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탈핵실크로드 [15] ‘원전 백지화’ 베트남을 걸으며
생명탈핵실크로드 [15] ‘원전 백지화’ 베트남을 걸으며
  • 이원영 수원대 교수·한국탈핵에너지학회 부회장
  • 승인 2022.11.09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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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순례의 성패를 가름하는 고비였던 베트남의 무더위

드디어 베트남이다.

'드디어' 라는 말은 문화적으로 생소하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을 거의 주위 도움 없이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빈(Vinh)을 거쳐 라오스국경까지 386km, 그리고 라오스 국경부터 그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354km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호아저씨라고도 불리는 호치민.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고 있다. 사진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서 본 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노이의 심장부인 바딘광장에서 기념사진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홍콩에서부터 합류한 필자의 후배 연경환 박사(도시공학).  베트남에서 사흘 정도 함께 걸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베트남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데다 민간인 학살도 한 곳이다. 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교가 이루어지고 최근까지 경제협력과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필자가 걸으면서 만나게 될 민중개개인의 감정은 어떨지 모른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고 이 나라를 걷기 시작했다..


멋진 사찰건물도 자주 보인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나그네를 보고는 생수를 안겨준 젊은 커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 커플도 그러했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기우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친절하게 대해준다. 특히 순례자에게 생수를 안겨주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농경사회 다운 대가족도 자주 보인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친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많아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귀여운 포즈의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족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더위에 고생하던 날, 지친 나그네를 환대해준 어느 대가족.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문제는 무더위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 순례코스와 시기를 비교해보면서 가장 험난한 고비가 될 시기와 장소는 8월에 걷게 될 베트남이라고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인 베트남 여름은 기온도 높지만 습도도 높아서 과연 제대로 걸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과연 보통 무더위가 아니었다.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베트남 여름은 38도 무더위는 보통이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아주 더웠던 날의 어느 개천을 지나며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런 가운데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들도 많이 만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의 '멜론'이라는 음악 앱사이트를 늘 이용한다는 여고생들과 한 컷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행히 베트남 음식은 한국인에 잘 맞는 편이다. 더위를 견디기에 부족함이 없다. 맛있는 쌀국수를 언제든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걷기 시작한 이튿날 거리 기온을 보니 섭씨38도다.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활용하는 것. 그렇게 걷다가 한밤중에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나그네를 환영해준다.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밤늦게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를 환대해주는 아이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낮에 걸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8월13일이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새벽부터 농촌길을 25km 걸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다. 그늘 없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지러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 순간에 어느 오토바이가 나그네 옆에 서더니 말없이 타라고 했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은 사나이였다. 이때의 일지를 보면,

"오후 2시쯤 목적지를 1km 가량 앞두고 어느 큰 다리 위를 건너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탄 청년이 다가와서 태워주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감사합니다(깜 온)"

이때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로는 걷는 시간대에 좀 더 조심하게 되었고,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로마까지의 순례의 성공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해변가의 풍광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편, 필자는 베트남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해인 2016년 베트남이 원전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백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경위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어째서 그런 훌륭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도착한 하노이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실제상황을 살피어 다음과 같이 경향신문에 기고하였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1708112117045#c2b

지난 5월 초 서울을 떠나 걸어온 지 이제 1400여㎞. 베트남 하노이 남쪽의 부유한 도시 닌빈에서 며칠 전 필자는 신발 밑창을 갈아 끼우는 동안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얼마 전 수원역 구둣방에 갔을 때는 노인네가 신발 바닥을 손으로 다듬었는데, 이 도시의 젊은이는 전기모터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정전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겪었다. 이젠 세상일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전기기계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전기 없는 세상의 불편함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쉬는 2년간 로마까지 1만1000㎞를 걸어가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다섯 번째 나라인 베트남에는, 필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국회에서 원전 도입을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결단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탈원전, 그리고 대만의 탈원전에 이은 지구촌의 커다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수출하려고 미리 28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의 민관협력 그룹은 손해가 크다고 한다. 실크로드 도상에서 관계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이 파악되었다.

짐작되는 배경의 하나는 지난해 4월의 바다오염 사건이다. 다낭 근처에 있는 대만철강회사가 흘려보낸 폐수로 바다 물고기 수십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여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 문제만은 달랐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나흘이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 오염 규탄시위는 반정부 세력이 발호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1960년대의 월남전과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로서는 상당한 긴장 상태에 놓이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해변에서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러던 가을에, 일찍이 결정했던 원전 도입이 중단 쪽으로 바뀐다. 경제 급성장에 대응하고자 2009년에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연 22% 증가로 예측되던 전기수요가 이제 연 7~8%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 전기절약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에너지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 셋째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르는 국가채무의 부담이 크므로 이를 다른 에너지부문에의 순차적인 투자로 돌리는 게 좋다는 것, 넷째 원전의 전기 가격이 갈수록 비싸질 것인 데 비해 다른 에너지원은 갈수록 싸질 것이라는 것, 다섯째 핵폐기물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등이다. 과연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요지는 전기수요에 대한 대응이 원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이제 핵폐기물 없는 청정국가다.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원전백지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레홍틴(과학기술 및 환경위원회 부위원장)@베트남vnexpress신문

표면화되지 않은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전의 위험이다. 반세기 동안 강대국들과 전쟁을 해서 물리친 베트남으로서는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전은 폐연료봉을 식히는 장치에 전원만 중단되어도 문제가 생긴다. 전시라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폭발이 일어나기 쉽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핵사고의 치명적인 문제는 오랫동안 토양이 오염된다는 것. 농업국가인 이 나라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다. ‘대안 있는 불편’이 ‘생존의 위협’을 넘어설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가? 안보를 중시한다는 일부 보수언론이 무엇보다 이상하다. 무엇이 보수란 걸까? ‘값싼 원전’을 외치는 그들에게 원자력공학 전공의 박종운 교수는 일갈한다. “핵폐기장 조성비와 폐로·사고처리 비용을 타국 수준으로 반영하면 원전의 발전단가는 훨씬 비싸진다. 원천기술도 없는 원전산업을 성장산업으로 과장해서 호도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상식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그들에게 권하고 싶다. 베트남에 와서 상식과 안보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기를.

이때 레홍틴부위원장이 베트남 언론과 나눈 인터뷰를 번역하여 탈핵신문에 올려두었다. 상세한 내용은 URL을 클릭하여 보기 바란다.

http://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160

/ 이원영 수원대 교수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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