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부석사 사역, 삼보 상징 3개 축선…지금보다 넓어”
“전성기 부석사 사역, 삼보 상징 3개 축선…지금보다 넓어”
  • 이창윤 기자
  • 승인 2022.11.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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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부석사 서쪽 지역에서 발견된 ‘부석사 주라청(浮石寺 周羅廳)’명문기와 탁본과 명문기와.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영주 부석사 서쪽 지역에서 전성기 때 부석사의 사찰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확인됐다.

부석사 연구에 천착해온 김태형 순천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이 11월 24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부석사 서쪽 지역을 조사해온 이종원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가 ‘부석사 주라청(浮石寺 周羅廳)’, ‘통화 26년(統和二十六年)’, ‘천흥(天興)’ 등이 새겨진 기와를 수습해 부석사성보박물관에 전달했다. ‘통화’는 요 성종의 연호로 통화 26년은 1008년(고려 목종 11년)이다. 또 ‘천흥’은 1232~1234년(고려 고종 19~21년)에 쓰인 금나라 애종의 세 번째 연호다.

지금의 부석사 사역 서쪽 바깥 지역에서 발견된 ‘부석사 주라청’과 ‘통화 26년’, ‘천흥’ 등이 새겨진 기와는 그동안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부석사 연구와 조사에 획기적 전환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무량수전 동서 10리에 걸쳐 있었다”는 말이 전해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석사의 옛 사역에 대한 논란은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북지리 179번지 일대 전 동방사지(傳 東方寺址)도 부석사와는 별개의 절터라는 뜻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에 있는 절터’라는 뜻이라는 주장(임천 ‘영주 부석사 동방사지의 조사’, 《고고미술》 2권 7호)이 제기됐는가 하면, 이곳에서 ‘천장방(天長房)’이 새겨진 명문 기와가 발견돼 부석사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 중요한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김 학예실장은 “동쪽 사역에서 발견된 ‘천장방’ 등 명문기와와 현재 사역 주변에서 출토된 ‘대장당(大藏堂)’, ‘대봉지원(大鳳之院)’ 등의 명문기와,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부석사 주라청’ 등 명문기와는 전성기 부석사 사역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라고 지적했다.



붉은 타원으로 표시한 지역이 ‘부석사 주라청’을 비롯한 ‘통화 26년’, ‘천흥’ 명문기와가 출토된 곳이다.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김 학예실장은 그동안 발견된 명문기와를 근거로 “부석사 전성기 사역이 동쪽에 불보(佛寶), 중앙에 법보(法寶), 서쪽에 승보(僧寶) 등 삼보(三寶)를 상징하는 3개의 축선으로 형성되었다”고 추정했다. 즉 보물 제220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이 출토된 전 동방사지 일대는 금당(金堂)이 있는 불(佛)을 의미하고, 무량수전과 ‘대장당’, ‘강당’ 등의 명문기와가 출토된 현 부석사 일대는 법(法)에 해당하며, 이번에 ‘부석사 주라청’ 명문기와가 발견된 북지리 80~90번지 일대는 승려 교육기관 및 거주지로 ‘승(僧)’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김 학예연구실장은 그동안 발견된 명문기와 유구 등 유물과 부석사 주변에 대한 개인적인 지표조사 결과를 근거로 조사당을 중심으로 남쪽 500m, 동쪽 1㎞, 서쪽 1.5㎞가량의 구역을 전성기 사역으로 추정했다.

한편, 김 학예실장은 ‘부석사 주라청’은 승려 집단의 출가와 관련된 건물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부석사 주라청’이 새겨진 기와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격자무늬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명문의 ‘주라청’이 어떤 곳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라(周羅)’가 출가하여 처음 머리를 깎을 때 스승이 가장 나중에 깎아주는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승려집단의 출가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김 학예실장은 희양산문을 개창한 지증 대사가 10세 즈음에 출가해 부석사 범체 대덕에게 화엄을 배우고 19세에 경의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과 사자산문의 도윤 선사가 7세 때 오관선사 진전 법사에게 출가해 15세에 부석사에서 화엄경을 배우고 19세에 장곡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 등 9~13세기에 조성된 고승 비문의 내용을 근거로 주라청을 ‘부석사에 있던 사미 전문 교육기관’일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김 학예실장은 “주라청의 ‘청(廳)’이 부석사의 교육기관인지, 국가에서 인정하고 지원하던 정식 승려교육기관인지는 추가적인 자료 보완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통화(統和) 26년’명 명문기와.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영주 부석사 서쪽 지역에서 발견된 ‘부석사 주라청(浮石寺 周羅廳)’명문기와 탁본과 명문기와.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영주 부석사 서쪽 지역에서 전성기 때 부석사의 사찰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확인됐다.

부석사 연구에 천착해온 김태형 순천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이 11월 24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부석사 서쪽 지역을 조사해온 이종원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가 ‘부석사 주라청(浮石寺 周羅廳)’, ‘통화 26년(統和二十六年)’, ‘천흥(天興)’ 등이 새겨진 기와를 수습해 부석사성보박물관에 전달했다. ‘통화’는 요 성종의 연호로 통화 26년은 1008년(고려 목종 11년)이다. 또 ‘천흥’은 1232~1234년(고려 고종 19~21년)에 쓰인 금나라 애종의 세 번째 연호다.

지금의 부석사 사역 서쪽 바깥 지역에서 발견된 ‘부석사 주라청’과 ‘통화 26년’, ‘천흥’ 등이 새겨진 기와는 그동안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부석사 연구와 조사에 획기적 전환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무량수전 동서 10리에 걸쳐 있었다”는 말이 전해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석사의 옛 사역에 대한 논란은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북지리 179번지 일대 전 동방사지(傳 東方寺址)도 부석사와는 별개의 절터라는 뜻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에 있는 절터’라는 뜻이라는 주장(임천 ‘영주 부석사 동방사지의 조사’, 《고고미술》 2권 7호)이 제기됐는가 하면, 이곳에서 ‘천장방(天長房)’이 새겨진 명문 기와가 발견돼 부석사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 중요한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김 학예실장은 “동쪽 사역에서 발견된 ‘천장방’ 등 명문기와와 현재 사역 주변에서 출토된 ‘대장당(大藏堂)’, ‘대봉지원(大鳳之院)’ 등의 명문기와,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부석사 주라청’ 등 명문기와는 전성기 부석사 사역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라고 지적했다.

붉은 타원으로 표시한 지역이 ‘부석사 주라청’을 비롯한 ‘통화 26년’, ‘천흥’ 명문기와가 출토된 곳이다.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붉은 타원으로 표시한 지역이 ‘부석사 주라청’을 비롯한 ‘통화 26년’, ‘천흥’ 명문기와가 출토된 곳이다.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김 학예실장은 그동안 발견된 명문기와를 근거로 “부석사 전성기 사역이 동쪽에 불보(佛寶), 중앙에 법보(法寶), 서쪽에 승보(僧寶) 등 삼보(三寶)를 상징하는 3개의 축선으로 형성되었다”고 추정했다. 즉 보물 제220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이 출토된 전 동방사지 일대는 금당(金堂)이 있는 불(佛)을 의미하고, 무량수전과 ‘대장당’, ‘강당’ 등의 명문기와가 출토된 현 부석사 일대는 법(法)에 해당하며, 이번에 ‘부석사 주라청’ 명문기와가 발견된 북지리 80~90번지 일대는 승려 교육기관 및 거주지로 ‘승(僧)’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김 학예연구실장은 그동안 발견된 명문기와 유구 등 유물과 부석사 주변에 대한 개인적인 지표조사 결과를 근거로 조사당을 중심으로 남쪽 500m, 동쪽 1㎞, 서쪽 1.5㎞가량의 구역을 전성기 사역으로 추정했다.

한편, 김 학예실장은 ‘부석사 주라청’은 승려 집단의 출가와 관련된 건물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부석사 주라청’이 새겨진 기와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격자무늬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명문의 ‘주라청’이 어떤 곳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라(周羅)’가 출가하여 처음 머리를 깎을 때 스승이 가장 나중에 깎아주는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승려집단의 출가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김 학예실장은 희양산문을 개창한 지증 대사가 10세 즈음에 출가해 부석사 범체 대덕에게 화엄을 배우고 19세에 경의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과 사자산문의 도윤 선사가 7세 때 오관선사 진전 법사에게 출가해 15세에 부석사에서 화엄경을 배우고 19세에 장곡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 등 9~13세기에 조성된 고승 비문의 내용을 근거로 주라청을 ‘부석사에 있던 사미 전문 교육기관’일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김 학예실장은 “주라청의 ‘청(廳)’이 부석사의 교육기관인지, 국가에서 인정하고 지원하던 정식 승려교육기관인지는 추가적인 자료 보완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통화(統和) 26년’명 명문기와.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통화(統和) 26년’명 명문기와. 사진 제공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김 학예실장은 “일련의 조사 성과는 부석사의 국찰(國刹)로서의 규모와 화엄종찰로서 성격을 규명해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부석사 전성기 사역이 경작과 개발로 인해 훼손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부석사 주라청’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곳은 지금의 사역 범위 밖으로 전성기 부석사 전체 사역에 대한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강조한 김 학예실장은 “농지경작과 관광지 개발 사업으로 인해 훼손되고 있는 부석사 전성기 사역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사적 지정과 함께 정밀지표조사는 물론 그 결과에 따른 발굴 등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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