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국회의원들의 신행단체인 ‘국회정각회(國會正覺會)’가 4월 27일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국회정각회는 여야 정당을 초월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자의원들이 불교를 외호하고 불교계와 정치권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국회정각회(회장 주호영)은 5월 10일 오전 7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창립 40주년 행사를 갖는다. 국회정각회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정병국 국민의힘 국책자문위원이 정각회 탄생 40주년을 축하하며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국회정각회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어느덧 국회정각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였다니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먼저 가신 정암 혜명(停岩 慧明) 권익현 대표님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권익현 전 대표님은 격변기였던 제5공화국 시절에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을 거쳐 당 대표위원과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역임하고, 민주화의 시발점인 3당 합당에 이어 김종필 총재와 함께 김영삼 대통령 후보 추대 공동위원장으로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분이기도 하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평소 건강하던 분이 갑작스러운 병고로 제15대 국회를 끝으로 의정 단상에서 내려오신 분이다.
권 대표님과의 인연은 분명 불연(佛緣)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물론 동국대학교 재학 중에 손양호, 고영준, 한보광스님, 이만, 장현재 법우 등과 함께 불교학생회(동불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전국의 산사를 순례하며 고승대덕 스님들의 법문을 경청하면서 마음공부를 하게 되었다. 더욱이 탄허, 일붕스님 등께 직접 수학도 하였고, 경봉, 성철스님을 비롯한 당대 큰스님들을 친견했지만, 197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행정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부터는 가끔 북한산 승가사에 들러 기도 정진하는 평범한 불자에 불과하였다.
1979년 7월 제2무임소장관실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장관 직무대행 차관으로 부임하신 권익현 대표님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다 대표님께서 경남 거창, 함양, 산청 지역구에서 제1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함께 정치활동을 해보자는 대표님의 권유에 의해 행정부에서 국회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 나의 인생경로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20여 년을 보좌하면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큰 어른이셨기에 지금도 그분께 배우고 터득한 하나하나가 삶의 지표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또, 불자로서 신심은 더할 나위가 없었기에 불교와 관련된 일뿐 아니라, 귀동냥으로 얻은 현안들을 보고드리면 옳고 그름을 바로 지적하며 과감성 있게 실행에 옮기는 실천자이셨다.
2017년 6월 한국마사회 상임감사로 부임하게 된 나는 병환중인 대표님을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그때 내 손을 잡으시며 “자네에게 늘 마음의 빚이 있었네. 어디든 근무 잘하게”라는 격려 말씀과 함께, “퇴원하는 대로 경마장에 꼭 한번 축하 방문하겠다”고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한 달 후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게 되었으니,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삼가 대표님의 명복을 빌면서 대표님이 이뤄놓으신 국회 정각회의 창립과정과 당시 상황을 그려보고자 한다.
제11대 국회가 개원되고 2년 차인 1982년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국회의원회관 게시판 부착된 ‘국회 기도회’ 행사안내문을 보면서 문득 스치듯 ‘국회에 기독교 모임이 있으면 불교 모임도 가능하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국회사무처 총무과로 달려가 총무과장에게 국회의원 종교 현황을 물었고, 종교란에 불교와 무교라고 기재된 100여 명의 의원 명단을 발굴하여 대표님께 상황설명을 드렸다.
그러자 대표님께서는 ‘국회 불교모임’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시면서, 한편으로는 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당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존경할만한 원로 불자의원을 추천해 주셨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으로 고명하신 송지영 의원을 찾아뵙고 협조를 구하니, 쾌히 동참을 승낙하여 창립 준비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창립준비 간사를 맡은 나는 송지영 의원을 모시고 명단의 100여명 의원들을 한분 한분 만나 그 필요성을 역설한 끝에 총 87명 의원의 가입승낙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종교란에 무교라고 기재된 대부분 의원들이 실상은 불교 신도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었다. 5개월여의 준비기간 동안 대표님께서 조계종 총무원장 황진경 스님도 찾아뵙고, 평소 친분이 있던 성수, 녹원, 의현스님을 비롯한 대덕 스님들께 자문하는 등 창립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1983년 4월 27일은 대한민국 헌법기관인 국회에 정파를 초월한 불자 국회의원들의 신행단체인 ‘국회정각회(國會正覺會)’가 결성되고, 권익현 의원을 초대 회장으로 출범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국회정각회’는 성수 큰스님이 이름을 지어주셨고, 그전에도 소규모 모임은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정식으로 국회 등록단체로 출범하게 된 것이 더욱 큰 사건이자 불교계로서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당시 적극적으로 정각회 출범에 앞장서 주셨던 윤길중, 정재철, 박권흠, 서석재, 곽정출, 배명국, 박현태, 하순봉 의원님이 생각나며, 그 후 손태곤, 함종한 의원님의 활동도 눈부셨다.
국회정각회는 불교를 외호(外護)하는 호법신장(護法神將)으로서, 불교계와 정치권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면서 우리 불교계의 오랜 숙원사업인 현안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풀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불교재산관리법, 전통사찰보존법, 문화재보호법, 자연공원법 등을 제·개정하게 되었고, 불교방송 개국, 군종장교 비율조정, 경승제도 신설 등 잠자고 있던 불교계 현안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활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군종장교의 종교간 비율조정 문제는 권 대표님께서 국회 상임위를 국방위원회로 옮기면서까지 해결하셨다. ‘매주 주말에 일선 부대장들의 영내 특정종교 활동으로 불자 병사들이 위축되고 있다’는 해군 하사관으로부터 제기된 민원에 대해, 국방부 장관령으로 군 부대장들의 부대 내 주말 종교활동을 금지하게 하는 등의 크고 작은 현안들을 해결하였다. 또, 국립공원 안에 있는 천년고찰과 대소사찰의 주변 주민들과의 묵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 정책모임인 ‘국립공원 발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종교를 초월한 여야 의원 42명으로 결성하고, 국립공원 지정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러던 중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통해 불교 현안을 좀 더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 보좌진 42명으로 구성된 ‘국회법우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초대 회장을 맡게 된 나는 파주 보광사에서 효림스님을 모시고 창립법회를 가진 후 불교현안 해결의 실무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당시에 열성적으로 함께했던 김영국, 이건식, 백황선, 김용주, 정병귀, 박광명, 박광무, 오도성, 박충식 보좌관 등 숨은 역군들의 노고에 지금까지도 감사하고 있다.
그러다 제14대 국회였던 1995년 4월 27일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기관인 국회 본관에 불교법당인 ‘정각선원(正覺禪院)’이 개설되었다. 봉선사 운경 큰스님께서 당호(堂號)를 지어주신 국회 법당 ‘정각선원’의 개원불사도 우연한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새로 생긴 의원회관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지하통로를 지나다 우연히 ‘국회기도실’이라는 조그만 교회 간판을 발견하였다. 그 길로 바로 권 대표님과 의논을 거쳐 당시 이종률 국회 사무총장을 찾아가 “작은 창고라도 좋으니 공간을 할애해 달라”고 간청하여 본관 지하 1층에 역사적인 국회 법당인 ‘정각선원’을 개설하게 되었고, 마침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던 내곡보살님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목탱화를 기증받아 정각선원에 모실 수 있었다. 그렇게 정각선원 불사를 진행하던 중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요청으로 가톨릭 기도실인 ‘국회경당’도 개설되어, 본관 지하 1층에는 세 종교 시설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그렇게 개원한 국회 법당 정각선원은 ‘국회직원 불교신도회’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하고 기도를 올리는 등 부처님 모시는 데에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다고 하니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국회가 존재하는 한 ‘국회정각회’가 정파를 초월한 화쟁정신을 실천하는 신행모임으로서, 국가발전과 국민화합을 성취하는데 지혜를 모으고, 불교발전을 이루어 나가는데 그 몫을 다해주기를 서원한다. 그리고 더욱 더 발전해 나가는 ‘국회정각회’에 대한 불자들의 여망과 기대에 부응해 신심 있는 주호영 정각회장님을 비롯한 불자의원님들의 각별한 관심과 동참이 이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라건대 다가오는 제22대 국회에서는 더욱 많은 불자 인재가 의정 단상에 진출하여 불교 발전과 국가 발전에 큰 보탬이 되는 국회정각회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2023년 4월
국회법우회 초대 회장 정병국 합장
#정병국 위원장은 울산 출신으로, 2007년 대한불교조계종으로부터 특별공로상과 2011년 신도 최고 법계인 선혜를 품수 받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지도위원과 국민의힘 국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당사상 처음으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불교신도회 창립을 주도했다. 한국마사회 상임감사로 재직하면서 마사회 법우회를 결성하는 등 불교 홍포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살아보니 소속당이나 단체가 문제가 아니고 개별 사람이 문제이더이다.
그래서 저는 당을 보고 평가하거나 단체를 평가하는게 아니라 개별 사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가끔 속는 수도 있지만.
정각회의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