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평온, 南 취재진만 발동동
평양은 평온, 南 취재진만 발동동
  • 이혜조
  • 승인 2008.09.24 20: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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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르포] 김 위원장 와병설 이후 첫 직항로 방북 3박4일



▲ 남측의 국회도서관에 해당하는 인민대학습당에서 내려본 23일 오전10시 평양시내. 시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전기로 움직이는 버스들도 연신 시민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건너편에 흐르는 강이 대동강이다. ⓒ2008 불교닷컴 

평양은 평온했다.

7.11 금강산 피격사건과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 이후 첫 직항로를 통해 대규모 방북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일행이 평양공항에 도착한 것은 20일 오후 4시께.

남측의 소란과 달리 북측은 조용했고 방북단을 반갑게 맞았다. 지난 5월 포퓰러나무에서 내리던 눈꽃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모내기를 하던 평양들판은 노랗게 익어 있었다.

한두군데 논배미는 가을걷이를 끝냈다. 여전히 소달구지가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 옆을 지나쳤고 자전거는 그들의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다. 걸망을 짊어진 주민들은 남측 방문객을 향해 연신 반가운 손사례를 쳤다.

평양시내 3곳의 국제호텔 가운데 하나인 양각도호텔에 도착, 짐을 풀고 북측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리충복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부회장은 김정일 와병설에 대해 "남측에서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석한 남측 인사가 "위원장 와병설은, (와병 상황이)유리한 사람들이 꺼낸 말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응수했다.

평온한 시내 풍경과 달리 참사관(대남사업 관계자들의 통칭)의 입은 예전보다 무거웠다. 낮익은 이들도 위원장 와병설을 묻는 남측 기자의 질문에 입을 닫았다. 연이어 묻자 "그런 건 묻는 게 아닙네다"라며 정중히 답을 거절했다. 한 참사는 "남측 언론보도를 보고 우리도 알았습네다"라고만 했다. 와병설 취재가 화두였던 기자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제11회 평양국제영화축제와 겹쳐 양각도호텔에는 외국인이 많았다. 홍상수 박찬욱 감독을 잘안다는 파리의 한 영화감독은 늦은 저녁 취재진과 술자리에 동석했다. 동행한 자기나라의 영화배우, 마케팅 관계자를 대동한 자리였다. 남측에서는 왔다는 말에 이들은 적이 놀라워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할 예정이란다. 이들도 김정일 와병설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짧게 말했다.

이들은 남과 북이 통일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한반도의 주요지점을 사진으로 정리한 책자까지 내보였다. 책자의 표지에는 남과 북을 분단선없이 파란색으로 그렸고, 중요한 포인트라며 독도와 울릉도를 명기한 지도를 그려놓았다.

21일 오전 일찍부터 만경대를 찾았다. 김일성 수령의 생가다. 일정을 당겨 호텔서 출발한 까닭에 만경봉 정상의 만경대 정자까지 올라갔다. 지난 5월 소나무 방충을 위해 제공했던 약들을 투약한 흔적이 있었다. 때문인지 소나무는 푸르고 싱싱했다.



▲ 평양랭면으로 유명한 대동강변 옥류관 입구에 남측 방문단과 평양시민들이 뒤섞여 있다. 가족단위로 옥류관을 찾은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2008 불교닷컴

평양랭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은 북한의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을 맞아선지 북적댔다. 가족 또는 주민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동강변 옥류관 잔디밭에서 일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옥류관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명찰을 단 남측 일행을 단 번에 알아보고 신기한 듯 응시했다. 더러는 손을 흔드는 이도 있었다. 취재진을 의식한 탓인지 북측 주민과의 접촉이라도 있을세라 참사들의 경계가 보통을 넘었다.

옥류관 냉면 못지않은 관심은 2층 난관에서 평양 시내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능라도경기장과 주체탑, 멀리로는 일행이 묶는 양각도호텔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연신 음식이 나오는 중에도 난관에서는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뒤따라 월경한 남측 관계자들이 옥류관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 평양 정성의학종합쎈터 종합품질관리실 준공에 맞춰 북측이 단 현판을 보며 남북관계자들이 손뼉을 치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불교방송 등이 공동지원했음을 알리는 문구가 현판에 새겨져 있다. ⓒ2008 불교닷컴

오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불교방송이 지원한 정성의약종합쎈터 준공식이 열렸다. 곧이어 조선적십자병원 두경부외과 준공식도 있었다. 정성의학은 '우리민족'의 추가지원으로 주사약(링거)을 자체 생산하고 있었다. '우리민족'은 지난해 10월부터 6억5천만 원을 지원했다. 조선적십자병원 두경부외과병원 개원에는 올해 4억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런 지원에 대한 사의도 채 표명하기도 전에 MBC기자의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북측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조선적십자병원 두경부외과원장에 대한 기자들의 인터뷰가 화근이었다. '우리민족'이 방북할 당시 기자들의 월경은 허용했지만 취재는 허용하지 않았다며 취재행위를 트집잡았다. '우리민족'측의 지원에 대한 효과와 추가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사항을 묻는 기자에게 병원장이 별뜻이 답했으나 북측은 발끈했다.

북측은 급기야 호텔로 돌아와 촬영화면의 삭제를 요구했다. 와병설에 대한 취재는커녕 단순한 문답도 취재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시내촬영은 아예 금지됐고 휴일을 맞은 평양거리에 대한 서술에만 그칠판이었다. 만나는 이마다 인터뷰는 거절했다. 22일자 로동신문 1면 머리기사로 김정일위원장이 북한 내 몇 곳에 격려를 보냈다는 기사와 평양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방북했던 북한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와병이 사실일 경우 시민들의 움직임등이 위축되나 지금 분위기로는 와병설을 단정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실제 주민들의 움직임은 5월보다 활달했고 시내 여러 곳이 단장돼 있었다. 대로를 따라 추가로 궤도버스를 설치하는 작업들도 진행되고 있었다. 대동강과 지류인 보통강에는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길거리에서 물건과 청량음료를 파는 손수레 형태의 매대(판매대)가 많이 늘었다. 대동강변에서 양각도호텔로 들어서는 굴다리 밑에는 채소와 곡물류 등을 파는 노점상들 20여명도 5월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평양역에는 군인을 비롯해 기차를 기다리는 인파들로 넘쳐났다.

/ 평양 = 이혜조 기자

<2부-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에 오르다, 3부- 북한에선 종교편향 없었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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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2008-09-25 21:30:16
영담이 머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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