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74. 안부를 묻다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74. 안부를 묻다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8.1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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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동안 어찌 지내시냐 길래 식중독으로 죽다 살아났다니

아버지가 위독해 팔 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는데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다.

퇴근길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집에 오니, 방금 전 엄마 혼자 병원에 갔다며 여섯 시간 전에 다쳤는데 병원 안 가고 집에 있었다고 화를 낸다. 그럼 넌 왜 엄마하고 함께 가지 않았냐고 하니 얼버무린다.

엑스레이까지 찍고 몇 시간 만에 돌아온 아내 뼈는 이상 없다 하며 인대가 늘어났나 보다. 전철역에서 접질렸다고 한다. 병원에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아들이 대안 치료로 뭘 할 수 있냐 묻기에 침 맞는 것이 최고라고 하니 박장대소한다. 언젠가 가정의의 반응과 비슷하다.

아는 분을 병원에서 만났다는 아내.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한다. 중풍 때문에 한쪽을 잘 쓰지 못한다. 남편도 고관절을 다쳐 몇 달 누워 있었는데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한쪽 절단해야 한다. 팔십 년 만에 물난리로 차가 둥둥 떠다니고 지하 방 살던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고국 소식.

“안녕하냐”고 묻기가 겁난다. 살아 숨 쉬는 것에 감사할 뿐.

우리 식구 밥 먹는 것도 쌀이 부족해서 감자를 깎아서 밥 위에 얹어 식량을 늘리던 때였으니 검둥이는 먹는 게 시원찮았다. 자구책으로 쥐라도 잡아먹어야 했던 검둥이는 쥐약을 먹은 비실거리는 쥐를 먹고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졌다. 속에 불이 났는데 끌 수 없는 것처럼 제자리를 맴돌다 쭈그리고 앉았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같은 검둥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몇십 년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동물 병원에 가면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사람도 다치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던 시절에. 그리고 요즘엔 개도 고양이도 개 사료 고양이 사료를 먹는다. 사람이 먹다 남긴 찌그레기는 먹지 않는다. 남의 살은 가뭄에 콩 나듯이 먹는 집에 남은 밥은 남은 밥이 아니었다. 나눔이었다. 쥐를 잡았다고 머리를 쓰다듬고 이뻐해 주지 않았더라면 쥐약 먹은 쥐를 먹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한들 시간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언덕 위에 무덤을 만들어 준 검둥이를 파내어 먹었다는 동네 청년들도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네잔치 한다고 앞산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메아리쳤다.그 멱 따는 소리가 돼지고기 먹으러 오라는 소리로 들린 때가 있었다. 멱을 따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선지를 받고 뜨거운 물로 튀겨 털을 뽑고 내장을 꺼내어 먹으며 너도 먹어 볼래하고 입에 갔다 들이밀면 돼지 속에 있던 뜨끈한 기운이 훅하고 느껴졌었다. 마당에 뛰어다니던 닭도 멱을 잡아 비틀어야 먹을 수 있던 시절. 잔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날 것의 풋풋한 내음이 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날마다 먹는 육식이 아니고 날마다 풀밭이던 밥상에 가끔 씩 올라오는 날 것과 익은 것의 변신을 봐야 했다. 날 것이 생명을 빼앗기고 밥상에 올라오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그 과정을 모두 함께하면 차마 입으로 고기 점이 들어가지 않았다. 살아서 뛰어다니던 닭을 쫓아다니던 내가 겹쳐 보였다.







여름이면 똬리를 튼 독사를 비료 푸대에 툭 던져 넣고 시내에 뱀 장수에게 가져가면 돈을 줬다. 그런데 어떤 날은 죽은 나뭇가지 위에 머리를 나란히 올린 뱀들을 봤다. 낫을 휘둘렀다. 쪼르륵 머리를 올린 뱀들에게 겁을 먹은 아이의 마음이었는지 마귀의 마음이 동한 것인지 모른다. 스르륵 지나가던 뱀의 머리를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꽉 찍었다.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 아버지가 뱀을 잡아서 뱀탕을 끓인다고 하면서 그릇을 보여 줬다. 그런데 머리와 껍질 내장이 벗겨진 흰 살 생선 같은 뱀 몸뚱아리가 탕 그릇 밖으로 나와서 꿈틀댔다. 뱀이 살았다고 친구 아버지에게 이르니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릇에 다시 넣었다. 그 날밤 친구 집에서 만화책을 봤다. 뱀을 죽였는데 다른 뱀이 복수를 하러 찾아와서 창호지 문구멍을 뚫고 들어와서 주인공을 죽인다는 이야기였는데 난 만화에서 같이 목을 조르는 뱀 꿈을 꾸고 잠을 자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는 죽음의 기억처럼 마음에 짐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좁은 방에서 숨소리와 코 고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살던 가족은 절반은 먼 세상으로 떠나고 누이와 동생 머나먼 거리에서 살아간다. 한때는 가족이었지만 아니 지금도 가족이라는 이름은 맞지만 자주 보지 못하니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은 기억 속 시간에서 가족으로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아주 멀리 떠났다는 소식이라도 듣게 되는 것은 아닐지. 함께 살던 시간은 계속 함께 살 줄만 알았다. 미래에 다가올 인연은 모른 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숨소리와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이웃집의 부모님 폭력 사건도 다시 보게 되는 거겠지. 다가올 미래를 보지 못하듯이 다가올 인연을 보지 못한다.

한때는 나도 풋풋한 날 것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다.

제천 모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에 모란 다리를 지날 때마다 두리번거렸다. 까만 교복에 까까머리 중학생 때 동네 불량배들한테 끌려가서 소위 돌림빵을 맞던 그때 그 애들이 내게 한 말은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친구가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더라고 하니까 뭐가 그리 심각해, 사람은 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하는 것이다. 책상 서랍에 숨기고 쉬는 시간에 훔쳐보던 빨간책 같이 약간의 19금이긴 해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난 주워 왔단 말을 그대로 믿고 혼자 가슴앓이 한 적이 있다.

인연에게 묻는다. 살아는 있냐. 잘 지내고 있는 것 맞냐고. 이제는 툭하면 고장 나는 60여 년이나 쓴 중고차지만 한때는 푸르렀던 날들이 주변에 아픈 소식에 마음마저 아픈 날,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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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동안 어찌 지내시냐 길래 식중독으로 죽다 살아났다니

아버지가 위독해 팔 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는데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다.

퇴근길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집에 오니, 방금 전 엄마 혼자 병원에 갔다며 여섯 시간 전에 다쳤는데 병원 안 가고 집에 있었다고 화를 낸다. 그럼 넌 왜 엄마하고 함께 가지 않았냐고 하니 얼버무린다.

엑스레이까지 찍고 몇 시간 만에 돌아온 아내 뼈는 이상 없다 하며 인대가 늘어났나 보다. 전철역에서 접질렸다고 한다. 병원에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아들이 대안 치료로 뭘 할 수 있냐 묻기에 침 맞는 것이 최고라고 하니 박장대소한다. 언젠가 가정의의 반응과 비슷하다.

아는 분을 병원에서 만났다는 아내.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한다. 중풍 때문에 한쪽을 잘 쓰지 못한다. 남편도 고관절을 다쳐 몇 달 누워 있었는데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한쪽 절단해야 한다. 팔십 년 만에 물난리로 차가 둥둥 떠다니고 지하 방 살던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고국 소식.

“안녕하냐”고 묻기가 겁난다. 살아 숨 쉬는 것에 감사할 뿐.

우리 식구 밥 먹는 것도 쌀이 부족해서 감자를 깎아서 밥 위에 얹어 식량을 늘리던 때였으니 검둥이는 먹는 게 시원찮았다. 자구책으로 쥐라도 잡아먹어야 했던 검둥이는 쥐약을 먹은 비실거리는 쥐를 먹고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졌다. 속에 불이 났는데 끌 수 없는 것처럼 제자리를 맴돌다 쭈그리고 앉았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같은 검둥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몇십 년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동물 병원에 가면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사람도 다치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던 시절에. 그리고 요즘엔 개도 고양이도 개 사료 고양이 사료를 먹는다. 사람이 먹다 남긴 찌그레기는 먹지 않는다. 남의 살은 가뭄에 콩 나듯이 먹는 집에 남은 밥은 남은 밥이 아니었다. 나눔이었다. 쥐를 잡았다고 머리를 쓰다듬고 이뻐해 주지 않았더라면 쥐약 먹은 쥐를 먹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한들 시간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언덕 위에 무덤을 만들어 준 검둥이를 파내어 먹었다는 동네 청년들도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네잔치 한다고 앞산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메아리쳤다.그 멱 따는 소리가 돼지고기 먹으러 오라는 소리로 들린 때가 있었다. 멱을 따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선지를 받고 뜨거운 물로 튀겨 털을 뽑고 내장을 꺼내어 먹으며 너도 먹어 볼래하고 입에 갔다 들이밀면 돼지 속에 있던 뜨끈한 기운이 훅하고 느껴졌었다. 마당에 뛰어다니던 닭도 멱을 잡아 비틀어야 먹을 수 있던 시절. 잔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날 것의 풋풋한 내음이 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날마다 먹는 육식이 아니고 날마다 풀밭이던 밥상에 가끔 씩 올라오는 날 것과 익은 것의 변신을 봐야 했다. 날 것이 생명을 빼앗기고 밥상에 올라오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그 과정을 모두 함께하면 차마 입으로 고기 점이 들어가지 않았다. 살아서 뛰어다니던 닭을 쫓아다니던 내가 겹쳐 보였다.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동안 어찌 지내시냐 길래 식중독으로 죽다 살아났다니

아버지가 위독해 팔 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는데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다.

퇴근길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집에 오니, 방금 전 엄마 혼자 병원에 갔다며 여섯 시간 전에 다쳤는데 병원 안 가고 집에 있었다고 화를 낸다. 그럼 넌 왜 엄마하고 함께 가지 않았냐고 하니 얼버무린다.

엑스레이까지 찍고 몇 시간 만에 돌아온 아내 뼈는 이상 없다 하며 인대가 늘어났나 보다. 전철역에서 접질렸다고 한다. 병원에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아들이 대안 치료로 뭘 할 수 있냐 묻기에 침 맞는 것이 최고라고 하니 박장대소한다. 언젠가 가정의의 반응과 비슷하다.

아는 분을 병원에서 만났다는 아내.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한다. 중풍 때문에 한쪽을 잘 쓰지 못한다. 남편도 고관절을 다쳐 몇 달 누워 있었는데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한쪽 절단해야 한다. 팔십 년 만에 물난리로 차가 둥둥 떠다니고 지하 방 살던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고국 소식.

“안녕하냐”고 묻기가 겁난다. 살아 숨 쉬는 것에 감사할 뿐.

우리 식구 밥 먹는 것도 쌀이 부족해서 감자를 깎아서 밥 위에 얹어 식량을 늘리던 때였으니 검둥이는 먹는 게 시원찮았다. 자구책으로 쥐라도 잡아먹어야 했던 검둥이는 쥐약을 먹은 비실거리는 쥐를 먹고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졌다. 속에 불이 났는데 끌 수 없는 것처럼 제자리를 맴돌다 쭈그리고 앉았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같은 검둥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몇십 년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동물 병원에 가면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사람도 다치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던 시절에. 그리고 요즘엔 개도 고양이도 개 사료 고양이 사료를 먹는다. 사람이 먹다 남긴 찌그레기는 먹지 않는다. 남의 살은 가뭄에 콩 나듯이 먹는 집에 남은 밥은 남은 밥이 아니었다. 나눔이었다. 쥐를 잡았다고 머리를 쓰다듬고 이뻐해 주지 않았더라면 쥐약 먹은 쥐를 먹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한들 시간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언덕 위에 무덤을 만들어 준 검둥이를 파내어 먹었다는 동네 청년들도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네잔치 한다고 앞산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메아리쳤다.그 멱 따는 소리가 돼지고기 먹으러 오라는 소리로 들린 때가 있었다. 멱을 따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선지를 받고 뜨거운 물로 튀겨 털을 뽑고 내장을 꺼내어 먹으며 너도 먹어 볼래하고 입에 갔다 들이밀면 돼지 속에 있던 뜨끈한 기운이 훅하고 느껴졌었다. 마당에 뛰어다니던 닭도 멱을 잡아 비틀어야 먹을 수 있던 시절. 잔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날 것의 풋풋한 내음이 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날마다 먹는 육식이 아니고 날마다 풀밭이던 밥상에 가끔 씩 올라오는 날 것과 익은 것의 변신을 봐야 했다. 날 것이 생명을 빼앗기고 밥상에 올라오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그 과정을 모두 함께하면 차마 입으로 고기 점이 들어가지 않았다. 살아서 뛰어다니던 닭을 쫓아다니던 내가 겹쳐 보였다.







여름이면 똬리를 튼 독사를 비료 푸대에 툭 던져 넣고 시내에 뱀 장수에게 가져가면 돈을 줬다. 그런데 어떤 날은 죽은 나뭇가지 위에 머리를 나란히 올린 뱀들을 봤다. 낫을 휘둘렀다. 쪼르륵 머리를 올린 뱀들에게 겁을 먹은 아이의 마음이었는지 마귀의 마음이 동한 것인지 모른다. 스르륵 지나가던 뱀의 머리를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꽉 찍었다.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 아버지가 뱀을 잡아서 뱀탕을 끓인다고 하면서 그릇을 보여 줬다. 그런데 머리와 껍질 내장이 벗겨진 흰 살 생선 같은 뱀 몸뚱아리가 탕 그릇 밖으로 나와서 꿈틀댔다. 뱀이 살았다고 친구 아버지에게 이르니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릇에 다시 넣었다. 그 날밤 친구 집에서 만화책을 봤다. 뱀을 죽였는데 다른 뱀이 복수를 하러 찾아와서 창호지 문구멍을 뚫고 들어와서 주인공을 죽인다는 이야기였는데 난 만화에서 같이 목을 조르는 뱀 꿈을 꾸고 잠을 자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는 죽음의 기억처럼 마음에 짐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좁은 방에서 숨소리와 코 고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살던 가족은 절반은 먼 세상으로 떠나고 누이와 동생 머나먼 거리에서 살아간다. 한때는 가족이었지만 아니 지금도 가족이라는 이름은 맞지만 자주 보지 못하니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은 기억 속 시간에서 가족으로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아주 멀리 떠났다는 소식이라도 듣게 되는 것은 아닐지. 함께 살던 시간은 계속 함께 살 줄만 알았다. 미래에 다가올 인연은 모른 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숨소리와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이웃집의 부모님 폭력 사건도 다시 보게 되는 거겠지. 다가올 미래를 보지 못하듯이 다가올 인연을 보지 못한다.

한때는 나도 풋풋한 날 것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다.

제천 모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에 모란 다리를 지날 때마다 두리번거렸다. 까만 교복에 까까머리 중학생 때 동네 불량배들한테 끌려가서 소위 돌림빵을 맞던 그때 그 애들이 내게 한 말은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친구가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더라고 하니까 뭐가 그리 심각해, 사람은 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하는 것이다. 책상 서랍에 숨기고 쉬는 시간에 훔쳐보던 빨간책 같이 약간의 19금이긴 해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난 주워 왔단 말을 그대로 믿고 혼자 가슴앓이 한 적이 있다.

인연에게 묻는다. 살아는 있냐. 잘 지내고 있는 것 맞냐고. 이제는 툭하면 고장 나는 60여 년이나 쓴 중고차지만 한때는 푸르렀던 날들이 주변에 아픈 소식에 마음마저 아픈 날,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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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똬리를 튼 독사를 비료 푸대에 툭 던져 넣고 시내에 뱀 장수에게 가져가면 돈을 줬다. 그런데 어떤 날은 죽은 나뭇가지 위에 머리를 나란히 올린 뱀들을 봤다. 낫을 휘둘렀다. 쪼르륵 머리를 올린 뱀들에게 겁을 먹은 아이의 마음이었는지 마귀의 마음이 동한 것인지 모른다. 스르륵 지나가던 뱀의 머리를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꽉 찍었다.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 아버지가 뱀을 잡아서 뱀탕을 끓인다고 하면서 그릇을 보여 줬다. 그런데 머리와 껍질 내장이 벗겨진 흰 살 생선 같은 뱀 몸뚱아리가 탕 그릇 밖으로 나와서 꿈틀댔다. 뱀이 살았다고 친구 아버지에게 이르니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릇에 다시 넣었다. 그 날밤 친구 집에서 만화책을 봤다. 뱀을 죽였는데 다른 뱀이 복수를 하러 찾아와서 창호지 문구멍을 뚫고 들어와서 주인공을 죽인다는 이야기였는데 난 만화에서 같이 목을 조르는 뱀 꿈을 꾸고 잠을 자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는 죽음의 기억처럼 마음에 짐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좁은 방에서 숨소리와 코 고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살던 가족은 절반은 먼 세상으로 떠나고 누이와 동생 머나먼 거리에서 살아간다. 한때는 가족이었지만 아니 지금도 가족이라는 이름은 맞지만 자주 보지 못하니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은 기억 속 시간에서 가족으로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아주 멀리 떠났다는 소식이라도 듣게 되는 것은 아닐지. 함께 살던 시간은 계속 함께 살 줄만 알았다. 미래에 다가올 인연은 모른 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숨소리와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이웃집의 부모님 폭력 사건도 다시 보게 되는 거겠지. 다가올 미래를 보지 못하듯이 다가올 인연을 보지 못한다.

한때는 나도 풋풋한 날 것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다.

제천 모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에 모란 다리를 지날 때마다 두리번거렸다. 까만 교복에 까까머리 중학생 때 동네 불량배들한테 끌려가서 소위 돌림빵을 맞던 그때 그 애들이 내게 한 말은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친구가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더라고 하니까 뭐가 그리 심각해, 사람은 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하는 것이다. 책상 서랍에 숨기고 쉬는 시간에 훔쳐보던 빨간책 같이 약간의 19금이긴 해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난 주워 왔단 말을 그대로 믿고 혼자 가슴앓이 한 적이 있다.

인연에게 묻는다. 살아는 있냐. 잘 지내고 있는 것 맞냐고. 이제는 툭하면 고장 나는 60여 년이나 쓴 중고차지만 한때는 푸르렀던 날들이 주변에 아픈 소식에 마음마저 아픈 날,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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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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