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탈핵실크로드[7]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폭문제를 돌이켜보다
생명탈핵실크로드[7]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폭문제를 돌이켜보다
  • 이원영 교수
  • 승인 2022.09.29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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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조선인 원폭피해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

생명탈핵실크로드 출발 한 달 반 전,  2017년 3월25일, 일본 야마구치현에서는 주민들의 대대적인 반핵행사가 열렸다. 바로 오랫동안 추진되어오던 가미노세키 핵발전소의 건설계획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이 내용은 국내에서도 소개된 바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6580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2017년 3월 야마구치현의 주민들이 가미노세키 원전의 건설을 반대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이원영





야마구치 주민들의 시위 모습@이원영



30년이나 줄기차게 이어오던 반대투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도 사업자인 전력회사와 정부 측은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한참 지난 2017년에 추진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야마구치현의 사람들이 대거 반대에 나선 것이다.

열기는 뜨거웠다. 이때 필자는 그 현장 반대행사에 참여하면서 순례 홍보를 했다. 이때 만난 인사가 지금까지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 선생이다.



이때 야마구치에서 만나 오랫동안 생명탈핵실크로드를 돕고 있는 일본의 탈핵동지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선생.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도이기도 하다.@이원영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 순례 시 배포한 홍보자료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2017년 5월31일 배를 타고 하룻밤 이동하여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 도착하니,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할 무렵의 바다@이원영





한국에서 순례를 지원했던 차량을 그대로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쏘울 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타셨던 차종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시모노세키 도시의 전경. 이 도시는 한국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원영





구와노 야스오 선생 일행이 순례단을 환영해주었다. 갓을 쓴 분은 서형탁 유학자로서 일본순례의 초기기간을 함께 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로 이동하는 중에 본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바다 전경@이원영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 앞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순례단 일행@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윽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원폭이 투하되었던 평화기념공원이다. 공원에 있는 폭풍 속 모자상은 원폭투하의 광풍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서 위령의식을 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위령문을 써서 낭독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낭독한 위령문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을 낭독하고 있는 필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위령문의 내용은 다음 사이트에 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iZgh/41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학생들과 관광객의 호응이 컸다.



순례단의 위령제를 지켜보던 일본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인 6월5일에는 순례단이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피폭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서 열렸다.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1@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순례단이 오랫동안 미리 준비해온 '피폭자의 역사'세미나의 웹자보2@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당시 세미나를 개최했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의 책임소재에 대한 원론과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전대미문의 위험 정책이 지구촌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포적 실체에 대한 국민주권이자 지구촌주민의 주권 차원의 규명은 적어도 우리세대의 의무입니다. 핵폭발과 핵발전소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조선인피폭'과 관련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해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한국 일본 그리고 여러 외국인들이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를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은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야마구치대학 코케츠 아츠시(纐纈厚) 명예교수는, 원폭투하에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 일본에의 원폭 투하는, 최대한의 군사적 정치적 효과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 조건으로서 일본에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소련 참전에 의해 예측된 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원폭 투하가 결정된 것이다. 원폭 투하는 엄청난 희생자와 교환하여,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땅을 빌려 전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로서 실행된 것이었다. 원폭 투하의 원인이야말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이었다." 라고 갈파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막대한 민간인 인명살상을 예견하였음에도, 전후 미국의 주도권 확립 전략에 따라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박인식박사(하얼빈대 전 교수, 국제관계학전문가)는 말한다. "미국은  많은  과학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공습으로 초토화 된 이후에도 2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여 조선인을 포함한 엄청난 민간인 대량살상을 낳았다.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었고 항복 준비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원폭공격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박박사는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한 말을 소개하였다. "2만 명에게 달하는 히로시마의 한국인 희생자들은 「미국이 투하했던 원폭의  희생자이며, 일본 식민지지배의 희생자이기도 하는 『이중의 희생자』」이고, 그  피해의 책임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라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피해자가 일본인뿐만 아니고 많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으면 싶다」라고 호소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핵에 의한 피해가 일·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문제인 것이 명확해진다」라는 진술은 미·일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 맺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이에 대한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면서 무시하는 것일까. '합천평화의집'에서 증언 차 참석한 한정순여사는 증언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귀가 번쩍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잡힐 듯한 우리의 꿈을 안고 히로시마로 가야겠고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죄할 뜻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로시마로 갔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시민사회 공동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쪽 편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는데 위령비조차 가보지도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냥 사라졌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다시 위령비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코케츠 명예교수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이상의 발제내용과 증언을 볼 때, 우리는 당시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한 채 대량살상 무기개발과 사용을 통해 어마무시한 반인류적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미국은 핵무기 개발과 정치적 이용의 잘못을 인정하고 원폭 피해자들과 그 국가에게 사죄를 해야만 마땅하다. 

그 데자뷰가 2022년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다. 침략전쟁을 벌인 러시아의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마 입에도 올리기조차 어려운 그런 발상이 버젓이 언론에 나오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가? 바로 원폭가해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범죄에는 응징이 있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할 열쇠는 한국과 북한에 있는 피폭자들의 후손에 달려있다. 일본국민은 전쟁당사자로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의해 당장 배상을 요구하기 어렵지만 조선인피폭자2세,3세는 그렇지 않다. 그 개인들은 미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제법상 지위를 갖고 있다.

이런 민간인 대량살상의 국제적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들이 미국에게 배상을 요구하고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인류차원의 과제다.

/ 이원영 수원대교수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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