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도 “어, 그래”로 끝난다. 아니 “아빠가 본 건 아니잖아”하는 데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성경>은 본대로 적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불경’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CCTV가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기록으로 남겨 놓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기록에 미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물 중 하나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왕조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관이 날마다 채집하고 기록한 기록물이다. 물론 ‘팔만대장경’처럼 부처님의 경을 대서사시로 기록한 기록물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실린 글들을 모두 읽고 뜻을 새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는 한글세대라 한문으로 된 고대 서적들은 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방대한 경전을 읽고 수행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전의 간소화와 단축은 현대 종교포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경전은 그 분량이 방대해서 <금강경>, <화엄경>, <반야심경>, <아함경> 등 경전은 그 양도 방대하지만, 경전을 읽으려고 보면 앞에 질문과 답이나 뒤에 질문과 답이 단어 몇 개 바뀐 것 같은 곳도 수없이 많고 그 뜻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난해한 경우도 많다. 물론 <성경>도 해석에 따라서 뜻을 달리하여 종파가 갈라지고, 이단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하지만 불경만큼 방대하고 공부하기 쉽지 않은 경전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의 구절을 들고 공격하면 사실 불경에 어떤 구절을 들에 반박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불교는 모든 살아 숨 쉬는 생물에 자성이 있고 불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불교에도 살생하지 말라, 등등 금기 사항이 많다. 아니 너무 많다.

대웅전에서 부처님 상호를 셀폰으로 찍고 있는데 스님이 들어와서 화를 낸 적이 있다. 스님은 어디 부처님 상호에 카메라를 들이대냐고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 등이 취재왔을 때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나도 기자다. 그럼에도 스님은 내가 신도란 이유로 오히려 나를 혼냈다. 많이 서운하고, 어쩔 줄 몰랐지만, 보이는 부처님 상호가 뭐라고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나의 마음에 살아 있는 부처님을 잘 모시면 되지하고.

대웅전 법당은 문턱이 높다. 땅에서 계단으로 대리석까지 올라가고 그곳에서 다시 문턱이 높은 대웅전 문을 지나야 법당에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캐나다의 관공서나 교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자도 들 갈 수 있게 턱이 없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웅전엔 그런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중에 있는 데다 사찰 관계자가 아니면 아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야 하는 구조이다. 세상이 변하고 세계적으로 포교를 하려면 불교도 변해야 한다.

최근 뉴진 스님(개그맨 윤성호)의 인기가 MZ세대에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불교적 행사에서 흥을 돋구는 디제잉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하며,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엄숙한 불교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그의 공연을 반대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중심은 뼈대가 되는 사찰의 의례가 바뀌면 안 되겠지만 시대가 변하면 사찰도 변해야 한다. 대웅전에 장애자가 들어갈 수 없다든지, 대웅전의 공간이 협소하고 바닥에서 절을 해야 하는 데 장애자들은 절을 못하니 왠지 어쩔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가 예배 도중에 음악 공연과 찬송으로 흥을 돋우는 것은 예배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있다. 불교는 찬불가 시간에만 찬불가를 부르지만, 교회에선 신도들이 졸만하면 찬송을 부르게 하기도 한다. 바닥에서 절하고 법회를 끝까지 보는 일도 사실 신세대나 의자 생활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겐 많이 불편한 것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유튜브 등을 통해 포교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포교의 한 방편 중 하나이다. 밴쿠버의 서광사같은 경우 대웅전에 불을 지르려는 외부인 때문에, 입구에 대문을 달고 초인종을 누르고 확인 후에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주말 법회에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외부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신도들도 그만큼 불편하게 되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도둑이 더 많아지고 인심은 더욱 나빠지는 것 같다. 30여 년전 농장의 2층 농가를 수리해서 사찰로 사용하던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도 자주 들리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새로이 대웅전을 짓고 사찰은 번듯한 규모를 갖추었지만, 오히려 따뜻한 정은 사라진 여름에도 춥다고 느껴지는 대웅전은 분명 높이가 높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찰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멀어서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등등 여러 가지 아유로 가기가 망설여진다. 내 마음에 계신 부처님을 모시면 되지 굳이 법당에 가야 하냐면서 스스로 말한다. 물론 스님을 보고 사찰을 보고 대웅전을 보고 절에 가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좀 더 정감 있는 스님을 원하고 편리한 대웅전을 원하고 멋진 사찰을 원하게 된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듯이 햇살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에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에 감사하고 헐벗고 굶주리지 않음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모든 불성이 함께 불성을 깨달아 진정한 서방정토를 만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듯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교리보다 중요한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없는 알갱이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햇살처럼 모든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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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햇살이 가득한 날에 사람들은 공원 의자에서 아니면 누워서 햇살을 가득 받아 태양열 에너지처럼 세상에 지친 육체를 충전 중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든 아니든, 해와 달 그리고 별과 어둠은 우리를 낮과 밤, 밝음과 어둠으로 구분 지어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해가 뜨고 지니 하루가 가고 달이 뜨고 지니 어둠이 지나 새벽이 온다.

무신론자들이었던, 지구 인류에겐 태양, 바람, 파도, 바위, 커다란 나무 등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한다면 과학이 아닌 당장 닥쳐온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종족을 살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 신, 바다신, 파도신, 바위신 등 보이는 모든 나보다 세거나 큰 것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1982년 영국 BBC 방송국 기자들이 10여 년의 추적 취재 끝에 성혈과 성배라는 다큐와 책을 통해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고, 죽지 않아서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로마 병사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해서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함께 프랑스의 골 지방에 정착해서 84세까지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영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이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가 자신도 3대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면서 예수의 프랑스 삶에 대해 인정하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고 한국의 중앙일보에도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잠깐 보도 되었을 뿐 후에 후속 보도나 취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유언비어처럼 묻혀버리게 되었다는 걸 딸에게 얘기했더니 “어, 그래”하고 놀라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사자들의 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도 “어, 그래”로 끝난다. 아니 “아빠가 본 건 아니잖아”하는 데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성경>은 본대로 적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불경’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CCTV가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기록으로 남겨 놓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기록에 미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물 중 하나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왕조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관이 날마다 채집하고 기록한 기록물이다. 물론 ‘팔만대장경’처럼 부처님의 경을 대서사시로 기록한 기록물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실린 글들을 모두 읽고 뜻을 새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는 한글세대라 한문으로 된 고대 서적들은 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방대한 경전을 읽고 수행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전의 간소화와 단축은 현대 종교포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경전은 그 분량이 방대해서 <금강경>, <화엄경>, <반야심경>, <아함경> 등 경전은 그 양도 방대하지만, 경전을 읽으려고 보면 앞에 질문과 답이나 뒤에 질문과 답이 단어 몇 개 바뀐 것 같은 곳도 수없이 많고 그 뜻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난해한 경우도 많다. 물론 <성경>도 해석에 따라서 뜻을 달리하여 종파가 갈라지고, 이단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하지만 불경만큼 방대하고 공부하기 쉽지 않은 경전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의 구절을 들고 공격하면 사실 불경에 어떤 구절을 들에 반박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햇살 가득한 나뭇잎이
투명한 실핏줄 같은 세포들을 보여 줄 때
수 억만리 떠나온 햇살과 마주한다.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너의 눈 속에 담긴 세상을 본다.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보지 못할 세상.

그래도 내일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날아 달아나던 너의 끝에 연 끈처럼 달려 있다.
 







#작가의 변
햇살이 가득한 날에 사람들은 공원 의자에서 아니면 누워서 햇살을 가득 받아 태양열 에너지처럼 세상에 지친 육체를 충전 중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든 아니든, 해와 달 그리고 별과 어둠은 우리를 낮과 밤, 밝음과 어둠으로 구분 지어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해가 뜨고 지니 하루가 가고 달이 뜨고 지니 어둠이 지나 새벽이 온다.

무신론자들이었던, 지구 인류에겐 태양, 바람, 파도, 바위, 커다란 나무 등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한다면 과학이 아닌 당장 닥쳐온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종족을 살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 신, 바다신, 파도신, 바위신 등 보이는 모든 나보다 세거나 큰 것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1982년 영국 BBC 방송국 기자들이 10여 년의 추적 취재 끝에 성혈과 성배라는 다큐와 책을 통해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고, 죽지 않아서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로마 병사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해서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함께 프랑스의 골 지방에 정착해서 84세까지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영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이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가 자신도 3대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면서 예수의 프랑스 삶에 대해 인정하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고 한국의 중앙일보에도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잠깐 보도 되었을 뿐 후에 후속 보도나 취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유언비어처럼 묻혀버리게 되었다는 걸 딸에게 얘기했더니 “어, 그래”하고 놀라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사자들의 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도 “어, 그래”로 끝난다. 아니 “아빠가 본 건 아니잖아”하는 데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성경>은 본대로 적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불경’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CCTV가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기록으로 남겨 놓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기록에 미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물 중 하나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왕조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관이 날마다 채집하고 기록한 기록물이다. 물론 ‘팔만대장경’처럼 부처님의 경을 대서사시로 기록한 기록물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실린 글들을 모두 읽고 뜻을 새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는 한글세대라 한문으로 된 고대 서적들은 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방대한 경전을 읽고 수행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전의 간소화와 단축은 현대 종교포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경전은 그 분량이 방대해서 <금강경>, <화엄경>, <반야심경>, <아함경> 등 경전은 그 양도 방대하지만, 경전을 읽으려고 보면 앞에 질문과 답이나 뒤에 질문과 답이 단어 몇 개 바뀐 것 같은 곳도 수없이 많고 그 뜻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난해한 경우도 많다. 물론 <성경>도 해석에 따라서 뜻을 달리하여 종파가 갈라지고, 이단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하지만 불경만큼 방대하고 공부하기 쉽지 않은 경전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의 구절을 들고 공격하면 사실 불경에 어떤 구절을 들에 반박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불교는 모든 살아 숨 쉬는 생물에 자성이 있고 불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불교에도 살생하지 말라, 등등 금기 사항이 많다. 아니 너무 많다.

대웅전에서 부처님 상호를 셀폰으로 찍고 있는데 스님이 들어와서 화를 낸 적이 있다. 스님은 어디 부처님 상호에 카메라를 들이대냐고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 등이 취재왔을 때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나도 기자다. 그럼에도 스님은 내가 신도란 이유로 오히려 나를 혼냈다. 많이 서운하고, 어쩔 줄 몰랐지만, 보이는 부처님 상호가 뭐라고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나의 마음에 살아 있는 부처님을 잘 모시면 되지하고.

대웅전 법당은 문턱이 높다. 땅에서 계단으로 대리석까지 올라가고 그곳에서 다시 문턱이 높은 대웅전 문을 지나야 법당에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캐나다의 관공서나 교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자도 들 갈 수 있게 턱이 없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웅전엔 그런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중에 있는 데다 사찰 관계자가 아니면 아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야 하는 구조이다. 세상이 변하고 세계적으로 포교를 하려면 불교도 변해야 한다.

최근 뉴진 스님(개그맨 윤성호)의 인기가 MZ세대에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불교적 행사에서 흥을 돋구는 디제잉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하며,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엄숙한 불교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그의 공연을 반대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중심은 뼈대가 되는 사찰의 의례가 바뀌면 안 되겠지만 시대가 변하면 사찰도 변해야 한다. 대웅전에 장애자가 들어갈 수 없다든지, 대웅전의 공간이 협소하고 바닥에서 절을 해야 하는 데 장애자들은 절을 못하니 왠지 어쩔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가 예배 도중에 음악 공연과 찬송으로 흥을 돋우는 것은 예배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있다. 불교는 찬불가 시간에만 찬불가를 부르지만, 교회에선 신도들이 졸만하면 찬송을 부르게 하기도 한다. 바닥에서 절하고 법회를 끝까지 보는 일도 사실 신세대나 의자 생활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겐 많이 불편한 것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유튜브 등을 통해 포교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포교의 한 방편 중 하나이다. 밴쿠버의 서광사같은 경우 대웅전에 불을 지르려는 외부인 때문에, 입구에 대문을 달고 초인종을 누르고 확인 후에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주말 법회에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외부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신도들도 그만큼 불편하게 되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도둑이 더 많아지고 인심은 더욱 나빠지는 것 같다. 30여 년전 농장의 2층 농가를 수리해서 사찰로 사용하던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도 자주 들리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새로이 대웅전을 짓고 사찰은 번듯한 규모를 갖추었지만, 오히려 따뜻한 정은 사라진 여름에도 춥다고 느껴지는 대웅전은 분명 높이가 높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찰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멀어서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등등 여러 가지 아유로 가기가 망설여진다. 내 마음에 계신 부처님을 모시면 되지 굳이 법당에 가야 하냐면서 스스로 말한다. 물론 스님을 보고 사찰을 보고 대웅전을 보고 절에 가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좀 더 정감 있는 스님을 원하고 편리한 대웅전을 원하고 멋진 사찰을 원하게 된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듯이 햇살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에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에 감사하고 헐벗고 굶주리지 않음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모든 불성이 함께 불성을 깨달아 진정한 서방정토를 만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듯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교리보다 중요한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없는 알갱이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햇살처럼 모든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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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모든 살아 숨 쉬는 생물에 자성이 있고 불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불교에도 살생하지 말라, 등등 금기 사항이 많다. 아니 너무 많다.

대웅전에서 부처님 상호를 셀폰으로 찍고 있는데 스님이 들어와서 화를 낸 적이 있다. 스님은 어디 부처님 상호에 카메라를 들이대냐고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 등이 취재왔을 때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나도 기자다. 그럼에도 스님은 내가 신도란 이유로 오히려 나를 혼냈다. 많이 서운하고, 어쩔 줄 몰랐지만, 보이는 부처님 상호가 뭐라고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나의 마음에 살아 있는 부처님을 잘 모시면 되지하고.

대웅전 법당은 문턱이 높다. 땅에서 계단으로 대리석까지 올라가고 그곳에서 다시 문턱이 높은 대웅전 문을 지나야 법당에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캐나다의 관공서나 교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자도 들 갈 수 있게 턱이 없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웅전엔 그런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중에 있는 데다 사찰 관계자가 아니면 아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야 하는 구조이다. 세상이 변하고 세계적으로 포교를 하려면 불교도 변해야 한다.

최근 뉴진 스님(개그맨 윤성호)의 인기가 MZ세대에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불교적 행사에서 흥을 돋구는 디제잉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하며,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엄숙한 불교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그의 공연을 반대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중심은 뼈대가 되는 사찰의 의례가 바뀌면 안 되겠지만 시대가 변하면 사찰도 변해야 한다. 대웅전에 장애자가 들어갈 수 없다든지, 대웅전의 공간이 협소하고 바닥에서 절을 해야 하는 데 장애자들은 절을 못하니 왠지 어쩔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가 예배 도중에 음악 공연과 찬송으로 흥을 돋우는 것은 예배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있다. 불교는 찬불가 시간에만 찬불가를 부르지만, 교회에선 신도들이 졸만하면 찬송을 부르게 하기도 한다. 바닥에서 절하고 법회를 끝까지 보는 일도 사실 신세대나 의자 생활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겐 많이 불편한 것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유튜브 등을 통해 포교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포교의 한 방편 중 하나이다. 밴쿠버의 서광사같은 경우 대웅전에 불을 지르려는 외부인 때문에, 입구에 대문을 달고 초인종을 누르고 확인 후에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주말 법회에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외부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신도들도 그만큼 불편하게 되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도둑이 더 많아지고 인심은 더욱 나빠지는 것 같다. 30여 년전 농장의 2층 농가를 수리해서 사찰로 사용하던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도 자주 들리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새로이 대웅전을 짓고 사찰은 번듯한 규모를 갖추었지만, 오히려 따뜻한 정은 사라진 여름에도 춥다고 느껴지는 대웅전은 분명 높이가 높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찰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멀어서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등등 여러 가지 아유로 가기가 망설여진다. 내 마음에 계신 부처님을 모시면 되지 굳이 법당에 가야 하냐면서 스스로 말한다. 물론 스님을 보고 사찰을 보고 대웅전을 보고 절에 가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좀 더 정감 있는 스님을 원하고 편리한 대웅전을 원하고 멋진 사찰을 원하게 된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듯이 햇살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에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에 감사하고 헐벗고 굶주리지 않음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모든 불성이 함께 불성을 깨달아 진정한 서방정토를 만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듯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교리보다 중요한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없는 알갱이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햇살처럼 모든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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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가득한 나뭇잎이
투명한 실핏줄 같은 세포들을 보여 줄 때
수 억만리 떠나온 햇살과 마주한다.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둠에선 보이지 않던 너의 눈 속에 담긴 세상을 본다.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보지 못할 세상.

그래도 내일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날아 달아나던 너의 끝에 연 끈처럼 달려 있다.
 







#작가의 변
햇살이 가득한 날에 사람들은 공원 의자에서 아니면 누워서 햇살을 가득 받아 태양열 에너지처럼 세상에 지친 육체를 충전 중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든 아니든, 해와 달 그리고 별과 어둠은 우리를 낮과 밤, 밝음과 어둠으로 구분 지어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해가 뜨고 지니 하루가 가고 달이 뜨고 지니 어둠이 지나 새벽이 온다.

무신론자들이었던, 지구 인류에겐 태양, 바람, 파도, 바위, 커다란 나무 등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한다면 과학이 아닌 당장 닥쳐온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종족을 살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 신, 바다신, 파도신, 바위신 등 보이는 모든 나보다 세거나 큰 것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1982년 영국 BBC 방송국 기자들이 10여 년의 추적 취재 끝에 성혈과 성배라는 다큐와 책을 통해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고, 죽지 않아서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로마 병사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해서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함께 프랑스의 골 지방에 정착해서 84세까지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영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이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가 자신도 3대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면서 예수의 프랑스 삶에 대해 인정하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고 한국의 중앙일보에도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잠깐 보도 되었을 뿐 후에 후속 보도나 취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유언비어처럼 묻혀버리게 되었다는 걸 딸에게 얘기했더니 “어, 그래”하고 놀라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사자들의 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도 “어, 그래”로 끝난다. 아니 “아빠가 본 건 아니잖아”하는 데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성경>은 본대로 적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불경’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CCTV가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기록으로 남겨 놓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기록에 미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물 중 하나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왕조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관이 날마다 채집하고 기록한 기록물이다. 물론 ‘팔만대장경’처럼 부처님의 경을 대서사시로 기록한 기록물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실린 글들을 모두 읽고 뜻을 새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는 한글세대라 한문으로 된 고대 서적들은 더욱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방대한 경전을 읽고 수행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전의 간소화와 단축은 현대 종교포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경전은 그 분량이 방대해서 <금강경>, <화엄경>, <반야심경>, <아함경> 등 경전은 그 양도 방대하지만, 경전을 읽으려고 보면 앞에 질문과 답이나 뒤에 질문과 답이 단어 몇 개 바뀐 것 같은 곳도 수없이 많고 그 뜻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난해한 경우도 많다. 물론 <성경>도 해석에 따라서 뜻을 달리하여 종파가 갈라지고, 이단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하지만 불경만큼 방대하고 공부하기 쉽지 않은 경전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의 구절을 들고 공격하면 사실 불경에 어떤 구절을 들에 반박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불교는 모든 살아 숨 쉬는 생물에 자성이 있고 불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불교에도 살생하지 말라, 등등 금기 사항이 많다. 아니 너무 많다.

대웅전에서 부처님 상호를 셀폰으로 찍고 있는데 스님이 들어와서 화를 낸 적이 있다. 스님은 어디 부처님 상호에 카메라를 들이대냐고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 등이 취재왔을 때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나도 기자다. 그럼에도 스님은 내가 신도란 이유로 오히려 나를 혼냈다. 많이 서운하고, 어쩔 줄 몰랐지만, 보이는 부처님 상호가 뭐라고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나의 마음에 살아 있는 부처님을 잘 모시면 되지하고.

대웅전 법당은 문턱이 높다. 땅에서 계단으로 대리석까지 올라가고 그곳에서 다시 문턱이 높은 대웅전 문을 지나야 법당에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캐나다의 관공서나 교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자도 들 갈 수 있게 턱이 없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웅전엔 그런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중에 있는 데다 사찰 관계자가 아니면 아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야 하는 구조이다. 세상이 변하고 세계적으로 포교를 하려면 불교도 변해야 한다.

최근 뉴진 스님(개그맨 윤성호)의 인기가 MZ세대에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불교적 행사에서 흥을 돋구는 디제잉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하며,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엄숙한 불교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그의 공연을 반대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중심은 뼈대가 되는 사찰의 의례가 바뀌면 안 되겠지만 시대가 변하면 사찰도 변해야 한다. 대웅전에 장애자가 들어갈 수 없다든지, 대웅전의 공간이 협소하고 바닥에서 절을 해야 하는 데 장애자들은 절을 못하니 왠지 어쩔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가 예배 도중에 음악 공연과 찬송으로 흥을 돋우는 것은 예배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하고 있다. 불교는 찬불가 시간에만 찬불가를 부르지만, 교회에선 신도들이 졸만하면 찬송을 부르게 하기도 한다. 바닥에서 절하고 법회를 끝까지 보는 일도 사실 신세대나 의자 생활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겐 많이 불편한 것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유튜브 등을 통해 포교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포교의 한 방편 중 하나이다. 밴쿠버의 서광사같은 경우 대웅전에 불을 지르려는 외부인 때문에, 입구에 대문을 달고 초인종을 누르고 확인 후에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주말 법회에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외부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신도들도 그만큼 불편하게 되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도둑이 더 많아지고 인심은 더욱 나빠지는 것 같다. 30여 년전 농장의 2층 농가를 수리해서 사찰로 사용하던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도 자주 들리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새로이 대웅전을 짓고 사찰은 번듯한 규모를 갖추었지만, 오히려 따뜻한 정은 사라진 여름에도 춥다고 느껴지는 대웅전은 분명 높이가 높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찰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멀어서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등등 여러 가지 아유로 가기가 망설여진다. 내 마음에 계신 부처님을 모시면 되지 굳이 법당에 가야 하냐면서 스스로 말한다. 물론 스님을 보고 사찰을 보고 대웅전을 보고 절에 가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좀 더 정감 있는 스님을 원하고 편리한 대웅전을 원하고 멋진 사찰을 원하게 된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듯이 햇살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에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에 감사하고 헐벗고 굶주리지 않음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모든 불성이 함께 불성을 깨달아 진정한 서방정토를 만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듯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교리보다 중요한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없는 알갱이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햇살처럼 모든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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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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