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유심작품상에 고두현·민병도·정찬주·구중서
제21회 유심작품상에 고두현·민병도·정찬주·구중서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3.06.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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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유심작품상에 고두현·민병도·정찬주·구중서 작가(왼쪽부터)의 작품이 선정됐다.
제21회 유심작품상에 고두현·민병도·정찬주·구중서 작가(왼쪽부터)의 작품이 선정됐다.

제21회 유심작품상에 고두현·민병도·정찬주·구중서 작가의 작품이 선정됐다.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제21회 유심작품상 수상작으로 시부문에 고두현 시인의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를, 시조부문에 민병도 시조시인의 <낫은 풀을 이기지 못한다>를, 소설부문에 정찬주 소설가의 장편 <아쇼카 대왕>을 선정했다. 또 특별상 수상자로 문학평론가 구중서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선정했다.

각 부문별 상금은 1,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8월 11일 만해축전 기간 중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수상작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시부문 / 고두현
수상작 /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고두현 시인의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를 제21회 유심작품상 시부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고두현 시인의 시에는 약간의 유유머와 익살과 얼굴 바꾸기와 다정다감이 있다. 그런데 한번 읽고 두반 익으면 슬퍼진다. 시속에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경남 남해출신인 고두현 시인은 섬의 경계를 허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미 이루었다. 그래서 안을 볼 줄 알고 밖을 끌어 안는 시적 사랑이 숨어 있다.

내면 통찰은 시인이라고 다 능통한 것은 아니다. 고요하고 바람이 전혀 없는 내면은 질병에 가깝다 누구나 마음안은 덜썩이고 서로 의견이 맞지 않다. 오죽하면 어느길인가? 홀로 몸부림친 어느 한 길이 먼저 달려나가 뒤를 돌아보고 길을 묻는 역설적 풍경이 일어난다.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마음에 가득차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에 나타나는 일이다. 고두현시인의 시에는 원하는 것이 가득차고 드디어 시로 나타나는 이야기들이 많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시인의 출생도 시적이다. 오죽 궁금하면 달빛이 슬며시 들여다 보았겠는가.

마구간에서 시인으로 서울의 대기자로 변모해 온 것은 아마도 달빛의 기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태어난 곳이 따뜻한 방이 아니라 잡풀더미와 쇠스랑 뿔이 있는 곳이었다. 도전적이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일 수 있는 이 대목을 달빛이 화해를 시켜 부드러운 시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이 된다. 마구간 출신으로 예수님 말고 고두현 시인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남몰래 발등에 힘을 주며” 도 인간의 본질적인 아픔이 시의 흐름을 주도한다 “남몰래” 라는 시적 본질은폐는 고두현시인의 모든 시에 스며있다. 모든 일에 축복이 있기를 달빛의 심정으로 응원하고 싶다.

■시조부문/ 민병도
수상작/ <낫은 풀을 이기기 못한다>

시력 50여년의 민병도 시인은 흐르는 물과 같다. 고요하게 흐르다가 거친 물살이 되었다가 강바닥 한쪽을 비워두는 잔물결이었다가, 그렇게 흐르며 멈추며 시조와 함께 오랜 세월 흘러왔고 흐르고 있다.

그는 그의 고향 경북 청도에 살고 있다.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청도를 「시조의 수도」로 건설하겠다는 다부진 꿈을 오래 전부터 가슴 벅차게 품고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뚝딱, 드디어, 청도는 「시조의 수도」가 되었다. 그 세월도 50년이었다. 미술대학에 입학한 그가 대학 2학년 때 시조를 배우겠다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이영도 선생을 찾아갔던 1973년을 떠올리면 말이다.

민병도 시인은 실험의식을 앞세워 행하는 파격보다 정격을 중시하는 시조로, 시조의 위의를 지향하고 있다. 선고대상이 되었던 최근에 발표한 시조 17편 가운데 3편을 제외한 단시조는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시조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수상작 <낫은 풀을 이기지 못한다>는 싱그럽고 비릿한 민초들의 생존이 거기에 있었다. “숫돌에 날 세워 웃자란 풀을 베면/속수무책 싹뚝! 잘려서 쓰러지”는 섬뜩한 비릿함이라니.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 그렇지만 시인은 역설한다. “그 낫이 삼천리 강토의 주인인 적 없었다”고. 시인의 역사성과 현실의식이 완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풀은 목이 잘려도 낫에 지지 않는다/목 타는 삼복 땡볕과 가을 밤 풀벌레 소리,”너무 슬퍼서 자지러지도록 아름답다. 민병도 시인의 서정미학이다. 민초들의 숨결이 가을 밤 풀벌레 소리로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 다둑이며 서럽다. 그 견딜 수 없는 견딤의 힘은 어디에서 솟는 것일까. “맨살을 파고든 칼바람에 울어본 까닭이다”시조의 힘이고 민병도 시인의 내공(內功)이다.

“퍼렇게 벼린 낫이여, 풀을 이기지 못하느니/낫은 매번 이기고, 이겨서 자꾸 지고”왜일까. 정말 “낫은 매번 이기고, 이겨서 자꾸 지”는 것일까. “언제나 풀은 지면서 이기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 답은 민병도 시조 「들풀」에 있지 않을까.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피 흘리며 쓰러져 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향기로 감싸는지…//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이 땅의 주인인지”

손진은 시인은 “민초들의 관용과 인내, 넉넉한 사랑”이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지탱하는 놀라운 힘”이 되는 역설을 시인은 보여주는 것이다.

민병도의 시조를 읽으며 지고도 견디는 삶을 생각해 보았다. 이기고도 지는 삶을 생각해 보았다. 견딜 수 없는 삶을 견디는 민초들의 이기는 삶을, 주인이 되는 삶을 통해 “시조는 과연 힘이 세다”를 새삼 발견했다.

민병도 시인의 ‘유심작품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소설부문/ 정찬주
수상작/ < 아쇼카 대왕>

금년도 유심문학상 수상작은 정찬주의 대작 <아소까대왕>으로 결정되었다. 이 작품은 인도대륙 뿐만 아니라 먼 외국에 까지 불교를 전파한 아소까가 마우리야 왕조의 왕자로 태어나 그 나라의 황제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부왕과의 갈등, 백여명에 달하는 이복형제들과의 암투, 각종 종교지도자들과의 만남, 사랑과 결혼, 출산 같은 이야기들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아소까가 천성이 포악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왕권장악에 이르는 역정과 이웃 나라를 정벌해가는 과정속에서 그는 백여명의 형제와 수 많은 정적들을 제거해야 했고 무수한 전투를 통해 수많은 인명을 잃거나 죽여야 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소까는 잔혹한 폭군에다 무자비한 정벌자였다.

그런 그가 피묻은 칼을 버리고 전장에서 무섭게 울리던 북소리를 멈추게 했으며 마침내 정부와 나라를 지켜주는 군대마저 해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모든 가족, 모든 백성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도록 열정을 다해 온 힘을 쏟는다. 이러한 아소까의 코페루니쿠스적인 대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이 소설은 그점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류역사상 수많은 종교 관련 전쟁과 갈등은 대체로 타락한 종교의 감춰진 세속적 욕망이 그 근거를 이룬다. 종교적 신성권력(神聖權力)을 가장한 정치적 군사적 세속권력(世俗權力)이 무자비한 살상, 파괴를 통해 그들이 진실로 얻고자 했던 것은 물질적 욕망, 인종주의, 정복자의 지배욕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잘 알려진 십자군 전쟁도 30년 종교전쟁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각종 종교적 전투와 잔혹한 범죄적 테러행위도 그 근간에는 순결한 종교적 사랑의 정신 대신, 불결한 욕망, 증오, 지배욕 같은 것들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아소까는 진심으로 세속권력을 포기하는 대신 인류의 진정한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붓다의 자비사상과 만인평등 정신으로 이루어진 신성권력을 추구한 인물이며 그런 점에서 세계사 속에서 세속권력을 버리고 신성권력을 쟁취하는데 성공한 거의 유일한 통치자였다고 할 수 있다.

정찬주의 이 역사소설은 치밀한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통해 아소까가 살았던 시대의 물리적 공간과 문화적 감성, 풍속, 제도 같은 것들을 밀도 높게 잘 재현하고 있다. 또한 이 작가의 유려하고도 탄탄한 문장과 곳곳에 산견되는 시적 진술들은 심오한 불교의 교의를 다룬 이 작품의 문채(figura)를 더욱 빛나게 하여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수상을 다시한번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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