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출가자는 61명으로 10년 만에 71% 감소한 수치라 한다. 올해 상반기 행자 수료자는39명이란다. 향후 이 추세라면 조계종의 소의 경전인 금강경과 그 핵심인 사구게를 일러 줘서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쌓는 일은 고사하고 송주(誦呪)조차 독송할 승려가 부재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출가자 감소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렇다 할 종단의 대책은 십수년째 깜깜 종무소식이다.
문제는 종단의 살림을 책임진 고위급들이 과연 출가자 감소에 대한 절박감이 있느냐는 것이다. 당장 무엇인가 보이는 유형적 불사에는 천착하면서도 정작 백년대계를 위한 인재불사, 도제양성은 외면하고 있음이다. 출가자가 있어야 포교도 가능하고 종단의 인적 구성도 탄탄해질 것이 아닌가?
종단이나 권승들이 출가자의 증원을 위한 불사나 기금조성에 대대적으로 나섰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경주 남산의 열암곡 불상을 기립하는 불사가 왜 이목이 집중된 우선의 사업이 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불사 자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쳇말로 “뭣이 중헌디?”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기 때문이다.
종단을 책임진 스님들이라면 현 조계종의 현실에 위기감을 갖고서 대안을 생산해서 제시하고 시행해야 한다. 연령면에 있어서나 건강성에서 젊은 종단을 장엄하는 일이 급선무다. 어려웠던 과거시절에는 “절에 가면 굶지는 않는다.”면서 가족마저도 출가를 권장하거나 그러한 연유로 부모 손에 잡혀 출가한 스님들도 다수다.
절대적 빈곤 문제가 해결된 현 시대에 출가를 유도하려면 굶주린 배를 채우는 그 이상의 무엇, 절에 들어오면 이(理)적이든 사(事)적이든 사회에서 경험하거나 얻지 못했던 것들을 절집 생활을 통해 경험하고 얻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실존적 고민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희망이 있어야 한다. 출가생활에서 오는 감동과 출가자에 대한 종단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불교와 조계종단이 되어야 한다.
지난 1월17일 혜일 스님은 교육원장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61명에 그쳤던 출가자 수를 3년 후 150명, 5년 후 200명까지 증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런 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갔다. 해인사 주지로 간 것을 무어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해인사 행자실에 행자를 임기 내에 2, 30명으로 채우겠다는 일성을 기대해 보았는데 없기에 하는 말이다.
<불교신문> 보도에 의하면 신임 원로회의 의장 자광 스님은 인사말에서 “종단은 최근 출가자 감소를 비롯해 신도수 급감의 상황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며 “원로의원들도 마음을 모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다. 신임 의장스님이 출가자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셨음은 다행이며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돕는 정도가 아니라 원로회의 산하에 가칭 출가자 증원 대책위원회라도 구성해서 매월 진행사항을 직접 챙겨야 할 것이다.
금강경 제18.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은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오안(五眼)에 관해 묻고 답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여래에게는 육안(肉眼), 천안(天眼), 지혜의 안(慧眼), 법의 안(法眼), 깨달은 사람의 눈(佛眼)이 있을까?” 라고 묻자 수보리는 여래에게는 그러한 눈들이 있다고 답하고 있다.
조계종단의 운영진은 어찌되었든 능력 있는 스님들의 집합체이기에 육안(肉眼), 천안(天眼), 지혜의 안(慧眼), 법의 안(法眼), 깨달은 사람의 눈(佛眼)이 집단성으로 구족돼 있어야 한다. 출가자와 신도 수가 급감하는데 성과를 이룩할 대책이 없거나 무엇이 종단의 우선적 불사며 나아갈 방향인지 모른다면 오안은커녕 기본적인 안목마저도 부재함을 스스로 증명함이 아닐까 한다.
금강경은 말하고 있다. “훌륭한 젊은이 훌륭한 딸들이 지혜의 완성이라는 법문 중에서 사행시 하나라도 받들어서 기억하고, 외우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세히 설명해 들어준다고 하면 이쪽이 그 일로 말미암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더 많은 공덕을 쌓은 일이 된다.”고.
/法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