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13. 산과 바다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13. 산과 바다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5.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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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깊숙이 들어갈수록 숨은 차지만
눈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바다
배를 타고 나가도
손끝에 바닷물을 적셔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잡으면 잡을수록 멀어지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날 보았다

바다가 파도치는 소리에
한 발 가까이 갔다
두 발 물러선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끝없이 밀어내는 나뭇가지 마스크 과자 봉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내 마음도 열었다 닫았다.

 







#작가의 변
난 충청북도 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넓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저녁마다 서쪽 산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저 산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친구들끼리 면 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산길로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면 체육대회에 온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 산을 타면서 내리막길엔 엉덩이 미끄럼도 타고 어떤 곳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낮은 콘크리트 수로 터널을 지나기도 했는데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서 이거 끝나긴 하는 거야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산에 올라가도 뾰족한 정상 부위는 잘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청룡 열차도 어지럽고 겁이 나서 티지 못했다. 즉 지금까지 한 번도 청룡 열차를 타보지 못했다. 그것보다 단계가 낮은 그냥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긴 했는데 그것도 밖으로 튕겨 나가는 줄 알고 힘들었다.

그러다 본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강릉 설악산과 강릉 쪽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바닷가에 미륵불을 보면서 그 미륵상이 미륵불로 바뀌어 살아 숨 쉬는 사람처럼 바뀌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억눌렸던 아이 들이라 출발하고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버스에서 놀기 시작한 것이 숙소에서 남학생은 아래층 여학생은 2층을 쓰도록 나누면서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있는 2층에 올라가 함께 놀게 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결국 합의를 본 것이 아래층에서 잠깐 춤추고 노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던 수학여행 피 끓는 청춘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보다는 다른 학교 수학여행 단의 여학생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기에 바빴고.

산골에서 자라면 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산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 아니면 양봉 같은 것에 대해 부모님이 가르쳐 주었다면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생활의 무기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도 산나물이나 버섯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잘 아는 싸리버섯 같은 게 보이면 따다가 먹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부모들은 누구나 너는 그런 거 배울 필요 없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는 한다. 한 번은 동네에 오이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오이를 수확하는데 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집에 오이를 따주고 오이를 얻어 와서 엄마에게 칭찬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엄마는 왜 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었냐고 오히려 야단을 치셨다. 공부나 할 것이지 누가 너더러 오이 얻어 오래 하고 말씀하셔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난 그 집이 어떻게 오이 농사를 짓는지 자세히 보고 아버지한테 우리도 오이 농사를 짓자고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농사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참외나 수박 농사를 짓는 집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고 과수원집은 사과 농사를 짓고 벼농사와 고추, 배추 농사를 짓는 우리 집 같은 집은 늘 비슷한 작물을 농사짓는다.

그것도 모종을 길러서 하는 농법이 아닌 직접 밭에 파종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나오지 않는 씨앗이 있으면 다시 뿌려야 했다.

바닷가를 보고 그 파도 소리가 두렵기보다 신기했던 것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었고 그 이유는 바다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하던 경남 사천에서 바다 내음은 일상이었다. 바다 갯냄새가 새롭고 좋았다. 왜냐하면 바다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넘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느끼는 것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군 생활을 바닷가에서 생활했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바닷가에 자주 갔다. 그리고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 살면서도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밴쿠버는 산도 좋고 바다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은 별로 없으니 바다가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산이 아차 잘못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는 편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이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은 산을 가면서도 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신문 보도에도 보면 히말라야 무슨 봉 정복 이렇게 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산은 한 번도 정복당한 일이 없다. 산은 산으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발자국을 내고 다녀갔을 뿐이다. 그것도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 흔적조차 없어진다. 산은 마을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어가서 직접 느끼는 산이 아주 많이 다르다. 산에 들어가 있으면 인간의 존재가 정말 아주 작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키가 높은 나무 와 아주 작은 나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더운 지방 정글의 산은 또 다르겠지 하는 상상을 한다. 더불어 산을 보면 아직도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바다도 아주 넓어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움직여도 파도나 태풍, 쓰나미 같은 재난에 아직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자연이 아직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들, 미역, 김, 파래, 소금을 비롯해 전복, 조개, 새우 생선, 멸치 등 우리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바다를 인간들은 그냥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알아서 정화되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자연은 인간이 버린 만큼 우리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것 같다. 기후 위기와 원자력발전의 오염수 방류로 시끄러운 이 시점에 사람들은 지구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낸 과학적 결과로는 지구 이외 어디에도 인간이 살아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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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이 들어갈수록 숨은 차지만
눈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바다
배를 타고 나가도
손끝에 바닷물을 적셔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잡으면 잡을수록 멀어지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날 보았다

바다가 파도치는 소리에
한 발 가까이 갔다
두 발 물러선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끝없이 밀어내는 나뭇가지 마스크 과자 봉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내 마음도 열었다 닫았다.

 





산
깊숙이 들어갈수록 숨은 차지만
눈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바다
배를 타고 나가도
손끝에 바닷물을 적셔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잡으면 잡을수록 멀어지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날 보았다

바다가 파도치는 소리에
한 발 가까이 갔다
두 발 물러선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끝없이 밀어내는 나뭇가지 마스크 과자 봉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내 마음도 열었다 닫았다.

 







#작가의 변
난 충청북도 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넓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저녁마다 서쪽 산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저 산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친구들끼리 면 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산길로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면 체육대회에 온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 산을 타면서 내리막길엔 엉덩이 미끄럼도 타고 어떤 곳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낮은 콘크리트 수로 터널을 지나기도 했는데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서 이거 끝나긴 하는 거야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산에 올라가도 뾰족한 정상 부위는 잘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청룡 열차도 어지럽고 겁이 나서 티지 못했다. 즉 지금까지 한 번도 청룡 열차를 타보지 못했다. 그것보다 단계가 낮은 그냥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긴 했는데 그것도 밖으로 튕겨 나가는 줄 알고 힘들었다.

그러다 본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강릉 설악산과 강릉 쪽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바닷가에 미륵불을 보면서 그 미륵상이 미륵불로 바뀌어 살아 숨 쉬는 사람처럼 바뀌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억눌렸던 아이 들이라 출발하고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버스에서 놀기 시작한 것이 숙소에서 남학생은 아래층 여학생은 2층을 쓰도록 나누면서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있는 2층에 올라가 함께 놀게 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결국 합의를 본 것이 아래층에서 잠깐 춤추고 노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던 수학여행 피 끓는 청춘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보다는 다른 학교 수학여행 단의 여학생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기에 바빴고.

산골에서 자라면 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산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 아니면 양봉 같은 것에 대해 부모님이 가르쳐 주었다면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생활의 무기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도 산나물이나 버섯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잘 아는 싸리버섯 같은 게 보이면 따다가 먹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부모들은 누구나 너는 그런 거 배울 필요 없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는 한다. 한 번은 동네에 오이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오이를 수확하는데 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집에 오이를 따주고 오이를 얻어 와서 엄마에게 칭찬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엄마는 왜 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었냐고 오히려 야단을 치셨다. 공부나 할 것이지 누가 너더러 오이 얻어 오래 하고 말씀하셔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난 그 집이 어떻게 오이 농사를 짓는지 자세히 보고 아버지한테 우리도 오이 농사를 짓자고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농사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참외나 수박 농사를 짓는 집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고 과수원집은 사과 농사를 짓고 벼농사와 고추, 배추 농사를 짓는 우리 집 같은 집은 늘 비슷한 작물을 농사짓는다.

그것도 모종을 길러서 하는 농법이 아닌 직접 밭에 파종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나오지 않는 씨앗이 있으면 다시 뿌려야 했다.

바닷가를 보고 그 파도 소리가 두렵기보다 신기했던 것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었고 그 이유는 바다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하던 경남 사천에서 바다 내음은 일상이었다. 바다 갯냄새가 새롭고 좋았다. 왜냐하면 바다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넘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느끼는 것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군 생활을 바닷가에서 생활했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바닷가에 자주 갔다. 그리고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 살면서도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밴쿠버는 산도 좋고 바다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은 별로 없으니 바다가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산이 아차 잘못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는 편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이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은 산을 가면서도 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신문 보도에도 보면 히말라야 무슨 봉 정복 이렇게 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산은 한 번도 정복당한 일이 없다. 산은 산으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발자국을 내고 다녀갔을 뿐이다. 그것도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 흔적조차 없어진다. 산은 마을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어가서 직접 느끼는 산이 아주 많이 다르다. 산에 들어가 있으면 인간의 존재가 정말 아주 작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키가 높은 나무 와 아주 작은 나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더운 지방 정글의 산은 또 다르겠지 하는 상상을 한다. 더불어 산을 보면 아직도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바다도 아주 넓어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움직여도 파도나 태풍, 쓰나미 같은 재난에 아직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자연이 아직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들, 미역, 김, 파래, 소금을 비롯해 전복, 조개, 새우 생선, 멸치 등 우리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바다를 인간들은 그냥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알아서 정화되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자연은 인간이 버린 만큼 우리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것 같다. 기후 위기와 원자력발전의 오염수 방류로 시끄러운 이 시점에 사람들은 지구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낸 과학적 결과로는 지구 이외 어디에도 인간이 살아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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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난 충청북도 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넓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저녁마다 서쪽 산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저 산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친구들끼리 면 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산길로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면 체육대회에 온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 산을 타면서 내리막길엔 엉덩이 미끄럼도 타고 어떤 곳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낮은 콘크리트 수로 터널을 지나기도 했는데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서 이거 끝나긴 하는 거야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산에 올라가도 뾰족한 정상 부위는 잘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청룡 열차도 어지럽고 겁이 나서 티지 못했다. 즉 지금까지 한 번도 청룡 열차를 타보지 못했다. 그것보다 단계가 낮은 그냥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긴 했는데 그것도 밖으로 튕겨 나가는 줄 알고 힘들었다.

그러다 본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강릉 설악산과 강릉 쪽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바닷가에 미륵불을 보면서 그 미륵상이 미륵불로 바뀌어 살아 숨 쉬는 사람처럼 바뀌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억눌렸던 아이 들이라 출발하고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버스에서 놀기 시작한 것이 숙소에서 남학생은 아래층 여학생은 2층을 쓰도록 나누면서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있는 2층에 올라가 함께 놀게 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결국 합의를 본 것이 아래층에서 잠깐 춤추고 노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던 수학여행 피 끓는 청춘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보다는 다른 학교 수학여행 단의 여학생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기에 바빴고.

산골에서 자라면 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산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 아니면 양봉 같은 것에 대해 부모님이 가르쳐 주었다면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생활의 무기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도 산나물이나 버섯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잘 아는 싸리버섯 같은 게 보이면 따다가 먹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부모들은 누구나 너는 그런 거 배울 필요 없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는 한다. 한 번은 동네에 오이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오이를 수확하는데 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집에 오이를 따주고 오이를 얻어 와서 엄마에게 칭찬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엄마는 왜 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었냐고 오히려 야단을 치셨다. 공부나 할 것이지 누가 너더러 오이 얻어 오래 하고 말씀하셔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난 그 집이 어떻게 오이 농사를 짓는지 자세히 보고 아버지한테 우리도 오이 농사를 짓자고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산
깊숙이 들어갈수록 숨은 차지만
눈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바다
배를 타고 나가도
손끝에 바닷물을 적셔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잡으면 잡을수록 멀어지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날 보았다

바다가 파도치는 소리에
한 발 가까이 갔다
두 발 물러선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끝없이 밀어내는 나뭇가지 마스크 과자 봉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내 마음도 열었다 닫았다.

 







#작가의 변
난 충청북도 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넓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저녁마다 서쪽 산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저 산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친구들끼리 면 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산길로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면 체육대회에 온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 산을 타면서 내리막길엔 엉덩이 미끄럼도 타고 어떤 곳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낮은 콘크리트 수로 터널을 지나기도 했는데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서 이거 끝나긴 하는 거야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산에 올라가도 뾰족한 정상 부위는 잘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청룡 열차도 어지럽고 겁이 나서 티지 못했다. 즉 지금까지 한 번도 청룡 열차를 타보지 못했다. 그것보다 단계가 낮은 그냥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긴 했는데 그것도 밖으로 튕겨 나가는 줄 알고 힘들었다.

그러다 본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강릉 설악산과 강릉 쪽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바닷가에 미륵불을 보면서 그 미륵상이 미륵불로 바뀌어 살아 숨 쉬는 사람처럼 바뀌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억눌렸던 아이 들이라 출발하고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버스에서 놀기 시작한 것이 숙소에서 남학생은 아래층 여학생은 2층을 쓰도록 나누면서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있는 2층에 올라가 함께 놀게 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결국 합의를 본 것이 아래층에서 잠깐 춤추고 노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던 수학여행 피 끓는 청춘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보다는 다른 학교 수학여행 단의 여학생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기에 바빴고.

산골에서 자라면 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산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 아니면 양봉 같은 것에 대해 부모님이 가르쳐 주었다면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생활의 무기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도 산나물이나 버섯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잘 아는 싸리버섯 같은 게 보이면 따다가 먹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부모들은 누구나 너는 그런 거 배울 필요 없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는 한다. 한 번은 동네에 오이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오이를 수확하는데 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집에 오이를 따주고 오이를 얻어 와서 엄마에게 칭찬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엄마는 왜 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었냐고 오히려 야단을 치셨다. 공부나 할 것이지 누가 너더러 오이 얻어 오래 하고 말씀하셔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난 그 집이 어떻게 오이 농사를 짓는지 자세히 보고 아버지한테 우리도 오이 농사를 짓자고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농사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참외나 수박 농사를 짓는 집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고 과수원집은 사과 농사를 짓고 벼농사와 고추, 배추 농사를 짓는 우리 집 같은 집은 늘 비슷한 작물을 농사짓는다.

그것도 모종을 길러서 하는 농법이 아닌 직접 밭에 파종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나오지 않는 씨앗이 있으면 다시 뿌려야 했다.

바닷가를 보고 그 파도 소리가 두렵기보다 신기했던 것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었고 그 이유는 바다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하던 경남 사천에서 바다 내음은 일상이었다. 바다 갯냄새가 새롭고 좋았다. 왜냐하면 바다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넘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느끼는 것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군 생활을 바닷가에서 생활했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바닷가에 자주 갔다. 그리고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 살면서도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밴쿠버는 산도 좋고 바다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은 별로 없으니 바다가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산이 아차 잘못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는 편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이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은 산을 가면서도 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신문 보도에도 보면 히말라야 무슨 봉 정복 이렇게 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산은 한 번도 정복당한 일이 없다. 산은 산으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발자국을 내고 다녀갔을 뿐이다. 그것도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 흔적조차 없어진다. 산은 마을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어가서 직접 느끼는 산이 아주 많이 다르다. 산에 들어가 있으면 인간의 존재가 정말 아주 작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키가 높은 나무 와 아주 작은 나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더운 지방 정글의 산은 또 다르겠지 하는 상상을 한다. 더불어 산을 보면 아직도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바다도 아주 넓어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움직여도 파도나 태풍, 쓰나미 같은 재난에 아직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자연이 아직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들, 미역, 김, 파래, 소금을 비롯해 전복, 조개, 새우 생선, 멸치 등 우리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바다를 인간들은 그냥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알아서 정화되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자연은 인간이 버린 만큼 우리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것 같다. 기후 위기와 원자력발전의 오염수 방류로 시끄러운 이 시점에 사람들은 지구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낸 과학적 결과로는 지구 이외 어디에도 인간이 살아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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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참외나 수박 농사를 짓는 집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고 과수원집은 사과 농사를 짓고 벼농사와 고추, 배추 농사를 짓는 우리 집 같은 집은 늘 비슷한 작물을 농사짓는다.

그것도 모종을 길러서 하는 농법이 아닌 직접 밭에 파종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나오지 않는 씨앗이 있으면 다시 뿌려야 했다.

바닷가를 보고 그 파도 소리가 두렵기보다 신기했던 것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었고 그 이유는 바다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하던 경남 사천에서 바다 내음은 일상이었다. 바다 갯냄새가 새롭고 좋았다. 왜냐하면 바다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넘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느끼는 것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군 생활을 바닷가에서 생활했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바닷가에 자주 갔다. 그리고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 살면서도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밴쿠버는 산도 좋고 바다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은 별로 없으니 바다가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산이 아차 잘못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는 편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이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은 산을 가면서도 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신문 보도에도 보면 히말라야 무슨 봉 정복 이렇게 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산은 한 번도 정복당한 일이 없다. 산은 산으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발자국을 내고 다녀갔을 뿐이다. 그것도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 흔적조차 없어진다. 산은 마을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어가서 직접 느끼는 산이 아주 많이 다르다. 산에 들어가 있으면 인간의 존재가 정말 아주 작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키가 높은 나무 와 아주 작은 나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더운 지방 정글의 산은 또 다르겠지 하는 상상을 한다. 더불어 산을 보면 아직도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바다도 아주 넓어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움직여도 파도나 태풍, 쓰나미 같은 재난에 아직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자연이 아직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들, 미역, 김, 파래, 소금을 비롯해 전복, 조개, 새우 생선, 멸치 등 우리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바다를 인간들은 그냥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알아서 정화되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자연은 인간이 버린 만큼 우리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것 같다. 기후 위기와 원자력발전의 오염수 방류로 시끄러운 이 시점에 사람들은 지구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낸 과학적 결과로는 지구 이외 어디에도 인간이 살아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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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깊숙이 들어갈수록 숨은 차지만
눈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바다
배를 타고 나가도
손끝에 바닷물을 적셔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잡으면 잡을수록 멀어지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날 보았다

바다가 파도치는 소리에
한 발 가까이 갔다
두 발 물러선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끝없이 밀어내는 나뭇가지 마스크 과자 봉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내 마음도 열었다 닫았다.

 







#작가의 변
난 충청북도 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넓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저녁마다 서쪽 산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저 산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친구들끼리 면 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산길로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면 체육대회에 온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 산을 타면서 내리막길엔 엉덩이 미끄럼도 타고 어떤 곳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낮은 콘크리트 수로 터널을 지나기도 했는데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서 이거 끝나긴 하는 거야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산에 올라가도 뾰족한 정상 부위는 잘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청룡 열차도 어지럽고 겁이 나서 티지 못했다. 즉 지금까지 한 번도 청룡 열차를 타보지 못했다. 그것보다 단계가 낮은 그냥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긴 했는데 그것도 밖으로 튕겨 나가는 줄 알고 힘들었다.

그러다 본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강릉 설악산과 강릉 쪽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바닷가에 미륵불을 보면서 그 미륵상이 미륵불로 바뀌어 살아 숨 쉬는 사람처럼 바뀌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억눌렸던 아이 들이라 출발하고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버스에서 놀기 시작한 것이 숙소에서 남학생은 아래층 여학생은 2층을 쓰도록 나누면서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있는 2층에 올라가 함께 놀게 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결국 합의를 본 것이 아래층에서 잠깐 춤추고 노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던 수학여행 피 끓는 청춘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보다는 다른 학교 수학여행 단의 여학생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기에 바빴고.

산골에서 자라면 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산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 아니면 양봉 같은 것에 대해 부모님이 가르쳐 주었다면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생활의 무기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도 산나물이나 버섯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잘 아는 싸리버섯 같은 게 보이면 따다가 먹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부모들은 누구나 너는 그런 거 배울 필요 없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는 한다. 한 번은 동네에 오이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오이를 수확하는데 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집에 오이를 따주고 오이를 얻어 와서 엄마에게 칭찬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엄마는 왜 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었냐고 오히려 야단을 치셨다. 공부나 할 것이지 누가 너더러 오이 얻어 오래 하고 말씀하셔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난 그 집이 어떻게 오이 농사를 짓는지 자세히 보고 아버지한테 우리도 오이 농사를 짓자고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농사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참외나 수박 농사를 짓는 집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고 과수원집은 사과 농사를 짓고 벼농사와 고추, 배추 농사를 짓는 우리 집 같은 집은 늘 비슷한 작물을 농사짓는다.

그것도 모종을 길러서 하는 농법이 아닌 직접 밭에 파종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나오지 않는 씨앗이 있으면 다시 뿌려야 했다.

바닷가를 보고 그 파도 소리가 두렵기보다 신기했던 것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었고 그 이유는 바다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하던 경남 사천에서 바다 내음은 일상이었다. 바다 갯냄새가 새롭고 좋았다. 왜냐하면 바다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넘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느끼는 것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군 생활을 바닷가에서 생활했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바닷가에 자주 갔다. 그리고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 살면서도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밴쿠버는 산도 좋고 바다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은 별로 없으니 바다가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산이 아차 잘못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는 편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이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다. 많은 사람은 산을 가면서도 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신문 보도에도 보면 히말라야 무슨 봉 정복 이렇게 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산은 한 번도 정복당한 일이 없다. 산은 산으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발자국을 내고 다녀갔을 뿐이다. 그것도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 흔적조차 없어진다. 산은 마을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어가서 직접 느끼는 산이 아주 많이 다르다. 산에 들어가 있으면 인간의 존재가 정말 아주 작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키가 높은 나무 와 아주 작은 나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더운 지방 정글의 산은 또 다르겠지 하는 상상을 한다. 더불어 산을 보면 아직도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바다도 아주 넓어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움직여도 파도나 태풍, 쓰나미 같은 재난에 아직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자연이 아직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들, 미역, 김, 파래, 소금을 비롯해 전복, 조개, 새우 생선, 멸치 등 우리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바다를 인간들은 그냥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알아서 정화되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자연은 인간이 버린 만큼 우리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것 같다. 기후 위기와 원자력발전의 오염수 방류로 시끄러운 이 시점에 사람들은 지구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낸 과학적 결과로는 지구 이외 어디에도 인간이 살아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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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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