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72. 밀밥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72. 밀밥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7.3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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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씨 뿌리면 알아서 크고 열매 맺는 것이 자연농이라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리요
거름 없는 황무지나 물 없는 사막에서 아무도 자라지 못하듯 땀방울 빗방울 거름 방울 먹고 자란다

밥 위에 얹은 감자밥도
외갓집에 가서 젓가락 대면 훌훌 날던 조밥도 시간 속에 묻어 두었는데 밀 농사 짓는 아는 시인이 밀밥을 했다고 하는 말에 밀밥 속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바람도 먹고 물도 먹고
태양 빛도 먹어야 크는 밀알이 밤이면 별빛도 먹고 달빛도 먹고 고요한 밤도 먹으며 자랐으리라 그래서 작은 우주를 닮았으리라

평생 내가 먹고 마신 자연 앞에 내가 얼마나 빛을 진 것일까
나를 위해 우릴 위해 죽어 간 수많은 닭과 돼지 소가 몇 마리나 되려나

이번 생은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이여
밀알 한 알도 빚이다.

 







#작가의 변
자정이 넘은 깊은 여름밤.

더위에 창을 열고 자니 지나는 차 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 이명으로 들리는 여치 소리, 파도 소리까지 잠 못 드는 밤은 깊어만 가는데 세상에 홀로 인듯하다.

어릴 적 한 방에서 우리 식구 모두 나란히 누워 잤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시절이라 해 떨어지고 일찍 잠들기 마련이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은 고문이었다. 자다가 작은 것이 마려우면 요강에 볼일을 보면 될 것을 굳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요강에 볼일 보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여름 더운 날엔 마당에 멍석을 깔고 하늘에 별들이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 쑥으로 모깃불을 붙여 놓고 모기장에 옹기종기 누워 별과 함께 잠이 들었다. 컴퓨터가 뭔지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푸른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박 한 통을 차디찬 우물물에 담가 두었다가 쪼개어 먹으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도 없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다.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자고 오기도 했는데 자다가 혼자 깨어 화장실을 가야겠는데 내가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작은 걸 참다가 뒤척이다가 결국은 나가게 될 것이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여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 그 시간들은 아득히 멀어져 가고 거름이 되어 내 멘탈을 잡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지어서 성공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고추 농사가 잘된 해에는 집집마다 고추가 풍년이어서 태양에 말린 태양초든 연탄불에 말린 마른 고추든 헐값으로 수거해가는 수집상에게 넘길 뿐이었고, 농사가 안된 해는 팔려고 해도 팔 고추가 없었다. 그래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거나 하다못해 오이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집들이 부럽기도 했던 것은 참외나 수박을 맘대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여름밤 도둑을 지키기 위해 원두막에서 자는 주인을 피해 수박 서리를 하면서도 원두막이 있는 집들이 부러웠다. 과수원을 하는 집에 가면 사과의 향에 취해 과수원을 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과가 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수고가 이어지며, 밤엔 별과 달과 함께하고 낮엔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야 자란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 한쪽 면만 본 결과다.

농사란 농부가 잘한다고 잘되지 않는다. 날씨 특히 가뭄이나 장마, 홍수 같은 천재지변은 농부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별과 달, 해와 벌과 나비는 물론 굼벵이 같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벼를 심기 위해서도 논에 물을 대고 애벌갈이를 하고, 써레질해서 고르고 모 판에서 모종 모를 기르고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면 품앗이로 모내기를 해야 모가 논에 자리를 잡고, 물 관리, 피 뽑고. 잡초 뽑고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듯 관리를 해야 가을에 황금 들녘에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볼 수 있다. 물론 보리나 밀도 마찬가지다. 아니 가을에 파종해서 추운 겨울을 나는 보리는 까칠까칠한 이삭만큼이나 힘든 농사 중 하나다. 그래도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보리 잎 새나 밀밭을 보고 있으면 파릇한 기운이 눈을 통해 가슴에 자리하고 설레기까지 한 것이다. 낮이면 뜨거운 태양의 기운으로 살고, 밤이면 별과 달의 기운으로 사는 모든 동식물처럼 인과 관계로 산다. 유기질 무기질을 먹고 자라는 농작물과 나무처럼 사람도 마지막엔 흙으로 돌아가 그동안 진 빚을 조금은 갚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먹는 쌀, 밀알이 싹을 틔우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먹어서 우리가 살아가듯 삶은 돌고 도는 순환의 연속이다. 먹고 남은 음식은 돼지가 먹고 소가 먹던 시골 생활과는 다르게 현대의 생활엔 날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도시마다 넘쳐나고 비닐 등 썩지 않는 쓰레기도 날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온다. 냉장고가 나오고,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이 나오니 그 쓰레기도 날마다 늘어 가고, 쓰기 싫어 버리는 가구, 옷가지 등도 넘쳐난다. 우리가 딱 먹고 입을 만큼만 겨우 생산하던 시절에서 유행에 따라 버려지는 쓰레기도 많다.

밀알 한 알에 우주가 담겼다. 해와 달, 낮과 밤, 별과 바람이 담겼다.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음식들이 변형되어 무엇에서 왔는지도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행성이 아니니까? 만일 우리가 평생 먹은 만큼의 음식을 우리가 갚아야 하는 빛이라면 그렇게 마음껏 먹지는 못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버려지는 음식물과 쓰레기들이 넘치지만, 한편에선 굶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은 지구별에서 자란 밀알이 우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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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씨 뿌리면 알아서 크고 열매 맺는 것이 자연농이라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리요
거름 없는 황무지나 물 없는 사막에서 아무도 자라지 못하듯 땀방울 빗방울 거름 방울 먹고 자란다

밥 위에 얹은 감자밥도
외갓집에 가서 젓가락 대면 훌훌 날던 조밥도 시간 속에 묻어 두었는데 밀 농사 짓는 아는 시인이 밀밥을 했다고 하는 말에 밀밥 속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바람도 먹고 물도 먹고
태양 빛도 먹어야 크는 밀알이 밤이면 별빛도 먹고 달빛도 먹고 고요한 밤도 먹으며 자랐으리라 그래서 작은 우주를 닮았으리라

평생 내가 먹고 마신 자연 앞에 내가 얼마나 빛을 진 것일까
나를 위해 우릴 위해 죽어 간 수많은 닭과 돼지 소가 몇 마리나 되려나

이번 생은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이여
밀알 한 알도 빚이다.

 





누구는 씨 뿌리면 알아서 크고 열매 맺는 것이 자연농이라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리요
거름 없는 황무지나 물 없는 사막에서 아무도 자라지 못하듯 땀방울 빗방울 거름 방울 먹고 자란다

밥 위에 얹은 감자밥도
외갓집에 가서 젓가락 대면 훌훌 날던 조밥도 시간 속에 묻어 두었는데 밀 농사 짓는 아는 시인이 밀밥을 했다고 하는 말에 밀밥 속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바람도 먹고 물도 먹고
태양 빛도 먹어야 크는 밀알이 밤이면 별빛도 먹고 달빛도 먹고 고요한 밤도 먹으며 자랐으리라 그래서 작은 우주를 닮았으리라

평생 내가 먹고 마신 자연 앞에 내가 얼마나 빛을 진 것일까
나를 위해 우릴 위해 죽어 간 수많은 닭과 돼지 소가 몇 마리나 되려나

이번 생은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이여
밀알 한 알도 빚이다.

 







#작가의 변
자정이 넘은 깊은 여름밤.

더위에 창을 열고 자니 지나는 차 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 이명으로 들리는 여치 소리, 파도 소리까지 잠 못 드는 밤은 깊어만 가는데 세상에 홀로 인듯하다.

어릴 적 한 방에서 우리 식구 모두 나란히 누워 잤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시절이라 해 떨어지고 일찍 잠들기 마련이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은 고문이었다. 자다가 작은 것이 마려우면 요강에 볼일을 보면 될 것을 굳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요강에 볼일 보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여름 더운 날엔 마당에 멍석을 깔고 하늘에 별들이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 쑥으로 모깃불을 붙여 놓고 모기장에 옹기종기 누워 별과 함께 잠이 들었다. 컴퓨터가 뭔지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푸른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박 한 통을 차디찬 우물물에 담가 두었다가 쪼개어 먹으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도 없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다.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자고 오기도 했는데 자다가 혼자 깨어 화장실을 가야겠는데 내가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작은 걸 참다가 뒤척이다가 결국은 나가게 될 것이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여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 그 시간들은 아득히 멀어져 가고 거름이 되어 내 멘탈을 잡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지어서 성공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고추 농사가 잘된 해에는 집집마다 고추가 풍년이어서 태양에 말린 태양초든 연탄불에 말린 마른 고추든 헐값으로 수거해가는 수집상에게 넘길 뿐이었고, 농사가 안된 해는 팔려고 해도 팔 고추가 없었다. 그래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거나 하다못해 오이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집들이 부럽기도 했던 것은 참외나 수박을 맘대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여름밤 도둑을 지키기 위해 원두막에서 자는 주인을 피해 수박 서리를 하면서도 원두막이 있는 집들이 부러웠다. 과수원을 하는 집에 가면 사과의 향에 취해 과수원을 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과가 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수고가 이어지며, 밤엔 별과 달과 함께하고 낮엔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야 자란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 한쪽 면만 본 결과다.

농사란 농부가 잘한다고 잘되지 않는다. 날씨 특히 가뭄이나 장마, 홍수 같은 천재지변은 농부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별과 달, 해와 벌과 나비는 물론 굼벵이 같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벼를 심기 위해서도 논에 물을 대고 애벌갈이를 하고, 써레질해서 고르고 모 판에서 모종 모를 기르고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면 품앗이로 모내기를 해야 모가 논에 자리를 잡고, 물 관리, 피 뽑고. 잡초 뽑고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듯 관리를 해야 가을에 황금 들녘에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볼 수 있다. 물론 보리나 밀도 마찬가지다. 아니 가을에 파종해서 추운 겨울을 나는 보리는 까칠까칠한 이삭만큼이나 힘든 농사 중 하나다. 그래도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보리 잎 새나 밀밭을 보고 있으면 파릇한 기운이 눈을 통해 가슴에 자리하고 설레기까지 한 것이다. 낮이면 뜨거운 태양의 기운으로 살고, 밤이면 별과 달의 기운으로 사는 모든 동식물처럼 인과 관계로 산다. 유기질 무기질을 먹고 자라는 농작물과 나무처럼 사람도 마지막엔 흙으로 돌아가 그동안 진 빚을 조금은 갚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먹는 쌀, 밀알이 싹을 틔우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먹어서 우리가 살아가듯 삶은 돌고 도는 순환의 연속이다. 먹고 남은 음식은 돼지가 먹고 소가 먹던 시골 생활과는 다르게 현대의 생활엔 날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도시마다 넘쳐나고 비닐 등 썩지 않는 쓰레기도 날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온다. 냉장고가 나오고,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이 나오니 그 쓰레기도 날마다 늘어 가고, 쓰기 싫어 버리는 가구, 옷가지 등도 넘쳐난다. 우리가 딱 먹고 입을 만큼만 겨우 생산하던 시절에서 유행에 따라 버려지는 쓰레기도 많다.

밀알 한 알에 우주가 담겼다. 해와 달, 낮과 밤, 별과 바람이 담겼다.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음식들이 변형되어 무엇에서 왔는지도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행성이 아니니까? 만일 우리가 평생 먹은 만큼의 음식을 우리가 갚아야 하는 빛이라면 그렇게 마음껏 먹지는 못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버려지는 음식물과 쓰레기들이 넘치지만, 한편에선 굶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은 지구별에서 자란 밀알이 우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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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자정이 넘은 깊은 여름밤.

더위에 창을 열고 자니 지나는 차 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 이명으로 들리는 여치 소리, 파도 소리까지 잠 못 드는 밤은 깊어만 가는데 세상에 홀로 인듯하다.

어릴 적 한 방에서 우리 식구 모두 나란히 누워 잤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시절이라 해 떨어지고 일찍 잠들기 마련이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은 고문이었다. 자다가 작은 것이 마려우면 요강에 볼일을 보면 될 것을 굳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요강에 볼일 보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여름 더운 날엔 마당에 멍석을 깔고 하늘에 별들이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 쑥으로 모깃불을 붙여 놓고 모기장에 옹기종기 누워 별과 함께 잠이 들었다. 컴퓨터가 뭔지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푸른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박 한 통을 차디찬 우물물에 담가 두었다가 쪼개어 먹으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도 없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다.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자고 오기도 했는데 자다가 혼자 깨어 화장실을 가야겠는데 내가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작은 걸 참다가 뒤척이다가 결국은 나가게 될 것이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여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 그 시간들은 아득히 멀어져 가고 거름이 되어 내 멘탈을 잡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지어서 성공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고추 농사가 잘된 해에는 집집마다 고추가 풍년이어서 태양에 말린 태양초든 연탄불에 말린 마른 고추든 헐값으로 수거해가는 수집상에게 넘길 뿐이었고, 농사가 안된 해는 팔려고 해도 팔 고추가 없었다. 그래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거나 하다못해 오이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집들이 부럽기도 했던 것은 참외나 수박을 맘대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여름밤 도둑을 지키기 위해 원두막에서 자는 주인을 피해 수박 서리를 하면서도 원두막이 있는 집들이 부러웠다. 과수원을 하는 집에 가면 사과의 향에 취해 과수원을 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과가 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수고가 이어지며, 밤엔 별과 달과 함께하고 낮엔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야 자란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 한쪽 면만 본 결과다.

농사란 농부가 잘한다고 잘되지 않는다. 날씨 특히 가뭄이나 장마, 홍수 같은 천재지변은 농부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별과 달, 해와 벌과 나비는 물론 굼벵이 같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벼를 심기 위해서도 논에 물을 대고 애벌갈이를 하고, 써레질해서 고르고 모 판에서 모종 모를 기르고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면 품앗이로 모내기를 해야 모가 논에 자리를 잡고, 물 관리, 피 뽑고. 잡초 뽑고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듯 관리를 해야 가을에 황금 들녘에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볼 수 있다. 물론 보리나 밀도 마찬가지다. 아니 가을에 파종해서 추운 겨울을 나는 보리는 까칠까칠한 이삭만큼이나 힘든 농사 중 하나다. 그래도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보리 잎 새나 밀밭을 보고 있으면 파릇한 기운이 눈을 통해 가슴에 자리하고 설레기까지 한 것이다. 낮이면 뜨거운 태양의 기운으로 살고, 밤이면 별과 달의 기운으로 사는 모든 동식물처럼 인과 관계로 산다. 유기질 무기질을 먹고 자라는 농작물과 나무처럼 사람도 마지막엔 흙으로 돌아가 그동안 진 빚을 조금은 갚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먹는 쌀, 밀알이 싹을 틔우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먹어서 우리가 살아가듯 삶은 돌고 도는 순환의 연속이다. 먹고 남은 음식은 돼지가 먹고 소가 먹던 시골 생활과는 다르게 현대의 생활엔 날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도시마다 넘쳐나고 비닐 등 썩지 않는 쓰레기도 날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온다. 냉장고가 나오고,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이 나오니 그 쓰레기도 날마다 늘어 가고, 쓰기 싫어 버리는 가구, 옷가지 등도 넘쳐난다. 우리가 딱 먹고 입을 만큼만 겨우 생산하던 시절에서 유행에 따라 버려지는 쓰레기도 많다.

밀알 한 알에 우주가 담겼다. 해와 달, 낮과 밤, 별과 바람이 담겼다.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음식들이 변형되어 무엇에서 왔는지도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행성이 아니니까? 만일 우리가 평생 먹은 만큼의 음식을 우리가 갚아야 하는 빛이라면 그렇게 마음껏 먹지는 못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버려지는 음식물과 쓰레기들이 넘치지만, 한편에선 굶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은 지구별에서 자란 밀알이 우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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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씨 뿌리면 알아서 크고 열매 맺는 것이 자연농이라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리요
거름 없는 황무지나 물 없는 사막에서 아무도 자라지 못하듯 땀방울 빗방울 거름 방울 먹고 자란다

밥 위에 얹은 감자밥도
외갓집에 가서 젓가락 대면 훌훌 날던 조밥도 시간 속에 묻어 두었는데 밀 농사 짓는 아는 시인이 밀밥을 했다고 하는 말에 밀밥 속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바람도 먹고 물도 먹고
태양 빛도 먹어야 크는 밀알이 밤이면 별빛도 먹고 달빛도 먹고 고요한 밤도 먹으며 자랐으리라 그래서 작은 우주를 닮았으리라

평생 내가 먹고 마신 자연 앞에 내가 얼마나 빛을 진 것일까
나를 위해 우릴 위해 죽어 간 수많은 닭과 돼지 소가 몇 마리나 되려나

이번 생은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이여
밀알 한 알도 빚이다.

 







#작가의 변
자정이 넘은 깊은 여름밤.

더위에 창을 열고 자니 지나는 차 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 이명으로 들리는 여치 소리, 파도 소리까지 잠 못 드는 밤은 깊어만 가는데 세상에 홀로 인듯하다.

어릴 적 한 방에서 우리 식구 모두 나란히 누워 잤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시절이라 해 떨어지고 일찍 잠들기 마련이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은 고문이었다. 자다가 작은 것이 마려우면 요강에 볼일을 보면 될 것을 굳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요강에 볼일 보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여름 더운 날엔 마당에 멍석을 깔고 하늘에 별들이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 쑥으로 모깃불을 붙여 놓고 모기장에 옹기종기 누워 별과 함께 잠이 들었다. 컴퓨터가 뭔지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푸른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박 한 통을 차디찬 우물물에 담가 두었다가 쪼개어 먹으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도 없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다.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자고 오기도 했는데 자다가 혼자 깨어 화장실을 가야겠는데 내가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작은 걸 참다가 뒤척이다가 결국은 나가게 될 것이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여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 그 시간들은 아득히 멀어져 가고 거름이 되어 내 멘탈을 잡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지어서 성공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고추 농사가 잘된 해에는 집집마다 고추가 풍년이어서 태양에 말린 태양초든 연탄불에 말린 마른 고추든 헐값으로 수거해가는 수집상에게 넘길 뿐이었고, 농사가 안된 해는 팔려고 해도 팔 고추가 없었다. 그래도 참외, 수박 농사를 짓거나 하다못해 오이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집들이 부럽기도 했던 것은 참외나 수박을 맘대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여름밤 도둑을 지키기 위해 원두막에서 자는 주인을 피해 수박 서리를 하면서도 원두막이 있는 집들이 부러웠다. 과수원을 하는 집에 가면 사과의 향에 취해 과수원을 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과가 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수고가 이어지며, 밤엔 별과 달과 함께하고 낮엔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야 자란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 한쪽 면만 본 결과다.

농사란 농부가 잘한다고 잘되지 않는다. 날씨 특히 가뭄이나 장마, 홍수 같은 천재지변은 농부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별과 달, 해와 벌과 나비는 물론 굼벵이 같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벼를 심기 위해서도 논에 물을 대고 애벌갈이를 하고, 써레질해서 고르고 모 판에서 모종 모를 기르고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면 품앗이로 모내기를 해야 모가 논에 자리를 잡고, 물 관리, 피 뽑고. 잡초 뽑고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듯 관리를 해야 가을에 황금 들녘에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볼 수 있다. 물론 보리나 밀도 마찬가지다. 아니 가을에 파종해서 추운 겨울을 나는 보리는 까칠까칠한 이삭만큼이나 힘든 농사 중 하나다. 그래도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보리 잎 새나 밀밭을 보고 있으면 파릇한 기운이 눈을 통해 가슴에 자리하고 설레기까지 한 것이다. 낮이면 뜨거운 태양의 기운으로 살고, 밤이면 별과 달의 기운으로 사는 모든 동식물처럼 인과 관계로 산다. 유기질 무기질을 먹고 자라는 농작물과 나무처럼 사람도 마지막엔 흙으로 돌아가 그동안 진 빚을 조금은 갚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먹는 쌀, 밀알이 싹을 틔우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먹어서 우리가 살아가듯 삶은 돌고 도는 순환의 연속이다. 먹고 남은 음식은 돼지가 먹고 소가 먹던 시골 생활과는 다르게 현대의 생활엔 날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도시마다 넘쳐나고 비닐 등 썩지 않는 쓰레기도 날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온다. 냉장고가 나오고,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이 나오니 그 쓰레기도 날마다 늘어 가고, 쓰기 싫어 버리는 가구, 옷가지 등도 넘쳐난다. 우리가 딱 먹고 입을 만큼만 겨우 생산하던 시절에서 유행에 따라 버려지는 쓰레기도 많다.

밀알 한 알에 우주가 담겼다. 해와 달, 낮과 밤, 별과 바람이 담겼다.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음식들이 변형되어 무엇에서 왔는지도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행성이 아니니까? 만일 우리가 평생 먹은 만큼의 음식을 우리가 갚아야 하는 빛이라면 그렇게 마음껏 먹지는 못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버려지는 음식물과 쓰레기들이 넘치지만, 한편에선 굶고 목마른 사람들이 많은 지구별에서 자란 밀알이 우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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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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