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이파인소(儞怕人咲)
신무문관: 이파인소(儞怕人咲)
  • 박영재 명예교수
  • 승인 2024.04.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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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69.

성찰배경: 바로 앞글에서 임제종 양기파의 시조(始祖)인 양기방회(楊岐方會, 996-1049) 선사와 황룡파의 시조인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선사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방회 선사의 법을 이은 백운수단(白雲守端, 1025-1072) 선사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그런데 <무문관>과 <벽암록>에는 수단 선사와 직접 관련된 선화(禪話)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오도(悟道) 기연(機緣)이 담긴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배려심과 겸손함을 잘 엿볼 수 있는 <운와기담(雲臥紀談)> 및 선(禪) 수행자들을 위해 새롭게 제창한 ‘사홍서원(四弘誓願)’이 담긴 <백운단화상어록(白雲端和尚語錄)>을 중심으로 보충하고자 합니다.

◇수단 선사의 오도 기연: 이파인소(儞怕人咲)
양기방회 선사에 의해 격발된 백운수단 선사의 오도 기연이 <오가정종찬>에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백운 스님의 법명은 수단(守端)이며 형주(衡州) 갈씨(曷氏)로 다릉인욱(茶陵仁郁) 스님께 귀의하여 삭발 출가하였다. 처음 양기 선사를 찾아뵈니 양기 선사께서 ‘그대를 가르친 은사 스님이 다리를 지나가다 휘청거리면서 깨치고 지은 게송이 몹시 좋다고 하던데, 그 게송을 기억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이에 수단 스님이 즉시 ‘나에게 신령(神靈)스런 구슬 한 알이 있는데/ 오랫동안 티끌 속에 묻혀있었네./ 그러다 오늘 아침 티끌 다하자 대광명을 발하며/ 산하대지의 뭇 떨기마다 비추는구나.[我有神珠一顆 久被塵勞關鎻 今朝塵盡光生 照破山河萬朵]’라고 염송하였다.

그러자 양기 선사께서 파안대소(破顔大笑)하시면서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수단 스님은 몹시 놀라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양기 선사를 다시 찾아뵙고 파안대소한 이유를 여쭈었다. 

그러자 양기 선사께서 ‘그대는 어제 액막이 여우(인형)을 만들어 세워놓은 것을 보았는가?’하고 물으셨다. 이에 수단 스님이 ‘보았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양기 선사께서 “그대는 그 여우[渠]보다 한 수 아래이네.[汝一籌不及渠]”라고 응답하셨다. 이에 수단 스님은 크게 놀라면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양기 선사께서 ‘그 여우는 남이 웃어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며) 좋아하지만[他愛人笑], 그대는 남이 비웃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지 않느냐?[儞怕人咲]’라고 답하셨다. (마침내 이 말끝에) 수단 스님이 깨쳤다.[有省]”

군더더기: 아직 미숙했던 수단 스님이 양기 선사의 의도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다만 예전 스승의 게송을 앵무새처럼 염송하자, 양기 선사께서 파안대소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이에 다음날 다시 양기 선사를 찾아 뵙고 간절히 파안대소하신 연유를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액막이 여우를 보기로 들며 자상하게 일러주신 ‘이파인소(儞怕人咲)’에 비로소 명료하게 깨쳤다고 사료됩니다. 

참고로 앞에서 다룬 ‘동산삼돈(洞山三頓)’ 공안에 대해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께서 ‘첫 번째 쏜 화살은 비록 가볍게 박혔으나 두 번째 화살은 깊게 박혔네.[前箭猶輕後箭深]’라고 제창하셨는데, 수단 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첫 번째 화살은 양기 선사의 ‘파안대소’이고, 깊이 박힌 두 번째 화살이 바로 ‘이파인소’란 일전어(一轉語)였던 것입니다! 

◇법당法堂과 부엌을 새로 짓다

간화선(看話禪) 수행 체계를 확립한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의 제자인 효영중온(曉瑩仲溫, ?-?) 선사께서 불조기연(佛祖奇緣)을 담아 엮은 <운와기담(雲臥紀談)>에 백운수단 선사의 배려심과 겸손함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단 선사께서 심양(潯陽)의 능인사(能仁寺) 주지 시절 새로 지은 법당과 부엌[厨舍] 불사(佛事)에 대해 대략 그 줄거리만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로부터 선지식(善知識)이라고 일컬어지는 분들은 모두 오직 조사(祖師)의 법을 이어가기를 책무로 삼아 조석[旦夕]으로 방장실[方丈間]에 앉아 마땅히 모든 수행자[學者]들의 물음에 대하여 의문을 풀어 주셨다. 한편 사원(寺院)의 업무에 대해서는 수행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담시켰기에 선지식이란 호칭에는 실제로 존경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나는 1056년 초여름[孟夏], 국가의 명을 받아 원통사(圓通寺)를 떠나 이 절의 주지 직[席]을 승계(承繼)하였다. 비록 이곳의 실상을 이 지경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으나, 막상 와서 보니 법당과 부엌이 모두 낡고 허물어져 비바람[風雨]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만족스럽게 대중을 수용하고 후학들이 법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다 얼마 후 이 고장 사람인 주회의(周懷義)가 법당을 새로 크게 지었고 그 이듬해에는 그의 아름다운 뜻을 흠모하던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부엌을 새로 짓고 나서야 비바람을 근심하지 않고 많은 대중들이 편안하게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주 거사(居士)는 본디 불법(佛法)에 통달했기에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견해로는 부엌을 짓는데 든 건축비용은 원근(遠近)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함께 도운 것이기 때문에, 만일 이를 기록해 놓지 않는 경우 이들의 선행(善行)을 가상히 여길 길이 따로 없기에 이들에 관한 선행을 함께 밝혀 부엌의 벽에 새겨 놓았다.

아! 지난날 선지식이라고 일컫는 분들의 뜻을 숙고해 보면 (주지로서 대접만 받고 별로 한 일이 없는) 나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낄 뿐이다. 1059년 9월 17일 주지 출가사문 수단(守端) 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석각(石刻)은 이미 훼손되어 수단 선사님의 ‘멋진 행적[典刑]’을 다시 살필 길이 없습니다.
요즘 주춧돌 위에 서까래[椽]를 올리고 지붕에 기와 몇 장을 올려놓고는, 곧 겉만 번지르하게 꾸미면서 이를 과시하며 자기 자신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후세 사람들을 기만하는 자[後代 住持]들이 어찌 감히 스스로 부끄럽다는 말을 쓸 수 있겠습니까!”

군더더기: 수단 선사께서 선행을 한 이들에게 공적(功績)을 돌리고 주지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경책(警責)하고 있는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굳이 요란하게 화두에 관한 선문답이나 오도송 따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배려심 많고 겸허한 수단 선사의 진면목을 잘 엿볼 수 있겠지요. 한편 수단 선사의 이런 마음 자세는 오늘을 살고 있는 각계각층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지요. 즉, 함께 일군 공동체의 성과를 지도자 자신만의 공으로 돌리려는 행위에 대한 우뢰와도 같은 꾸지람이라 사료됩니다. 

참고로 예전에 필자가 지인인 역사학 전공 교수와 국토 순례 도중, 마주친 비석 앞에서 이 교수께서 글귀를 읽어 내려가다가,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석에 과대 포장해 공적을 늘어놓으며 함부로 이름을 새겼다가, 훗날 남의 공을 가로챈 사실들을 포함해 악행(惡行)이 드러날 경우 후대 사람들로부터 두고두고 지탄을 받게 되기 때문에 차라리 이름을 새기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르네요. 

◇백운 선사의 ‘사홍서원四弘誓願’ 

<백운단화상어록> 가운데 수단 선사께서 어느 날 상당(上堂) 법문 때 제창하신, ‘사홍서원’에 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대목이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석가 늙은이에게는 ‘사홍서원’이 있네. 즉, 불제자들이 늘 염송하는 ‘끝없이 일어나는 번뇌를 반드시 끊겠습니다. 한량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습니다. 무수히 많은 중생들을 반드시 깨닫게 하겠습니다. 더 이상 위없는 진리를 반드시 체득하겠습니다.’이네,
그런데 나에게도 역시 또 다른 사홍서원이 있는데, ‘배고프면 밥 먹고[飢來要喫飯], 추우면 껴입고[寒到即添衣], 졸리면 다리 펴고 잠자고[困時伸脚睡], 더우면 부채질하노라.[熱處要風吹]’이네.”

군더더기: 그런데 석가세존, 사실은 천태대사께서 지은 보살들만이 실천 가능한 ‘사홍서원’은 너무 추상적이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 가야할지가 막막합니다. 또한 수단 선사께서 주로 선수행자들을 위해 제창한 맞춤형 ‘사홍서원’ 역시 일상 속 즉여(卽如)의 경지에만 초점을 맞추었기에, 이 또한 보통 사람들이 공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필자가 2010년 말 선도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일상의 삶 속에서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 가풍을 매우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른 아침 눈뜨자마자 염송하며 새기는 ‘신사홍서원(新四弘誓願)’을 아래와 같이 새롭게 제창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날마다 한가지 선행(善行)을 행하오리다[日日一善誓願行]. 
날마다 한가지 집착(執着)을 버리오리다[日日一着誓願捨]. 
날마다 한구절 법문(法門)을 익히오리다[日日一敎誓願學].
날마다 한차례 화두(話頭)를 살피오리다[日日一回誓願看].

참고로 필자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담당했던 ‘참선’과 ‘우주와 인생’이란 교양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도 ‘신사홍서원 체험기’란 성찰 글쓰기 과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이 가운데 필자로 하여금 크게 보람을 느끼게 했던, 열린 그리스도교인 수강생이 제출한 ‘쉽지만은 않은 신사홍서원 실천기’란 제목의 과제물 가운데 ‘법문’의 범위를 불경(佛經)뿐만이 아니라 지혜롭게 성경(聖經)으로까지 넓혀 성찰한 대목을 중심으로 축약해 소개를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거일 수도 있고, 미래에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하고 올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서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 같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우리 대학생들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귀중한 청춘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생략)

날마다 한 가지 법문을 익히오리다: 나는 매일 성경책을 읽어 왔다. 그러나 거의 성경 구절을 읽고 그것을 나의 일상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을 읽는 데만 의미를 두고 읽고 있다. 이러한 습관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성경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나의 삶에서 조금씩 실천할 것이다. (생략)

졸업을 앞두고 참선 수업을 들은 것은 다른 과목보다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듣게 되었다. 하지만 중간고사를 앞둔 현재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참선 수업이 종강이 되더라도 참선 수행을 지속하게 되면 내 인생이 새롭게 바뀔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 본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행원 선사로부터 두 차례 독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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