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운문화타(雲門話墮)
신무문관: 운문화타(雲門話墮)
  • 박영재 교수
  • 승인 2023.02.10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60.

성찰배경: 앞글에서 선종(禪宗) 초기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와 중국 천하를 양분했던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 선사들 계열 가운데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와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 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들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동시대를 호흡했던 석상경제(石霜慶諸, 807-888) 선사의 법을 이은 장졸수재(張拙秀才, ?-?) 거사의 게송이 <무문관(無門關)> 가운데 덕산-설봉 선사의 법을 이은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의 ‘운문화타(雲門話墮)’ 공안에 멋진 소재를 제공했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시대적인 제창 순서에 따라 먼저 덕산 선사 문하에서 암두전활(巖頭全豁, 828-887),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과 함께 참문했다가 계합하지 못하고 훗날 동산 선사의 법을 이은 흠산문수(欽山文邃, ?-?) 선사와 장졸 거사의 일화 및 ‘운문화타’ 공안에 대해 살피고자 합니다. 

◇ 흠산의 오도인연(悟道因緣)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7권에 흠산 선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주(澧州)의 흠산 선사는 복주(福州) 출신으로, 어려서 항주(杭州) 대자산(大慈山)의 환중(寰中) 선사에 의탁(依託)하여 공부를 하였다. 이 무렵 암두와스님과 설봉 스님이 무리 속에 있다가 흠산 스님이 토론(吐論)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고서 두 스님은 그를 인솔(引率)해 두루 운수행각(雲水行脚)을 떠났다. 그러다 두 스님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해 덕산 선사와 계합(契合)하여 둘 다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러나 흠산 스님은 비록 덕산 선사께서 아무리 자주 다그쳐도 끝내 의단(疑團)을 타파하지 못했다. 

훗날 흠산 스님은 동산 선사의 일전어(一轉語)에 즉시 깨닫고 동산 선사의 법을 이었다. 27세에 흠산(欽山)에 머물면서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이어 처음 동산 선사를 뵈었을 때 일화를 이야기하였다.

동산 선사께서 나에게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였고, 내가 ‘대자산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거듭 ‘대자산을 보았느냐?’고 묻기에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어 동산 선사께서 ‘대자산 앞쪽을 보았는가?, 대자산 뒷쪽을 보았는가?’라고 거듭 묻기에 ‘앞도 뒤도 아닌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 동산 선사께서 더이상 묻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흠산께서 ‘돌이켜 보니 스승님 곁을 너무 빨리 떠나서 당시 스승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했었네.’라고 술회하셨다.”

군더더기: 비록 흠산 선사께서 스승 곁을 일찍 떠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선종사를 보면 대체로 스승 문하에 머물며 수행을 하다가 점검을 마치면 언제든지 하산해 독자적으로 개산(開山)하기 때문에 선종(禪宗)은 패거리 문화와는 거리가 먼 ‘일인일파(一人一派)’라고도 합니다. 

참고로 <증도가(證道歌)>를 지은 영가현각(永嘉玄覺, ?-?) 선사는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를 만나자마자 점검을 마치고 바로 떠나려는데, 하룻밤은 묵고 가라는 혜능 선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일숙각(一宿覺)’이란 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조주종심(趙州從諶, 778-897) 선사는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 문하에서 일찍이 10대에 인가를 받고도 스승을 모시고 오후(悟後) 수행을 하다가 입적하신 후인 60세 무렵 20여 년 동안 천하를 운수행각을 마치고 조주원(趙州院)에 머물면서 참문하는 제자들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조주록(趙州錄)>이란 불후의 어록을 남기고 120세에 입적하셨습니다. 이처럼 두 극단적인 사례도 있지만, 스승 곁을 일찍 떠나거나 오래 머물거나 하는 여부는 각자의 선택인 것 같다고 사료됩니다. 

덧붙여 <경덕전등록> 제20권에 흠산 선사의 두 제자인 홍주(洪州)의 상람자고(上藍自古) 선사와 예주(澧州) 태수(太守) 뇌만(雷滿) 거사에 대해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어 기록할 수 없다며 법명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흠산 선사의 제자 대(代)에서 법맥이 단절되었다고 사료되는데, 비록 본인은 당대에 아무리 명성을 날렸어도 스승을 능가하는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하지 못하면 그 가문은 필연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 같습니다.

◇ 흠산의 수기권두(竪起拳頭)

한 승려가 찾아뵙자, 흠산 선사께서 주먹을 쥐고 번쩍 세우고는 ‘만일 펴서 손바닥을 이루면 다섯 손가락이 들쑥날쑥하겠지만, 지금은 주먹이 되었으니 반드시 높고 낮음이 없으리라. (그렇더라도) 그대는 내가 (주먹을 쥔 채로) 높낮이를 헤아릴 수 있다고 여기는가, 헤아릴 수 없다고 여기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이 승려가 가까이 와서 주먹만을 세우고 있으니, 흠산 선사께서 ‘그렇게 한다면 그대는 필경 폈다 오므렸다 하지 못하는 놈이리라.’라고 일갈하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그렇다면 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제접(提接)하십니까?’하고 여쭈었다. 이에 흠산 선사께서 ‘내가 만일 사람을 제접한다면 그대나 나나 같겠지.’라고 응답했다. 그러자 이 승려가 ‘제가 선사님을 찾아뵙고자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러니 부디 종풍을 드러내 주십시오.[須吐露宗風]’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그대가 먼 길을 왔다니 틀림없이 나의 종풍을 드러내겠네.’라고 응답하셨다. 이에 이 승려가 즉시 간청(懇請)하자 선사께서 그를 (주먹으로) 한 방 먹였다. 그러자 이 스님이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이에 선사께서 ‘비유컨대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부딪쳐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밥버러지에게) 헛되이 애[心神]만 썼구나.’라고 탄식하셨다.

군더더기: <경덕전등록>에 수록된 이 문답은 <불교닷컴> 49번째 칼럼 글인 ‘신무문관: 조주세발(趙州洗鉢)’ 가운데 ‘주감암주(州勘庵主)’란 소제목으로 다룬 공안과 ‘수기권두(竪起拳頭)’란 점에서 소재가 같으나 주인(主人)과 손님[賓客]의 역할이 바뀌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주먹을 세우다’란 언구에 걸려 분별을 일으켜 헤아리지[商量]만 않는다면 그 경계는 자명하리라 사료됩니다. 
참고로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는 낡은 습관에 얽매여 세상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꼬며 ‘수주대토(守株待兔)’ 일화를 인용했다고 합니다. 

◇ 졸자하래(拙自何來)

<오등전서(五燈全書)>에 청원-약산-도오의 법계를 이은 석상 선사와 장졸 거사가 주고받은 다음과 같은 선문답(禪問答)이 있습니다.
“장졸수재가 석상 선사를 방문하니, 선사께서 ‘수재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셨고, 이에 장졸이 ‘저의 성은 장이고 이름은 졸이라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석상 선사께서 ‘그대에게서 아무리 찾으려 해도 교묘(巧妙)한 것조차 얻을 수 없는데 서투른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하고 되물으셨다. 장졸이 이 물음을 듣는 순간 크게 깨닫고 즉시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지어 올렸다.

광명이 두루 온 누리를 비추니, 범부와 성현이 모두 한 집안일세.[光明寂照遍河沙 凡聖含靈共我家.]/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몽땅 드러나지만, 육근(六根)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즉시 가려지네.[一念不生全體現 六根纔動被雲遮.]/ 번뇌는 끊으려 하면 병이 더 깊어지고, 진리는 구할수록 삿된 생각만 일어나네.[斷除煩惱重增病 趣向菩提亦是邪.]/ 그러나 모든 인연에 순응해 걸림 없으면, 열반이니 생사니 하는 이 모두가 다 헛것일세.[隨順衆緣無罣碍 涅槃生死是空華.]”

군더더기: 사실 우리는 장졸의 이 게송이 주는 또 다른 교훈으로 재가자(在家者)일지라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바른 스승 문하에서 치열하게 수행한다면 장졸 거사와 같은 이런 경지를 체득할 수 있음을 잘 인득(認得)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육근(六根)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를 뜻합니다. 한편 당나라 때 과거(科擧) 시험과목으로 명경과(明經科), 진사과(進士科) 및 수재과(秀才科)를 두었는데, ‘수재’는 세속의 명리에 별 뜻이 없어, 비록 과거시험에는 응시했으나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었다고 합니다.

◇ 신무문관: 운문화타(雲門話墮)

본칙(本則): 운문 선사께 한 승려가 단지 장졸의 게송 첫구절인, ‘광명이 두루 온 누리를 고요히 비치니[光明寂照遍河沙]⋯’를 읊고 있었다. 그런데 운문 스님께서 (갑자기 말을 가로채며) ‘아니 그것은 자네 것이 아니고 장졸의 게송이 아닌가?’하고 다그치셨다. 이에 이 승려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운문 스님께서 즉시 ‘말실수를 했느니라.[話墮]’라고 일갈하셨다.

후에 사심오신(死心悟新, 1044-1115) 선사께서 이 문답을 들어, ‘자! 일러 보아라. 어디가 이 승려가 말실수한 곳인지를?’하고 제자들을 다그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만약 이 말에 대하여 운문 선사의 헤아리기 어려운 고준(高峻)한 의도[用處]와 이 승려의 말실수 한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가히 인천(人天)의 스승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만일 아직 그 의도를 명료(明瞭)하게 꿰뚫지 못했다면 자기 자신도 구하지 못하리라!’라고 제창하셨다.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급류에 낚시를 드리우면, 미끼를 탐내는 놈은 (반드시) 걸려드네./ (그러니 이때) 입술을 조금만 벌려도, (즉시) 목숨을 잃으리라![急流垂釣 貪餌者著. 口縫纔開 性命喪却.]

군더더기: 사실 운문 선사는 장졸의 게송을 온몸으로의 체득이 아닌 머리로만 분별하며 질문을 던지고자 했던 이 승려의 말문을 가로막고, 남의 경계를 표절(剽竊)하지 말고 그대가 몸소 체득한 경계를 곧바로 제시하라고 다그치셨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단지 경전이나 어록의 구절을 앵무새처럼 외우면서 머리로만 헤아리며 허송세월하는 오늘날의 의학도(疑學徒)들에게조차 시공(時空)을 초월해 일갈했다고 사료됩니다. 

자! 여러분이 당시 운문 선사 회상에 있었을 때 만일 운문 선사께서 ‘그것은 장졸의 게송이 아닌가?’라고 다그치셨다면, 어떻게 응대해야 말실수가 없었겠습니까?

참고로 학문의 세계에서는 사실 창의적인 학술논문이 생명이라 표절이 확인되면 학위논문을 포함해 논문의 학술지 게재를 취소합니다만, 선가(禪家)에서는 스승에게 인가(印可)를 받은 후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실천적 삶을 이어가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표절 시비는 무의미합니다. 

보기를 들면 <무문관>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19칙 ‘평상시도(平常是道)’에 들어있는 ‘봄에는 백화만발하고 가을에는 달빛 밝으며/ 여름에는 바람 시원하고 겨울에는 흰 눈 내리네./ 만약 사소한 일조차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면/ 바로 이것이 인간세계의 좋은 시절이로구나.[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란 게송은 천령범사(天寧梵思, 南嶽下十五世) 선사의 게송 가운데 평이하게 느낄 수도 있는 ‘있을 재(在)’를 무문혜개(南嶽下十八世) 선사께서 단지 ‘걸어둘 괘(掛)’로만 바꾸었을 뿐인데도, 선가에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28자 가운데 27자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표절 시비 없이 시공을 초월해 울림 있는 (천령 선사가 아닌) 무문 선사의 절창(絶唱)으로 널리 인용되어 오고 있습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이 있다.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