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 공덕함
[기고]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 공덕함
  • 허정 스님/전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 승인 2023.10.23 12: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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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 공덕함

사찰을 방문하여 법당에 들어가면 불상(弗像)앞에 사각형의 나무상자가 있다. 으레 그 나무상자에는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공덕상등의 이름이 붙어있다. 일본 사찰의 법당에는 새전(賽錢) 혹은 새전상(賽錢箱)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새(賽)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굿 하다, 신불(神佛)이 베풀어 준 은혜에 감사하여 지내는 제사’라고 나온다. 복전함(福田函)을 새전상(賽錢箱)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신불습합(神仏習合)의 특징을 가진 일본불교가 어렴풋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공덕함이라고 부르는 이름들은 어떤 특징과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어느 이름이 가장 불교적일까? 불보살님께 보시하는 보시함(布施函), 보시받는 대상이 복(福)의 밭(田)이라는 의미인 복전함(福田函), 부처님께 금전을 보시하는 불전함(佛錢函), 부처님이 복(福)의 밭(田)이라는 의미인 불전함(佛田函), 보시하는 주인(施主)이라는 시주함(施主函),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는 희사함(喜捨函), 보시하는 것이 공덕을 짓는 것이라는 공덕함(功德函)등 다양한 이름들이 사용되고있다.

일본 사찰의 불전함- 새전상 ( 賽錢箱 ) 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나무상자에 복전함(福田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싶다. 복전(福田)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경전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용어들은 경전의 근거가 빈약하다. 복전(福田)은 뿐냐(puñña,福)와 케따(kkhetta,田)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부처님이 승가를 “이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anuttaraṃ) 복밭(puññakkhettaṃ)이다.”라고 찬탄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냥 복밭(福田)이 아니라 위없는(無上) 복밭(福田)이다. 승가는 무상복전(無上福田)이기에 스님들이 입는 가사를 무상복전의(無上福田衣)라고도 부른다. 위없는(anuttaraṃ) 복밭(puññakkhettaṃ)이라는 용어는 승가를 설명할 때만 나타난다. 처음에 부처님앞에 나무상자는 복전함(福田函)으로 불려지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 의미가 흐릿해지고 마모되어 다른 이름들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보시의 분석 경 (M142)에서 부처님은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가장 큰 공덕이 된다고 설한다. 개인에 대한 보시 14가지와 승가에 대한 보시 2가지를 설하시면서 그 중에서 승가에 대한 보시가 가장 수승(殊勝)하다고 설명한다. 웰라마 경(A9:20)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승가에 대한 보시가 수승하다고 설명하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장자여,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사방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이 경에서 부처님보다 승가에 대한 보시가 이 세상의 어떤 대상보다 공덕이 크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복전함(福田函) 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부처님이 승가를 위없는(無上) 복밭(福田)이라고 설명한 내용을 떠올리게 된다. 왜 승가에 대한 보시가 가장 공덕이 다른 보시보다 큰 것인지 그 이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승가에 대해서는 한 마디 보탤 필요가 있다. '승가에 보시하는 것'과 '스님들께 보시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종단에서 한글 삼귀의를 만들면서 '승가'를 '스님들'로 번역해 놓았기에 그 혼란이 더욱 심하게된 것이다. 보시받는 주체가 스님들인 것과 승가인 것은 의미가 다르다. 보시의 분석 경 (M142)에서 부처님의 양모가 부처님에게 가사를 보시하려고 했지만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세번이나 승가에 보시하라고 권유한다.승가에 보시된 것은 승가 전체의 구성원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고, 언제까지나 공적인 물건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삼국시대이든 고려시대이든 승가에 보시된 사찰들은 모두 공적인 자산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있다. 승가에 보시하는 전통에 충실하면 승려들 사이의 빈부(貧富)차이도 사라지고 사설사암이라는 말도 사라지게된다.
일본 사찰의 불전함- 새전상 ( 賽錢箱 ) 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나무상자에 복전함(福田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싶다. 복전(福田)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경전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용어들은 경전의 근거가 빈약하다. 복전(福田)은 뿐냐(puñña,福)와 케따(kkhetta,田)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부처님이 승가를 “이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anuttaraṃ) 복밭(puññakkhettaṃ)이다.”라고 찬탄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냥 복밭(福田)이 아니라 위없는(無上) 복밭(福田)이다. 승가는 무상복전(無上福田)이기에 스님들이 입는 가사를 무상복전의(無上福田衣)라고도 부른다. 위없는(anuttaraṃ) 복밭(puññakkhettaṃ)이라는 용어는 승가를 설명할 때만 나타난다. 처음에 부처님앞에 나무상자는 복전함(福田函)으로 불려지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 의미가 흐릿해지고 마모되어 다른 이름들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보시의 분석 경 (M142)에서 부처님은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가장 큰 공덕이 된다고 설한다. 개인에 대한 보시 14가지와 승가에 대한 보시 2가지를 설하시면서 그 중에서 승가에 대한 보시가 가장 수승(殊勝)하다고 설명한다. 웰라마 경(A9:20)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승가에 대한 보시가 수승하다고 설명하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장자여,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사방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이 경에서 부처님보다 승가에 대한 보시가 이 세상의 어떤 대상보다 공덕이 크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복전함(福田函) 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부처님이 승가를 위없는(無上) 복밭(福田)이라고 설명한 내용을 떠올리게 된다. 왜 승가에 대한 보시가 가장 공덕이 다른 보시보다 큰 것인지 그 이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승가에 대해서는 한 마디 보탤 필요가 있다. '승가에 보시하는 것'과 '스님들께 보시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종단에서 한글 삼귀의를 만들면서 '승가'를 '스님들'로 번역해 놓았기에 그 혼란이 더욱 심하게된 것이다. 보시받는 주체가 스님들인 것과 승가인 것은 의미가 다르다. 보시의 분석 경 (M142)에서 부처님의 양모가 부처님에게 가사를 보시하려고 했지만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세번이나 승가에 보시하라고 권유한다.승가에 보시된 것은 승가 전체의 구성원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고, 언제까지나 공적인 물건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삼국시대이든 고려시대이든 승가에 보시된 사찰들은 모두 공적인 자산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있다. 승가에 보시하는 전통에 충실하면 승려들 사이의 빈부(貧富)차이도 사라지고 사설사암이라는 말도 사라지게된다.

승가는 비구 비구니와 같이 구족계를 받은 출가자만을 뜻하는가? 아니면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같은 사부대중을 말하는가? 승가는 도과(道果)를 얻은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출가자만 해당하는가? 아니면 승가는 범부(凡夫) 출가자와 도과(道果)를 얻은 출가자를 모두 포함하는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에는 승가의 범위를 '도과(道果)를 얻은 출가자와 들숨날숨등 13가지 종류의 수행을 하는 범부(凡夫) 출가자'를 포함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경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비구들이여, 이 승가는 잡담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떠들지 않는다. 이 회중은 공양 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이러한 비구 승가에 적게 보시해도 큰 결실을 가져오고 많이 보시하면 더 큰 결실을 가져온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승가는 세상에서 친견하기 어렵다. 이 승가에는 아라한이 있다. 이 승가에는 불환자가 있다. 일래자가 있다.예류자가 있다. 사념처를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사정근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오력을 닦는 비구들이있다. 칠각지를 닦는 비구들이 있다. 팔정도를 닦는 비구들이있다. 사무량심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부정관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에서 '범부 출가자'와 '성인(聖人) 출가자'를 포함하여 승가라고한다. 이러한 승가에 천원짜리 하나, 사과 한 개를 보시하더라도 다른 대상에 보시하는 것보다 공덕이 크다. 승가는 무상복전(無上福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전함’이라는 뜻을 알고 그 용어를 사용하면 재가자들에게는 승가에 대한 공경(恭敬)이 살아나고, 스님들은 승가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을 체감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복전함(福田函)보다도 무상복전함(無上福田函)이라고 쓰면 더욱 좋다. 각 사찰의 주지스님들은 기존의 불전함(佛錢函)과 시주함(施主函)을 무상복전함(無上福田函)으로 고치고 불자들에게 복전(福田)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신심(信心)있는 불자들이 될 것이다. 현재 조계종의 상황에서 승려들이 복전(福田)의 의미를 알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삶이 부처님이 가르친 승려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복전함(福田函)에는 이렇게 불교와 승가의 핵심적인 의미가 숨어있다. 승가 공동체 회복은 이렇게 사소한 이름을 바로 잡아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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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2023-11-21 20:27:02
허정스님
스님 블로그에 한번식 들르는 불자안데
글이 매우 아름답고 시도 안정감있고 읽으니 편안하고 경전구절도 너무 좋구요
빠알리어 원문으로 같이 곂들이니 정성스러움과 마치 부처님이 같이 계시는듯 한데
불교신문에서 댓글 켓쳐 해 놓은것
ㅎㅎ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적어도 허정스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런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
하필 불교전법 할 자격도 없는 그런 놈에게 초기불교를 맡기셨는지?
글고 그런놈하고 같이 사진 찍지 마셔요
스님 반드시 시간이 흐른후에 후회하실일이 생길거고
글고 스님께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도 그놈이 막고 있고
미신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놈이 나쁘다기보다 가까이 해서 좋을일이 하나도 없고
명심하셔요

정필모 2023-10-25 08:52:33
일전에 ㅡ 한글은 인도에서 왔다는 몰 역사적 친일사관을 알려 주려하지만
게시판 글올림을 차단하였기에 여기에 댓글 올림니다

훈민정음에 발음 기호를 세종 ,신미 , 신숙주 세분이 만든것 맞습니다
다만 그 언어들이 인도에서 왔다는건 어불 성설입니다

즉 한국 역사를 잘 모르고 글을 쓴것이며
훈민정음 이전에
조선 고유에 언어였다는 것은 무수히 만은 사료들로 증명할 수 있으며

산스어나 빨리어에 조선 사투리가 녹아 있다는 것은
어찌 설명하렵니까

즉 훈민정음 이전에 실담자나 데바나가리 기호로 표시 되었지만
그 언어들이 고조선민 삼국에서 사용하던
조선 사투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연구 분석하는 것이 선행 됐어야 하며
영화한 훈민정음저자에 실패는 불보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최초에 산스 연구자이신 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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