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스님의 사랑·희망이 가득했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만해 스님의 사랑·희망이 가득했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06.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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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 18일 만해 78주기 추모예술제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 첫 선




“좁은 비탈길 골짜기 두 칸짜리 작은 집 들어는 봤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말년 기거한 집, 심우장(尋牛莊).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지은 북향집.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의 주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옥살이하고 나온 만해 스님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한옥이 대부분 남쪽을 향한 것과 달리, 저는 그늘이 드리운 북향집입니다.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나를 북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입니다. 왼쪽 끝 칸은 사랑방에 해당하고, 가운데 2칸은 안방, 오른쪽 끝 칸은 부엌입니다. 만해 스님의 영애 한영숙 여사는 광과 목욕실이 딸린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불교에선 대개 소가 마음을 상징하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입니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심우, ‘소를 찾는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심우장은 불교의 깊은 수행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에게 ‘심우’는 ‘나라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낸 이름이 심우장인 셈이지요.”

만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고,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심우장 시기 만해 스님의 삶은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 스님)은 설립 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을 추모하는 ‘만해 78주기 추모’ 행사를 6월 한 달간 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 스님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시절, 그의 활동을 조명하는 추모학술제가 열렸고, 18일 심우장에서는 추모예술제 일환으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를 공연했다. 추모 예술제가 심우장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심우애서’는 3막 구성으로,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이원조 씨가 곡을 썼고,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했다. 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맡아 열연했다.

1막 ‘길을 찾아서’는 현대와 심우장에 만해 스님이 기거하던 시절을 교차 연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염원의 끝이 심우장에서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현대의 한 청년이 심우장을 찾아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굳은 결의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던 만해 스님의 삶의 흔적을 짚어낸다.







2막 ‘심우에서’는 만해 스님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들의 소식에도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편지 심부름을 하러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해 절망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생을 달리한 김동삼의 부고 소식에, 직접 그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는 만해의 결기를 그려낸다. 김동삼은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서로군정서를 세워 참모장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산사애서’는 김동삼 선생의 죽음을 ”의롭게 살다간 그대의 죽음은 마무도 찾지 않는 죽음, 울지 않는 절망“이라고 안타까워한다.







3막 ‘바라밀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처절하고 외로운 김동삼의 장례식, 고문의 고통에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 유심. 하지만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조국의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고 곁을 떠나갔던 유심과 미래가 다시 돌아오고,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읊조린다. 만해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끝내 놓지 않는다. ‘만해’, 청년 ‘유심’과 ‘미래’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함께 심우장에서 새긴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랑을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독립을 위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만해 스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고난, 좌절,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낸다. ‘심우애서’에는 만해 스님과 홍명희 같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 유심, 미래를 의인화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엄혹한 현실과 고난, 한계, 좌절, 그리고 번뇌를 상징한다. ‘유심’은 만해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의인화했다.







‘심우애서’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만해 스님이 기거한 심우장 마당에서 펼쳐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해 스님 생전부터 자랐을 거송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은 만해 스님이 머물던 사랑방과 마루, 마당을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했다.

공연에 앞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은 55세인 1933년 심우장에 오셔서 1944년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셨다.”며, “1921년부터 선학원에서 신간회, 6·10만세 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많이 치른 탓에 건강이 안 좋아져 병을 다스리고자 이곳으로 옮기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해 스님은 이곳 심우장에서 11년간 머무시면서 만당 운동, 청년운동을 펼치셨다.”며, “만해 스님이 찾고자 했던 소〔심우장의 소(牛)〕는 조국의 독립, 중생, 부처 등 ‘님의 침묵’의 님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 일대를 재개발할 예정” 라며, “심우장 일대를 만해 역사공원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영배 국회의원도 ”만해 스님이 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 5일장을 지내는 동안 20여 명만 조문 왔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만해 스님의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라고 소개한 뒤 “구청장과 잘 협조해 심우장을 아이들이 찾아오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우는 터전으로 가꾸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재단법인 선학원 지광 스님은 “만해 스님은 강인하시고 정의로웠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셨다. 이곳 심우장은 그런 스님의 소박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만해예술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동참하시는 분들도 뜻을 같이 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좁은 비탈길 골짜기 두 칸짜리 작은 집 들어는 봤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말년 기거한 집, 심우장(尋牛莊).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지은 북향집.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의 주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옥살이하고 나온 만해 스님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좁은 비탈길 골짜기 두 칸짜리 작은 집 들어는 봤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말년 기거한 집, 심우장(尋牛莊).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지은 북향집.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의 주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옥살이하고 나온 만해 스님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한옥이 대부분 남쪽을 향한 것과 달리, 저는 그늘이 드리운 북향집입니다.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나를 북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입니다. 왼쪽 끝 칸은 사랑방에 해당하고, 가운데 2칸은 안방, 오른쪽 끝 칸은 부엌입니다. 만해 스님의 영애 한영숙 여사는 광과 목욕실이 딸린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불교에선 대개 소가 마음을 상징하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입니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심우, ‘소를 찾는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심우장은 불교의 깊은 수행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에게 ‘심우’는 ‘나라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낸 이름이 심우장인 셈이지요.”

만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고,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심우장 시기 만해 스님의 삶은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 스님)은 설립 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을 추모하는 ‘만해 78주기 추모’ 행사를 6월 한 달간 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 스님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시절, 그의 활동을 조명하는 추모학술제가 열렸고, 18일 심우장에서는 추모예술제 일환으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를 공연했다. 추모 예술제가 심우장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심우애서’는 3막 구성으로,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이원조 씨가 곡을 썼고,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했다. 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맡아 열연했다.

1막 ‘길을 찾아서’는 현대와 심우장에 만해 스님이 기거하던 시절을 교차 연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염원의 끝이 심우장에서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현대의 한 청년이 심우장을 찾아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굳은 결의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던 만해 스님의 삶의 흔적을 짚어낸다.







2막 ‘심우에서’는 만해 스님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들의 소식에도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편지 심부름을 하러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해 절망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생을 달리한 김동삼의 부고 소식에, 직접 그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는 만해의 결기를 그려낸다. 김동삼은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서로군정서를 세워 참모장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산사애서’는 김동삼 선생의 죽음을 ”의롭게 살다간 그대의 죽음은 마무도 찾지 않는 죽음, 울지 않는 절망“이라고 안타까워한다.







3막 ‘바라밀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처절하고 외로운 김동삼의 장례식, 고문의 고통에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 유심. 하지만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조국의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고 곁을 떠나갔던 유심과 미래가 다시 돌아오고,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읊조린다. 만해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끝내 놓지 않는다. ‘만해’, 청년 ‘유심’과 ‘미래’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함께 심우장에서 새긴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랑을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독립을 위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만해 스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고난, 좌절,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낸다. ‘심우애서’에는 만해 스님과 홍명희 같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 유심, 미래를 의인화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엄혹한 현실과 고난, 한계, 좌절, 그리고 번뇌를 상징한다. ‘유심’은 만해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의인화했다.







‘심우애서’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만해 스님이 기거한 심우장 마당에서 펼쳐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해 스님 생전부터 자랐을 거송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은 만해 스님이 머물던 사랑방과 마루, 마당을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했다.

공연에 앞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은 55세인 1933년 심우장에 오셔서 1944년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셨다.”며, “1921년부터 선학원에서 신간회, 6·10만세 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많이 치른 탓에 건강이 안 좋아져 병을 다스리고자 이곳으로 옮기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해 스님은 이곳 심우장에서 11년간 머무시면서 만당 운동, 청년운동을 펼치셨다.”며, “만해 스님이 찾고자 했던 소〔심우장의 소(牛)〕는 조국의 독립, 중생, 부처 등 ‘님의 침묵’의 님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 일대를 재개발할 예정” 라며, “심우장 일대를 만해 역사공원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영배 국회의원도 ”만해 스님이 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 5일장을 지내는 동안 20여 명만 조문 왔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만해 스님의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라고 소개한 뒤 “구청장과 잘 협조해 심우장을 아이들이 찾아오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우는 터전으로 가꾸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재단법인 선학원 지광 스님은 “만해 스님은 강인하시고 정의로웠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셨다. 이곳 심우장은 그런 스님의 소박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만해예술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동참하시는 분들도 뜻을 같이 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한옥이 대부분 남쪽을 향한 것과 달리, 저는 그늘이 드리운 북향집입니다.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나를 북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입니다. 왼쪽 끝 칸은 사랑방에 해당하고, 가운데 2칸은 안방, 오른쪽 끝 칸은 부엌입니다. 만해 스님의 영애 한영숙 여사는 광과 목욕실이 딸린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불교에선 대개 소가 마음을 상징하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입니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심우, ‘소를 찾는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심우장은 불교의 깊은 수행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에게 ‘심우’는 ‘나라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낸 이름이 심우장인 셈이지요.”

만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고,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심우장 시기 만해 스님의 삶은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좁은 비탈길 골짜기 두 칸짜리 작은 집 들어는 봤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말년 기거한 집, 심우장(尋牛莊).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지은 북향집.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의 주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옥살이하고 나온 만해 스님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한옥이 대부분 남쪽을 향한 것과 달리, 저는 그늘이 드리운 북향집입니다.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나를 북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입니다. 왼쪽 끝 칸은 사랑방에 해당하고, 가운데 2칸은 안방, 오른쪽 끝 칸은 부엌입니다. 만해 스님의 영애 한영숙 여사는 광과 목욕실이 딸린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불교에선 대개 소가 마음을 상징하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입니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심우, ‘소를 찾는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심우장은 불교의 깊은 수행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에게 ‘심우’는 ‘나라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낸 이름이 심우장인 셈이지요.”

만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고,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심우장 시기 만해 스님의 삶은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 스님)은 설립 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을 추모하는 ‘만해 78주기 추모’ 행사를 6월 한 달간 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 스님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시절, 그의 활동을 조명하는 추모학술제가 열렸고, 18일 심우장에서는 추모예술제 일환으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를 공연했다. 추모 예술제가 심우장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심우애서’는 3막 구성으로,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이원조 씨가 곡을 썼고,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했다. 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맡아 열연했다.

1막 ‘길을 찾아서’는 현대와 심우장에 만해 스님이 기거하던 시절을 교차 연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염원의 끝이 심우장에서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현대의 한 청년이 심우장을 찾아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굳은 결의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던 만해 스님의 삶의 흔적을 짚어낸다.







2막 ‘심우에서’는 만해 스님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들의 소식에도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편지 심부름을 하러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해 절망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생을 달리한 김동삼의 부고 소식에, 직접 그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는 만해의 결기를 그려낸다. 김동삼은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서로군정서를 세워 참모장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산사애서’는 김동삼 선생의 죽음을 ”의롭게 살다간 그대의 죽음은 마무도 찾지 않는 죽음, 울지 않는 절망“이라고 안타까워한다.







3막 ‘바라밀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처절하고 외로운 김동삼의 장례식, 고문의 고통에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 유심. 하지만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조국의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고 곁을 떠나갔던 유심과 미래가 다시 돌아오고,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읊조린다. 만해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끝내 놓지 않는다. ‘만해’, 청년 ‘유심’과 ‘미래’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함께 심우장에서 새긴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랑을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독립을 위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만해 스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고난, 좌절,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낸다. ‘심우애서’에는 만해 스님과 홍명희 같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 유심, 미래를 의인화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엄혹한 현실과 고난, 한계, 좌절, 그리고 번뇌를 상징한다. ‘유심’은 만해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의인화했다.







‘심우애서’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만해 스님이 기거한 심우장 마당에서 펼쳐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해 스님 생전부터 자랐을 거송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은 만해 스님이 머물던 사랑방과 마루, 마당을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했다.

공연에 앞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은 55세인 1933년 심우장에 오셔서 1944년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셨다.”며, “1921년부터 선학원에서 신간회, 6·10만세 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많이 치른 탓에 건강이 안 좋아져 병을 다스리고자 이곳으로 옮기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해 스님은 이곳 심우장에서 11년간 머무시면서 만당 운동, 청년운동을 펼치셨다.”며, “만해 스님이 찾고자 했던 소〔심우장의 소(牛)〕는 조국의 독립, 중생, 부처 등 ‘님의 침묵’의 님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 일대를 재개발할 예정” 라며, “심우장 일대를 만해 역사공원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영배 국회의원도 ”만해 스님이 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 5일장을 지내는 동안 20여 명만 조문 왔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만해 스님의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라고 소개한 뒤 “구청장과 잘 협조해 심우장을 아이들이 찾아오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우는 터전으로 가꾸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재단법인 선학원 지광 스님은 “만해 스님은 강인하시고 정의로웠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셨다. 이곳 심우장은 그런 스님의 소박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만해예술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동참하시는 분들도 뜻을 같이 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 스님)은 설립 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을 추모하는 ‘만해 78주기 추모’ 행사를 6월 한 달간 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 스님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시절, 그의 활동을 조명하는 추모학술제가 열렸고, 18일 심우장에서는 추모예술제 일환으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를 공연했다. 추모 예술제가 심우장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심우애서’는 3막 구성으로,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이원조 씨가 곡을 썼고,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했다. 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맡아 열연했다.

1막 ‘길을 찾아서’는 현대와 심우장에 만해 스님이 기거하던 시절을 교차 연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염원의 끝이 심우장에서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현대의 한 청년이 심우장을 찾아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굳은 결의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던 만해 스님의 삶의 흔적을 짚어낸다.





“좁은 비탈길 골짜기 두 칸짜리 작은 집 들어는 봤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말년 기거한 집, 심우장(尋牛莊).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지은 북향집.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의 주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옥살이하고 나온 만해 스님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한옥이 대부분 남쪽을 향한 것과 달리, 저는 그늘이 드리운 북향집입니다.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나를 북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입니다. 왼쪽 끝 칸은 사랑방에 해당하고, 가운데 2칸은 안방, 오른쪽 끝 칸은 부엌입니다. 만해 스님의 영애 한영숙 여사는 광과 목욕실이 딸린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불교에선 대개 소가 마음을 상징하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입니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심우, ‘소를 찾는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심우장은 불교의 깊은 수행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에게 ‘심우’는 ‘나라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낸 이름이 심우장인 셈이지요.”

만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고,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심우장 시기 만해 스님의 삶은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 스님)은 설립 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을 추모하는 ‘만해 78주기 추모’ 행사를 6월 한 달간 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 스님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시절, 그의 활동을 조명하는 추모학술제가 열렸고, 18일 심우장에서는 추모예술제 일환으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를 공연했다. 추모 예술제가 심우장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심우애서’는 3막 구성으로,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이원조 씨가 곡을 썼고,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했다. 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맡아 열연했다.

1막 ‘길을 찾아서’는 현대와 심우장에 만해 스님이 기거하던 시절을 교차 연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염원의 끝이 심우장에서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현대의 한 청년이 심우장을 찾아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굳은 결의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던 만해 스님의 삶의 흔적을 짚어낸다.







2막 ‘심우에서’는 만해 스님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들의 소식에도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편지 심부름을 하러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해 절망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생을 달리한 김동삼의 부고 소식에, 직접 그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는 만해의 결기를 그려낸다. 김동삼은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서로군정서를 세워 참모장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산사애서’는 김동삼 선생의 죽음을 ”의롭게 살다간 그대의 죽음은 마무도 찾지 않는 죽음, 울지 않는 절망“이라고 안타까워한다.







3막 ‘바라밀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처절하고 외로운 김동삼의 장례식, 고문의 고통에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 유심. 하지만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조국의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고 곁을 떠나갔던 유심과 미래가 다시 돌아오고,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읊조린다. 만해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끝내 놓지 않는다. ‘만해’, 청년 ‘유심’과 ‘미래’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함께 심우장에서 새긴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랑을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독립을 위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만해 스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고난, 좌절,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낸다. ‘심우애서’에는 만해 스님과 홍명희 같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 유심, 미래를 의인화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엄혹한 현실과 고난, 한계, 좌절, 그리고 번뇌를 상징한다. ‘유심’은 만해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의인화했다.







‘심우애서’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만해 스님이 기거한 심우장 마당에서 펼쳐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해 스님 생전부터 자랐을 거송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은 만해 스님이 머물던 사랑방과 마루, 마당을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했다.

공연에 앞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은 55세인 1933년 심우장에 오셔서 1944년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셨다.”며, “1921년부터 선학원에서 신간회, 6·10만세 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많이 치른 탓에 건강이 안 좋아져 병을 다스리고자 이곳으로 옮기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해 스님은 이곳 심우장에서 11년간 머무시면서 만당 운동, 청년운동을 펼치셨다.”며, “만해 스님이 찾고자 했던 소〔심우장의 소(牛)〕는 조국의 독립, 중생, 부처 등 ‘님의 침묵’의 님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 일대를 재개발할 예정” 라며, “심우장 일대를 만해 역사공원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영배 국회의원도 ”만해 스님이 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 5일장을 지내는 동안 20여 명만 조문 왔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만해 스님의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라고 소개한 뒤 “구청장과 잘 협조해 심우장을 아이들이 찾아오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우는 터전으로 가꾸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재단법인 선학원 지광 스님은 “만해 스님은 강인하시고 정의로웠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셨다. 이곳 심우장은 그런 스님의 소박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만해예술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동참하시는 분들도 뜻을 같이 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2막 ‘심우에서’는 만해 스님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들의 소식에도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편지 심부름을 하러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해 절망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생을 달리한 김동삼의 부고 소식에, 직접 그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는 만해의 결기를 그려낸다. 김동삼은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서로군정서를 세워 참모장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산사애서’는 김동삼 선생의 죽음을 ”의롭게 살다간 그대의 죽음은 마무도 찾지 않는 죽음, 울지 않는 절망“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좁은 비탈길 골짜기 두 칸짜리 작은 집 들어는 봤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말년 기거한 집, 심우장(尋牛莊).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지은 북향집.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의 주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옥살이하고 나온 만해 스님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한옥이 대부분 남쪽을 향한 것과 달리, 저는 그늘이 드리운 북향집입니다.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나를 북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입니다. 왼쪽 끝 칸은 사랑방에 해당하고, 가운데 2칸은 안방, 오른쪽 끝 칸은 부엌입니다. 만해 스님의 영애 한영숙 여사는 광과 목욕실이 딸린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불교에선 대개 소가 마음을 상징하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입니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심우, ‘소를 찾는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심우장은 불교의 깊은 수행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에게 ‘심우’는 ‘나라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낸 이름이 심우장인 셈이지요.”

만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고,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심우장 시기 만해 스님의 삶은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 스님)은 설립 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을 추모하는 ‘만해 78주기 추모’ 행사를 6월 한 달간 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 스님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시절, 그의 활동을 조명하는 추모학술제가 열렸고, 18일 심우장에서는 추모예술제 일환으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를 공연했다. 추모 예술제가 심우장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심우애서’는 3막 구성으로,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이원조 씨가 곡을 썼고,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했다. 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맡아 열연했다.

1막 ‘길을 찾아서’는 현대와 심우장에 만해 스님이 기거하던 시절을 교차 연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염원의 끝이 심우장에서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현대의 한 청년이 심우장을 찾아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굳은 결의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던 만해 스님의 삶의 흔적을 짚어낸다.







2막 ‘심우에서’는 만해 스님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들의 소식에도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편지 심부름을 하러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해 절망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생을 달리한 김동삼의 부고 소식에, 직접 그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는 만해의 결기를 그려낸다. 김동삼은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서로군정서를 세워 참모장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산사애서’는 김동삼 선생의 죽음을 ”의롭게 살다간 그대의 죽음은 마무도 찾지 않는 죽음, 울지 않는 절망“이라고 안타까워한다.







3막 ‘바라밀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처절하고 외로운 김동삼의 장례식, 고문의 고통에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 유심. 하지만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조국의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고 곁을 떠나갔던 유심과 미래가 다시 돌아오고,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읊조린다. 만해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끝내 놓지 않는다. ‘만해’, 청년 ‘유심’과 ‘미래’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함께 심우장에서 새긴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랑을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독립을 위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만해 스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고난, 좌절,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낸다. ‘심우애서’에는 만해 스님과 홍명희 같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 유심, 미래를 의인화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엄혹한 현실과 고난, 한계, 좌절, 그리고 번뇌를 상징한다. ‘유심’은 만해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의인화했다.







‘심우애서’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만해 스님이 기거한 심우장 마당에서 펼쳐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해 스님 생전부터 자랐을 거송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은 만해 스님이 머물던 사랑방과 마루, 마당을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했다.

공연에 앞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은 55세인 1933년 심우장에 오셔서 1944년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셨다.”며, “1921년부터 선학원에서 신간회, 6·10만세 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많이 치른 탓에 건강이 안 좋아져 병을 다스리고자 이곳으로 옮기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해 스님은 이곳 심우장에서 11년간 머무시면서 만당 운동, 청년운동을 펼치셨다.”며, “만해 스님이 찾고자 했던 소〔심우장의 소(牛)〕는 조국의 독립, 중생, 부처 등 ‘님의 침묵’의 님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 일대를 재개발할 예정” 라며, “심우장 일대를 만해 역사공원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영배 국회의원도 ”만해 스님이 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 5일장을 지내는 동안 20여 명만 조문 왔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만해 스님의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라고 소개한 뒤 “구청장과 잘 협조해 심우장을 아이들이 찾아오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우는 터전으로 가꾸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재단법인 선학원 지광 스님은 “만해 스님은 강인하시고 정의로웠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셨다. 이곳 심우장은 그런 스님의 소박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만해예술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동참하시는 분들도 뜻을 같이 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3막 ‘바라밀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처절하고 외로운 김동삼의 장례식, 고문의 고통에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 유심. 하지만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조국의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고 곁을 떠나갔던 유심과 미래가 다시 돌아오고,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읊조린다. 만해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끝내 놓지 않는다. ‘만해’, 청년 ‘유심’과 ‘미래’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함께 심우장에서 새긴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랑을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독립을 위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만해 스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고난, 좌절,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낸다. ‘심우애서’에는 만해 스님과 홍명희 같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 유심, 미래를 의인화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엄혹한 현실과 고난, 한계, 좌절, 그리고 번뇌를 상징한다. ‘유심’은 만해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의인화했다.





“좁은 비탈길 골짜기 두 칸짜리 작은 집 들어는 봤나 성북동 그 집 심우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말년 기거한 집, 심우장(尋牛莊).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지은 북향집.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작성하는 데도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다른 민족 대표들이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것과 달리, 그는 지조를 지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3.1운동의 주모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옥살이하고 나온 만해 스님은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며 “영접하는 사람이 아닌, 영접받는 사람이 돼라”라고 호통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한옥이 대부분 남쪽을 향한 것과 달리, 저는 그늘이 드리운 북향집입니다.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당시 남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므로, 이를 피해 일부러 나를 북향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심우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입니다. 왼쪽 끝 칸은 사랑방에 해당하고, 가운데 2칸은 안방, 오른쪽 끝 칸은 부엌입니다. 만해 스님의 영애 한영숙 여사는 광과 목욕실이 딸린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불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불교에선 대개 소가 마음을 상징하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입니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행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심우, ‘소를 찾는다’, 즉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심우장은 불교의 깊은 수행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에게 ‘심우’는 ‘나라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국심을 가장 잘 드러낸 이름이 심우장인 셈이지요.”

만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고,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심우장 시기 만해 스님의 삶은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 스님)은 설립 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을 추모하는 ‘만해 78주기 추모’ 행사를 6월 한 달간 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 스님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시절, 그의 활동을 조명하는 추모학술제가 열렸고, 18일 심우장에서는 추모예술제 일환으로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를 공연했다. 추모 예술제가 심우장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심우애서’는 3막 구성으로,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이원조 씨가 곡을 썼고,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했다. 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맡아 열연했다.

1막 ‘길을 찾아서’는 현대와 심우장에 만해 스님이 기거하던 시절을 교차 연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염원의 끝이 심우장에서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현대의 한 청년이 심우장을 찾아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굳은 결의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던 만해 스님의 삶의 흔적을 짚어낸다.







2막 ‘심우에서’는 만해 스님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들의 소식에도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편지 심부름을 하러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해 절망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생을 달리한 김동삼의 부고 소식에, 직접 그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는 만해의 결기를 그려낸다. 김동삼은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서로군정서를 세워 참모장으로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산사애서’는 김동삼 선생의 죽음을 ”의롭게 살다간 그대의 죽음은 마무도 찾지 않는 죽음, 울지 않는 절망“이라고 안타까워한다.







3막 ‘바라밀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처절하고 외로운 김동삼의 장례식, 고문의 고통에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 유심. 하지만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조국의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고 곁을 떠나갔던 유심과 미래가 다시 돌아오고,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읊조린다. 만해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끝내 놓지 않는다. ‘만해’, 청년 ‘유심’과 ‘미래’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함께 심우장에서 새긴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랑을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창작 뮤지컬 ‘심우애서’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독립을 위한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만해 스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고난, 좌절, 그리고 미래에 희망을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낸다. ‘심우애서’에는 만해 스님과 홍명희 같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 유심, 미래를 의인화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엄혹한 현실과 고난, 한계, 좌절, 그리고 번뇌를 상징한다. ‘유심’은 만해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의인화했다.







‘심우애서’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만해 스님이 기거한 심우장 마당에서 펼쳐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해 스님 생전부터 자랐을 거송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은 만해 스님이 머물던 사랑방과 마루, 마당을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했다.

공연에 앞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은 55세인 1933년 심우장에 오셔서 1944년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셨다.”며, “1921년부터 선학원에서 신간회, 6·10만세 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많이 치른 탓에 건강이 안 좋아져 병을 다스리고자 이곳으로 옮기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해 스님은 이곳 심우장에서 11년간 머무시면서 만당 운동, 청년운동을 펼치셨다.”며, “만해 스님이 찾고자 했던 소〔심우장의 소(牛)〕는 조국의 독립, 중생, 부처 등 ‘님의 침묵’의 님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 일대를 재개발할 예정” 라며, “심우장 일대를 만해 역사공원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영배 국회의원도 ”만해 스님이 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 5일장을 지내는 동안 20여 명만 조문 왔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만해 스님의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라고 소개한 뒤 “구청장과 잘 협조해 심우장을 아이들이 찾아오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우는 터전으로 가꾸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재단법인 선학원 지광 스님은 “만해 스님은 강인하시고 정의로웠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셨다. 이곳 심우장은 그런 스님의 소박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만해예술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동참하시는 분들도 뜻을 같이 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심우애서’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만해 스님이 기거한 심우장 마당에서 펼쳐져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해 스님 생전부터 자랐을 거송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은 만해 스님이 머물던 사랑방과 마루, 마당을 오가며 노래하고 춤추며 열연했다.

공연에 앞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만해 스님은 55세인 1933년 심우장에 오셔서 1944년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셨다.”며, “1921년부터 선학원에서 신간회, 6·10만세 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옥고를 많이 치른 탓에 건강이 안 좋아져 병을 다스리고자 이곳으로 옮기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해 스님은 이곳 심우장에서 11년간 머무시면서 만당 운동, 청년운동을 펼치셨다.”며, “만해 스님이 찾고자 했던 소〔심우장의 소(牛)〕는 조국의 독립, 중생, 부처 등 ‘님의 침묵’의 님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심우장을 소개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북정마을 일대를 재개발할 예정” 라며, “심우장 일대를 만해 역사공원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인사말을 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영배 국회의원도 ”만해 스님이 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많이 말렸다. 5일장을 지내는 동안 20여 명만 조문 왔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만해 스님의 기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라고 소개한 뒤 “구청장과 잘 협조해 심우장을 아이들이 찾아오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배우는 터전으로 가꾸도록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인사말을 하는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재단법인 선학원 지광 스님은 “만해 스님은 강인하시고 정의로웠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셨다. 이곳 심우장은 그런 스님의 소박한 삶이 묻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만해예술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동참하시는 분들도 뜻을 같이 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인사말을 하는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

이날 공연은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과 교무이사 제선 스님, 재무이사 정덕 스님,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이사 영주·종근 스님 등 재단 임원 스님과 분원장 스님, 이승로 성북구청장과 김영배 국회의원, 일반인 등 100여 명이 관람했다. 만해 78주기 추모행사는 국가보훈처, 광복회, 한국독립유공자협회, 민족대표 33인기념사업회, 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 만해기념관이 후원했다.

공연은 재단법인 선학원과 BTN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다. 공연은 해당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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