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은 2000년과 2007년에 이어 평양에서 세 번 열렸다. 2018년 4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5월 북측의 판문각 그리고 9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 시즌Ⅲ가 펼쳐졌다.
그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수행단 일원으로 참가했던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첫 만남이었고, 남북한 간의 총론적 의미가 강했다.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은 구체적이고, 각론적이었다. 각 분야에 대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실천적 조치가 조금 약했던 점이 있다. 정권 말기였기에 이행하기도 힘들었다. 2018년 9.19 남북공동선언은 상당히 실천적 조치가 많았다. 총론에서 각론, 각론에서 실천적 조치로 발전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북측 최고지도자의 육성으로 ‘비핵화’가 처음 언급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던 정상회담으로 평가됐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가 가는 앞길에는 생각 못 했던 도전과 난관, 시련도 막아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이길수록 우리의 힘은 더욱 커지고 강해진다.”라며 직접 새로운 해법에 관한 합의를 밝혔다.
평안북도 철산군의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서해위성 발사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적 폐기’를 선언하고, 연내(2018년)에 서울 답방을 약속한다고 당시 평양 9.19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하던 공동취재단을 통해 국내와 전 세계로 타전됐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릉라도 경기장(5.1경기장)에서 가진 문재인 대통령의 군중 연설을 비롯해 백두산 천지 등정은 어떤 정상회담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예우와 여정이었다. 이때 두 정상은 평양에서 ‘민족의 미래를, 평화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선언을 했다. 그때 여정을 살펴본다. 또 불교계 대표로 함께했던 원택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의 방북 뒷이야기를 정리했다.
MDL, 도보다리와 통일각에서
판문점(板門店)은 분단의 상징적인 곳이다. 1951년 10월 22일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 주막마을’에서 개최된 휴전회담 장소를 북조선・미국・중국측 연락 장교들이 함께 만든 한자 표기식의 지명이다. 지금,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MDL)에 있는 공동경비구역(JSA)의 별칭이다. 이곳에서 남북정상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5월 26일 북측 통일각에서 두 차례 만났다.
11년 만에 재개된 남북정상회담은 길었던 전쟁을 끝내기 위한 첫걸음을 디뎠다. 북측은 핵동결 조치를 선언하고, 남측은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시작으로 한반도 비핵화, 평화정착, 남북관계 발전에 대해 논의했다. 2018년 4월 27일 9시 30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유일하게 철책이 없는 판문점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와 T3(정전위 소회의실) 사이의 군사분계선(북측은 분리선)에서 만나 악수했다.
김 위원장은 임시(Temporary)란 뜻의 파란색 T 건물 사이로 분리선을 월경해 남녘에 온 최초의 북측 지도자가 됐다. 예상을 깬 파격 행보의 두 정상은 판문각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의장대 호위를 받으며 공식환영식장인 남측 평화의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양에서 당일 공수해 온 ‘옥류관 랭면’으로 점심을 한 후, 백두산과 한라산의 물로 기념식수에 합수와 표지석 가림막을 펼쳤다. 오후 4시 36분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수행원 없이 산책 회담을 했다. 오후 5시 12분까지 벤치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은 생방송으로 영상만 송출돼 심금을 울렸다. 후일, 문재인 정부의 탁현민 의전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와 《미스터 프레지던트》(2023년)에서 기획 의도와 무관하게 부각된 장면이라 회고했다. 그때 파란색 도보다리는 평화를 향한 ‘만남의 다리’가 됐다.
그해 4월 27일 오후 6시 30분 평화의집 입구 기자회견장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 발표됐다. 인터넷과 모바일 검색이 가능한 판문점선언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된 판문점에서 다시 남북선언으로 채택 발표됐다.
이후, 2018년 5월 26일에 두 정상은 저녁 퇴근길 약속하듯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만이 배석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갈등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성사돼 의미를 더했다. 깜짝 이벤트와 같이 열린 정상회담의 시각은 청와대가 이날 공개한 동영상에 담긴 김 위원장 손목시계와 배웅할 때 시각으로 국내 언론들이 미뤄 짐작했다.
남측 대통령으로 처음 방문한 북측 통일각은 1985년 화강암으로 지은 단층 건물로 회담장으로 이용됐다.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영접을 받은 문 대통령은 북측의 약식 의장대 사열과 호위사령부 경호와 함께 통일각 로비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대형 수채화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통일각에서의 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긴밀한 협력 그리고 종전(終戰)과 완전한 비핵화를 골자로 한 4.27 판문점선언의 조속한 이행 의지를 재확인한 자리였다.
한편, 2018년 6월 12일에는 동남아시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세기의 회담이라 불린 ‘북미정상회담’(북측은 조미수뇌상봉)이 개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북미 간에 신뢰 회복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회담의 협의문에 서명했다. 휴전 이후, 최초로 미국과 북조선 정상이 직접 얼굴을 마주한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 안전보장을 약속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단호하고 확고하게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는 등 여섯 가지 합의문을 체결 발표했다. 냉온탕을 오갔던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1993년부터 지속된 북핵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평양선언의 비하인드스토리
2018년 9월 19일 발표한 평양공동선언은 한 해 동안 세 차례 만남의 결과물이다. 꽃 피는 봄 판문점에서 만나 결실을 보는 가을, 평양에서 맺은 6개 항의 평양 공동선언문은 모바일 검색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날 밤 9시 10분쯤부터 평양 릉라도(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빛나는 조국〉(일명 아리랑 공연)을 관람한 직후, 10시 20분쯤 연설대로 나아가 북측 인민들에게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는 역사적인 명연설을 했다.
2000년 9월 9일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이란 제목으로 초연(初演)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그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2022.3.23. 사망)과 2005년 10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이 관람했다. 예술과 체육을 결합한 북측 특유의 최대 공연으로 ‘아리랑’ 공연이라 잘 알려져 있다. 2018년엔 기존 레퍼토리를 수정해 평화와 통일의 무대를 강조한 형태의 ‘빛나는 조국’이란 이름으로 연출됐다.
환영 예술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소개하는 연설을 했다. “나와 문재인 대통령과 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의 여정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소중한 결실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의 귀중한 또 한 걸음의 전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중략)…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평양 수뇌상봉과 회담을 기념하여 평양 시민 여러분 앞에서 직접 뜻깊은 말씀을 하시게 됨을 알려드리게 됩니다. 오늘의 이 순간 역시,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 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 줍시다.”
문 대통령은 5.1경기장에 운집한 15만 평양 시민들에게 군중 연설을 했다. “…(중략)…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천 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중략)…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남측 야당조차 이례적으로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로 대전환한다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논평까지 낸 그 날, 15만 북측 인민들이 함께 호응하며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연설 내용도 두루 회자했다. 맥락적 차이가 있을지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릉라도 경기장 연설은 1989년 12월 옛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가 ‘독일 통일의 주인은 바로 독일인’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며, 동독 주민들을 향해 “여러분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한 드레스덴 연설과도 비견될 정도였다.
그 당시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백두산에 가려던 문 대통령의 소원처럼 두 정상은 화합하듯 백두산과 천지에 올랐다. 그해 9월 20일 고려항공편으로 이동해 오전 9시경 백두산에 올랐다. 두 정상 내외와 수행단은 백두산 장군봉에서 천지 물가에 내려섰다. 남측 언론은 이 광경을 “한반도의 역사에 물꼬를 바꿀지도 모를 성부 수를 던진 것인가? 천지에서 손을 맞잡은 두 정상은 각자의 마음을 담아 천지의 봉우리와 산하를 깊게 바라보았다.”고 표현했다. 다시 공중삭도(케이블카)를 타고 장군봉에 올라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 내외께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붓을 담가서 백두산 천지 물이 마르지 않듯이, 이 천지 물에다 붓을 담가서 앞으로 북남의 관계에 대해서 새로운 역사를, 우리가 계속 써나가야 된다.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제가 (평양)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좀 썼죠.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도 다 하고.” 그 옆에선 리설주 여사도 “(어젯밤) 연설 정말,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역사 현장에 와 있는 느낌으로, 정상회담 때의 백두산 방문은 수행원들과 남측 언론에도 평생 남을 기록을 만들었다. 중국 북파・서파・남파에서 볼 수 있는 천지는 무언가 답답한 느낌이 들지만, 북측에서 보는 천지는 온 사방이 탁 트여 한눈에 쫙 들어오는 동파(東坡, 동쪽마루 언덕), 최고의 명소를 보여주었다. 그때 에피소드는 천지의 물을 담는 장면을 본 이들이 “모녀(김정숙, 리설주 여사)가 물을 담는데, 미국에서 온 이모(강경화 외교장관)가 사진을 찍어 주는 장면”이라 회자할 정도였다.
귀국한 다음 날, 《KBS 사사건건》 〈남북정상회담 뒷이야기〉(2018.9.21.)에서는 “이제 정상회담은 끝났고, 비핵화의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면서 한나라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혹평을 쏟아내는 것에 대해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우리 주변에 모든 것을 비관만 하는 사람이 있다. 비관론자는 별의 비밀을 발견하지도, 미지의 섬으로 항해도 못하고, 인간 중심의 새로운 낙원을 열지도 못한다.”며 미국 작가 헬렌 켈러의 말을 재인용한 것을 메인뉴스로 다뤘다. 《헬렌 켈러의 비망록》(1938년) 등에 전하는 명언처럼 2023년에도 SY정권이 맘대로 펼치는 “(검찰)독재는 신념의 힘을 꺾지 못한다.”고 한 그녀의 말을 소환해 봄 직하다.
4.27 판문점선언 마지막 줄에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라고 언급돼 이루어진 2018년 9월 정상회담은 남북으로부터 열렬히 환영받았다. 9월 16일 청와대 지원단을 비롯해 의전, 보도 취재진 등 선발대 93명이 경의선 육로를 통해 평양 고려호텔에 정부 종합상황실을 설치했다. 18일 성남공항 출발 비행편에는 공식 14명・특별 52명・일반수행원 91명・기자단을 포함한 200여 명으로, 2007년 정상회담과 비슷한 규모였다. 정치분야 수행원을 대폭 축소됐지만, 노동과 종교・시민사회 분야와 예체능계도 변화됐다.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머문 공식 대표단을 제외한 수행단과 기자단은 고려호텔에서 지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는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장 겸 광주대교구장・원택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 4명의 종교인이 참가했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등 11명의 예체능계 인사들도 수행했다. 인기래퍼 지코와 차범근 축구감독이 돌아와 평양냉면 맛 리뷰로 전국에 붐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불교 언론이 다룬 볼멘소리는 “대통령이 천주교라서 불교가 홀대받았다.”는 루머까지 생겼다. 김희중 신부는 숙소에서 북측 가톨릭계 인사들과 접촉한 반면, 원택 민추본부장은 조불련과의 만남이 없었다는 게 와전됐다. 그해 10월 초, 북측 강지영 조선종교인협회장은 남측 7대 종단대표에게 평양에서 올해 ‘남북종교인모임’을 갖자고,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지지선언 발표를 제안했다.
그해 12월 26일에는 9월 평양 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개성시 판문역에서 남북 철도・도로 사업 착공식을 가졌다. 평양선언 백일을 하루 앞두고 진행한 착공식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조명균 통일부 장관,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그리고 12월 30일 오후 늦은 시각, 판문점을 통해 “비록 올해 서울 답방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번영의 무드는 2019년에도 지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청와대에 전달됐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은 바다 건너 일본엔 충격을 주었다. 일본인들은 분단된 한반도가 다시 하나가 되는 ‘통일된 나라’를 결코,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대감을 드러낸 SY정권에서 ‘통일’이라는 말은 아예 금기어가 됐다. 이 위정자들이 잠시 잠깐이라도 그해 9월 평양 릉라도 경기장에 모인 평양 시민들을 영상물로 볼 수 있다면 통일이 다가왔음을 느끼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깨우칠 것 같다.
# 다음 편은 ‘2018년 조선불교도련맹의 메시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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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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