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57. 기도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57. 기도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4.04.09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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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바람처럼 흩어지지 않고
돌탑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전화나 문자처럼
내가 말하는 대로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주기도문 외우듯
반야심경 독경하듯
날마다 기도해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아픈 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걸 가졌고
누구는 새벽마다 거친 손을 모으고 기도해도
빈 그물로 돌아오는 어부처럼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한 번만 이라도 기도에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깨에 평생
짊어졌던 지게 무거운 짐처럼
내가 짊어진 짐이 발걸음을 휘청이게 하고
똑같은 아픔을 아들 어깨엔 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변
일상생활 용어 속 불교

천주교에서 쓰는 성당은 본래 이름은 법당 또는 불당을 지칭하는 말이며,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단계의 직책으로 교회의 어르신 격인 지도자 지위를 말하지만, 원래는 지혜와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를 통칭하던 말로 젊은 비구가 늙은 비구를 높여 부르거나 스승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 불교 용어이다.

요즘 존칭으로 사용하다 일반화된 용어가 너무 많다. 아저씨라고 부르기 뭐하니 사장님하고 부르자 대부분 사람이 “사장”으로 불리고, “회장”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고 식당에 서빙하는 사람을 부를 때 “언니”,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이”, “이 보세요”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호칭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부르는 사람의 인격까지 낮아 보이는 때도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다방의 아가씨들은 김양, 이양, 박양 등으로 불리거나 회사에서 커피나 타고 잔 심부름한다고 해서 다방이 레지 부르듯 미스김 미스리하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와 이거 무진장 크다. 저 기차 무진장 길지. 이렇게 말하던 그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창고라는 뜻으로 닦아도 닦아도 다함이 없는 부처님의 법의를 가리킨다.

“내가 그 사람한테 오늘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라고 말할 때 시달리다는 시가바나>시다림>시달리다로 변한 언어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많은 괴로움을 당할 때를 말한다. 불교에서 시다림에서 온 언어로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썩는 악취와 질병이 창궐하는 곳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고행을 위해 찾기도 했다.

식도락으로 표현되는 ‘도락’은 고된 수행을 묵묵히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로 고생하지 않고 맛집만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과는 괴리가 있다.

그의 강연은 ‘심금을 울리다’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주 감명 깊게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유래는 마음의 거문고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에게 한 말씀으로 거문고는 줄이 너무 팽팽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너무 강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게으르게 된다. 즉 몸과 마음이 적당히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말이다.

‘전생’도 불교 용어이다. ‘현생’을 ‘금생’이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모든 생은 ‘전생’으로 부른다. 보통 수십 번의 전생을 가진 사람들의 전생 체험은 현생으로 윤회한다는 불교적 용어다.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 가지만 영혼은 남아 영혼이 주체가 되는 삶의 반복이 이루어진다는 말로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주인공이란 용어는 드라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을 뜻하지만, 이는 불교 용어로 득도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찰나’는 눈 깜짝할 새라는 뜻으로 시간의 최소 단위이면 억겁의 세월이 반대말이면 ‘항아’와 같이 많은 숫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찰나는 아주 작은 시간의 단위이다.

‘면목없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내 참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사’라는 말은 절의 용무를 맡아 보는 직책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미주 지사, 캐나다 지사 등 가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해탈은 모든 근본적 ‘아집’으로 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해탈은 번뇌를 떨쳐버리는 말로도 쓰인다.

“천사의 음성 들릴 것만 같아”. 사실 성경에 천사와 악마의 대립 구도는 드라마 악과 선의 대립 구도와 비슷하다. 천사는 신의 심부름꾼으로 기독교에서 말하고 악마도 천사처럼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불교 <출요경>에 따르면 천사는 염라대왕의 부하로 생로병사의 맡아서 처리하는 일을 한다. 저승사자도 사실 천사의 한 부분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대중 공연, 대중 연설, 대중 목욕탕 등의 용어인 ‘대중’은 원래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제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짐승같다”는 말도 쓴다. 사람 같지 않고 털도 말이 나고 우락부락하여 야성미가 넘친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불교의 일체 시간의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뜻하는 말로 즁생>즘승>짐승으로 단어가 변해 사용되고 있다.

“그 집은 지금 야단법석이야”라고 하면 떠들썩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는 불교 용어이다. 야외에 법단을 마련해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의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제자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질문을 듣고 그에 답하는 교수법을 통해 가르쳤다.

‘투기’는 요즘에 기회를 봐서 내 이익을 취한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저놈은 건달이야”라고 말하면, 일종의 깡패에 해당하는 불량배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석천의 음악을 관장하는 신을 이르는 말로 악사집단을 가리켜 ‘건달바’로 불렀다.

‘현관’은 원래 우리의 입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집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

세계관, 작품세계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세계’는 불교에서 공간을 이르는 말로 사방 사유 상하와 시간 구분 없이 삼세를 통칭하는 말이다.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기독교 직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지혜와 덕망과 법랍이 높은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냥’을 얼마나 받아 왔냐고 말하는 거지, 무리의 대화 내용을 드라마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동냥은 원래 스님이 박탈할 때탁발할때경(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일으키는 존재였지만 탁발이 사라지면서 걸식하는 행위로 변해버렸다.

“공부 좀 해라”는 우리가 가장 많이 듣던 소리다. 하지만 이 공부도 사실은 불교 용어로 참선과 염불, 기도 진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조선 시대엔 유교의 도학을 익히고 배운다는 말로 변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변했다.

‘도량’은 부처님이 도를 이룬 땅을 일컫는 말로 도장>사찰로 변모했다.

우리가 아기 적에 제일 많이 사용한 것은 ‘포대기’다. 요즘엔 유모차가 있어서 아기를 태우고 다니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다. 그래서 오다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 포대기도 스님들이 부들이라는 여러해 살이 풀로 만든 방석에서 유래한 말로 군에서는 아직도 모포를 ‘포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점심’은 중국 음식에서는 딤섬으로 많이 사용되고 서양에서는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을 일컫는 말로, 원래 아침과 저녁은 시간을 뜻하기도 하고 끼니도 뜻 하지만, 점심은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는 뜻으로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 먹는다는 의미이다.

국수사리 하나 더 줘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은 국수가 맛있다는 말이다. ‘사리’는 사찰에서 공양할 때 국수 뭉치를 이르는 말로 순수한 우리 언어이기도 하다.

‘밀어’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이다. 범어로 된 진언 속에 감춰진 진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비이불, 누비잠바는 추운 겨울에 아주 따뜻한 옷 중 하나이지만, 사실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납의>나비>누비로 변천된 꿰매어 입는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옷을 더덕더덕 꿰어 입을 때도 누비옷이라 부른다.

한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불교국가였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이 로마 교황에 의해 서양의 국교로 정해지고 정경유착을 넘어 정치 위에 종교가 군림하여 교황이 황제를 임명하고 주교가 황제를 좌지우지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들은 사회지도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면죄부 판매이다. 마녀사냥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민간 신앙을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그 사람들을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죽이고 종교의 위대함을 내세우려 했으며, 화형이라는 극악한 형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을 심어 주고 마녀가 아닌 부유한 여성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는 잘못이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시민들이 고통 받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교만을 앞세워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종교 전쟁으로 희생시킨다. 지금도 종교 간의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가장 많은 희생을 하며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가장 많은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군사무기산업을 틀어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신들은 성경에 녹아들어 세계의 신이 되어 버렸고 서양의 신화는 세계의 신화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천 손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천재 단의 유적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에 나오는 단군은 미신으로만 취급되고 있고 천년이 넘는 긴 동안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삼신할머니나 산신 같은 토속 신앙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불교도 용납할 수 없는 종교이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이어 오던 우리의 문화는 불교와 토착 신앙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영향, 거란의 영향, 몽고의 영향, 일본의 영향 등 침략을 받은 국가들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꾸준히 우리의 말과 언어는 이어져 왔다. 그런 언어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지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찰에 오르기 전에 일주 문을 마주하고 천왕문 불이문들의 용어는 당연히 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언어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인 금강산, 마니산, 천태산, 영취산, 사자암 등은 불경에 나오는 사자에서 유래 되었다. 즉 지명은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의 아파트 단지 이름은 제고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순수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데 영어에서 유래된 뜻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 이름을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순우리말을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붙이면 은연중에 우리말을 더 자주 많이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불교 용어가 어느 사이 기독교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면서 불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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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바람처럼 흩어지지 않고
돌탑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전화나 문자처럼
내가 말하는 대로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주기도문 외우듯
반야심경 독경하듯
날마다 기도해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아픈 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걸 가졌고
누구는 새벽마다 거친 손을 모으고 기도해도
빈 그물로 돌아오는 어부처럼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한 번만 이라도 기도에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깨에 평생
짊어졌던 지게 무거운 짐처럼
내가 짊어진 짐이 발걸음을 휘청이게 하고
똑같은 아픔을 아들 어깨엔 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바람처럼 흩어지지 않고
돌탑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전화나 문자처럼
내가 말하는 대로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주기도문 외우듯
반야심경 독경하듯
날마다 기도해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아픈 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걸 가졌고
누구는 새벽마다 거친 손을 모으고 기도해도
빈 그물로 돌아오는 어부처럼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한 번만 이라도 기도에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깨에 평생
짊어졌던 지게 무거운 짐처럼
내가 짊어진 짐이 발걸음을 휘청이게 하고
똑같은 아픔을 아들 어깨엔 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변
일상생활 용어 속 불교

천주교에서 쓰는 성당은 본래 이름은 법당 또는 불당을 지칭하는 말이며,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단계의 직책으로 교회의 어르신 격인 지도자 지위를 말하지만, 원래는 지혜와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를 통칭하던 말로 젊은 비구가 늙은 비구를 높여 부르거나 스승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 불교 용어이다.

요즘 존칭으로 사용하다 일반화된 용어가 너무 많다. 아저씨라고 부르기 뭐하니 사장님하고 부르자 대부분 사람이 “사장”으로 불리고, “회장”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고 식당에 서빙하는 사람을 부를 때 “언니”,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이”, “이 보세요”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호칭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부르는 사람의 인격까지 낮아 보이는 때도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다방의 아가씨들은 김양, 이양, 박양 등으로 불리거나 회사에서 커피나 타고 잔 심부름한다고 해서 다방이 레지 부르듯 미스김 미스리하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와 이거 무진장 크다. 저 기차 무진장 길지. 이렇게 말하던 그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창고라는 뜻으로 닦아도 닦아도 다함이 없는 부처님의 법의를 가리킨다.

“내가 그 사람한테 오늘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라고 말할 때 시달리다는 시가바나>시다림>시달리다로 변한 언어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많은 괴로움을 당할 때를 말한다. 불교에서 시다림에서 온 언어로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썩는 악취와 질병이 창궐하는 곳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고행을 위해 찾기도 했다.

식도락으로 표현되는 ‘도락’은 고된 수행을 묵묵히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로 고생하지 않고 맛집만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과는 괴리가 있다.

그의 강연은 ‘심금을 울리다’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주 감명 깊게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유래는 마음의 거문고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에게 한 말씀으로 거문고는 줄이 너무 팽팽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너무 강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게으르게 된다. 즉 몸과 마음이 적당히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말이다.

‘전생’도 불교 용어이다. ‘현생’을 ‘금생’이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모든 생은 ‘전생’으로 부른다. 보통 수십 번의 전생을 가진 사람들의 전생 체험은 현생으로 윤회한다는 불교적 용어다.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 가지만 영혼은 남아 영혼이 주체가 되는 삶의 반복이 이루어진다는 말로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주인공이란 용어는 드라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을 뜻하지만, 이는 불교 용어로 득도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찰나’는 눈 깜짝할 새라는 뜻으로 시간의 최소 단위이면 억겁의 세월이 반대말이면 ‘항아’와 같이 많은 숫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찰나는 아주 작은 시간의 단위이다.

‘면목없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내 참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사’라는 말은 절의 용무를 맡아 보는 직책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미주 지사, 캐나다 지사 등 가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해탈은 모든 근본적 ‘아집’으로 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해탈은 번뇌를 떨쳐버리는 말로도 쓰인다.

“천사의 음성 들릴 것만 같아”. 사실 성경에 천사와 악마의 대립 구도는 드라마 악과 선의 대립 구도와 비슷하다. 천사는 신의 심부름꾼으로 기독교에서 말하고 악마도 천사처럼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불교 <출요경>에 따르면 천사는 염라대왕의 부하로 생로병사의 맡아서 처리하는 일을 한다. 저승사자도 사실 천사의 한 부분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대중 공연, 대중 연설, 대중 목욕탕 등의 용어인 ‘대중’은 원래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제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짐승같다”는 말도 쓴다. 사람 같지 않고 털도 말이 나고 우락부락하여 야성미가 넘친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불교의 일체 시간의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뜻하는 말로 즁생>즘승>짐승으로 단어가 변해 사용되고 있다.

“그 집은 지금 야단법석이야”라고 하면 떠들썩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는 불교 용어이다. 야외에 법단을 마련해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의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제자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질문을 듣고 그에 답하는 교수법을 통해 가르쳤다.

‘투기’는 요즘에 기회를 봐서 내 이익을 취한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저놈은 건달이야”라고 말하면, 일종의 깡패에 해당하는 불량배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석천의 음악을 관장하는 신을 이르는 말로 악사집단을 가리켜 ‘건달바’로 불렀다.

‘현관’은 원래 우리의 입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집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

세계관, 작품세계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세계’는 불교에서 공간을 이르는 말로 사방 사유 상하와 시간 구분 없이 삼세를 통칭하는 말이다.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기독교 직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지혜와 덕망과 법랍이 높은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냥’을 얼마나 받아 왔냐고 말하는 거지, 무리의 대화 내용을 드라마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동냥은 원래 스님이 박탈할 때탁발할때경(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일으키는 존재였지만 탁발이 사라지면서 걸식하는 행위로 변해버렸다.

“공부 좀 해라”는 우리가 가장 많이 듣던 소리다. 하지만 이 공부도 사실은 불교 용어로 참선과 염불, 기도 진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조선 시대엔 유교의 도학을 익히고 배운다는 말로 변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변했다.

‘도량’은 부처님이 도를 이룬 땅을 일컫는 말로 도장>사찰로 변모했다.

우리가 아기 적에 제일 많이 사용한 것은 ‘포대기’다. 요즘엔 유모차가 있어서 아기를 태우고 다니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다. 그래서 오다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 포대기도 스님들이 부들이라는 여러해 살이 풀로 만든 방석에서 유래한 말로 군에서는 아직도 모포를 ‘포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점심’은 중국 음식에서는 딤섬으로 많이 사용되고 서양에서는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을 일컫는 말로, 원래 아침과 저녁은 시간을 뜻하기도 하고 끼니도 뜻 하지만, 점심은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는 뜻으로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 먹는다는 의미이다.

국수사리 하나 더 줘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은 국수가 맛있다는 말이다. ‘사리’는 사찰에서 공양할 때 국수 뭉치를 이르는 말로 순수한 우리 언어이기도 하다.

‘밀어’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이다. 범어로 된 진언 속에 감춰진 진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비이불, 누비잠바는 추운 겨울에 아주 따뜻한 옷 중 하나이지만, 사실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납의>나비>누비로 변천된 꿰매어 입는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옷을 더덕더덕 꿰어 입을 때도 누비옷이라 부른다.

한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불교국가였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이 로마 교황에 의해 서양의 국교로 정해지고 정경유착을 넘어 정치 위에 종교가 군림하여 교황이 황제를 임명하고 주교가 황제를 좌지우지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들은 사회지도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면죄부 판매이다. 마녀사냥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민간 신앙을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그 사람들을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죽이고 종교의 위대함을 내세우려 했으며, 화형이라는 극악한 형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을 심어 주고 마녀가 아닌 부유한 여성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는 잘못이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시민들이 고통 받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교만을 앞세워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종교 전쟁으로 희생시킨다. 지금도 종교 간의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가장 많은 희생을 하며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가장 많은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군사무기산업을 틀어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신들은 성경에 녹아들어 세계의 신이 되어 버렸고 서양의 신화는 세계의 신화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천 손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천재 단의 유적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에 나오는 단군은 미신으로만 취급되고 있고 천년이 넘는 긴 동안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삼신할머니나 산신 같은 토속 신앙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불교도 용납할 수 없는 종교이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이어 오던 우리의 문화는 불교와 토착 신앙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영향, 거란의 영향, 몽고의 영향, 일본의 영향 등 침략을 받은 국가들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꾸준히 우리의 말과 언어는 이어져 왔다. 그런 언어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지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찰에 오르기 전에 일주 문을 마주하고 천왕문 불이문들의 용어는 당연히 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언어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인 금강산, 마니산, 천태산, 영취산, 사자암 등은 불경에 나오는 사자에서 유래 되었다. 즉 지명은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의 아파트 단지 이름은 제고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순수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데 영어에서 유래된 뜻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 이름을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순우리말을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붙이면 은연중에 우리말을 더 자주 많이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불교 용어가 어느 사이 기독교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면서 불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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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일상생활 용어 속 불교

천주교에서 쓰는 성당은 본래 이름은 법당 또는 불당을 지칭하는 말이며,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단계의 직책으로 교회의 어르신 격인 지도자 지위를 말하지만, 원래는 지혜와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를 통칭하던 말로 젊은 비구가 늙은 비구를 높여 부르거나 스승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 불교 용어이다.

요즘 존칭으로 사용하다 일반화된 용어가 너무 많다. 아저씨라고 부르기 뭐하니 사장님하고 부르자 대부분 사람이 “사장”으로 불리고, “회장”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고 식당에 서빙하는 사람을 부를 때 “언니”,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이”, “이 보세요”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호칭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부르는 사람의 인격까지 낮아 보이는 때도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다방의 아가씨들은 김양, 이양, 박양 등으로 불리거나 회사에서 커피나 타고 잔 심부름한다고 해서 다방이 레지 부르듯 미스김 미스리하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와 이거 무진장 크다. 저 기차 무진장 길지. 이렇게 말하던 그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창고라는 뜻으로 닦아도 닦아도 다함이 없는 부처님의 법의를 가리킨다.

“내가 그 사람한테 오늘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라고 말할 때 시달리다는 시가바나>시다림>시달리다로 변한 언어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많은 괴로움을 당할 때를 말한다. 불교에서 시다림에서 온 언어로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썩는 악취와 질병이 창궐하는 곳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고행을 위해 찾기도 했다.

식도락으로 표현되는 ‘도락’은 고된 수행을 묵묵히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로 고생하지 않고 맛집만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과는 괴리가 있다.

그의 강연은 ‘심금을 울리다’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주 감명 깊게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유래는 마음의 거문고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에게 한 말씀으로 거문고는 줄이 너무 팽팽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너무 강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게으르게 된다. 즉 몸과 마음이 적당히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말이다.

‘전생’도 불교 용어이다. ‘현생’을 ‘금생’이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모든 생은 ‘전생’으로 부른다. 보통 수십 번의 전생을 가진 사람들의 전생 체험은 현생으로 윤회한다는 불교적 용어다.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 가지만 영혼은 남아 영혼이 주체가 되는 삶의 반복이 이루어진다는 말로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주인공이란 용어는 드라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을 뜻하지만, 이는 불교 용어로 득도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찰나’는 눈 깜짝할 새라는 뜻으로 시간의 최소 단위이면 억겁의 세월이 반대말이면 ‘항아’와 같이 많은 숫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찰나는 아주 작은 시간의 단위이다.

‘면목없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내 참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사’라는 말은 절의 용무를 맡아 보는 직책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미주 지사, 캐나다 지사 등 가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기도가 바람처럼 흩어지지 않고
돌탑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전화나 문자처럼
내가 말하는 대로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주기도문 외우듯
반야심경 독경하듯
날마다 기도해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아픈 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걸 가졌고
누구는 새벽마다 거친 손을 모으고 기도해도
빈 그물로 돌아오는 어부처럼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한 번만 이라도 기도에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깨에 평생
짊어졌던 지게 무거운 짐처럼
내가 짊어진 짐이 발걸음을 휘청이게 하고
똑같은 아픔을 아들 어깨엔 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변
일상생활 용어 속 불교

천주교에서 쓰는 성당은 본래 이름은 법당 또는 불당을 지칭하는 말이며,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단계의 직책으로 교회의 어르신 격인 지도자 지위를 말하지만, 원래는 지혜와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를 통칭하던 말로 젊은 비구가 늙은 비구를 높여 부르거나 스승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 불교 용어이다.

요즘 존칭으로 사용하다 일반화된 용어가 너무 많다. 아저씨라고 부르기 뭐하니 사장님하고 부르자 대부분 사람이 “사장”으로 불리고, “회장”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고 식당에 서빙하는 사람을 부를 때 “언니”,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이”, “이 보세요”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호칭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부르는 사람의 인격까지 낮아 보이는 때도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다방의 아가씨들은 김양, 이양, 박양 등으로 불리거나 회사에서 커피나 타고 잔 심부름한다고 해서 다방이 레지 부르듯 미스김 미스리하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와 이거 무진장 크다. 저 기차 무진장 길지. 이렇게 말하던 그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창고라는 뜻으로 닦아도 닦아도 다함이 없는 부처님의 법의를 가리킨다.

“내가 그 사람한테 오늘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라고 말할 때 시달리다는 시가바나>시다림>시달리다로 변한 언어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많은 괴로움을 당할 때를 말한다. 불교에서 시다림에서 온 언어로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썩는 악취와 질병이 창궐하는 곳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고행을 위해 찾기도 했다.

식도락으로 표현되는 ‘도락’은 고된 수행을 묵묵히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로 고생하지 않고 맛집만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과는 괴리가 있다.

그의 강연은 ‘심금을 울리다’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주 감명 깊게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유래는 마음의 거문고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에게 한 말씀으로 거문고는 줄이 너무 팽팽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너무 강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게으르게 된다. 즉 몸과 마음이 적당히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말이다.

‘전생’도 불교 용어이다. ‘현생’을 ‘금생’이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모든 생은 ‘전생’으로 부른다. 보통 수십 번의 전생을 가진 사람들의 전생 체험은 현생으로 윤회한다는 불교적 용어다.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 가지만 영혼은 남아 영혼이 주체가 되는 삶의 반복이 이루어진다는 말로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주인공이란 용어는 드라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을 뜻하지만, 이는 불교 용어로 득도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찰나’는 눈 깜짝할 새라는 뜻으로 시간의 최소 단위이면 억겁의 세월이 반대말이면 ‘항아’와 같이 많은 숫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찰나는 아주 작은 시간의 단위이다.

‘면목없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내 참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사’라는 말은 절의 용무를 맡아 보는 직책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미주 지사, 캐나다 지사 등 가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해탈은 모든 근본적 ‘아집’으로 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해탈은 번뇌를 떨쳐버리는 말로도 쓰인다.

“천사의 음성 들릴 것만 같아”. 사실 성경에 천사와 악마의 대립 구도는 드라마 악과 선의 대립 구도와 비슷하다. 천사는 신의 심부름꾼으로 기독교에서 말하고 악마도 천사처럼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불교 <출요경>에 따르면 천사는 염라대왕의 부하로 생로병사의 맡아서 처리하는 일을 한다. 저승사자도 사실 천사의 한 부분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대중 공연, 대중 연설, 대중 목욕탕 등의 용어인 ‘대중’은 원래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제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짐승같다”는 말도 쓴다. 사람 같지 않고 털도 말이 나고 우락부락하여 야성미가 넘친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불교의 일체 시간의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뜻하는 말로 즁생>즘승>짐승으로 단어가 변해 사용되고 있다.

“그 집은 지금 야단법석이야”라고 하면 떠들썩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는 불교 용어이다. 야외에 법단을 마련해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의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제자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질문을 듣고 그에 답하는 교수법을 통해 가르쳤다.

‘투기’는 요즘에 기회를 봐서 내 이익을 취한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저놈은 건달이야”라고 말하면, 일종의 깡패에 해당하는 불량배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석천의 음악을 관장하는 신을 이르는 말로 악사집단을 가리켜 ‘건달바’로 불렀다.

‘현관’은 원래 우리의 입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집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

세계관, 작품세계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세계’는 불교에서 공간을 이르는 말로 사방 사유 상하와 시간 구분 없이 삼세를 통칭하는 말이다.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기독교 직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지혜와 덕망과 법랍이 높은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냥’을 얼마나 받아 왔냐고 말하는 거지, 무리의 대화 내용을 드라마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동냥은 원래 스님이 박탈할 때탁발할때경(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일으키는 존재였지만 탁발이 사라지면서 걸식하는 행위로 변해버렸다.

“공부 좀 해라”는 우리가 가장 많이 듣던 소리다. 하지만 이 공부도 사실은 불교 용어로 참선과 염불, 기도 진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조선 시대엔 유교의 도학을 익히고 배운다는 말로 변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변했다.

‘도량’은 부처님이 도를 이룬 땅을 일컫는 말로 도장>사찰로 변모했다.

우리가 아기 적에 제일 많이 사용한 것은 ‘포대기’다. 요즘엔 유모차가 있어서 아기를 태우고 다니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다. 그래서 오다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 포대기도 스님들이 부들이라는 여러해 살이 풀로 만든 방석에서 유래한 말로 군에서는 아직도 모포를 ‘포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점심’은 중국 음식에서는 딤섬으로 많이 사용되고 서양에서는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을 일컫는 말로, 원래 아침과 저녁은 시간을 뜻하기도 하고 끼니도 뜻 하지만, 점심은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는 뜻으로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 먹는다는 의미이다.

국수사리 하나 더 줘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은 국수가 맛있다는 말이다. ‘사리’는 사찰에서 공양할 때 국수 뭉치를 이르는 말로 순수한 우리 언어이기도 하다.

‘밀어’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이다. 범어로 된 진언 속에 감춰진 진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비이불, 누비잠바는 추운 겨울에 아주 따뜻한 옷 중 하나이지만, 사실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납의>나비>누비로 변천된 꿰매어 입는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옷을 더덕더덕 꿰어 입을 때도 누비옷이라 부른다.

한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불교국가였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이 로마 교황에 의해 서양의 국교로 정해지고 정경유착을 넘어 정치 위에 종교가 군림하여 교황이 황제를 임명하고 주교가 황제를 좌지우지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들은 사회지도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면죄부 판매이다. 마녀사냥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민간 신앙을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그 사람들을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죽이고 종교의 위대함을 내세우려 했으며, 화형이라는 극악한 형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을 심어 주고 마녀가 아닌 부유한 여성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는 잘못이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시민들이 고통 받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교만을 앞세워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종교 전쟁으로 희생시킨다. 지금도 종교 간의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가장 많은 희생을 하며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가장 많은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군사무기산업을 틀어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신들은 성경에 녹아들어 세계의 신이 되어 버렸고 서양의 신화는 세계의 신화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천 손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천재 단의 유적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에 나오는 단군은 미신으로만 취급되고 있고 천년이 넘는 긴 동안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삼신할머니나 산신 같은 토속 신앙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불교도 용납할 수 없는 종교이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이어 오던 우리의 문화는 불교와 토착 신앙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영향, 거란의 영향, 몽고의 영향, 일본의 영향 등 침략을 받은 국가들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꾸준히 우리의 말과 언어는 이어져 왔다. 그런 언어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지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찰에 오르기 전에 일주 문을 마주하고 천왕문 불이문들의 용어는 당연히 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언어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인 금강산, 마니산, 천태산, 영취산, 사자암 등은 불경에 나오는 사자에서 유래 되었다. 즉 지명은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의 아파트 단지 이름은 제고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순수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데 영어에서 유래된 뜻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 이름을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순우리말을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붙이면 은연중에 우리말을 더 자주 많이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불교 용어가 어느 사이 기독교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면서 불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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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은 모든 근본적 ‘아집’으로 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해탈은 번뇌를 떨쳐버리는 말로도 쓰인다.

“천사의 음성 들릴 것만 같아”. 사실 성경에 천사와 악마의 대립 구도는 드라마 악과 선의 대립 구도와 비슷하다. 천사는 신의 심부름꾼으로 기독교에서 말하고 악마도 천사처럼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불교 <출요경>에 따르면 천사는 염라대왕의 부하로 생로병사의 맡아서 처리하는 일을 한다. 저승사자도 사실 천사의 한 부분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대중 공연, 대중 연설, 대중 목욕탕 등의 용어인 ‘대중’은 원래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제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짐승같다”는 말도 쓴다. 사람 같지 않고 털도 말이 나고 우락부락하여 야성미가 넘친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불교의 일체 시간의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뜻하는 말로 즁생>즘승>짐승으로 단어가 변해 사용되고 있다.

“그 집은 지금 야단법석이야”라고 하면 떠들썩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는 불교 용어이다. 야외에 법단을 마련해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의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제자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질문을 듣고 그에 답하는 교수법을 통해 가르쳤다.

‘투기’는 요즘에 기회를 봐서 내 이익을 취한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저놈은 건달이야”라고 말하면, 일종의 깡패에 해당하는 불량배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석천의 음악을 관장하는 신을 이르는 말로 악사집단을 가리켜 ‘건달바’로 불렀다.

‘현관’은 원래 우리의 입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집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

세계관, 작품세계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세계’는 불교에서 공간을 이르는 말로 사방 사유 상하와 시간 구분 없이 삼세를 통칭하는 말이다.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기독교 직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지혜와 덕망과 법랍이 높은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냥’을 얼마나 받아 왔냐고 말하는 거지, 무리의 대화 내용을 드라마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동냥은 원래 스님이 박탈할 때탁발할때경(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일으키는 존재였지만 탁발이 사라지면서 걸식하는 행위로 변해버렸다.

“공부 좀 해라”는 우리가 가장 많이 듣던 소리다. 하지만 이 공부도 사실은 불교 용어로 참선과 염불, 기도 진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조선 시대엔 유교의 도학을 익히고 배운다는 말로 변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변했다.

‘도량’은 부처님이 도를 이룬 땅을 일컫는 말로 도장>사찰로 변모했다.

우리가 아기 적에 제일 많이 사용한 것은 ‘포대기’다. 요즘엔 유모차가 있어서 아기를 태우고 다니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다. 그래서 오다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 포대기도 스님들이 부들이라는 여러해 살이 풀로 만든 방석에서 유래한 말로 군에서는 아직도 모포를 ‘포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점심’은 중국 음식에서는 딤섬으로 많이 사용되고 서양에서는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을 일컫는 말로, 원래 아침과 저녁은 시간을 뜻하기도 하고 끼니도 뜻 하지만, 점심은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는 뜻으로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 먹는다는 의미이다.

국수사리 하나 더 줘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은 국수가 맛있다는 말이다. ‘사리’는 사찰에서 공양할 때 국수 뭉치를 이르는 말로 순수한 우리 언어이기도 하다.

‘밀어’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이다. 범어로 된 진언 속에 감춰진 진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비이불, 누비잠바는 추운 겨울에 아주 따뜻한 옷 중 하나이지만, 사실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납의>나비>누비로 변천된 꿰매어 입는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옷을 더덕더덕 꿰어 입을 때도 누비옷이라 부른다.

한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불교국가였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이 로마 교황에 의해 서양의 국교로 정해지고 정경유착을 넘어 정치 위에 종교가 군림하여 교황이 황제를 임명하고 주교가 황제를 좌지우지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들은 사회지도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면죄부 판매이다. 마녀사냥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민간 신앙을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그 사람들을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죽이고 종교의 위대함을 내세우려 했으며, 화형이라는 극악한 형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을 심어 주고 마녀가 아닌 부유한 여성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는 잘못이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시민들이 고통 받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교만을 앞세워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종교 전쟁으로 희생시킨다. 지금도 종교 간의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가장 많은 희생을 하며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가장 많은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군사무기산업을 틀어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신들은 성경에 녹아들어 세계의 신이 되어 버렸고 서양의 신화는 세계의 신화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천 손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천재 단의 유적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에 나오는 단군은 미신으로만 취급되고 있고 천년이 넘는 긴 동안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삼신할머니나 산신 같은 토속 신앙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불교도 용납할 수 없는 종교이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이어 오던 우리의 문화는 불교와 토착 신앙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영향, 거란의 영향, 몽고의 영향, 일본의 영향 등 침략을 받은 국가들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꾸준히 우리의 말과 언어는 이어져 왔다. 그런 언어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지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찰에 오르기 전에 일주 문을 마주하고 천왕문 불이문들의 용어는 당연히 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언어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인 금강산, 마니산, 천태산, 영취산, 사자암 등은 불경에 나오는 사자에서 유래 되었다. 즉 지명은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의 아파트 단지 이름은 제고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순수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데 영어에서 유래된 뜻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 이름을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순우리말을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붙이면 은연중에 우리말을 더 자주 많이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불교 용어가 어느 사이 기독교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면서 불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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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바람처럼 흩어지지 않고
돌탑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전화나 문자처럼
내가 말하는 대로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주기도문 외우듯
반야심경 독경하듯
날마다 기도해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아픈 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걸 가졌고
누구는 새벽마다 거친 손을 모으고 기도해도
빈 그물로 돌아오는 어부처럼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한 번만 이라도 기도에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깨에 평생
짊어졌던 지게 무거운 짐처럼
내가 짊어진 짐이 발걸음을 휘청이게 하고
똑같은 아픔을 아들 어깨엔 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변
일상생활 용어 속 불교

천주교에서 쓰는 성당은 본래 이름은 법당 또는 불당을 지칭하는 말이며,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단계의 직책으로 교회의 어르신 격인 지도자 지위를 말하지만, 원래는 지혜와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를 통칭하던 말로 젊은 비구가 늙은 비구를 높여 부르거나 스승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 불교 용어이다.

요즘 존칭으로 사용하다 일반화된 용어가 너무 많다. 아저씨라고 부르기 뭐하니 사장님하고 부르자 대부분 사람이 “사장”으로 불리고, “회장”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고 식당에 서빙하는 사람을 부를 때 “언니”,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이”, “이 보세요”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호칭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부르는 사람의 인격까지 낮아 보이는 때도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다방의 아가씨들은 김양, 이양, 박양 등으로 불리거나 회사에서 커피나 타고 잔 심부름한다고 해서 다방이 레지 부르듯 미스김 미스리하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와 이거 무진장 크다. 저 기차 무진장 길지. 이렇게 말하던 그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창고라는 뜻으로 닦아도 닦아도 다함이 없는 부처님의 법의를 가리킨다.

“내가 그 사람한테 오늘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라고 말할 때 시달리다는 시가바나>시다림>시달리다로 변한 언어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많은 괴로움을 당할 때를 말한다. 불교에서 시다림에서 온 언어로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썩는 악취와 질병이 창궐하는 곳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고행을 위해 찾기도 했다.

식도락으로 표현되는 ‘도락’은 고된 수행을 묵묵히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로 고생하지 않고 맛집만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과는 괴리가 있다.

그의 강연은 ‘심금을 울리다’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주 감명 깊게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유래는 마음의 거문고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에게 한 말씀으로 거문고는 줄이 너무 팽팽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너무 강해도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해도 게으르게 된다. 즉 몸과 마음이 적당히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말이다.

‘전생’도 불교 용어이다. ‘현생’을 ‘금생’이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모든 생은 ‘전생’으로 부른다. 보통 수십 번의 전생을 가진 사람들의 전생 체험은 현생으로 윤회한다는 불교적 용어다.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 가지만 영혼은 남아 영혼이 주체가 되는 삶의 반복이 이루어진다는 말로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주인공이란 용어는 드라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을 뜻하지만, 이는 불교 용어로 득도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찰나’는 눈 깜짝할 새라는 뜻으로 시간의 최소 단위이면 억겁의 세월이 반대말이면 ‘항아’와 같이 많은 숫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찰나는 아주 작은 시간의 단위이다.

‘면목없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내 참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사’라는 말은 절의 용무를 맡아 보는 직책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미주 지사, 캐나다 지사 등 가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해탈은 모든 근본적 ‘아집’으로 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해탈은 번뇌를 떨쳐버리는 말로도 쓰인다.

“천사의 음성 들릴 것만 같아”. 사실 성경에 천사와 악마의 대립 구도는 드라마 악과 선의 대립 구도와 비슷하다. 천사는 신의 심부름꾼으로 기독교에서 말하고 악마도 천사처럼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불교 <출요경>에 따르면 천사는 염라대왕의 부하로 생로병사의 맡아서 처리하는 일을 한다. 저승사자도 사실 천사의 한 부분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대중 공연, 대중 연설, 대중 목욕탕 등의 용어인 ‘대중’은 원래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제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짐승같다”는 말도 쓴다. 사람 같지 않고 털도 말이 나고 우락부락하여 야성미가 넘친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불교의 일체 시간의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뜻하는 말로 즁생>즘승>짐승으로 단어가 변해 사용되고 있다.

“그 집은 지금 야단법석이야”라고 하면 떠들썩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는 불교 용어이다. 야외에 법단을 마련해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의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제자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질문을 듣고 그에 답하는 교수법을 통해 가르쳤다.

‘투기’는 요즘에 기회를 봐서 내 이익을 취한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저놈은 건달이야”라고 말하면, 일종의 깡패에 해당하는 불량배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석천의 음악을 관장하는 신을 이르는 말로 악사집단을 가리켜 ‘건달바’로 불렀다.

‘현관’은 원래 우리의 입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집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

세계관, 작품세계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세계’는 불교에서 공간을 이르는 말로 사방 사유 상하와 시간 구분 없이 삼세를 통칭하는 말이다.

‘장로’는 기독교에서 집사 위에 기독교 직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지혜와 덕망과 법랍이 높은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냥’을 얼마나 받아 왔냐고 말하는 거지, 무리의 대화 내용을 드라마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동냥은 원래 스님이 박탈할 때탁발할때경(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일으키는 존재였지만 탁발이 사라지면서 걸식하는 행위로 변해버렸다.

“공부 좀 해라”는 우리가 가장 많이 듣던 소리다. 하지만 이 공부도 사실은 불교 용어로 참선과 염불, 기도 진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조선 시대엔 유교의 도학을 익히고 배운다는 말로 변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변했다.

‘도량’은 부처님이 도를 이룬 땅을 일컫는 말로 도장>사찰로 변모했다.

우리가 아기 적에 제일 많이 사용한 것은 ‘포대기’다. 요즘엔 유모차가 있어서 아기를 태우고 다니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다. 그래서 오다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 포대기도 스님들이 부들이라는 여러해 살이 풀로 만든 방석에서 유래한 말로 군에서는 아직도 모포를 ‘포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점심’은 중국 음식에서는 딤섬으로 많이 사용되고 서양에서는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을 일컫는 말로, 원래 아침과 저녁은 시간을 뜻하기도 하고 끼니도 뜻 하지만, 점심은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는 뜻으로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 먹는다는 의미이다.

국수사리 하나 더 줘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은 국수가 맛있다는 말이다. ‘사리’는 사찰에서 공양할 때 국수 뭉치를 이르는 말로 순수한 우리 언어이기도 하다.

‘밀어’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이다. 범어로 된 진언 속에 감춰진 진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비이불, 누비잠바는 추운 겨울에 아주 따뜻한 옷 중 하나이지만, 사실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납의>나비>누비로 변천된 꿰매어 입는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옷을 더덕더덕 꿰어 입을 때도 누비옷이라 부른다.

한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불교국가였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이 로마 교황에 의해 서양의 국교로 정해지고 정경유착을 넘어 정치 위에 종교가 군림하여 교황이 황제를 임명하고 주교가 황제를 좌지우지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들은 사회지도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면죄부 판매이다. 마녀사냥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민간 신앙을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그 사람들을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죽이고 종교의 위대함을 내세우려 했으며, 화형이라는 극악한 형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을 심어 주고 마녀가 아닌 부유한 여성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는 잘못이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시민들이 고통 받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교만을 앞세워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종교 전쟁으로 희생시킨다. 지금도 종교 간의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가장 많은 희생을 하며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가장 많은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군사무기산업을 틀어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신들은 성경에 녹아들어 세계의 신이 되어 버렸고 서양의 신화는 세계의 신화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천 손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천재 단의 유적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에 나오는 단군은 미신으로만 취급되고 있고 천년이 넘는 긴 동안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삼신할머니나 산신 같은 토속 신앙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불교도 용납할 수 없는 종교이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이어 오던 우리의 문화는 불교와 토착 신앙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영향, 거란의 영향, 몽고의 영향, 일본의 영향 등 침략을 받은 국가들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꾸준히 우리의 말과 언어는 이어져 왔다. 그런 언어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지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찰에 오르기 전에 일주 문을 마주하고 천왕문 불이문들의 용어는 당연히 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언어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인 금강산, 마니산, 천태산, 영취산, 사자암 등은 불경에 나오는 사자에서 유래 되었다. 즉 지명은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의 아파트 단지 이름은 제고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순수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데 영어에서 유래된 뜻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 이름을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순우리말을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붙이면 은연중에 우리말을 더 자주 많이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불교 용어가 어느 사이 기독교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면서 불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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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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