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 공덕함
사찰을 방문하여 법당에 들어가면 불상(弗像)앞에 사각형의 나무상자가 있다. 으레 그 나무상자에는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공덕상등의 이름이 붙어있다. 일본 사찰의 법당에는 새전(賽錢) 혹은 새전상(賽錢箱)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새(賽)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굿 하다, 신불(神佛)이 베풀어 준 은혜에 감사하여 지내는 제사’라고 나온다. 복전함(福田函)을 새전상(賽錢箱)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신불습합(神仏習合)의 특징을 가진 일본불교가 어렴풋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공덕함이라고 부르는 이름들은 어떤 특징과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어느 이름이 가장 불교적일까? 불보살님께 보시하는 보시함(布施函), 보시받는 대상이 복(福)의 밭(田)이라는 의미인 복전함(福田函), 부처님께 금전을 보시하는 불전함(佛錢函), 부처님이 복(福)의 밭(田)이라는 의미인 불전함(佛田函), 보시하는 주인(施主)이라는 시주함(施主函),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는 희사함(喜捨函), 보시하는 것이 공덕을 짓는 것이라는 공덕함(功德函)등 다양한 이름들이 사용되고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나무상자에 복전함(福田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싶다. 복전(福田)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경전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용어들은 경전의 근거가 빈약하다. 복전(福田)은 뿐냐(puñña,福)와 케따(kkhetta,田)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부처님이 승가를 “이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anuttaraṃ) 복밭(puññakkhettaṃ)이다.”라고 찬탄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냥 복밭(福田)이 아니라 위없는(無上) 복밭(福田)이다. 승가는 무상복전(無上福田)이기에 스님들이 입는 가사를 무상복전의(無上福田衣)라고도 부른다. 위없는(anuttaraṃ) 복밭(puññakkhettaṃ)이라는 용어는 승가를 설명할 때만 나타난다. 처음에 부처님앞에 나무상자는 복전함(福田函)으로 불려지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 의미가 흐릿해지고 마모되어 다른 이름들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보시의 분석 경 (M142)에서 부처님은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가장 큰 공덕이 된다고 설한다. 개인에 대한 보시 14가지와 승가에 대한 보시 2가지를 설하시면서 그 중에서 승가에 대한 보시가 가장 수승(殊勝)하다고 설명한다. 웰라마 경(A9:20)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승가에 대한 보시가 수승하다고 설명하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장자여,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사방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이 경에서 부처님보다 승가에 대한 보시가 이 세상의 어떤 대상보다 공덕이 크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복전함(福田函) 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부처님이 승가를 위없는(無上) 복밭(福田)이라고 설명한 내용을 떠올리게 된다. 왜 승가에 대한 보시가 가장 공덕이 다른 보시보다 큰 것인지 그 이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승가에 대해서는 한 마디 보탤 필요가 있다. '승가에 보시하는 것'과 '스님들께 보시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종단에서 한글 삼귀의를 만들면서 '승가'를 '스님들'로 번역해 놓았기에 그 혼란이 더욱 심하게된 것이다. 보시받는 주체가 스님들인 것과 승가인 것은 의미가 다르다. 보시의 분석 경 (M142)에서 부처님의 양모가 부처님에게 가사를 보시하려고 했지만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세번이나 승가에 보시하라고 권유한다.승가에 보시된 것은 승가 전체의 구성원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고, 언제까지나 공적인 물건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삼국시대이든 고려시대이든 승가에 보시된 사찰들은 모두 공적인 자산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있다. 승가에 보시하는 전통에 충실하면 승려들 사이의 빈부(貧富)차이도 사라지고 사설사암이라는 말도 사라지게된다.
승가는 비구 비구니와 같이 구족계를 받은 출가자만을 뜻하는가? 아니면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같은 사부대중을 말하는가? 승가는 도과(道果)를 얻은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출가자만 해당하는가? 아니면 승가는 범부(凡夫) 출가자와 도과(道果)를 얻은 출가자를 모두 포함하는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에는 승가의 범위를 '도과(道果)를 얻은 출가자와 들숨날숨등 13가지 종류의 수행을 하는 범부(凡夫) 출가자'를 포함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경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비구들이여, 이 승가는 잡담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떠들지 않는다. 이 회중은 공양 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이러한 비구 승가에 적게 보시해도 큰 결실을 가져오고 많이 보시하면 더 큰 결실을 가져온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승가는 세상에서 친견하기 어렵다. 이 승가에는 아라한이 있다. 이 승가에는 불환자가 있다. 일래자가 있다.예류자가 있다. 사념처를 닦는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사정근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오력을 닦는 비구들이있다. 칠각지를 닦는 비구들이 있다. 팔정도를 닦는 비구들이있다. 사무량심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부정관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 비구들이 있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에서 '범부 출가자'와 '성인(聖人) 출가자'를 포함하여 승가라고한다. 이러한 승가에 천원짜리 하나, 사과 한 개를 보시하더라도 다른 대상에 보시하는 것보다 공덕이 크다. 승가는 무상복전(無上福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전함’이라는 뜻을 알고 그 용어를 사용하면 재가자들에게는 승가에 대한 공경(恭敬)이 살아나고, 스님들은 승가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을 체감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복전함(福田函)보다도 무상복전함(無上福田函)이라고 쓰면 더욱 좋다. 각 사찰의 주지스님들은 기존의 불전함(佛錢函)과 시주함(施主函)을 무상복전함(無上福田函)으로 고치고 불자들에게 복전(福田)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신심(信心)있는 불자들이 될 것이다. 현재 조계종의 상황에서 승려들이 복전(福田)의 의미를 알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삶이 부처님이 가르친 승려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복전함(福田函)에는 이렇게 불교와 승가의 핵심적인 의미가 숨어있다. 승가 공동체 회복은 이렇게 사소한 이름을 바로 잡아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리라.
한번 들어보세요
저놈을 저는 만나기도 전에 이상한 꿈부터 꿨었고
내용은 하늘에서 산신당에 모셔진 옛날 한복차림에 울긋불긋한 또 머리엔 갓을 스고 강력한
힘으로 저를 향해 한남자가 내려왔어요
그후로 저는 저놈이 전생에 불교관련하여 사천왕의 어시스트 정도 되는줄 알았어요
헌데
블로그에서 언행일치 는 아예 도외시하면서 자꾸 불교경전을 훼손하는 .......제가 기겁을 하고
불교경전이야기를 할때는 그순간 그날만이라도 계율을 지키고 청정해애 한다고
하루에도 몇번식 댓글을 해도 저를 아예
무시하더군요
그러던중 저의 치매걸린 모친이 그놈 이 바위에서 도를 닦고 있는 꿈을 꿧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