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백두산에서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 이혜조
  • 승인 2008.09.25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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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르포-2] 안개 속 천지를 분간할 수 없으되 법회는 봉행

개마고원의 중심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선 평양비행장서 삼지연비행장까지 다시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 비행공포증이 극심한 기자로선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추가요금 200달러까지 낸 마당에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날 취재를 위해 여기여기 쏘다니며 마신 술은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1시간 후 단잠을 깨고 천근같은 몸을 이끌고 아침을 한 술 떴다.

억지로 비행기에 실은 몸은 50여분만에 광활하게 펼쳐진 삼지연비행장 상공을 날고 있었다. 삼지연비행장은 평양공항과는 사뭇 달랐다. 시골 버스정류장을 연상케할 정도로 생경했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이 공항 울타리를 대신했다. 재래식 위생실(화장실)에는 화장지도 없었다.

기온은 영상4도. 13인승 미니버스에 나눠탄 일행은 낙엽송이 좌우로 늘어서 시립한 포장 비포장길을 연이어 달렸다. 길은 순탄치 않았다. 덜컹거리는 수준을 넘었다. 일행 중 하나가 "말 타는 것 같다"고 했다. 버스가 출렁거릴때마다 뒷 좌석에서는 외마디 비명이 터지기도 했다. 머리가 버스 천장에 닿기 일수고, 몇차례 혀를 깨물기도 했다.

1시간 30분을 달리자 개마고원이 민둥산을 드러냈다. 곳곳에 화재의 흔적이 역력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의 수종과 빛깔이 천양지차다. 곰과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안내 간판도 눈에 들어왔다.

천지까지 버스가 오를수 있도록 현무암으로 닦아놓은 길이 이채로왔다. 수년 이상 걸린 난공사임을 엿볼 수 있었다. 때로는 급경사에 간담이 서늘해 지기도 했다. 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는 외국인 차량들도 더러 있었다. 이 길은 연간 강수량 1,500mm에도 물빠짐이 좋단다. 숭숭뚫린 구멍탓에 급경사에서도 차 미끄럼짐을 방지한다고 한 참사가 설명했다.

해발 2,744m 북위 41'01''. 백색의 부석이 눈처럼 뿌려져 있었다. 백두산이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라는 흰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글자 한 자가 집채만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정상까지는 궤도 버스가 가파른 경사위에 매달려있었다.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거센바람에 부석들이 우박처럼 온몸을 때렸다. 장군봉까지 걸어가는 길은 그래서 무척 힘들었다.

얇은 복장의 북측 해설사는 코끝이 구기자처럼 붉어져도 10여분간 안내를 멈추지 않았다. 짙은 안개에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 건강이상설과 이후 북한의 변화가 이와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미쳤다. 천지는 아뜩한 낭떠러지로 보였다. 곧 안개가 걷히기도 한다는 해설사의 말을 마냥기대할 수는 없어 서둘러 간이 법회를 끝냈다.

진관 스님은 "목탁치는 손이 너무 시럽다"고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청껏 불렀다. 안개속 장엄한 울림이었다. 일행이 내민 30도짜리 송악소주를 사발 채 들이키자 금새 몸에 온기가 돌았다. 버스 안에 들어와서야 머리 속이 온통 화산재로 범벅된 걸 알았다. 영상 29도였던 평양과는 극과 극이다. 새벽까지 마신 술탓에 방한복을 호텔에 두고 온 것이 두고두고 후회됐다.

백두산 중턱 밀영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운 일행은 버스로 다시 김일성 부자가 한 때 머물렀던 밀영으로 이동했다. 오솔길 옆 70-100m깊이의 계곡 아래로 압록강이 흘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중국땅이 와 있었다. 그들은 저 땅을 장백산이라 부르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했다. 동북아공정이다. 중국은 평양 등 곳곳의 사업권을 이미 따냈다. 호텔 내 사우나 등은 중국사람들이 운영 중이다. 북한 내 생필품의 대부분도 '메이드 인 차이나'다. 심양과 베이징에서 평양공항을 왕복하는 비행기에는 중국인들로 넘쳐났다. 중국의 치밀한 예속은 백두산을 넘어오는 안개처럼 빨랐다.

하산 길에 만난 자작나무 군락에서는 겨울채비를 끝낸 듯 잎을 떨군 자작나무들이 하얗게 몸을 움추리고 있었다. 흰색과 노란 낙엽송의 어울림은 북한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으로 작용했을성 싶다.

정일봉 아래에 도착한 것은 40분 뒤. 우뚝솟은 바위에 붉은 글씨로 '정일봉'이라고 새겨놓았다. 지난 5월 금성학원을 방문했을 때 5-6세 유치원생들이 '정일봉. 아, 정일봉!'이라고 외쳤던 산이 바로 이 곳이었다. 안개가 자주 시야를 가렸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김일성의 밀영을 방문한 중국 군인들이 북한 군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도시락을 준비해준 6명의 식사조 아가씨들도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모처럼의 외출임을 짐작케했다.

이어 도착한 삼지연은 백두산 화산 폭발전까지 흐르던 강이었다고 한다. 3개의 연못이 연이어 있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김일성이 기념촬영한 장소에는 돌 표지석까지 세워놨다. 흐르지 못하는 강은 여기서 연못이 되어 달과 해를, 낙엽송과 자작나무를 비추고 있었다. 강가에는 18m 높이의 김일성 동상, 50m의 횃불탑 등 웅장한 상징물들이 무심하게 우뚝 솟아있었다.

<3부- 평양에 종교편향은 없었다 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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